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밑을 그냥 지나치다 / 나희덕
가로등 너는 아득한 전생에
보리수나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뜨거운 발등 앞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석가를 물끄러미 굽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고요히 흘러 넘치는 그의 뇌수를
딱 한 방울 맛본 힘으로
무소의뿔처럼 혼자서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모를 일이다
가로등 황금열매가 실하게 익어 가는 밤
설령 네가 그 날의 보리수였다고 해도
기대하지는 마라
이 시대에 누가 네 앞에 가부좌를 틀고
부처가 되려고 하겠느냐?
너를 붙들고 오열하다가 발등
왈칵 더럽히는 석가들이 있을 뿐
어쩌다 심각한 표정으로 혼자 가는 중생
있다손 치더라도
그는 전생에너를 몰라보고 끄덕끄덕
보리수 밑을 찾아가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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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혼을 깨우는 시를 올려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