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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주소에 대해 잠깐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단동이라는 곳에서 심심치 않게 탈북자들을 만난다. 그들 얘기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시체는 썩은 다음에 비로소 갖다 묻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새 시체를 갖다 묻으면 그날 밤에 가서 파서 먹기 때문이다. 상상이되는가. 나는 그 말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 설마 했는데 이번에 쓰나미 지역에 가보니 사람 죽은 것은 별거 아니었다. 사람이 죽으면 장작개비보다 못하다. 시체가워낙 많으니까 인부들이 귀찮으니까 삽으로 퍼서 땅에다 던지는 것은 점잖은 것이다. 발로 차고 나무때기로 찌르고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본체다. 한 탈북자가 북한에 자기 가족을 두고 중국 땅으로 넘어와서 돈이 되는 일은 무슨 일이든 다 했다. 물론 젊은 여인이니까 몸 파는 것, 가능한 일은 그것 밖에 없었다. 중국 남자들에게 닥치는 대로 몸을 팔아 돈을 모아서 매달 자기 남편과 아들에게 생활비로 보냈다.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다. 우리가 작년에도 북녘 동포 겨울나기 운동을 했다. 두꺼운 겨울 재킷 만 벌을 만들어 그 추위가 너무 서러워 춥다고 말도 못하고 넘어오는 그들에게 따뜻한 외투를 입혀주면 거기에 뺨을 비비고 뒹구는 모습을 우리가 보면서 우리는 비록 남들처럼 평양에 비료도 갖다 주지 못하고 큰 학교는 짓지 못해도 우리는 한 생명을 안고 그들과 같이 뒹굴 수 있는 아름다운 사역,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일이요,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내 몸을 쪼개서 사랑, 그래서 사랑은 수고라고 했다.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가 되려면 진정한 의미의 민족과 국가를 위하려면 돈 좀 더 벌고 단동에 가겠다, 나중에 봉사하겠다는 사람은 필요 없다. 젊었을 때,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이 오라고 한때 걸어 나오는 것이 유쾌하다. 몽골에 가면 시력이 7.0이 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나는 의사생활 40년을 해도 2.2가 제일 좋은 시력인줄 알았다. 그런데 몽골 사람들은 평균 시력이 2.7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평균 시력이 1.45밖에 안 된다. 학자들이 가서 연구를 했다. 결론은 몽골에 가면 산, 건물, 공해, 스트레스도 없다. 그저 허허벌판 지평선 밖에 없다. 그저 보이는 것은 멀리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력이 좋다. 제대로 눈을 뜨고 보는 지도자가 되려면 이제는 멀리 보고 크게 봐야 한다. 요즘 미국에서는 ‘post kim era’ 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한다. 미국인들이 보기에 김정일은 조만간 갈 사람이다. 그렇다면 미국사람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중국 사람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한국 사람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질문1] 공한수 BigDream&Success 사장
나는 한국을 떠난 지 40여년이 지나 한국의 형편은 잘 모른다. 만주땅과 북한땅에 살고 있는 우리 반대쪽의 민족의 형편을 설명하고자 한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 쓰나미라는 지진이 발생했다. 보고에 의하면 30만명의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우리는 워낙 힘이 제한되어 인도네시아까지 도울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 주류사회에서 우리 단체를 좋게 보고 제발 인도네시아에도 의료봉사를 해달라고 헌금하는 분이 여러분 생겼다. 할 수 없이 등 떠밀려 인도네시아에 갔다. 인도네시아 아체라는 지역을 가보니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현실이었다.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워낙 죽은 시체가 많으니까 그냥 축구장만한 큰 운동장에 깊은 웅덩이를 파서 그곳에 시체를 삽으로 쓸어서 집어넣었는데 10만구가 넘었다고 한다.
그런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을 마음의 여유가 안 생겼다.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어 그저 머리만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만 했을 뿐이다. 이 엄청난 사실을 목격하면서 30만명이 죽은 현상이 이렇게 비참한데 200만 내지 300만이 먹지 못해 간이 망가지고 신장이 망가지고 뇌가 망가지고 결국 심장이 멈춰 죽었다는 것은 비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200-300만이었다고 WTO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을 보고 30만이 죽었다는 현장을 가서 보고 이렇게 충격을 받았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굶어 죽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현주소라는 것을 우리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내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단동은 신의주 맞은편에 있다.
