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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 지연의 일기 ◑
동아리에서 야유회를 간단다.
영화 동아리에선 야유회 가면 뭐하지?
영화찍나? 설마 극장같은데가서 단체관람같은거 하는건 아니겠지?
"선배님.. 야유회 가면 뭐해요?"
밥을 먹고있는 선배에게 묻는다.
"몰라 나두 안가봤어.."
"1.2학년땐 뭐하구요?"
"아.. 1학년땐 알바때문에 못갔고.. 2학년땐 그냥 귀찮아서.."
..............
"으이그.. 좀 사람들하고도 어울리고 그래봐요.. 이번엔 갈꺼죠?"
"글쎄다.. 귀찮은데.."
"뭐에요.. 어짜피 할일도 없으면서.. 가요 그냥.."
"넌 어쩔건데?"
"전 가볼려구요. 재밌을꺼 같아요.."
"그래? 하하.. 재미없을꺼 같은데.."
"치.. 그건 선배님이 워낙 혼자 노시느라 그런거죠.. 인간관계 좀 넓히고 그래봐요.."
"하하.. 니가 나한테 그런말할 처지냐?"
"이씨.. 전 제가 안놀아주는거죠.. 알잖아요 저 바쁜거.."
"하하.. 알았어.. 한번 가보지 뭐.."
오케이.. 봉구선배는 꼬셨다..
그래..
선배가 가야.. 나도 좀 든든하지..
외각지역으로 나와.. 한적한 냇가에 도착했다.
아.. 진짜 야유회 맞구나.
영화동아리 취지에 맞는걸 할까 걱정했더니..
다행이야..
간만에 냇가에서 발 담구고 놀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자.. 적당히 놀다가 11시 되면 집합한다.."
"네~~~~"
모두들.. 뿔뿔히 흩어져 봄의 정취들을 만끽한다.
"윤아야.. 이거봐.. 물고기 있다.."
"어머 진짜네.. 경은아.. 니 발밑으로 간다.. 잡아 빨리.."
"선배님.. 물고기 잡아주세요.."
모두들 신이난 표정들이다.
오랫만에 느끼는 평화로움..
"자.. 이제부터.. 영화 OX 퀴즈를 시작한다"
집행부 친구들이 차에서 O자와 X자가 적힌 팻말을 들고 나온다.
"뭐 게임규칙이야 설명안해도 잘 알겠지? 내가 문제내면 O,X 에 가서 서면 되는거다.
상품은 첫 세판은 1등에겐 만원짜리 문화상품권 증정.. 아.. 이건 1학년들만 참여 가능하고.. 마지막판은 초고난도 문제로.. 1등은 10만원권 문화상품권.. 2등은 3만원짜리 문화 상품권이다. 물론 그판은 문제출제자를 제외한 모두가 참여 가능하고.."
시..십만원?
"오~~~"
일제히 함성이 터진다.
"자 그럼.. 1학년들만 앞으로 나오도록.."
...............
첫판은 시작부터 탈락했다..
이런..
슬쩍 봉구 선배 표정을 보니..
..............
한숨을 짓고있다..
에이 쪽팔려..
첫판은 민규가 우승을 했다..
"자.. 두번째판 시작한다.. 다시 모이도록.."
이번엔 잘해보자..
"자 문제 나간다. 오손웰즈가 만든 영화로.. 권력에 대한 욕망과 너무 큰 야망으로 파멸하게 되는 거물에 대한 고전적 비극을 다양한 카메라 기법으로 표현한 이시대 최고의 영화는.. 메트로 폴리스이다. 맞으면 O. 틀리면 X "
뭐지? 아.. 들어본거 같은데..
고민끝에.. O 쪽으로 가서 섰다.
그리곤 봉구선배쪽을 힐끔 봤다.
표정이 왜저래?
틀렸단거야?
"자.. 정답은 X "
..............
또 첫문제에서 탈락했다..
우이씨..
오늘 운빨이 왜이러지?
그래도 평소에 찍는건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
자..잠깐..
지금 봉구선배 표정보니까..
영화좀 제법 아는거 같던데..
오호..
그렇다면?
"자.. 3번째판 시작한다.. 다들 모이도록.. 문제 나간다.."
훗.. 봉구선배..
선배의 도움좀 빌릴께요..
"카메라의 앵글중.. 피사체를 외소하게 보이게 하고.. 전반적 전경등을 보일때 사용하는건.. 로우 앵글이다"
다들 X쪽으로 향한다.. 나역시도 X쪽으로 향하면서 슬쩍 봉구선배 표정을 살핀다.
슬쩍 웃는 선배..
훗.. 재대로 왔군..
"자.. 정답은 X "
후후훗.. 이거.. 이번판은 내가 먹겠네..
"자.. 두번째 문제.. 러시아혁명 때 포템킨호의 선상반란을 중심으로 한 영화 전함포템킨의 감독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다"
제법 많은 인원이 X쪽으로 향한다..
나역시도 그들 무리에 껴서 X쪽으로 향하다가.. 슬쩍 봉구선배의 표정을 봤다.
................
뭐야 저 인상쓰는 표정은..
틀렸단거야?
후다닥.. 방향을 틀어 O 쪽으로 향한다.
다들 X로 갔는데.. 웬지 찝찝하네..
설마 선배가 틀린건 아니겠지?
"자.. 정답은.. O "
헐.. 맞았다..
"아~~ 뭐야.."
저쪽에서.. 틀린 아이들의 한숨이 터져나온다.
홍홍.. 미안해 얘들아..
결국..
봉구선배의 표정을 이용해서.. 어렵지않게 우승할수 잇었다.
후후후후훗..
고마워요 선배..
"자.. 그럼.. 이젠 최후의 문제.. 초고난도 퀴즈.. 다들 나오세요.."
50여명이나 되는 선배.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우와.. 이거 우승하면 정말 대박이겠네..
그래.. 일단은 봉구선배만 붙어다니는거야..
그러다 마지막에.. 2등이라도 먹어야지.. 후훗..
"문제 나갑니다. 영화촬영기법중 하나로서 상하로 움직이는 촬영을 말하는것으로서
인물이나 키가큰 피사체를 전부 보여줄수 없을때 렌즈를 T 또는 W 로하여
인물을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여 피사체를 자세히 보여주는 기법은.. 바로 팬닝이다"
..............
뭔소리야 대체..
이런건 듣도보도 못한거잖아..
가르쳐 주고나 문제를 내던가..
그나저나 선배들도 다들 우왕자왕이다.
초고난도 문제가 맞긴 맞나보네..
하지만
그와중에도 난 봉구선배의 동선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얌전히.. X 쪽으로 향해가는 선배..
크큭..
믿어볼께요 선배..
"자.. 정답은 X "
"오예~"
"아.. 이런 젠장"
틀린이들과 한숨과 맞은이들의 탄성이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봉구선배는.. 무표정..
뭐야.. 별로 기뻐하지도 않잖아?
이거 완전 고수아냐?
"오.. 선배님 제법이시네요.."
"고수는 뭘..그나저나 너도 잘 쫓아다니네.."
................
"아니거든요.. 제가 푼거에요.."
"그래? 하하.. 알았어.. 힘내서 우리 끝까지 가보자.."
"오케이"
첫번째 문제로 반이나 탈락해 버렸다.
"두번째 문제 나갑니다. 히치콕이 극적인 줄거리를 역동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해 사용한 이래 보편화된 용어로서 탐정영화나 괴기영화에서 줄거리의 초반부에 극적인 호기심을 유발시키면서도 관객은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미처 깨닫지 못한 극적 요소를 가리키는말은.. 바로 맥거핀이다"
....................
