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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에 순애보로 생을 마감한 삼성의 가장 아름다운 막내 공주: 누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나?
2005년 11월 18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가장 아끼던 막내딸 이윤형이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26세.
삼성은 한국 최대의 다국적 기업 집단이자, 3대에 걸쳐 내려오며 일찌감치 세계 500대 기업 반열에 오른 거대 재벌입니다.
그렇기에 재벌가 천금 같은 막내딸 이윤형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이건희 회장 측은 언론에 "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보도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딸의 장례식 날,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여사 부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을까요, 아니면 가문의 불명예를 마주하기 힘들어서였을까요? 그 속사정은 알 길이 없습니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명문가나 평범한 가정을 막론하고 집안의 막내는 으레 특별한 사랑을 독차지하기 마련입니다. 한국 삼성가에서 태어난 이윤형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1979년,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이 태어났을 때 삼성그룹은 승승장구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은 막내딸을 복덩이처럼 여겼습니다.
"용이 아홉 아들을 낳아도 각기 다르다"는 말처럼, 삼성그룹의 수장인 이건희 회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능력 있고 대업을 감당할 수 있는 후계자를 키워내야 했고, 앞선 세 자녀는 기대에 부응하여 삼성그룹 내에서 각자 제 몫을 해내며 거대한 상업 제국을 함께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늦둥이 딸을 얻은 이건희 회장은 막내딸 이윤형만큼은 오빠나 언니들처럼 엄격한 규율을 배우거나 기업 경영에 참여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주기만을 바랐습니다.
이윤형은 천진난만하고 활발하며 명랑한 성격이었고, 아버지는 딸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전력을 다해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윤형은 어린 시절부터 마치 화창한 하늘을 나는 종달새처럼 자유롭고 근심 걱정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가 20세 성인이 되던 해, 이건희 회장은 선물로 1억 9천만 달러 상당의 그룹 주식을 주었고, 이윤형은 단숨에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이윤형은 서울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불어불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가족들이 걷는 경영 일선에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명문가의 막내 공주로서 그녀의 인생은 기쁨을 최대한 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요.
한국의 모든 여성은 그녀를 부러워했습니다. 부유한 집안 배경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녀를 끔찍이 아껴서 많은 일을 사람을 시켜 대신 처리해 줄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부와 명예, 즐거움과 행복을 노력 없이 모두 손에 쥐고 태어난 사람에게, 평범한 사람들처럼 치열한 분투는 필요치 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과잉보호와 최상류층의 호화로운 삶 속에서 이윤형은 점차 인생에 대한 막막함과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대중의 엄청난 관심을 받는 동시에 끊임없는 악플과 사이버 불링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 무렵 그녀는 카레이싱에 빠져들었습니다.
속도와 스릴 속에서 삶의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을 느끼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이 잔잔하던 그녀의 인생에 거친 파도를 몰고 올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녀는 화려하고 웅장한 물보라를 마음껏 즐겼지만, 이내 천 길 낭떠러지로 휩쓸려가게 되었습니다.
2003년 어느 날, 이윤형은 온라인상의 근거 없는 비난에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서울의 한 레이싱 서킷을 찾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그녀는 고난도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이 코스의 가장 위험한 구간은 45도 급커브였습니다. 자칫 핸들링을 잘못하면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평소 고집이 센 편이었던 이윤형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시도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경주용 차 안에 앉은 이윤형은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그때 키가 큰 한 남자가 다가와 진지하게 충고했습니다.
"내비게이션 말을 제대로 안 듣고 있군요. 마음속으로 신뢰하지 않으니까 그 0.5초의 코너링 타이밍을 계속 놓치는 겁니다. 아가씨, 나라면 사람을 바꾸든가, 아니면 내비게이션에 목숨을 맡기겠어요!"
이 말을 들은 천방지축 이윤형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습니다. "그럼 당신이 가르쳐 주세요."
결국 남자는 차 문을 열고 능숙한 솜씨로 그녀를 태우고 그 고난도 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차에서 내린 이윤형의 가슴은 요동쳤습니다.