그런데 밤만 되면 북한의 젊은 여인들이 먹을 것을 찾아 강을 넘어온다. 단동에 가면 작은 개울이 있는데 펄쩍 뛰어넘으면 저쪽은 북한이고 이곳은 중국이다. 그곳에 가면 북한 군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와서 공안에 붙잡히면 수용소에서 며칠씩 묵으면서 고문을 당하고 생선처럼 코에 철사를 끼워 강제 북송을 시킨다. 심한 경우는 어깻죽지 밑에 철사를 끼워 보낸다. 언론에도 보도된 것으로 아는데 청진에서 탈북자를 공개처형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다보니 탈북자들이 중국 땅에서 설 곳이 없다. 탈북에 성공해서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 그 몇 명 때문에 수십만, 수백만의 탈북자들이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무릅쓰고 먹기 위해 넘어온다. 그것도 젊은 여인들이 넘어온다. 그리고는 몰래 조선족 집을 찾아가 중국 사람에게 몸을 팔아 그 대가로 강냉이, 감자, 고구마 등을 한주먹씩 얻어 다시 자기 어린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건너간다.
선교사들이 시간만 있으면 압록강 앞으로 가서 놀기도 하고, 기도도 하는데 그때마다 유유히 흘러가는 압록강물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강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젊은 여인들, 우리의 딸들, 동생들이 그 짓을 하고 강냉이, 감자를손에 들고 어린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자기 집으로 가면서 흘렸던 한없는 눈물이 모이고 모여서 압록강 강물이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 그 가련한 여인들을 붙잡아서 매춘부에게 팔아넘기는 악덕 업주들이 생겼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벌을 받으려고. 틀림없이 중국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서울에서 온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한다. 가슴을 치고,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끝을 볼 수 없는 이런 현실에 한국이 잘 살면 무엇하고 세계 몇째 국가가 되면 무엇 하겠는가.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고, 무엇 때문에 한국 사람이 되었는지 이런 인간적인 개발, 이것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이런 운동들이 우리 가운데 좀 일어나야만 우리 민족이 앞으로 제대로 살 수 있는 민족이 되지 않을까 이것을 통탄하고 여러분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의사로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북한에 있는 어린이들을 보면 17, 18살 아이의 키가 한국 아이 12살짜리 키밖에 안 된다. 키고 작고 모습이 다르다. 누가 북한 사람이고 누가 한국 사람인지 구별이 된다. 원래는 같은 민족이다. 워낙 영양실조가 심해서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면 유전자가 변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우리 민족의 앞으로의 모습이 달라진다. 키가 작아지고 면역성이 약해지고 가지고 있는 형태가 달라진다. 과연 그러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오늘 여러분에게 인간개발연구원에서 먼저 지도자다운 지도자를 개발하고 양성하는 것을 놓고 좀더 심층있는 고민을 해보자고 첫 번째 여러분에게 드리는 도전이다.
두 번째,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미국에서 언론을 통해 듣고 보고 한 내용을전달하겠다. SAM의료복지재단은 영적 각성 선교재단이다. 이 재단이 생기면서 순수한 의미로 평신도들이 모여 한번 민족과 조국의 장래를 위해서 기도하고 고민해보자는 것이 우리 재단의 목적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미미했지만 지금은 미국 정부에서도 인정하는 단체가 되었다.
작년에 나는 미국 하원에서 봉사상을 받았다. 그 후 나는 미국인들을 위한 강의 초청을 많이 받았다. 미국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러 상원의원, 또 정치가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흥미 있는 얘기를 들었다. ‘constructive patience’, 건설적인 인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되면서 사실은 한국은 굉장히 큰 어려움을 당할 뻔했다.
그 당시만 해도 미국정부에서 강경주의 일변도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컬하게 이라크전이 한국을 도운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행히도 미국정부안에서 ‘건설적인 인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참고 기다리자. 가서 때려 부수는 것이 다가 아니라 결국은 기다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말을 쓰면서도 한국과 미국의 견해는 완전히 다르다. 미국인이 공공연하게 하는 말이 북한보다 한국이 더 밉다고 한다. 한국이 그래도 평화로운 조국을 이뤄가고 앞으로 동북아의 리더가 되려면 미국과 어차피 실리를 찾으면서 공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물론 미국이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하면 안 되겠지만 줄건 주고, 받을 것은 받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현명하게 세계 정세에 맞춰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데 여론에 나타나는 우리나라 지도자의 현상을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다.
결론은 우리가 올바른 인격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는 지도자를 키워보자는 것이 여러분과 저의 오늘 모인 목적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면 어떤 지도자가 어떤 인간개발, 어떤 인격개발을 가진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살 길인가.
첫째,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진정한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우리 삶 자체가 선한 열매를 맺어가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철학자들은 죽기 위해 산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지금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마지막 순간인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번은 오래 치료하던 환자가 암으로 죽게 되었다.
그래서 마지막 숨을 헐떡이기에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이 물끄러미 아내를 보더니 자판기에 가서는 포도주 캔을 사왔다. 따면서 마지막 숨을 쉬는 부인의 입에 한 모금 먹이고 자기 입에 한 모금 마시면서 성찬식을 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Good bye honey"라고 말하며 눈을 감겨주었다.