역시나.. 첨듣는말..
선배들은 이런거 공부하는건가?
왜 이렇게 어려운거야 대체..
이러면 뭐.. 또.. 쫓아가야지 어쩌겠어..홍홍..
오잉?
근데 선배와 나.. 그리고 장철선배.경수선배.태희.경은이.. 이렇게 6명을 제외하곤 몽땅 X로 향했다.
뭐야..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갈정도면..
이거 봉구선배가 틀린거 아냐?
"선배.. O 맞는거 확실해요?"
"아마도.."
..............
아마도?
뭐야.. 확실한것도 아니잖아..
갑자기.. 경은이가 반대편으로 뛰어간다..
헛.. 나도 갈까?
아이씨..
고민되네..
설마.. 저 선배들도 다 3.4학년인데..
저렇게 다 모를리는 없겠지?
그래 저쪽으로 가자..
후다닥 자리를 옮기려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헛..
내 손목을 잡는 선배..
"어디가 치사하게.."
뭐야.. 시간없어 죽겠는데..
"뭐에요.. 놔요.."
"야..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
"이씨.. 선배도 모른다면서요.."
"모른다곤 안했어.."
"아.. 확실치 않다면서요.. 놔요 가야되요.."
선배를 뿌리치고.. 옮기려는 찰나..
이미 중앙선이 그어졌고.. 옮기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 뭐에요 선배땜에.. 늦었잖아요.."
"거참 말많네.."
"이씨.. 진짜.."
"자 정답은... O 입니다.. 다섯명 통과.. 나머진 전원 탈락~입니다."
오잉?
지..진짜?
정말로?
지금 내가 맞은거야?
5명만 남은거에 내가 포함된거라고? 진짜?
"꺅.. 지연아 우리 맞았어.."
태희가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하며 외친다.
"아.. 뭐냐.. 젠장할.."
"거봐 임마.. 내가 O라고 했잖아.. 아 진짜.."
우리쪽에선 기쁨의 함성이.. 반대쪽에선 엄청난 절규가 울려퍼졌다.
그나저나 이선배..
설마 나 가지말라고 잡은거야?
정말로?
헐.. 진짜면 이선배 완전 멋있는거네?
"서.. 선배.."
선배는 말없이.. 팔짱만 끼고 있었다.
"내가 잡아줬으니까.. 나중에 1등먹으면 한턱쏴라.... 알았냐?"
..................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얼마나 멋있어..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 이미지를 무너뜨리냐고.. 도대체..
"뭐에요?"
.................
뭐 암튼 알았어요..
1등만 한다면야..
어짜피 맨날 쏘는거..
.................
근데.. 1등을 할수 있으려나..
어짜피 1등은 선배님이 하실거 같은데..
"아.. 뭐야.. 야 출제자.. 그거 맥거핀 확실해?"
선배들의 불만섞인 항의가 빗발치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그래? 아.. 거참 아쉽네 그거.. "
그후 세문제나 연속으로 5명이 몰려다녔기에.. 결판이 나질 않고 있었다.
"자 6번째 문제.. 화면속에서 수평선과 피사체가 기울어져 있는 쇼트. 부자연스럽고 비스듬하게 촬영된 화면은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하며 긴장, 혼돈, 심리적 불균형 등을 일으키는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의 시점이라던가 술이나 마약에 취해 불안한 주인공의 모습을 포착할 때 쓰이곤 하는 촬영기법 용어는.. 바로 더치앵글이다"
..............
뭐 어짜피 내용같은건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선배만 쫓아다닐 뿐..
그나저나 슬슬 저 3명과 갈라져야되는데..
저사람들도 혹시 봉구선배가 고수라는거 눈치채고 쫓아다니는거아냐?
..................
헛..
이번엔 서로 웅성웅성대더니.. 장철선배.경수선배.태희는 X쪽을..
봉구선배는 홀로 O를 향했다.
"지연아.. 이쪽으로와.. 여기 확실하데.."
태희가 슬쩍 손짓을 하며 부른다.
뭐야.. 진짜야?
..............
아니지.. 난 선배를 믿어..
봉구 선배가 딴건 몰라도.. 공부하난 칼이거든..
아까부터 보니까.. 보통이 아니었어..
그래.. 난 봉구선배와 함께 가야돼..
"미안 태희야.."
그리곤.. 봉구선배가 서있는.. O쪽으로 향했다.
"믿어도 돼는거죠 선배님?"
"어? 나 이번 문제는 모르는건데.."
.............
"아이씨.. 그럼 빨랑 말해야죠.."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너 나 쫓아다니고 있었던거냐?"
..................
"자.. 정답은.. O 입니다.. 김봉구.이지연 결승 진출"
"꺅...."
나도 모르게 고함을 치고 말았다..
"아.. 경수 선배님 뭐에요.. 확실하다면서요.."
"아.. 경수야.. 너.. 너 진짜.. 아우.. 이걸.."
으하하하하..
너무 좋아서 말도 안나온다..
뭐야 이거..
정말 봉구선배 쫓아서 결승까지 와버렸네..
내가.. 저 수많은 사람들 다 제치고..
결승까지 온거야 정말?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 너무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이젠 선배와 나 둘만 남았다..
"선배님 몰랐다면서요.."
"그러게.. 운이 좋았네..하하"
"뭐에요.. 혹시 알고 있었던거 아니에요?"
"아냐.. 진짜 반신반의 했어.. 오.. 설마 맞을거라곤.. 하하.."
"그나저나 이제 우리 둘중에 한명은 10만원권 받네요.. 아싸.."
"그러게.. 하하.."
.................
"선배님.. 우리 이렇게해요.."
"어? 뭘?"
"제가 양보해드릴테니까.. 대신 우승상금 6대4로 나눠요.."
"양보 안해도 되는데?"
..............
"이씨.. 양보 해드린다니까요.. 그냥 쉽게 우승하세요.. 선배님도 좋고 저도 좋잖아요"
"뭐야.. 너만 좋은거구만.. 6대4로 나누면.. 넌 준우승 상금까지해서 7만원이잖아. 난 우승하고도 6만원이고.."
.................
그러네.. 계산을 잘못했군..
"그럼 7대3으로 해드릴테니까.."
"8대2면 생각해보마.."
................
치사하게.. 그깟 만원가지고..
근데 생각해보니.. 준우승 3만원까지 합치면 5만원이다.
뭐.. 아쉬울거 없는 조건이긴 하다.
"좋아요.. 8대2..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에요.."
"오케이.."
협상을 마친다.
"자 드디어 결승입니다.. 어찌하여 지연양이 여기까지 올라왔는지는 의문이지만.. 일단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뭐야.. 의심하는거야 지금?
"198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로서 1924년 파리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의 실존인물인 해럴드 아브라함과 헤릭리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불의전차의 감독은 바로 밀로스 포먼이다."
문제가 나오고..
선배는.. 좀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O 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약속대로 난 X 로 향했다..
...........
나를 쳐다보는 선배..
좋으시겠어요.. 우승하셔서..
이런거.. 후배한테 좀 양보하면 어디가 덧나나..
치...
그나저나 애초에 2등을 목표로 시작한거였는데..
왜 이렇게 아쉬운거야 진짜..
아.. 그냥 선배가 실수로 확 틀렸으면 좋겠당..
"정답은.. X 입니다. 이지연양 우승!!!!!!"
엥?
지...진짜로?
으앙.. 진짜야?
"꺄아아아악~"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고만다..
"지연아 축하해.."
"야.. 지연이가 우승하다니 말도안돼.."