이 설렘은 아슬아슬했던 레이싱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남자 **신수빈(기사 원문의 조문우(赵文虞)는 신수빈(Shin Soo-bin)의 가명 혹은 오기로 보임, 실제 인물 신수빈으로 번역)**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엄격한 보호 탓에 외부와의 접촉이 많지 않았던 그녀에게, 이것은 24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낀 남성 세계로부터의 강렬한 충격이었습니다.
레이싱 후 두 사람은 함께 커피를 마셨습니다.
헤어질 때 이윤형은 "커피 잘 마셨어요. 제 평생 마신 커피 중 최고였어요."라는 말과 함께, 생전 처음으로 만난 지 한 번밖에 안 된 신수빈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넸습니다.
그가 전화를 할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하루 종일 기대와 불안 속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날 밤, 신수빈이 전화를 걸어오자 삼성의 막내 공주는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신수빈은 훤칠한 외모에 예의 바른 태도를 지녔고, 대화할수록 이윤형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고학으로 MBA를 마치고 서울의 한 무역 금융 회사에서 투자 컨설턴트로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그 또한 레이싱 애호가였기에 이윤형과는 말이 잘 통했습니다.
나라를 살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재벌가에서 태어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고, 늘 귀하게 대접받으며 살아온 이윤형에게 부족한 것은 딱 하나, 가슴을 뛰게 하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빈번하게 만남을 가졌고, 남몰래 키우던 호감은 확신으로 변했습니다. 우정은 순식간에 사랑으로 승화되었습니다.
비록 신분 차이는 컸지만, 이윤형에게는 사랑이 모든 것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녀는 상대방의 가정 형편이나 직업, 신분 따위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수많은 불리한 조건을 차단하고, 그에게 사랑이라는 콩깍지를 씌웠습니다.
비록 조심스럽게 데이트를 즐겼지만, 일거수일투족이 플래시 세례를 받는 삼성 공주에게 평범한 사람들 같은 연애의 자유는 없었습니다.
집요한 언론은 꼬리를 잡고 신수빈의 신상 정보를 캐냈습니다. 결국 삼성그룹의 공주가 가난한 평범남과 연애 중이라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사람들은 고전 소설 속 부잣집 아가씨와 가난한 선비의 사랑 이야기에는 열광하지만, 이해타산에 밝은 현대인의 시각에서 이것은 현실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 비논리적인 조합이었습니다.
수많은 구경꾼이 이 '격이 맞지 않는' 재벌가 로맨스를 안주 삼아 씹을 때, 이윤형의 집안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은 그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딸이 집안 몰래 평범한 집안의 회사원과 2년이나 비밀 연애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대노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분노한 이유는 단순히 신수빈과 딸의 계급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큰딸 이부진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딸 이부진은 MIT MBA 출신에 뛰어난 기품과 능력을 갖췄음에도, 하필이면 집안 배경도 능력도 부족한 경호원 임우재에게 마음을 빼앗겨 집안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결혼 후 임우재는 무능하고 사치스러웠으며,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임신한 이부진에게 가정폭력까지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2014년, 참다못한 이부진은 결국 이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적반하장으로 임우재는 1조 2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산 분할을 요구했습니다.
이부진은 당연히 거절했고,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배상금은 1조 2천억 원에서 141억 원으로 줄어들며 진흙탕 싸움 같은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건희 회장은 막내딸마저 같은 전철을 밟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딸 모르게 사람을 시켜 신수빈을 찾아가 헤어질 것을 요구했습니다.
제시한 조건은 위자료 10억 원이었습니다.
신수빈은 비록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돈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윤형을 깊이 사랑했지만, 동시에 자신과 이윤형 사이에 놓인 건널 수 없는 강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끝내 그녀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죠.
게다가 이건희 회장은 사람을 붙여 신수빈을 감시하고, 이윤형과 다시 만나는 것을 철저히 막았습니다.
결국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신수빈은 미국으로 떠나 이윤형과의 연락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눈이 멀어 있던 이윤형은 이 모든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남자친구를 만났다는 것도, 남자친구가 타국으로 떠났다는 것도 모른 채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는 그를 찾아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수빈이 갑자기 이윤형에게 전화를 걸어 담담하게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나를 잊으세요."