그는 ”천국으로 간 것을 믿습니다. 고통도 없고 아픔도 없고 억울함도 없는 그곳에서 이곳에서 못한 것을 많이 누리십시오. 나도 그곳에 곧 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죽음을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나 같으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 사람의 멋진 성찬식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가는 부인의 눈을 감겨주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진모습은 그 사람이 죽을 때 어떻게 죽느냐, 이것이 그 삶의 결론이라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전체인 것처럼 한 푼이라도 더 모으고, 하나라도 큰 것을 가지고, 큰 목소리를 가지고 살다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 보기 흉한 죽음을 당하는 사람보다는 “이 세상에 살다보니 억울한 일도, 괴로운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만 살려고 애쓰지 않고 내 민족, 내 나라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이제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나는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선한 열매를 맺은 삶이다.
그런데 한 달 뒤에 남편이 동네 다른 어떤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더 이상 돈을 보낼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다를 향해 동으로 동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낮에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숨어 있다가 밤에 캄캄한 산 속을 헤매면서 여자 혼자의 몸으로 건너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남자 셋이 같은 형편이 되어 한국으로 가기 위해 오는 동역자를 만나게 되었다. 너무 좋았다. 너무 든든했다.
남자 셋과 네 사람이 팀이 되어 산속을 헤매는데 남자 셋이 매일 번갈아 달라 들어 새로운 지옥이 시작되었다. 죽으려고 했지만 죽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두 달이 넘게 그 지경을 하면서 단동으로 왔을 때에는 성병이 온 뱃속으로 퍼져 복막염이 걸려 배가 임신 9개월이 된 여인처럼 뚱뚱 붇고 배 안에는 고름이 차고 열은 40도가 넘으면서 마지막 숨을 쉬는 광경을 보았다.
그 여인의 주위 사람들이 혹시 단동병원의 원장을 찾아가면 살 수 있는 길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해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 여인을 보고 하늘을 향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바로 우리의 딸이요, 동생들이 이 꼴이 되었는데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항생제 세 개를 한꺼번에 매일 주입했다. 그랬더니 기적적으로 열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약 2주일 후에 배가 가라앉고 열이 내리니까 여인의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었다. 마태복음 1장부터 끝장까지 외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우리 민족의 현주소를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넥타이 매고 총재, 박사, 장로 등 번듯하게 불리니까 대단한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착하고 충실된 종,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면 이것이 바로 선한 열매를 맺는 삶이다. 이런 우리 현주소를 알게 되면 거기는 자랑할 것도 거만할 것도 큰소리 칠 것도 목에 힘줄 것도 전혀 없다. 교수, 장군, 대통령 등 모든 사람은 죽는다. 결국은 죽음을 향해 가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선한 열매를 맺는 사람,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인간개발의 첫째 조건은 우리 삶 자체가선한 열매를 맺는 사람, 그래서 겸손한 사람이다.
나는 67년을 살아 온 철학이 하나 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못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내가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일 아내에게 큰소리를 치지만 아내에게 진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불쌍하게 큰 소리 치지 말고 목에 힘주지 말고 사실대로 이실직고해야 한다. 내가 이 민족과 이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선한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종말을 맺는 자, 이 자야 말로 진정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인간개발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사랑의 수고다. 사랑을 나누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랑은 반드시 헌신과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내가 먹을 것 다 먹고 가질 것 다 가지고 하는 사랑,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 내가 가질 것 못 가지고 할 것 못하고 그리고 없는 시간을 내서 해야 한다. 나는 미국에 건너가서 열심히 공부했다. 학위를 두 개씩 받았다. 미국 주립대학 의과대학에 정교수가 되었다.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일한 이유가 있었다. 굶어죽지 말고 남들보다 좀더 잘 먹고 잘살고 좀더 큰집에 살고, 큰 차를 사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50이 지나 생각해보니 무엇을 했는지 이력서를 쓰려고 하니 하나도 없었다. 무슨 회장, 무슨 박사, 무슨 교수 이런 것은 눈도 깜짝 안 한다. 우리 사회에 박사는 넘쳐난다.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인턴을 할 때 나는 그때만해도 이 세상에 나보다도 똑똑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때 나는 베토벤의 ‘영웅’을 자주 들었다. 나는 내 생애는 앞으로 크게 되어 성공해서 떵떵거리고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세상이 확 달라졌다. 그때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좋아했다.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 올라갔다 내려 왔다하는 스릴을 느끼면서 내가 죽을 때에는 그 곡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인과 사랑의 결실을 맺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사흘이 멀다 하고 악을 쓰고 싸움을 하고 부인은 편지를 써놓고 가기도 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던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애들은 계속 울고 그러면서 10년을 지나고 보니 조금씩 가정을 알게 되고 그 속에서 평화를 찾게 되었다. 그때는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3장의 폭풍이 지나가고, 4장에 아름다운 전원에 다시 평화가 오는 모습, 이것이 내 생애 목표다. 그래서 그때는 내가 죽으면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틀어달라고 했다.
