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의 무게 / 강영은
당신은
누르기만 하면 시가 나오는
자판기잖아요!
진담보다 가벼운 농담이긴 해도
그 말을 듣고 알았어요.
고장 난 내 몸이
기계였다는 걸,
흐르는 물처럼 잔잔히
죽음에 닿을 줄 알았는데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로봇이라는 걸,
시인의 운명이
그런 것이라면
수술대 위에 누워
목숨을 구걸하는 시인이 되기보다
기계가 되는 편이 낫겠어요.
머리통이든 젖꼭지든
하다못해 눈물점이라도
누르기만 하면 지저귀는 기계*
쇠로 된 입술을 가진다면
모가지를 눌러도 지저귀겠죠?
전선줄에 앉은 참새처럼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찾아오는 새
시간의 손잡이를 돌려도
날아가지 않는 새,
찬바람에 놀란 갈참나무가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밤
농담처럼 나는 죽어도
새는 살아 있겠죠?
*파울 클레, 종이에 수채물감과 잉크, 1992.
ㅡ 시집 『너머의 새』 (한국문연,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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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은 시인
1957년 제주 서귀포 출생. 제주교육대학,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2000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 『마고의 항아리』 『상냥한 시론』 등
시선집 『눈잣나무에 부치는 詩』
시사진에세이집 『산수국 통신』.
2015년 한국시문학상, 2016년 한국문인협회 작가상, 2023년 서귀포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