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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디아서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1 육적인 것으로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
유대인 성도는 말씀을 맡은 민족이다. 복음은 유대인에게서 시작되었다. 말씀을 맡은 장자로서 이방인에게 영적인 것을 나누어 주었고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것을 나누어 받은 이방인이 육적인 것으로 유대인 성도들을 특히 가난한 성도들을 섬기는 것은 당연하다(롬15:26,27).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롬15:26,27)
이와 마찬가지로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신령한 것으로 성도들을 섬겼을 때 성도들이 육적인 것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섬기는 것은 마땅한 토라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일을 하는 자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고 제단을 섬기는 자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즉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말씀이 바로 이 뜻이다(고전9:11-14). 우리는 누구나 교회를 세우는 것을 꿈꾼다. 우리의 기도 제목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세우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샤밧을 빠지지 않는 것, 절기를 빠지지 않는 것, 십일조하는 것등 이러한 단순하지만 기본적인 일을 하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율법이다. 율법은 모세 오경을 말한다. 창세기부터 신명기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지킨다면 지금과 같이 동성애나 공산주의와 같은 잘못된 사상으로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부패하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모든 문제는 우리가 의로운 율법을 거절했기 때문에 거룩함을 잃어버려 생긴 일이다. 심지어 십일조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목사님이 있을 지경이다. 우리가 율법을 폐한다면 우리에게 지킬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처럼 교회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에 힘쓴다고 하면서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본분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 제목은 그저 뜬 구름일 뿐이다(전12:13). 영적으로 교회를 세우기 원한다면 육적으로 교회를 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곧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뜻이다.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떡을 주시는 것은 바로 성도들의 손으로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고전9:11-14)
2 목숨을 다해 섬기는 아비들
성도들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바울은 말한다. 왜냐하면 영혼들을 위해 경성하기를 마치 성도들의 잘못이 자기 잘못인 것처럼 여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히13:17). 성도들의 잘못은 이들에게 근심거리가 되고 슬픔이 된다. 왜 그럴까? 이들에게 맡겨진 성도들은 마치 그들의 손에 들려진 생명값과도 같기 때문이다. 양떼들이 잘못한 것을 보고도 말씀으로 깨우치지 않는다면 생명의 대가를 그들에게 찾으시겠다고 여호와께서 경고하셨고 이들은 그 말씀을 경외하기 때문이다(겔3:17,18).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히13:17)
사도 바울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이렇게 고백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 곧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나의 생명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행20:24)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거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이 진정 영적인 지도자들이고 인도자들이다. 이들에게 양떼들의 잘못은 그들의 목숨을 건 책임이기도 하다(요10:11). 그러므로 영적인 아비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이들에게 큰 유익이 되고 생명이 되는 것이다. 다만 양떼들을 맡은 영적 지도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법도로 다스리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 결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섬김을 받으려 해서는 안되며 오직 예슈아께서 보이신 것처럼 낮은 자가 되어 영적인 것으로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막10:43-45).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요10:11,12)
3 예슈아의 리더쉽을 본받으라
예슈아께서 죽으시기 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예슈아를 따르던 자들이 놀라고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이미 예슈아의 죽으심이 다가오면서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선동되어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를 보며 예슈아께서 놀라지 않으셨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자신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이방인에게 넘길 것을 이야기 하셨고 이방인들이 예슈아를 능욕하고 침뱉고 채찍질하고 자신을 죽일 것이지만 3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 이것이 예슈아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리더쉽이다.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그리고 거룩함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이 예슈아의 사랑이었고 아버지를 향한 절대적인 복종이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막10:32-34)