50살이 되어서는 뒤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 것이 모두 나 한 몸 잘 되고 아이들을 더 좋은 학교에 보낸 그것 밖에 없었다. 하느님 앞에서 이력서를 쓰니 쓸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교회 장로, 허울 좋은 장로일 뿐이다. 하느님이 보기엔 나처럼 한심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울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틀어 놓았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결국은 삶을 허비하고 말았구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한번 신문을 보니 이화여대 김활란 박사가 돌아가시면서 마지막 장례식에 장송곡 대신에 할렐루야곡이 울려 퍼지는 것을 보고 느낀 것이 있다. 결국은 베토벤, 차이코프스키가 문제가 아니고 나와 창조주와의 관계, 내 영혼과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이것을 이뤄가는 가장 큰 삶이 내가 할 것을 이웃에게 나누고, 내 몸을 바쳐서 이웃을 돕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현실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압록강, 두만강 가에 진료소를 지어놓고, 밤만 되면 건너오는 탈북자를 돕는다. 먹을 것을 찾아 넘어오는 사람에게 우리는 약을 나눠준다. “이것은 항생제입니다. 피똥 싸고 열나는 사람에게 먹이십시오. 이것을 결핵약입니다. 피를 토하고 기침하는 사람에게 먹이십시오. 그리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시 오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고통이 바로 나의 고통입니다. 당신의 배고픔이 나의 배고픔입니다. 당신이 살아야만 우리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힘도 없고 권력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엄청나게 베풀어주신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하나뿐인 몸뚱이 여기 가지고 와서 여러분과 함께 뒹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사역이다. 그러면 그들이 우리 손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내가 교수직을 그만둘 때 여러 명의 환자가 눈물을 흘렸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남자 교수님 하나뿐인데 그만두면 어떡하느냐고 했다. 왜냐하면 산부인과 부인들이 남편에게 못하는 이야기도 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목을 안고 눈물을 흘릴 때 내 발로 걸어 나오면서 나는 이제 내 갈 길을 다 달렸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기분이 좋았다. 나도 한동안 돈을 잘 벌었다.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개업하니까 돈을 잘 벌었다.
그때는 배가 안 아프면 허리가 아프고, 허리가 안 아프면 다리가 아프고, 다리가 안 아프면 머리고 아팠다. 우리 집사람이 하는 말이 묘한 것이 한꺼번에 아팠으면 죽었을 텐데 배가 아프고, 한 군데가 나을만하면 다른 데가 아프다는 것이다. 죽지는 않는데 고통스럽다. 돈을 10만불을 버니까 빚이 10만불이다. 돈을 20만불을 버니까 빚이 20만불이다. 돈을 안 버니까 빚이 없다.
의과대학 교수로 30여년을 보내니 의과대학에서 먹을 것을 준다. 그것으로 우리 내외가 먹고 살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니면 이 세상의 맛있는 것은 다 먹는다. 공짜로 먹는다. 좋은 호텔, 일류호텔을 다 다닌다. 삶의 근본원리가 여기에 있다. 내 것이라고 긁어모으면 그게 다다. 놔 버리면 그 보다 더 큰 것이 있다. 이것이 사랑의 수고다.
세 번째, 소망의 인내다.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둑질을 잘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도라는 사람이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어 또 도둑질을 해서 잡혀갔다. 이것은 희망사항이 번지수가 잘못된 것이다. 올바른 곳에 소망을 두고 참고 견디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현주소는 어렵고 한국의 형편이 어려울지라도 한사람, 한사람이 제대로 된 지도자의 양성, 인간개발을 받게 되면 우리민족은 우수한 민족이다.
미국에 한국의사가 많은데 각 대학의 유수한 의과대학 교수는 한국 사람이 한 사람씩 있다. 책을 낸 사람도 많다. 한국인이 얼마나 똑똑한지 모른다. 우리가 올바른 길로, 올바른 지도자 양성을 하고, 인간개발, 인격개발을 하면 우리 민족은 밝은 앞날이 있다. 이런 것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인간의 문제는 보면 나 아니면 내 개인의 문제다. 나와 친구, 나와 옆 사람, 또 심지어는 나와 돈, 나와 명예, 나와 권력 결국은 인간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 민족이 필요한 것은 내 주위를 벗어나서 민족의 장래, 국가의 장래, 세계 평화를 위해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올바른 소망을 가지는 지도자가 나오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 가장 필요한 일 중의 하나다.
