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 강우근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너를 그것과 바꿔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창가에 키우는 식물이 많아질수록 너의 습관과 기분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식물에는 모두 그 씨앗을 흙 속에 묻은 정원사의 영혼이 담겨 있어 죽어가는 식물에서 조심스레 흘러나온 영혼이 너로 하여금 단단한 씨앗을 집게할 것이다 한밤중에 나에게서 빠져나온 이상한 꿈들은 방향을 어디로 바꿀지 모르는 꼬리처럼 너를 따라다닐 것이다 너는 한 마리의 고양이를 좋아했기에 앞으로 얼룩과 울음소리가 다른 세 마리의 고양이가 품 안에서 털을 날리며 살아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색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 멀쩡한 파란색 후드티가 없게 될 것이다 투명한 컵이 있어서 그 잔에 물을 계속 따르듯이 넓은 탁자를 두었기에 집에 초대하는 사람이 많아지듯이 거실에 들여놓은 나무 가구들은 커튼을 걷어 해가 들어올 때마다 새로워질 것이다 네가 바깥에 나가 있는 동안 집 안의 나무들은 너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네가 남겨놓은 얼룩을 셔츠의 끝자락처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다 네가 가방 속에 넣어둔 작은 열쇠가 쓰일 때마다 정말로 네가 원하던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의 몸속에서도 작은 열쇠를 찾을 수 없을 때 너는 누군가가 사라진 것들과 함께 이 마법 창고를 옮기는 것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마법 창고가 텅 빌 때까지 너는 너에게 대화를 요구하는 사물을 거리에서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시집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창비, 2024.01)
* 강우근(姜宇根) 시인 1995년 강원 강릉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2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2022년 대산창작기금 대상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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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꿈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처럼 우리가 누군지 투명하게 깨닫게 하고, 쏟아지는 빗물처럼 꼼짝없이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어
꿈이라는 속성은 누구도 피해 가지 않으며 다가온다 식물이 조금씩 자라나는 것처럼 희미하고 아름답게, 지하철이 내부에 있는 사람을 상영하는 것처럼 조용하게
슬픈 건 어린 나무가 어른 나무가 되어 자라나다가 발밑에 빗물이 닿지 않은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 슬픈 건 사라지는 모국어를 가진 사람이 같은 노래를 부르는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것처럼 매일 조금씩 사라지는 곳에 우리의 꿈이 있다는 것
조용한 꿈을 꾸고 싶다
세계라는 것이 어디 있는지 들추는 인간들 사이에는 없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하는, 그렇게 코끼리가 숨어들었던 숲이 해체되는 것을 기어코 봐야 하는 인간의 꿈이 아닌 각자의 햇볕을 이끌고 들판에서 이리저리 뛰어노는 아이들처럼, 이유 없는 마음처럼 시작되는 꿈
그건 당신이 볼 수 없는 당신의 표정 같은 걸까, 잠에 빠지는 동안 생겨나는 당신의 세포 같은 걸까
박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우리가 동시에 쓸 수 있는 하늘이라는 모자 당신의 시선 바깥으로 흘러가는 하나의 구름, “사라져버렸다” 아이들이 외쳐도 아무도 모르는 구름의 행방 가꾸어지지 않은 숲에서 들리는 이름 모를 새의 노래 단 하나의 무늬를 가진 물고기가 평생 물속에서 유영하고 싶은 감각
시를, 그런 꿈을 받아 적는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 부르고 싶다
2024년 1월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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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글]
강우근의 시에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두 영혼이 깃든 사물로 화(化)한다. 만물에 영혼이 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을 몸소 실천하는 듯한 그의 시는 세련된 도회적 감수성을 바탕에 깔고서 주변 사물에 깃든 영혼을 세심하게 발견하고 형상화한다.
과학 만능의 시대를 거스르는 듯한 저와 같은 작업이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식물처럼 묵묵히 자신의 과업을 완수하는 시에서 한가지 단서가 보인다. 사물이 식물이면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잎을 펼치는 식물의 방식을//최선을 다해 이해하고”(「점선으로 만들어지는 원」)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과업이자 작업이지 않을까.
이런 짐작으로 시를 다시 보면, 이상하게 화자가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화자를 보는 장면이 자주 도드라진다. 온갖 사물에 깃든 영혼이 ‘나’를 향해 시선을 보내고, 말을 걸어오고,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은 강우근 시의 주된 화법 중 하나다.
최선을 다해 대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이해하려는 자의 시선은 결코 공격적일 수가 없다. 누구보다 순하고 선한 마음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이 그의 시에 와서는 일상처럼 벌어진다. 거기서는 주체와 대상이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자리를 사이좋게 바꿔가며 한데 어울린다.
갈등이나 분열과는 거리가 먼 화자의 시에서 새삼 일깨워지는 감정도 그래서 맑음이고 환함이다. 그 맑음과 환함을 외면할 수 없는 마음이 또 그의 시를 읽게 할 것이다.
- 김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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