예슈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들었음에도 제자들은 누가 예슈아의 좌편과 우편에 앉게 될지에 대해 다투었다. 이에 대해 예슈아께서는 크고자 하는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이것이 예슈아께서 보여주신 리더쉽이다.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섬김을 받는 권세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섬기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종이 되기 위함이었다(막10:32-45). 그러므로 영적 아비들은 예슈아처럼 양떼들을 섬기기 위해 목숨을 내어주기 까지 종이 되어야 하겠고 양떼들은 그런 아비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그들에게 유익할 것이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3-45)
#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4 미혹을 받지 말고 속지 말라
바울은 불의한 자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는 미혹의 가르침이 있을 거라고 경고했다. 분명하게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자, 탐욕을 부리고 모욕하고 속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물론 거듭나기 전에는 불의한 삶을 살았던 자들이 있다. 그러나 구원이라는 예슈아의 이름과 여호와의 거룩한 영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씻어졌다(고전6:9-11). 그렇다면 우리가 불의하나 예슈아께서 씻어주심으로 우린 의로워지고 유업을 얻게 되었는가? 아니면 우리가 불의함을 멈추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됨으로 거룩해져서 유업을 얻게 되었는가? 우리는 전자에 대한 설명을 주로 들어왔다. 우리는 불의하나 예슈아의 의로움으로 우리가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었고 유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렇다면 우린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미혹을 받지 말고 속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죄를 지어도 예슈아의 의로움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를 죽이는 자들이다. 정신차려라. 심지어 동성애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당장 듣기에 좋다고 죄를 지적하지 않고 등 두드려 준다고 좋아하다가 진짜 중요한 구원을 놓칠 수 있다. 항상 우리 주위에 우리 영혼을 도둑질 하려는 미혹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고전6:9-11)
5 하나님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자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자는 죄(불의)를 짓는 자라고 말하였고 이 부분에 대해 미혹이 있을 거라고 경고했다. 이 예언은 적중했다. 죄를 짓고 교회에 와서 울며 회개하는 자를 사람들은 겸손하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는 자들에겐 교만하지 말라고 책망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죄를 안 지을 수는 없다. 즉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분명 미혹이다. 성경에서 죄는 하나님의 명령들(율법)을 범하는 것이라고 증언한다(요일3:4).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였고 예슈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마귀에게 속한 일(죄)을 없애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으로 부터 난 자들은 죄를 짓지 않고 또한 죄를 지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씨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요일3:6-9). 우리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라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 이긴 예슈아의 제자들이다. 그러므로 불법(죄)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고 미혹인 것이다. 이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씨(말씀)가 그 속에 있지 않고 거룩한 법도(율법)에 따라 회개하여 하나님을 알아야 할 자들이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요일3:4-9)
6 불법을 사랑하는 마음의 열매는 사망이다
분명한 것은 죄 때문에 사망한다. 우리는 예슈아를 믿지 않아서 사망한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예슈아를 진정으로 믿는 자들은 죄를 짓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에 미혹되지 않기 위해 죄 때문에 사망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한다. 예슈아께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가 죄를 멈추게 하기 위함이지 죄를 지으면서도 담력을 얻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 이것이 태초부터 정하신 토라이다. 사단은 태초부터 범죄자이다. 심지어 사단도 예슈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떨었다(약2:19). 만약 우리의 불법과 상관없이 예슈아의 의로 구원받는다면 사단이 구원받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죄를 지었어도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구원)를 유업으로 얻을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속는 이유는 불법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불법을 해서라도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욕심이 탐욕이 되고 죄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욕심'의 어원은 ‘금지된 것을 향한 동경’이라는 뜻으로 탐욕에 가깝다. 탐욕은 죄의 씨앗이 되고 죄는 사망의 씨앗이 된다. 그러므로 불법을 사랑하는 마음이 씨앗이 되어 사망을 낳는 것이다(약1:14-16).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2:19)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약1:14-16)