95년도에 북한에 김아무개가 세상을 떠나서 그 직후에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영생관을 갔는데 한국으로 치면 청와대와 마찬가지다. 평생 그 사람이 집무를 보던 곳이다. 그곳에는 그 사람이 죽고 난 후에 대리석으로 인조호수를 만들어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어 놨다.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면 세계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큰 방에 유리관을 만들어 김선생이 양복저고리를 입고 누워있다. 그 주위에는 수십 명의 북한 군인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있다. 들어갈 때부터 사람의 기를 죽인다. 문을 들어가면 위에서부터 압축된 공기가 나와 들어가는 사람마다 공기샤워를 시킨다. 우리 몸에 붙어 있는 먼지, 박테리아가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이다. 들어가면 다섯 명씩 짝을 지어 오른쪽, 왼쪽에서 절을 하게 시킨다.
서양 사람들도 시키는 대로 절을 하고 지나간다. 절 안하겠다고 말할 상황이 아니다. 우리 차례가 되었다. 우리는 그때 5명이 갔는데, 기독교인들이니까 우리를 데리고 간 고급관리들이 “절을 합시다”하고 90도로 절을 하는데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손을 잡고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렇게도 평생을 외우던 주기도문을 잊어버렸다. 머리 쪽으로 갔다. 이제는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북한선교한다고 민족이 어떻고 어디 죽을 곳이 없어 하필이면 인민군 총 때에 맞아 죽었나’, ‘내가 죽게 되면 부인은 어떡하고 아이들 결혼은 어떻게 하나’, 그러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생각이 났다. 90이 넘은 노모가 아들이 미국에서 성공한 의과대 교수라고 모두 주위에서는 칭찬을 하는데 이 아들이 북한을 왔다 갔다 하니 그저 어머니는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나서 우리 아들 죽지 않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신다. 어머니 생각만 났다.
그러다 이제 왼쪽으로 갔다. 이제는 어머니도 생각나지 않고, 내 몸만 생각났다. 죽을 거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군인들이 총을 나에게 겨눴다. 나는 완전히 사색이 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때 이 사람들 간에는5명이 절을 하지 않고 뻣뻣하게 돌아가는데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긴급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곤란하다는 결론이 났다. 왜냐하면 북한에 가면 숨을 쉬고 사는 누구를 막론하고 토요일마다 외우는 훈시가 있다. 이것을 외워야 일주일을 살 수 있다. 그 훈시에 한번은 이런 말이 있었다.
“재미동포 의사 박세록 교수가 조국을 사랑하여 평양 제3인민병원을 지어주셨습니다.” 북한에 있는 남녀노소는 모두 외우게 되었다. 그랬는데 그 사람이 절을 안 했다고 목을 베었다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한번 그렇게 나간 것은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그들은 골치는 아프지만 기독교인이니까 기도하는 것으로 봐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것을 우리는 알 리가 없다. 그런데 등을 팍 치기에 놀랐더니 이제 다 끝났냐고 물었다. 우리는 걸음마 나살려라 하면서 나오는데 “박선생! 박선생!”하면서 불렀다. 사람이 묘한 것이 5명이 다 죽는다고 하니까 마음이 편했는데 4명은 가고 나만 부르니 마음이 더 이상했다. 하늘이 노랗다 못해 빨갰다. 그래서 사색이 되어 또 불려갔다.
그런데 방명록에 추모의 말을 쓰라고 했다. 나는 “진정한 의미의 남북화해가 하루속히 오기를 바랍니다.”라고 썼다. 평생을 저를 찾아오는 환자를 치료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 저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고 하면서 나는 걸음마 나살려라 하고 달려갔다. 후에 남북통일이 되어 영생관에 가서 추모책을 보면 내가 써놓은 것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일행에게 돌아갔더니 이 4명이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나보다 더 반가워했다. 그래서 넷이서 한꺼번에 엉켜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엉엉 울었다. 죽지 않고 살았구나. 그런데 진정한 의미로 울었던 것은 세상 속에 묻혀서 나 한 몸둥이 하나 돈 한푼 더 벌고 명예 하나 더 얻고, 목소리하나 더 크고, 남보다 더 큰집 가지고 더 편하게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이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신앙이라는 것을 가지고 세상 것에 절하지 않고 죽으면 죽을 수 있었는데 하늘에 소망을 두고 내 신앙, 내 신념, 내 의지를 지킬 수 있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그 후로는 겁나는 것이 없었다. 세상이 다 발아래로 보인다.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내가 없어지고 올바른 소망을 위해 혼신의 정렬을 다 바칠 수 있는 사람, 이런 지도자가 되어서 많이 나와서 우리 사회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우리 민족이 변하게 되면 남북통일은 저절로 된다.
독일과 비교해보자. 동독과서독이 통일이 되었을 때 경제적으로 봤을 때 2.5대 1의 차이가 있었다. 경제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북한과 한국은 13대 1의 차이가 있다. 동독은 10년이 넘도록 2.5대 1의 경제력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아직까지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13대 1이라는 이 엄청난 차이를 어떻게 메워 갈 것인가. 통일이되면 같이 망한다. 같이 망하지 않으려면 ‘post kim era’를 놓고 고민하는 그런 시간이 빨리 와야 한다.