여기저기 축하와 시기의 메세지가 들려오고 있다.
뭐야.. 선배가 틀렸던거였어?
슬쩍 선배를 본다.
출제자에게 뭔가 항의를 하고 있는 모습..
후훗..
억울하시겠네요 선배님..
어째요..
"야... 8대2 인거 알지?"
항의를 마치고 내게 다가온 봉구선배..
"뭐가요?"
"나눠갖자며.."
"그건 제가 준우승 할때 얘기죠.."
"뭐야 치사하게.."
"홍홍.. 만원정돈 양보할께요.."
밥도 한번 쏘구요.. 훗..
"야.. 그나저나 봉구 저녀석.. 일부러 져준거 아냐?"
"그러게.. 마지막 문제는 나도 아는건데.. 저걸 틀리네.. 그냥 봐줬나봐.. 지연이 우승하라고.."
....................
◐ 봉구의 일기 ◑
야유회를 간단다..
1.2학년때의 나에겐..
야유회는 그냥 예산낭비나 하는 행사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다.
근데..
이번 야유회에는 지연이가 간단다..
안갈수가 없잖아.. 그럼..
냇가.. 모래밭 한쪽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
냇가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1학년들과는 달리..
구석에서 일찌감치 들고온 소주병과 안주들을 꺼내는.. 노땅 선배들..
역시..
나이 먹으면.. 이렇게 되는군..
난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영화 OX 퀴즈?
이런것도 했었어?
뭐야..
이건 뭐 날위해 준비한 게임같잖아?
"상품은 첫 세판은 1등에겐 만원짜리 문화상품권 증정.. 아.. 이건 1학년들만 참여 가능하고..마지막판은 초고난도 문제로.. 1등은 10만원권 문화상품권.. 2등은 3만원짜리 문화 상품권이다. 물론 그판은 문제출제자를 제외한 모두가 참여 가능하고.."
시..십만원?
뭐야.. 스케일 장난 아니네?
불현듯.. 적자난에 허덕이던 몇일간의 아픔들이 떠오른다..
그래.. 이건 동아리에서 나 용돈에 보태쓰라고 하늘이 내려준 기회야..
우승해야되 반드시..
쟤 왜저렇게 못해..
.............
첫 문제부터 탈락한 지연이..
낙심한 표정이 한가득이다..
1학년 애들 영화수업 안시키나?
우리땐 그렇게 미친듯이 시켜놓고선..
아.. 지연아 그쪽 아냐..
................
또 틀려버리는 그녀..
쟤는 어째 첫문제도 못넘기냐..
아.. 거참 답답하네..
슬쩍 내쪽을 쳐다보더니 또한번 실망의 표정을 짓는다.
에휴.. 내가 도와줄수도 없고 이거참..
오.. 그래.. 이번엔 잘가네..
괜시리 미소가 지어진다..
나를 힐끔 한번 보더니.. X 쪽으로 당당히 걸어가는 그녀.
오케이..
잘했어 지연아..
"자.. 두번째 문제.. 러시아혁명 때 포템킨호의 선상반란을 중심으로 한 영화 전함포템킨의 감독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다"
어이 어이.. 그쪽 아냐..
O로 가야돼..
아.. 어딜가니..
내 표정을 봐.. 내 표정이 답을 얘기하고 있잖아..
헛..
갑자기 내쪽을 보더니..
다시 방향을 틀어.. O 쪽으로 향하는 그녀..
오~ 좋았어..
그래.. 그렇게 해야지..
"자.. 정답은.. O "
좋아하는 그녀..
그래..
이 선배가 도와줄테니까..
넌 그냥 나만 믿고가면돼..
알았니?
결국 막판은 지연이가 먹었다. 훗..
근데 이거 너무 대놓고 밀어주는건가?
괜히 딴사람들한테 미안해지네..
"자.. 그럼.. 이젠 최후의 문제.. 초고난도 퀴즈.. 다들 나오세요.."
그래.. 이젠 승부다.
이건.. 나에게 있어서도 내 일주일 용돈이 달린건데..
놓칠수없지..
"문제 나갑니다. 영화촬영기법중 하나로서 상하로 움직이는 촬영을 말하는것으로서
인물이나 키가큰 피사체를 전부 보여줄수 없을때 렌즈를 T 또는 W 로하여
인물을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여 피사체를 자세히 보여주는 기법은.. 바로 팬닝이다"
뭐야.. 왜이렇게 쉬워?
초고난도 문제라며?
3.4학년이라면 거저 먹겠군..
우왕자왕.. 사람들이 갈린다.
뭐야.. 저형들은.. 이 문제도 모르는거야?
실망인데 이거~
.................
그나저나 지연이도 내 옆에 서있다..
얘 웬지 나 따라다니는거 같다.
훗.. 니가 세상 사는법을 좀 아는구나..
그래.. 원래 사람은 줄을 잘서야돼..
그냥 쭉 나만 따라다녀..
2등은 먹게 해줄테니까..
"자.. 정답은 X "
흠.. 너무 쉬웠어.. 이런 변별력으로 언제 이 많은 사람들 다 떨궈내..
제발 어려운것좀 내란말야..
나만 알고 다 모르는 어려운 문제로..
"오.. 선배님 제법이시네요.."
"그러게.. 너도 잘 쫓아다니네.."
"아니거든요.. 제가 푼거에요.."
훗.. 귀엽네..
"그래? 하하.. 알았어.. 힘내서 우리 끝까지 가보자.."
선배만 쫓아오렴..
"오케이"
"두번째 문제 나갑니다. 히치콕이 극적인 줄거리를 역동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해 사용한 이래 보편화된 용어로서 탐정영화나 괴기영화에서 줄거리의 초반부에 극적인 호기심을 유발시키면서도 관객은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미처 깨닫지 못한 극적 요소를 가리키는말은.. 바로 맥거핀이다"
..................
문제 수준하고는..
이거 문제낸 사람 누구야 대체?
얌전히 O쪽으로 향한다..
잉?
근데 다들 X 쪽으로 간다.
뭐야.. 설마 다들 이걸 모르는거야?
.................
아님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이상하네..
다시한번 진지하게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려본다.
아냐..
내가 맞어..
확실해..
"선배.. O 맞는거 확실해요?"
지연이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건지 질문을 해온다.
"아마도.."
선배 믿으라니까..
괜히 아는척하기 민망해서 대충 둘러대는거니까..
그냥 그런줄 알고 얌전히 따라와.
너.. 2등 먹게 해준다니까 그러네..
하지만 갑자기 자리를 옮기려는 그녀..
...............
얘가 어딜가는거야 대체..
허겁지겁 그녀의 팔을 붙잡는다..
"어디가 치사하게.."
................
어째.. 이 상황에서 이런말이 나오냐..
좀더 멋진말도 많았을텐데.. 에휴..
아니다..
뭐.. 괜히 잘난척하는것도 좀 보기 그렇잖아..
나중에 지연이가 알아줄테지..
"뭐에요.. 놔요.."
"야..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제발 이 선배의 맘을 헤아려주렴...
"이씨.. 선배도 모른다면서요.."
"모른다곤 안했어.."
"아.. 확실치 않다면서요.. 놔요 가야되요.."
...............
너.. 지금 이 선배보다 돈이 더 좋다는거니?
난.. 그깟 돈 몇푼보다 니가 더 소중한데 말야..
니가 틀린곳으로 간다해도.. 난 따라갈수 있는데 말야..
"아 뭐에요 선배땜에.. 늦었잖아요.."
뭐 암튼 다행이군.. 훗..
"거참 말많네.."
"이씨.. 진짜.."