7 의에 대해 자유한 자 vs 죄에 대해 자유한 자
바울은 우리가 불법한 삶을 살면 얻게 되는 열매가 사망이 될 거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에는 죄의 종으로서 의에 대해 자유로웠으나 부끄러운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슈아로 인해 죄에서 해방되어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 죄에서 자유한 자가 되었고 영생이라는 열매를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의에 대해 자유롭게 살 것인가, 죄에 대해 자유롭게 살 것인가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하기 원한다. 그러나 율법을 알기 전에 자유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자유했다. 바로 의에 대해 자유로웠기 때문에 마음대로 죄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죄에 대해 자유로워졌고(해방되었고) 의를 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반대로 생각한다. 죄를 지어도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을 자유로 생각한다. 즉 죄를 지어도 상관없는 것을 죄에서 자유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가? 죄를 마음대로 지었을 때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성경은 죄를 짓는 자는 의에 대해 자유로운 자, 즉 불의한 자라고 말한다. 우리가 소망하는 자유는 의를 행함으로써 얻는 자유이며 죄에서 벗어난 자유를 말한다. 명심하고 속지 말아야 할 것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살면서 죄를 지으면 그 결과 받게 되는 보상이 사망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슈아를 통해 죄성을 십자가에 못박고 의의 종으로 살면 그 보상으로 영생이라는 선물을 여호와께 받을 것이다(롬6:19-23). 그러므로 일의 결국을 아는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고 지혜인 것이다(전12:13).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19-23)
8 율법을 이상하게 여기는 자들
여호와께서 우상 숭배자들에 대해 경고하신 말씀이 있다. 이들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며 열매 맺지 못하고 맺을지라도 이방인들에게 삼켜짐을 당할 것이다. 이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했지만 이들은 율법을 이상한 것으로 여긴다. 여기서 '이상한'의 히브리어 어원은 '곁길로 가다, 이방인, 세속인, 간음하다, 매춘부'등의 뜻이다. 즉 여호와의 율법을 이교도적인 것으로, 세속적이고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심지어 율법을 지키는 것을 하나님을 음란하게 섬기는 우상 숭배와 같이 여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율법을 범하고 우상 숭배하고 범죄하고 있다고 탄식하시며 이들이 아무리 희생 제물을 드린다 해도 이들의 죄악을 기억하고 벌하고 애굽으로 다시 보내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다(호8:6-13).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린 율법을 이상하게 여긴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이 지킬만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율법주의라고 말하며 비난한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말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지킨다는 말과 같다. 이것이 율법을 이교도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실제로 2~3세기에 율법을 사탄적인 것으로 가르친 역사가 있다. 지금도 율법을 거룩하고 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율법을 저주라고 말하며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많다. 마치 율법이 죄인 것처럼 말하고 부정하게 여긴다. 이처럼 우린 성경에서 여호와께서 탄식하신 그대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린 거룩한 율법에 따라 회개해야 한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을 것은 죄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율법이 아니라 율법을 범한 죄이다. 죄를 지으면서 드리는 예물과 예배는 아버지께서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죄를 기억하시고 벌하신다. 예슈아께서는 죄를 없애기 위해 오셨다. 그 말은 율법을 세우기 위해 오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죽은 신앙이 되지 않기 위해 이제는 믿음으로 율법을 세우는 자가 되야 할 것이다(롬3:31).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그들이 내게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호8:6-13)
#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9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몸은 반드시 썩으나 다시 부활채를 입게 될 것이다. 그때는 사망이 삼켜지고 이기리라는 말씀이 성취될 것이다. 다만 죄는 사망을 이기지 못한다. 사망은 죄를 이기고 쏠 것이고 그 권능은 율법이다. 율법이 사망이라는 말이 아니라 사망이 죄를 쏠 때 합법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망이 역사할 수 있는 권능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주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예슈아로 인해 죄에서 해방되었고 죄에 대해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안다. 마지막에 사망을 이기게 하실 것이며 영화로운 부활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5:53-38).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15:53-58)
10 사람을 의지하지 마라