북한의 인권이 제대로 되어야 하고 강제포로 수용소가 하루 속히 빨리 없어져야 하고 무엇보다 굶어죽지 않고 살 그날이 빨리 와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에서는 퍼다 주기만 한다. 40만 톤의 쌀도 보내고 비료도 보내고, 북한에서 오라고 하면 가고 오지 말라고 하면 못 간다. 주고도 뺨맞고 하라는 대로 하고 그것이 사랑인가.
그것은 북한 정권을 유지시켜주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을 빨리 사회 여론화시켜 이제는 정권이 문제가 아니고 당락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몸뚱이를 바쳐서 내가 희생되어 민족이 살고 올바른 사회가 되면 있는 사람들은 양보하고 없는 사람들은 더 노력해야 한다.
나는 한번은 “1년에 백만 불 이상을 버는 사람들은 90%는 세금을 바쳐야 한다”는 글을 썼다가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을 통일 자금으로 쓰자. 그래서 북한 동포를 살리자”고 했다. 어느 누가 북한에 몇 십만 달러 몇 천억 원을 줘서 핵무기 만드는 것을 하지 말고 이제는 북한에 양로원, 병원, 급식소를 만들자.
나는 단동에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영양제 공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어린아이들에게 비타민을 먹이고 영양제를 먹이고자 한다. 임산부들이 먹으면 어린 아이들이 선천성 기형아를 방지하는 비타민이 있다. 돈도 얼마 안 든다. 이것을 만들어 임산부 기형아를 놓는 것을 막자. 두 번째는 누룽지 공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건너오는 사람에게 누룽지라도 손에 쥐어 주자. 그래서 먹고 죽지 않도록. 이런 일들을 위해서 여러분이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동참하고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 사회가 변하는 일에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국의 버나드 쇼는 자찬 묘비명에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새겨 놓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내용이다. 오늘 박세록 총재의 이야기를 듣고 제가 쓴 시 “이 세상으로 걸어나오는 길”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낭독해 보겠다.
이 세상으로 걸어나오기를
세상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밝은 세상으로 걸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과 기회주의 생각에서 걸어 나오기를
불신과 반목에서 존경과 신뢰의 세계로 걸어 나오기를
욕심과 절도 속에서 걸어 나오기를
실패와 좌절에서 걸어 나오기를
우울과 짜증에서 생기를 가지고 힘차게 걸어 나오기를
무기력한 생활에서 목표의세계로 걸어 나오기를
혼탁과 무질서에서 정직과 질서의 세계로 걸어 나오기를
봄은 만물이 힘차게 걸어 나오는 것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나무에서 걸어 나오는 새싹들의 이야기
단단한 바위틈에서 비집고 걸어 나오는 풀잎과 나무들의 이야기
물 속에서 힘차게 걸어 나오는 고래들의 이야기
집안에서 걸어 나오는 가족들의 밝은 웃음소리
당신의 마음의 문은 안으로 굳게 닫혀있기에
사람들이 아무리 두들겨 나오라 해도
이 세상에 걸어 나오는 것은 당신 스스로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 가로부터 걸어 나오는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이 세상으로 걸어 나오는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모이면 사람들을 꼬집고 험담하는 토양에서 이상의 세계로 걸어 나오기를
망상의 세계에서 꿈과 비전을 가지고 걸어 나오기를
보통지식에서 지식이 풍부한 사람으로 걸어 나오기를
모든 질병의 굴곡에서 유비쿼터스 헬스시대로 걸어 나오기를
유형자산의 환상 속에서 무형자산을 크게 하여 이 세상으로 걸어 나오기를
좁은 세계에서 기지개를 활짝 펴며 넓은 세상으로 걸어 나오기를
당신들 여러분, 한몸 영단에서
박세록 선생처럼 헌신과 희생 사랑의 세상으로 걸어 나오기를..
[질문2] 최종명 훼미리주택 회장
마음속으로 큰 존경을 보낸다. 북한에 관계되는 상황을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좋겠고, 중국 내에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사항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도움이 되겠다.
-- 북한의 현실에 대해서는 우리가 늘 접하고 듣고, 그보다 훨씬 심각하고 더 어렵고 더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평양과 지방은 또 다르다. 평양에 있는 평양시민 200만과 군대 200만 있으면 되고 나머지 2천 몇 백만은 굶어죽어도 모른다. 북한은 엄연한 국가임에는 틀림없지만 국가이면서도 하나의 사교집단이다.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다. 정신병 환자는 정신과 의사가 다뤄야지 산부인과 의사, 내과 의사가 다룬다는 것은 안 통하는 일이다.