"자 정답은... O 입니다.. 다섯명 통과.. 나머진 전원 탈락~입니다."
훗... 역시.. 나의 머리는 아직 녹슬지 않았어..
"서.. 선배.."
감동먹었니?
선배가 이정도야..
"내가 잡아줬으니까.. 나중에 1등먹으면 한턱쏴라.... 알았냐?"
슬쩍 우쭐해본다.
그나저나 이제 5명 남았군..
저 3명만 떨궈내면..
나의 시나리오대로 지연이와 나의 무대가 되는거야..
제발.. 어려운 문제로..
...................
이거 왜이렇게 안끝나?
빨리 좀 갈려야 되는데..
"자 6번째 문제.. 화면속에서 수평선과 피사체가 기울어져 있는 쇼트. 부자연스럽고 비스듬하게 촬영된 화면은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하며 긴장, 혼돈, 심리적 불균형 등을 일으키는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의 시점이라던가 술이나 마약에 취해 불안한 주인공의 모습을 포착할 때 쓰이곤 하는 촬영기법 용어는.. 바로 더치앵글이다"
흠.. 이번껀 어렵군..
근데 다행이야..
엊그제 술마시다가 나온 얘기잖아..크큭..
환수형.. 고마워요... 형님이랑 술 안마셨음.. 이 문제 틀릴뻔했네요..
엇?
지금 쟤들 저쪽으로 간거야?
오오오~ 이제 드디어 갈리네~
하하.. 지연아 언능 따라와..
"믿어도 돼는거죠 선배님?"
..............
뭔가 상당히 의심에 가득찬 표정..
아니.. 아직도 나를 못믿는거야?
여기까지 끌고와줬는데?
어디.. 나를 얼마나 믿나 좀 보자..
"어? 나 이번 문제는 모르는건데.."
"아이씨.. 그럼 빨랑 말해야죠.."
....................
역시나.. 그녀는.. 나와 함께하는것보단..
돈을 쫓고 있었군..
뭐야 섭섭하게시리..
"자.. 정답은.. O 입니다.. 김봉구.이지연 결승 진출"
"꺅...."
엄청 좋아하네..
뭐 나도 좋긴 하다만..
너가 이렇게 좋아서 날뛰는걸 보는게 더 행복하구나..
"선배님 몰랐다면서요.."
"그러게.. 운이 좋았네..하하"
진짜 운이 좋긴했지..크큭..
"뭐에요.. 혹시 알고 있었던거 아니에요?"
"아냐.. 진짜 반신반의 했어.. 오.. 설마 맞을거라곤.. 하하.."
"그나저나 이제 우리 둘중에 한명은 10만원권 받네요.. 아싸.."
미안한데.. 1등은 내꺼란다..
선배 요즘 용돈 없어서 허덕대는거 알잖니..
미안한데.. 넌 여기까지야..
너도.. 아까 만원 먹은거까지 합치면 4만원은 챙기잖아..
그거로 만족하렴..
"그러게.. 하하.."
"선배님.. 우리 이렇게해요.."
"어? 뭘?"
"제가 양보해드릴테니까.. 대신 우승상금 6대4로 나눠요.."
..................
얘 안 그렇게 생겨서 왜이렇게 돈을 밝히는거야 대체..
"양보 안해도 되는데?"
"이씨.. 양보 해드린다니까요.. 그냥 쉽게 우승하세요.. 선배님도 좋고 저도 좋잖아요"
얘 농담하는건가?
그렇게 나누면 니가 더 먹는거잖냐..
"뭐야.. 너만 좋은거구만.. 6대4로 나누면.. 넌 준우승 상금까지해서 7만원이잖아. 난 우승하고도 6만원이고.."
"그럼 7대3으로 해드릴테니까.."
어디 돈필요한데 있나?
니가 이렇게 나오면 맘약해지잖아..
..............
그냥.. 나 8만원만 챙기고.. 지연이.. 2만원줘서 5만원으로 쫑칠까?
그거 괜찮네..
"8대2면 생각해보마.."
"좋아요.. 8대2..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에요.."
"198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로서 1924년 파리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의 실존인물인 해럴드 아브라함과 헤릭리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불의전차의 감독은 바로 밀로스 포먼이다."
...................
헐.. 뭐야..
왜 하필 내가 유일하게 모르는 아카데미쪽이야?
이건 내가 공부하던게 아니잖아...
아.. 뭐지? 뭐였더라?
..............
그 많은 역대 작품상 감독을 내가 어찌아냐구.. 에휴..
그냥.. 포기하고.. O로 향한다.
"정답은.. X 입니다. 이지연양 우승!!!!!!"
헉.. 틀렸다..
내가 틀리다니..
영퀴에 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내가..
말도안돼..
"꺄아아아악~"
.................
지연인 난리가 났구만.... 하...
"형.. 감독 이름 누군데요?"
문제를 내던 영수형한테 가서 묻는다.
"아.. 휴허드슨 이잖아.. 너 이거 몰라? 맨날 얘기하던거잖아.."
..................
"첨듣는데.."
"그러냐? 우린 맨날 얘기하는데.. 니가 동아리를 잘 안나와서 그랬나보지뭐.."
.....................
젠장할..
"야... 8대2 인거 알지?"
그래도 2만원 뗘주겠지?
"뭐가요?"
"나눠갖자며.."
"그건 제가 준우승 할때 얘기죠.."
...................
"뭐야 치사하게.."
"홍홍.. 만원정돈 양보할께요.."
흠.. 그럼 4만원인가..
아.. 그래도 아깝네.. 8만원짜리 문제였는데.. 젠장..
"선배님.. 가요.. 제가 함 쏠께요.."
"진짜?"
"네.. 뭐 선배님덕에 결승까지 갔으니.."
"오.. 웬일이냐?"
"웬일은 무슨.. 제가 맨날 쏘는데.."
"아.. 그건 그렇지.."
"뭐 먹고 싶어요?"
"스테이크"
"칼국수 먹어요 그냥"
"나 스테이크가 땡기는데?"
"칼국수 잘하는 집 봐놨어요.."
"우씨.. 그럼 뭐 먹을건지는 왜 물어봐?"
"아.. 그러네요. 쏘리.."
"그냥 10만원 꽁돈 생겼는데.. 크게 한번 쏘지?"
"그돈 쓸데 있어요.."
"어디?"
"비밀이에요.."
"비밀?"
"네.. 비밀"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가 뭔데요?"
"우리 사이?"
"네.. 우리 사이.."
"그러게.. 우리 뭐하는 사이냐?"
"..............."
제26화
◐ 지연의 일기 ◑
"선배님.. 심심하죠?"
멍하니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있는 선배와 나..
"아니 별로.."
"에이.. 심심해 보이는데요 뭘.. 우리 시내나 놀러갈래요?"
"시내? 왜?"
"아니 뭐 그냥.. 어짜피 할일도 없고.. 나 뭣좀 살것도 있고.."
"귀찮은데.."
..............
뭐가 그렇게 맨날 귀찮은거야 대체..
아침에 일어나는거 보면 제법 부지런한거 같더만..
"귀찮아도.. 좀 가죠?"
"뭐 먹을거라도 사주냐?"
..............
암튼 공짜가 없어 이선배는..
"안그래도.. 그냥 가줄 거라고는 생각 안했어요.. 알았으니까.. 빨리 가요.."
"오케이"
사실.. 어제 퀴즈 우승에서 받은 상금으로..
선배 옷이나 좀 하나 사줄 생각이었다.
물론.. 내 옷 사고 남은돈에 한해서..
"와.. 이거 얼마에요?"