그제야 그녀는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소행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와 남자친구를 향한 깊은 사랑.
인생과 사랑의 갈림길에서 그녀는 두 언니의 결혼을 떠올렸습니다.
큰언니 이부진은 사람을 잘못 만나 진심을 다치고 비참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둘째 언니 이서현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2000년 동아일보 전 사장의 차남 김재열과 결혼해 네 자녀를 두었습니다.
큰언니를 통해 신분 격차가 가져온 인생의 파국을 목격했지만, 이윤형은 언니의 불행이 자신에게 되풀이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둘째 언니처럼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는 체스판의 말이나 가문의 이익을 위한 희생양이 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외부와 가정의 거대한 반대는 그녀를 멈추게 하기는커녕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녀는 끝까지 신수빈을 믿었고, 자신의 직감을 믿었으며, 그가 평생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이윤형은 이대로 신수빈과 끝낼 수 없었습니다. 그를 향한 마음은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주워 담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수빈의 전화를 받은 다음 날 아침, 이윤형은 비행기 표를 끊어 미국으로 날아갔고, 모든 인맥을 동원해 신수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어느 아파트에서 그를 찾아냈습니다.
이윤형이 신수빈을 보자마자 건넨 첫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지금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게, 너랑 함께할 수만 있다면."
신수빈은 고통스러워하며 눈물 흘리는 이윤형을 보며 그녀의 깊은 사랑에 감동했지만,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가진 것을 다 버리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몰랐습니다. 여자가 사랑을 위해 불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했을 때,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것을요.
이윤형은 일단 귀국하여 아버지에게 미국 유학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딸의 끈질긴 설득에 이건희 회장은 동의했지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귀국 후 집안에서 정해주는 혼처와 선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떠나기 위해 이윤형은 아버지의 조건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시간을 벌기 위한 핑계였고, 미국에 가서 신수빈과 함께 지내며 집안 몰래 결혼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녀가 들뜬 마음으로 신수빈에게 비밀 결혼 계획을 털어놓았을 때, 돌아온 것은 거절이었습니다.
이윤형에게는 저지르고 보는 것, 기정사실로 만드는 것이 신수빈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지만, 상대방에게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반대, 남자친구의 거절, 게다가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사무치는 그리움은 이윤형을 매일 짓눌렀습니다.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로 지새우던 그녀는 결국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약물 치료는 즉각적인 효과가 없었고, 이미 중증 우울증 상태였던 이윤형은 점차 삶의 의지를 잃어갔습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것처럼, 거친 파도와 암초 속에서 필사적으로 헤엄치던 그녀는 마침내 마지막 힘마저 소진해 버렸습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창밖의 오가는 사람들과 화려한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이 넓은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세상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녀가 가장 갈망했던 것은 영원히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수빈이 제 발로 이윤형의 아파트를 찾아왔습니다.
이윤형은 그가 드디어 결혼을 결심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몰래 혼인신고 하지 않을 거야. 너 자신을 잘 돌봐."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떠났습니다.
그날 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윤형은 잠들지 못했습니다.
새벽 3시, 그녀는 가장 아끼는 옷으로 갈아입고,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흰색 전화선을 끊어 자신의 목에 감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떠나기 전, 그녀는 신수빈이 쓰던 레이싱 헬멧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수빈, 고마워! 이제 더 이상 고민하지 마, 넌 자유야!"
그녀의 시간은 영원히 26세에 멈췄습니다.
유서에는 가슴 속 깊은 고백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은 비록 절망을 주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아. 나를 죽음으로 이끈 건, 역설적이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것이었어."
누군가는 시간이 모든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고통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어떤 고통은 세월과 함께 바람처럼 흩어지지만, 어떤 고통은 시간의 황무지에 묻혀 해마다 봄바람이 불면 다시 돋아납니다.
이윤형에게 그녀의 고통은 후자였을 것입니다.
이윤형의 죽음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비단 이루지 못한 사랑뿐만이 아닙니다.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는 수많은 일들입니다. 또한 재벌가 딸의 좌절만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좌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