북한이 언젠가는 우리와 마음이 같아져서 형제처럼 지낸다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죽든지살든지 둘 중의 하나다. 나는 그렇게 본다. 단지 분명한 것은 갑자기 오늘 무너지면 어떻게 되느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설적인 인내가 필요하다, 미국은 미국대로 국익에 의해서 빨리 해결하려고 하지만 한국은 우리 입장대로 한국도 살고, 북한도 사는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열심히 하는 그런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질문3] 임덕규 월간디플로머시 회장
분단으로 인해서 겪는 고통이 수도 없다. 분단의 원인이 무엇인가. 반미적인 차원은 아니다. 분단에는 미국도 책임이 있다. 1905년에 미국이 반대했으면 일본이 한국을 침략할 수 없었고, 그렇지 않았으면 분단이 될 수 없고 이런 현실이 나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통일은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 미국이 그렇게 인도주의적으로 말을 잘 하지만 2차대전 후에 미국이 성공한 경우가 한국뿐이다. 다른 곳에서는 다 망했다. 월남에서도 망했다.
미국은 큰 3가지 실수가 있다. 1905년 카스라테프트조약을 했기 때문에 가장 치욕적인 것을 만든 것은 미국이 첫째 제공자다. 둘째 2차대전 후에 남북분단을 시킬 때에도 코널 로저스한테 갑자기 한두 시간 내로 어디를 분단시켜서 소련을 주면 되겠냐고 하니까 39도로할까 38도로 할까 하다가 배짱이 약한 대령들이 39도하면 소련이 안 받아줄 것 같으니까 38도 했다. 39도로 했으면 6.25가 안 났을 것이다. 세 번째 잘못은 맥아더 사령관을 해임시킨 것이다. 이것이 3대 실수다. 그런 것을 미국사람한테 악의적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책임을 통감할 수 있도록 박 원장님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부탁을 드린다.
나는 정동영 장관에게 쌀, 비료 등을 갖다 주면서 쩔쩔맬 필요가 있는지를 물었다.
우리가 좋은 조건이 있으니까 말을 잘 들으면 주고 그렇지 않으면 줄 수 없지 않은가. 설득을해서 하면 박수를 받을 텐데 그것을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 나는 파병관계도 분명히 했다.
재작년 10월에 시작할 때 두 가지 이유로 이라크파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우리 우방이 어려움을 겪고 있느니 도와줄 책임이 있는 것이고
둘째는 이라크 사람이 한국을 좋아하니까 가서 평화적으로 평화창조에서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거의 친미적인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그것은 걱정할 것 없고 미국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조금 앞장서 주기 바란다.
-- 미국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미국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익이 우선이지 우리를 위해서 자기들이 희생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살다보면 한국 사람들은 정으로 살고 어떤 경우에는 손해가 오더라도 상대를 위해 하는 법이 있는데 미국인에게는 이런 일이 없다. 자기들 이익만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욕을 먹는다. 그것을 잘 알고 받을 건 받고 줄 것 주면서 현재로서 이익을 찾아내는 지도자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현실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내가 있던 곳은 미시간 대학의 졸업생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과장을 투표를 하는데 나도 추천을 받았다. 그래서 최소한 2표는 될 줄 알고 투표장에 갔더니 17대 1로 참패를 했다. 나를 지명한 사람도 내게 표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느낀 것이 막상 자기들과 이해관계가 되면 미시간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없다. 그런 현실을 뚜렷하게 이해하고 과거와 같은 그런 전력을 밟지 않도록 좀더 똑똑하고 능력있고 양쪽을 다니면서 잘 엮어서 일을 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나와야 한다. 우리 한국 총영사관 관리들을 보면 너무 한국식이다. 너무 미국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질문3] 이왕열 기네스리그룹 회장
단동에서 주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북한 자체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는지 그 점이 궁금하고, 단동에는 과연 어느 규모의 탈북자들이 오고 의료진이 대기해서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 만주가 앞으로 북한 땅보다 우리 민족이 살길에 더 중요한 위치에 있다. 내가 말하는 만주는 연해주까지 합쳐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연해주에도 진료소가 있고, 압록강 두만강을 따라서 북한을 마주보고 진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1900년 초에 조선족과 고려족을 합해서 중국에 250만명에서 300만명이 되는데 이들을 하루 아침에 중국시민권을 줘버렸다. 그때 한국에서는 홀대를 했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것이 이 만주땅이 호호탐탐 북한을 내려다보고 있다. 지반이라는 역사적인 도시, 고구려 수도 같은 곳에 가면 민간경찰은 다 후퇴하고 해방군, 중국 군인들이 계엄령 상태처럼 공안을 유지하고 있다. 그 숫자가 30만 명이다. 이유는 북한에 동요가 나면 질서유지라고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평양까지 있다. 일단 기회가 오고 북한이 어지러우면 그 30만 명의 해방군이 평양까지 진출할 것이다. 명목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 깔려 있는 우리 조선족 300만 명은 다 중국시민권이 되었지만 아직도 한국말을 하고 한국음식을 먹는 우리 형제다. 그들을 하루속히 우리가 안아서 빨리 조국이라는 감정, 민족이라는 감정을 넣어줘야 한다. 그들은 무궁화 꽃을 심고 김치를 먹는데 말은 중국이 좋다고 한다. 중국과 한국이 축구시합을 하면 중국을 응원한다. 이런 현실을 우리가 빨리 깨달아야 만주를 통해서라도 앞으로 우리 민족이 한반도를 통일하고 잘 살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 두어야 한다.