첫눈에 딱 맘에 드는게 있어서.. 바로 고른다.
"네.. 8만 2천원 입니다."
............
그냥 선배 사주지 말까?
이거 너무 맘에 드는데..
"선배님.. 이거 어때요? 어울려요?"
살짝 몸에 갖다댄후 선배에게 확인해본다.
"별루.."
.............
"그래요? 잘어울리는거 같은데.."
"네.. 고객님한테 정말 잘어울리세요.."
"거봐요.. 잘어울린다잖아요.. 선배님은 선배님 패션이나 좀.. 에휴.."
"그럼 그거 사든가.."
..............
이래서 남자랑은 쇼핑하기가 싫다니까..
어휴.. 저거봐라.. 나가고 싶어 죽을라고 하네..
으이그..
"저 이걸로 할께요.."
미안해요 선배님..
선배님은 그냥.. 싼걸로 사야겠어요.. 홍홍..
"또사게?"
.............
이제 겨우 10분 쇼핑했어요 선배..
어쩜 그렇게 돌아다니는걸 싫어하시는거에요..
운동한다 생각하고 좀 얌전히 따라오세요..
이거뭐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맘도 사라질려 하네..
"가요.. 선배님 선물하나 사줄테니까.."
"뭐? 내꺼?"
"네.. 선배님 바지한벌 사줄께요.. 따라와요.."
"지.. 진짜? 니가 왜?"
..............
안쓰러워서 그래요... 안쓰러워서..
"선배님.. 너무 노티나서 같이 다니기 부끄러워요.. 바지 이쁜걸로 하나 사줄테니까.. 그거 입고 다녀요.."
"그래? 오.. 그럼 나야 땡큐지.. 가자.."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며.. 앞장서가는 선배..
...........
역시 공짜라니까 입찢어지는군..
"이런건 애들이나 입는거 아니냐?"
"선배님 나이가 그럼 애지.. 뭐 아저씨에요?"
"아니 뭐 그런건 아니다만.. 웬지 고딩스러운데?"
"선배님은 얼굴이 나이들어 보여서.. 이렇게라도 입어야 그나마 학생처럼 보여요.. 가서 갈아입고 와봐요.."
"기다려봐.."
흠.. 카드는 안쓸려고 했더니..
결국 좀 모자라게 생겼네..
하긴.. 현금도 좀 가지고 있어야돼니.. 그냥 카드 긁자..
"어머.. 잘어울리시네요.."
점원이 봉구선배를 향해.. 맘에도 없는 칭찬을 하고 있다.
...............
아무리봐도 안어울리는데.. 무슨..
"선배님.. 그거 좀 아닌거 같아요.. 기다려봐요 딴거 골라줄테니까.."
"왜? 이거 괜찮은거 같은데.."
"안어울려요.. 잠깐 기다려봐요.."
다리가 짧다는걸 미쳐 생각 못했다..
선배 다리길이에 맞는걸 골라야되는데..
오.. 저거 괜찮네..
"이거 입어봐요.."
"이거? 아까꺼랑 똑같은거 아니냐?"
................
"다른거니까.. 언능 고고.."
"어.. 잠깐만.."
흠..
"남자친구분 되세요?"
옆에서 지켜보던 점원이 묻는다.
"네? 아.. 아니에요. 그냥 학교 선배님이에요.."
"아.. 그러시구나.. 선배분이 인상이 좋으시네요"
............
평범하다는 말이겠지..
딱히 칭찬할말 없을때.. 인상좋다고 하잖아..
처음 올때부터 느낀건데..
이 점원.. 은근 선배를 무시하는듯 쳐다보고 있었다...
"아.. 네.. 뭐.. 생긴건 저래도.. 치대생이에요.. 공부하느라 꾸밀 시간이 없다보니 제가 늘 이렇게 신경써주는거죠.."
"아.. 그..그래요?"
놀래긴..
"어때? 괜찮냐?"
오.. 이거 괜찮네..
선배한테 딱인데?
"오..선배님.. 그걸로 해요.. 이뻐요.."
"아.. 그래?"
"이거 얼마에요?"
"네.. 10만 5천원이에요"
.................
뭐야.. 왜 이렇게 비싸?
이러면... 못사주는데..
난 그냥 3-4만원정도 생각하고 나온건데..
아.. 가격표나 보고 고를껄..
"야.. 너무 쎄지 않냐?"
...................
옆에 다가와 넌지시 묻는 선배..
슬쩍 점원 표정을 본다.
뭐야.. 저 비웃는듯한 표정은?
맘에 안들어..
"얼마 안하네.. 저기요.. 이거 주세요.."
"뭐? 진짜? 야.. 너 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왜이래요 선배님.. 앞으로 치과 개업하면 돈을 긁어 모으실 분이.."
점원 들으라고 오히려 더 큰소리로 말해버린다.
"어? 어..뭐.."
"일시불이요"
................
이거 쓰잘데없는 오기 때문에 괜한짓 하는거 아냐?
하지만 이미 카드는 내 손을 떠나 점원 손에 넘어가 있었다.
...............
옆에서 선배는 청바지의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왜이렇게 비싼지 연구라도 하는듯.. 보인다
................
"야.. 나 이거 받아도 돼는거냐? 부담되는데?"
................
그러게요.. 엄청 부담되시겠어요..
나도 비싸서 못입는 10만원짜리 청바지라니..
어휴.. 내가 미쳤지..
"괜찮아요.. 어짜피 뭐 크게 한턱 쏘긴 하려고 했어요"
"그래? 이럼 나도 뭔가 좀 해줘야될꺼 같은데.."
"됐어요.. 그냥.. 나 그동안 집에 데려다주고.. 그런거 고마움 표시한거니까.. 맘편히 받아요.."
"그.. 그래? 뭐 암튼 고맙다.."
구두매장을 지나가다.. 너무 이쁜 구두가 보여.. 잠시 멈춘다..
아.. 이쁘다..
사고 싶은데..
아.. 안돼.. 참아야돼..
이번달 너무 무리했어..
하지만.. 구두에서 뿜어져나오는 엄청난 포스에..
한동안 자리를 뜰수 없었다.
가격 8만 천원..
저런 이쁜걸 저 가격에 사기도 힘든데..
잉.. 저 선배 청바지만 안사줬어도.. 아니.. 싼거만 사줬어도..
저 구두 살수 있었잖아..
아.. 생각할수록 아쉽네..
"왜? 사고 싶냐?"
"아.. 아니에요.."
"그럼 언능 가자.."
"이씨.. 어디 갈데있어요?"
"아니뭐.. 그런건 아니지만.."
"그럼 잠깐 구경이라도 하게 좀 기다려봐요.. 안그래도 속상해 죽겠구만.."
"응? 왜? 뭐 속상한일 있냐?"
...................
"선배님.."
"어.."
"제가 저거 신으면.. 이쁘겠죠?"
"구두가 거기서 거기지뭐...."
.................
"신데렐라 같을텐데.. 그쵸?"
"너 지금 저거 사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거냐?"
"네..."
한숨을 내쉬며 대답해버린다.
"사줘?"
"네? 아니에요.. 됐어요"
"한번 신어봐.. 어울리나 보게.."
"됐어요.. 선배님 돈도 없으시면서.."
"에이.. 뭐 어짜피 영화퀴즈로 상금받은거 있는데뭐.. 한번 신어봐.. 어울리면 사줄테니까.."
지..진짜로?
"정말요? 괜찮겠어요? 저 언니.. 이거좀 꺼내봐주세요.."
선배 맘이라도 바뀔까.. 후다닥 점원에게 구두를 요청한다.