북한내 사역에 대해 말하면 처음은 북한에서 시작이 되었다. 1995년에 500병상을 갖고 있는 평양 제3인민병원이라는 건물을 북한에서 지었고 한국과 미국에서 사랑의 의료품 운동을 해서 도와서 개원했다. 우리는 죽자고 병원을 지은 이유가 병원만 지어놓으면 우리 병원이니까 우리 마음대로 들어가서 진료할 줄 알았는데 우리 손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는데 2년 동안 실경이를 했다.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과 실경이를 하다가 포교를 통한 체제문란이라는 죄목을 받아 쫓겨났다. 그래서 북한에 못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은 반체제 인사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제네바 UN인권총회에서 탈북자들을 위한 보고를 해달라고 했다. 그때 압록강과 두만강을 3개월 동안 헤매면서 탈북자의 참상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때 유엔에 가서 30만명이 되는 우리 민족이 지금 그곳에서 여자들은 굶어죽지 않으면 중국 사람의 성노리개가 되어 있다는 사실 등을 세계인에게 호소했다.
그랬더니 회장이 3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당신의 국가는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둘째, 당신 개인적으로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셋째 한국에는 교회도 많은데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런데 할말은 많은데 내 얼굴에 스스로 침을 뱉는 격이 되어 할 말이 없었다. 세계는 우리를 향해서 민족부터 도우라고 하는데 우리는 아프리카 등지의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때 단동에 병원을 새로 지었다. 단동에 있는 병원은 100개의 병상을 갖고 있는 병원인데 20여명의 선교사 가족이 있고 현지 사역자까지 합하면100여명이 사역을 하고 있다.
근래 봉천에 심양 사랑병원을 다시 개원했다. 그리고 단동 시내 압록강 앞에 단동병원문진소를 냈는데 단동에는 북한 사람이 3,000명이 살고 있다. 지금 북한으로 들어가는 모든 무역의 젓줄이 단동이다. 중국에서 단동을 막아 버리면 북한은 못산다. 그래서 북한 사람이 많이 나와 있다. 그들을위한 진료실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병원이 세 개고 진료실이 세 개다. 그것이 압록강 두만강을 따라가면서 그 앞에 있는 북한사람들을 돕는 역할을 하고 성경책을 나눠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조선족들을 먼저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보자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 40년을 살아도 미국사람 아니다. 살기에는 미국이 편하다. 그렇지만 한국인이다. 만주에서 살더라도 그들을 한국인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제안] 조순 본 연구원 명예회장
박세록 원장님, 훌륭하고 감동적인 좋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해주시기 바란다.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선 북한이 매개가 되어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한국인에게는 그것이 가장 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군대가 만주에 많이 와 있다. 북한이 유사시에는 군대가 진주할 나라는 중국만이 아니다. 일본도 예의 그것을 생각하고 있다. 북한이 싸움터가 되면 한민족은 망한다. 남한이 지금처럼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이런 상태가 못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명분을 따지지 말고 당장은 북한이 싸움터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전망은 국제정치학자도 아니고 잘 모른다. 하지만 6자회담이 마지막으로 열린 지가 1년이 된다. 6자회담이 열려 그래도 뭔가 소프트랜딩을 할 수 있는 길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한국의 장래를 판가름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하기 위해 한국은 무엇이든지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교회나 정부차원에서 북한에 쌀을 주고 비료를 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이라도 해서 전쟁방지에 도움이 된다면 해야 한다.
우리가 아주 큰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파괴밖에 없다. 결국은 북한의 강토와 남한, 북한을 막론하고 한국 민족은 망하는 길로 갈 것이다. 남한도 역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방지해 뭔가 연착륙을 시킬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뭐든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댓글 이끼님 잘 계시지요. 좋은 글 보여주시어 감사합니다.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때문에 이세상은 균형을 잡아가는가봅니다.
예, 잘 지냅니다. 이 가을에 함께님도 안뇽하시지요. 새로운 관계 형성으로 더욱 행복해하실 함께님..^^* 꼬리글만으로도 옆에 계신듯 반갑네요.^^ 진정 사랑으로 조국이 하나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마지막 글이 가던 길을 붙잡습니다.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파괴'뿐이다'..... 그러기에 무엇이든지 동포인 우리가 나서야 하지 한다는 글에도 눈길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