"어머.. 정말 잘어울리세요.. 발이 어쩜 이렇게 이쁘세요?"
"홍홍.. 제가 원래 좀 다 이쁘긴 해요.. 발이라고 뭐 별수 있겠어요~"
"이건 정말 고객님 발에 맞춤 구두네요.. 이걸로 하시겠어요?"
슬쩍 선배를 본다..
고개를 끄덕이는 선배..
오~~~~~~
선배님 짱~~~~
"넹.. 이걸로 언능 포장해주세요.. 아.. 아뇨.. 그냥주세요.. 지금 신고가게.."
훗.. 너무 이쁘잖아.. 오늘은 그냥 새로 산것들로 셋팅하고 가야겠다..
지갑을 꺼내 계산을 하는 선배..
아.. 제법 멋있으시네 오늘.. 청바지도 잘어울리고 말야.. 훗..
................
하긴.. 저건 내가 사준거니.. 결국 쌤쌤이잖아..
딱히 크게 고마워할 이유는 없어..
"선배님.. 고마워요.."
그래도 예의는 지켜줘야지..
"고맙긴뭘.. 나도 청바지 받았는데.. 하하.. 이제 다 산거지?"
"네~ 가요 이제.."
앞서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 윗도리가 눈에 거슬린다.
저렇게 이쁜 청바지를 입고서.. 저 후질구리한 티셔츠가 웬말이야..
청바지엔.. 하얀 티셔츠가 딱인데.. 에휴..
"선배님.. 혹시 집에 하얀색 티셔츠같은거 없어요?"
"어.. 난 흰색옷 안입어.."
"왜요? 이쁜데.."
"빨기 귀찮아.."
...............
"그렇다고 그렇게 맨날 우중충한것만 입고 다니실거에요?"
"우중충하냐? 이거 나름 유행타는건데.."
....................
언제적 유행이란거야 대체..
아무리봐도 80년대 스타일인데..
헛..
그순간.. 선배 앞쪽으로 보이는 눈에 확띄는 하얀색 티셔츠..
오.. 저거 딱이네..
선배가 지금 입은 청바지랑 완전 찰떡궁합이겠는걸?
"선배님.. 잠깐만요.. 이리 와봐요.."
"어.. 왜?"
"잠깐만요.. 어디 보자.."
티셔츠를 들어 선배의 몸에 가져다 대본다.
"뭐야 지금.. 이것도 사줄려고?"
"오.. 딱이네.. 선배님.. 이거 사요.. 청바지랑 너무 잘어울려요 이거.."
"어? 나보고 사라고?"
"그럼 선배님이 입는건데.. 선배가 사야죠.. 돈은 있죠?"
"어? 나 지금 만원밖에 없는데.."
옷의 가격표를 확인해본다.
4만 3천원..
................
"아.. 그래요? 아.. 이거 이쁜데.."
"야.. 됐어 됐어.. 나중에 시장가서 흰색으로 몇개 살테니까 걱정말고.. 언능 가자.."
"그래요.. 뭐 할수없죠.."
"그나저나 뭐좀 먹으러 가자.. 계속 돌아다녔더니 배고파 죽겠다.."
..................
겨우 30분 돌아다녀놓고.. 엄살은..
내가 쇼핑하면서 이렇게 단시간에 물건 산것도 처음인건데..
에휴..
아.. 그나저나 저 티셔츠 왜 이렇게 미련이 남는거야..
그냥 내가 확 사줘버려?
아.. 안돼는데..
이제 카드 더쓰면.. 힝..
아.. 그래도 넘 이쁜데....
저런걸 입어줘야.. 청바지가 확 사는데....
선배는 분명 후질구리한 티셔츠만 입을게 확실하고..
그럼 저 이쁜 청바지는....
.................
"선배님.. 일루 와봐요.."
"어? 어디가?"
"빨리 와요.. 아까 그 티셔츠 사게.."
"어? 나 돈없다니까.."
"제가 사줄테니까.. 오기나 해요.."
"뭐? 또?"
.................
나 오늘 미쳤다.
내것도 아니고..
이 앞에.. 우걱우걱 햄버거를 먹고 있는
봉구선배의 옷들을 사는데.. 내돈 15만원을 날렸다.
하하.. 나 왜이래..
"야.. 너 오늘 왜 이러냐? 갑자기 이러니까 무섭다야.."
..............
그러게요..
저도 제가 왜이런지 모르겠네요..
"아껴 입으세요.. 세탁하실때도 손세탁 하시구요.. 웬만하면 그 티셔츠 입고 술자리 가지마세요. 담배냄새 배여요..밥먹을때도 조심해서 먹으시고.. 그리고.. 그 청바지는 자주 빨지 마세요. 자주 안빨려면.. 조심조심 입으셔야되는거 아시죠?"
.................
딸들 시집보낼때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걸까..
에휴..
"어.. 그래.. 뭐 그래야지.. 근데.. 너 목소리에 왜이렇게 힘이없어?"
"몰라요.. 아까부터 기운이 없네요.. 이 햄버거도 선배님이 드세요.."
....................
아.. 15만원이면..
지난번에 봐뒀던.. 그 이쁜 핸드백을 사고도 만원이나 남는돈이네..
아.. 오늘 내가 여길 왜나온거야..
집에 가는길...
살짝 걸음을 늦춰.. 선배의 뒷모습을 훑어보고 있다.
흠.. 좋아..
역시 나의 패션감각은.. 놀라워..
내일 사람들이 보면.. 난리 나겠는걸?
간만에 사람들한테 칭찬좀 원없이 받아보세요 선배님.. 훗..
다시한번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훑어내려가 본다..
.................
뭐..뭐야..
저 구두 왜 저렇게 촌스러워?
청바지랑 안어울리잖아...
"선배님.. 자..잠깐만요.."
◐ 봉구의 일기 ◑
아.. 좋다..
그냥 하루종일 이렇게 지연이랑 앉아만 있어도 좋을거 같다.
오늘따라 아이스크림도 꿀맛이네..
"선배님.. 심심하죠?"
"아니 별로.."
심심할리가 있겠니.. 니가 옆에 있는데..
"에이.. 심심해 보이는데요 뭘.. 우리 시내나 놀러갈래요?"
응? 시내?
"시내? 왜?"
"아니 뭐 그냥.. 어짜피 할일도 없고.. 나 뭣좀 살것도 있고.."
지금 데이트 하자는거니 혹시?
"귀찮은데.."
그래도 기다렸다는듯 좋다고 할순 없으니..
슬쩍 한번 팅겨본다.
"귀찮아도.. 좀 가죠?"
얘가.. 언제부터인진 몰라도..
그냥.. 자기 맘대로 막 밀어붙이는 애가 되버렸다.
................
뭐 그렇다고 그게 싫은건 아니었다..
그녀와 백화점을 왔다.
평소에는..
여자들과 쇼핑하는걸..
남자가 하는 가장 부질없는 행위중 하나로 여겨오던 나였지만..
오늘은 상대가 지연이다..
그녀나 되니까.. 이렇게까지 웃으면서 동행해주는 정도지
엄마나.. 다른 별상관없는 아가씨들과의 쇼핑이었다면..
벌써.. 도망가버렸을 나이다..
근데.. 백화점에 들어서자마자부터.. 귀찮아진기 시작해버린다.
쇼핑만큼은 지연이여도 별수가 없구만.
"선배님.. 이거 어때요? 어울려요?"
이쁘긴 한데.. 비싸잖니..
"별루.."
선배가.. 너 돈아끼라고 일부러 그러는거니까.. 이해하렴..
"그래요? 잘어울리는거 같은데.."
"네.. 고객님한테 정말 잘어울리세요.."
..................
"거봐요.. 잘어울린다잖아요.. 선배님은 선배님 패션이나 좀.. 에휴.."
내 패션이 어디가 어때서?
얘가.. 남자들의 패션을 잘 모르는구만..
"그럼 그거 사든가.."
괜시리 퉁명스러워졌다..
아.. 귀찮아..
빨리 나가서 그냥 지연이랑 길거리나 걸으면 좋겠다..
영화나 보러가자고 해볼까?
흠.. 좀 오버일란가?
아니지..
친한 선후배는 뭐 영화도 못봐?
흠.. 분위기 봐서.. 슬쩍 한번 제안해봐야겠다..
옷을 사놓고도 또다시 옷매장을 찾아다니는 그녀..
뭐야.. 살게 많았던거야?
"또사게?"
"가요.. 선배님 선물하나 사줄테니까.."
엥?
지금 뭐라고 한거?
나 선물 사준다고?
"뭐? 내꺼?"
"네.. 선배님 바지한벌 사줄께요.. 따라와요.."
헐.. 정말인가본데?
"지.. 진짜? 니가 왜?"
"선배님.. 너무 노티나서 같이 다니기 부끄러워요..
바지 이쁜걸로 하나 사줄테니까.. 그거 입고 다녀요.."
......................
뭐야.. 챙피해서 사준다고?
우이씨..
............
근데... 그래도 얘 착하네..
날 생각해서 이렇게 선물까지 해주고..
딱히 생일도 아닌데 말야..
...................
근데 혹시..
얘 진짜로 날 좋아하는거 아냐?
애인도 아닌 사람한테.. 옷같은거 사주고 그러는 여자가 있나?
아무리봐도 못본거 같은데..
맞지? 그런 여자 없지?
오호...
"그래? 오.. 그럼 나야 땡큐지.. 가자.."
갑자기 엔돌핀이 솟는다..
쇼핑 이거.. 의외로 잼날거 같구만.... 후훗
..................
나보고 지금 이런걸 입으라고?
"이런건 애들이나 입는거 아니냐?"
그녀가 골라준 청바지를 건네받으며 묻는다.
"선배님 나이가 그럼 애지.. 뭐 아저씨에요?"
내가 동안스럽단 얘기지.. 지금?
"아니 뭐 그런건 아니다만.. 웬지 고딩스러운데?"
"선배님은 얼굴이 나이들어 보여서.. 이렇게라도 입어야 그나마 학생처럼 보여요.. 가서 갈아입고 와봐요.."
.................
"기다려봐.."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어머.. 잘어울리시네요.."
오.. 그래?
뭐.. 하긴 내가 뭔들 안어울리겠어.. 훗
"선배님.. 그거 좀 아닌거 같아요.. 기다려봐요 딴거 골라줄테니까.."
.................
"왜? 이거 괜찮은거 같은데.."
"안어울려요.. 잠깐 기다려봐요.."
그러더니 여기저기 다시 청바지를 찾는 그녀..
"이거 입어봐요.."
"이거? 아까꺼랑 똑같은거 아니냐?"
................
"다른거니까.. 언능 고고.."
나의 등을 떠민다..
"어.. 잠깐만.."
또다시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흠.. 좀 타이트한데..
답답하네 이거..
"어때? 괜찮냐?"
"오..선배님.. 그걸로 해요.. 이뻐요.."
엉? 진짜?
"아.. 그래?"
"이거 얼마에요?"
"네.. 10만 5천원이에요"
헐...10만 5천원?
뭔놈의 청바지가 10만원씩이나 해?
이 브랜드 유명브랜드도 아닌거 같은데..
아무래도.. 딴데 가야될거 같다.
그녀도 다소 놀란듯한 표정이더만..
"야.. 너무 쎄지 않냐?"
슬쩍 그녀에게 가서 묻는다.
"얼마 안하네.. 저기요.. 이거 주세요.."
잉?
"뭐? 진짜? 야.. 너 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얘 왜이래..
10만원이야 10만원..
아니.. 평소에 밥한끼 가지고도 난리를 치는애가..
이런 10만원짜리 바지를.. 그것도 자기것도 아닌 내껄 사는데..
이렇게 고민에 여지도 없이 사버린다는게.. 말이돼?
내가 이런걸 받을만큼 너한테 중요한 존재라도 되는거냐 혹시?
"왜이래요 선배님.. 앞으로 치과 개업하면 돈을 긁어 모으실 분이.."
얘는 뜬금없이 웬 헛소리야..
"일시불이요"
.................
얘네집 정말 부잔가?
그냥 긁어버리네..
워낙 순식간에 결정되고 진행된 일이라..
허둥지둥 계산을 마치고 나오긴 했는데..
웬지 영.. 신경이 쓰인다.
물론.. 그녀가 나를 위해.. 이런 선물을 사준다는게 너무 행복하긴한데..
한편으론.. 내가 이런 비싼 선물을 받을만큼 그녀에게 잘해준게 있나.. 의구심도 들고 있었다.
"야.. 나 이거 받아도 돼는거냐? 부담되는데?"
"괜찮아요.. 어짜피 뭐 크게 한턱 쏘긴 하려고 했어요"
.................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쿠 큰 한턱이잖니..
"그래? 이럼 나도 뭔가 좀 해줘야될꺼 같은데.."
그래.. 담달 용돈 들어오면.. 나도 10만원짜리 옷 사줘야지..
"됐어요.. 그냥.. 나 그동안 집에 데려다주고.. 그런거 고마움 표시한거니까.. 맘편히 받아요.."
아냐.. 나도 사줄께..
멋진 원피스나 투피스.. 한벌 쫙 뽑아주마.. 기대해라..
"그.. 그래? 뭐 암튼 고맙다.."
구두매장 앞에서 멈춰버린 그녀..
한참을 진열대에 놓여진 구두에만 응시하고 있다.
뭐야.. 저거 사고 싶은건가?
"왜? 사고 싶냐?"
"아.. 아니에요.."
"그럼 언능 가자.."
"이씨.. 어디 갈데있어요?"
.............
왜이래 갑자기..
"아니뭐.. 그런건 아니지만.."
"그럼 잠깐 구경이라도 하게 좀 기다려봐요.. 안그래도 속상해 죽겠구만.."
"응? 왜? 뭐 속상한일 있냐?"
뭐지?
좀전까진 멀쩡하더니..
"선배님.."
"어.."
"제가 저거 신으면.. 이쁘겠죠?"
.....................
"구두가 거기서 거기지뭐...."
아.. 그냥 이쁘다고 해줄걸..
왜 생각없이 말이 튀어나오고 난리냐..
"신데렐라 같을텐데.. 그쵸?"
"너 지금 저거 사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거냐?"
웬지 그런거 같은데?
"네..."
맞네..
역시 사고 싶었네..
근데 왜이러고 있는거니..
사고 싶으면 사면 되는거지..
너 혹시 돈이 없어서 이러고 있는거니?
...............
생각해보니..
나한테 청바지 사준다고 거금을 날린 그녀였다.
아.. 맘아프게시리..
좋아.. 안그래도.. 영퀴대회 상금으로 너 맛있는거나 사줄 생각이었는데..
함 쏴준다..
"사줘?"
"네? 아니에요.. 됐어요"
"한번 신어봐.. 어울리나 보게.."
"됐어요.. 선배님 돈도 없으시면서.."
걱정마라..
가격보니까.. 다행히 사줄돈은 됀단다..
"에이.. 뭐 어짜피 영화퀴즈로 상금받은거 있는데뭐.. 한번 신어봐.. 어울리면 사줄테니까.."
"정말요? 괜찮겠어요? 저 언니.. 이거좀 꺼내봐주세요.."
너무 좋아하네..
보고 있는 나도 흐뭇해진다.
나 이러다가 매번 저런모습 보고 싶어서
돈 막 써재끼는거 아냐?
"어머.. 정말 잘어울리세요.. 발이 어쩜 이렇게 이쁘세요?"
"홍홍.. 제가 원래 좀 다 이쁘긴 해요.. 발이라고 뭐 별수 있겠어요~"
얘 공주병은 유난히 귀엽단 말이지..
"이건 정말 고객님 발에 맞춤 구두네요.. 이걸로 하시겠어요?"
슬쩍 나를 보는 그녀..
최대한 멋있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여준다..
"선배님.. 혹시 집에 하얀색 티셔츠같은거 없어요?"
그녀가 뒤에서 쫓아오면서 묻는다.
"어.. 난 흰색옷 안입어.."
"왜요? 이쁜데.."
"빨기 귀찮아.."
남자라면 똑같은 생각일꺼다..
"선배님.. 잠깐만요.. 이리 와봐요.."
갑자기 내 팔목을 잡아 끄는 그녀..
"어.. 왜?"
"잠깐만요.. 어디 보자.."
그러더니 한 가게 앞에 진열된 옷을 꺼내든다.
얘 지금 또 나 선물해주는거야?
이거 완전 연인스러운 분위긴데?
"뭐야 지금.. 이것도 사줄려고?"
"오.. 딱이네.. 선배님.. 이거 사요.. 청바지랑 너무 잘어울려요 이거.."
응? 이거 사라고? 사주는게 아니라?
"어? 나보고 사라고?"
"그럼 선배님이 입는건데.. 선배가 사야죠.. 돈은 있죠?"
.................
"어? 나 지금 만원밖에 없는데.."
"아.. 그래요? 아.. 이거 이쁜데.."
"야.. 됐어 됐어.. 나중에 시장가서 흰색으로 몇개 살테니까 걱정말고.. 언능 가자.."
시장가면.. 5천원이면 사는 천쪼가리를 왜 4만원이나 주고 사니.. 아깝게..
"그래요.. 뭐 할수없죠.."
"그나저나 뭐좀 먹으러 가자.. 계속 돌아다녔더니 배고파 죽겠다.."
아.. 어디 앉아서 그냥 좀 쉬고 싶다..
아.. 여자들은 도대체 이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몇시간씩 돌아다니는거야..
30분 쇼핑한게 노가다 반나절뛴거만큼이나 힘들구만..
그나저나 얘는 아까부터 왜자꾸 뒤는 힐끔힐끔 쳐다보는거야..
"선배님.. 일루 와봐요.."
갑자기 또 내 팔목을 잡고 뒤로 끌고가는 그녀..
"어? 어디가?"
"빨리 와요.. 아까 그 티셔츠 사게.."
뭐? 아니 그거 안산다니까..
"어? 나 돈없다니까.."
"제가 사줄테니까.. 오기나 해요.."
..................
그리고선..
그녀는 또한번의 카드를 긁어 버렸다.
맥도날드에 들어와 햄버거와 콜라를 주문했다.
그래.. 이거라도 사줘야지..
오늘 받아먹은 선물이 도대체 얼마치냐..
앞으로 일주일은 내가 밥좀 사줘야겠다..
그나저나 궁금타..
얘는 도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부잣집 딸내미도 아닌데..
뭔 돈을 이렇게 무식하게써?
여자들은 보통 남자친구한테도 이렇게 선뜻 돈 안쓰지 않나?
근데 왜 얘는 나를 위해 이렇게 충동구매를 해대는거야?
정말.. 날 좋아하는거야?
아니면 뭐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건가?
아.. 궁금해 미치겠네..
"야.. 너 오늘 왜 이러냐? 갑자기 이러니까 무섭다야.."
슬쩍 반응을 본다..
"아껴 입으세요.. 세탁하실때도 손세탁 하시구요.. 웬만하면 그 티셔츠 입고 술자리 가지마세요. 담배냄새 배여요..밥먹을때도 조심해서 먹으시고.. 그리고.. 그 청바지는 자주 빨지 마세요. 자주 안빨려면.. 조심조심 입으셔야되는거 아시죠?"
.................
뭐야.. 왜이리 힘이없어?
쇼핑할땐 신나게 돌아다니더니..
그새 지쳤나?
"어.. 그래.. 뭐 그래야지.. 근데.. 너 목소리에 왜이렇게 힘이없어?"
"몰라요.. 아까부터 기운이 없네요.. 이 햄버거도 선배님이 드세요.."
....................
결국.. 콜라만 찔끔찔끔 마셔대는 그녀였다.
힘든가보군..
뭐야.. 겨우 30분 돌아다녀놓고..
운동좀 시켜야겠구만..
"선배님.."
"어.."
"내일 옷 딱 이렇게 입고 오셔야돼요.. 아셨죠?"
"이렇게? 이거 좀 불편한데.."
"이씨.. 그럼 사놓고 짱박아 놀꺼에요?"
"아.. 아냐.. 입고오지뭐.."
"그대로 다 하고 와야되요.. 하나도 빼지말고.."
"어.. 근데 구두만 그냥 신던거 신으면 안돼냐? 불편한데.."
"안돼욧.. 절대.. 다 그대로 하고와요.."
"아.. 알았어.."
"그리고.. 집에 혹시 안경 없어요?"
"안경? 나 시력 좋은데.."
"그래요? 아.. 안경만 있으면 딱인데.."
"어? 뭐가?"
"아.. 아니에요.."
"근데 너.. 이렇게 돈 펑펑 써도 돼냐?"
"당연히 안돼죠.. 저 이번달 적자에요 이제...."
"밥먹을 돈은 있냐?"
"당연히 선배님이 사줘야죠.. 제가 오늘 쏜게 얼만데.."
"나도 거지라.."
"뭐.. 그럼 할수없죠.. 노가다라도 뛰세요.."
"뭐? 그 힘든걸 또 하라고?"
"그럼.. 저 굶길꺼에요?"
"집에서 해먹으면되지... 너 집에 쌀없냐?"
"귀찮아요.."
"아직 배가 덜고픈가보네.."
"선배님은 집에서 밥 해먹어요?"
"나야 뭐.. 너땜에 요즘은 안해먹긴 하는데.. 원래 아침 저녁은 집에서 먹었어.."
"그래요? 반찬 많아요?"
"왜? 빌붙게?"
"쏜게 얼만데.. 한달은 빌붙어야죠.."
"반찬이라고 해봐야.. 뭐.. 밑반찬이나 장조림같은거 정돈데.."
"장조림? 메추리알 있는거요?"
"어.."
"오.. 나 그거 짱 좋아하는데.. 잘됐네.. 우리 낼부터 아침은.. 선배님 집에서 먹어요 "
"내일부터? 뭐.. 그러던가.. 근데 쌀이 있나 모르겠네.."
"없으면 전화해요.. 저 집에 쌀 남아도니까.. 하도 안먹어서 썩어나겠네.."
"쌀은 그렇게 쉽게 안썩어."
"그래요?"
"어.. 대신 벌레가 생기지.. 쌀벌래라고.."
"윽.. 드러.."
"니네집 쌀에도 벌레가 드글드글 할꺼야.."
"진짜요? 한달밖에 안됐는데?"
"한달이면 수천마리는 생겼겠네.."
"에? 지..진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