우리가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준은 말씀이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심판의 대상이지 심판자가 아니다.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도 의지할 만한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섬겨주고 사랑해야 할 존재이다. 성경은 우리가 사람을 통해 시험과 환란을 당할 거라며 오히려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예슈아께서 마지막 때를 이렇게 예언하셨다.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즉 가장 가까운 사람에 의해 우리가 배신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가족도 믿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우리의 믿음을 보장해줄 수 없고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차라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끝까지 싸울 수 있고 인내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다. 예슈아께서는 곧 오신다.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오실 것이다(마10:17,21-23).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10:17,21-23)
11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우리가 사람들을 통해 불시험을 당하고 환란을 당하나 기뻐하고 인내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기는 자에게 반드시 큰 상을 주시고 영원한 소유가 있을 거라고 언약하셨기 때문이다. 예슈아께서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것이다. 그것을 믿는 자들은 모든 것을 참으며 인내할 수 있다. 이것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라는 의미다. 믿는 자들은 뒤로 물러나 타협하지 않으며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 마침내 영혼의 구원함을 얻는데 이를 것이다(히10:32-39).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10:35-39)
12 구제하는데 인색하지 마라
우리가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면 즉 확실한 진리안에 거하면 이것이 영혼의 생명이 될 것이고 우리의 걷는 길이 평안할 것이다. 그리고 잠잘 때 두려움이 없을 것이며 잠이 달 것이다.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멸망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의 의지할 분이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발을 지켜 주시고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선을 베풀 힘이 있을 때 마땅히 받을 자들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잠3:21-28). 특별히 의를 위해 핍박을 당하고 갇힌 자들을 기억하고 함께 성전을 이루는 지체된 자로서 그들을 섬겨야 한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선행임을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다. 도둑질하는 자들도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엡4:28). 또한 게을러서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고 심지어 그런 자들과는 사귀지도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살후3:10-14) 그러므로 우린 더욱 성실한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해야 하며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4:28)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잠3:21-28)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갈라디아서 #미라클조 #히브리적관점 #레올람토라 #미혹
@무한대 요한복음 5: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자유하라 그러니까요. 성경은 모두 예수에 대해 기록했는데 님은 예수와 관련이 없는 지구창조로 믿으시나요?
@자유하라 성경의 창세기1장이 지구창조와 인간창조라면 예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잔습니까?
@무한대 율법에 예슈아에 대한 것이 있다는 것이지 율법이 모두 예슈아에 대한 글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예슈아 조차도 자신을 증명할때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지구 창조를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나요? 지구 팽창론, 진화론을 믿으시나요?
@자유하라 모세오경이 예수에 대한 기록이라면 천지창조도 인간창조도 모두 예수이어야지요. 천지창조부터 이미 예수의 십자가가 세워진겁니다.지구와 우주가 아닌 성전창조이죠.
@자유하라 지구와 인간은 이미 50억년 전부터 존재 했습니다.
@무한대 율법과 예슈아의 관계를 많이 오해하고 계시네요
저는 일이 있어 여기까지 답변하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하라 마태복음이나 창세기이나 요한계시록이나 모두 같습니다. 똑같은 내용이지요.
@무한대 진화론이라는 종교를 믿으시는군요
지구의 나이는 모르지만, 인류의 역사는 창조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6000년 입니다
@믿음의 여정 네~~
감사합니다 ~
김명현 교수의 강의가 창조론에 있어서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
@믿음의 여정 천만에요 지구의 나이는 50억년이 넘었습니다. 인간의 존재도 같죠.
@믿음의 여정 성경의 천지창조 인간창조 등 모두 신화입니다. 물론 성경의 모든 족보도 신화이지요.
@무한대 부디 말씀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평안한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자유하라 내가 쓴 글 이면적 유대인을 읽어 보시지요.
아멘!
이스라엘을 제외시킨 기독교에서 사는 삶은 참~여러가지로 갈라져서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것 같아요.
이스라엘이 중심으로 회복된 후 구약부터 신약이 흐름이 아니라 덧 붙여진 언약의 완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없는 사고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참 많이 힘들지요.
오늘 이란의 공격으로 정신이 쏠린 와중에 올리신 말씀에서 힘을 얻었네요.
예루살라임의 진정한 평안을 위해 기도합니다!
평안하십시요~
아멘
감사합니다
저도 댓글에서 힘을 얻습니다
예루샬라임에 참 평안을 구합니다
언제나 힘 내십시요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십니다
할렐루야 ~~♡
시편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자유하라
CJB 욜4장
[14] 결정의 계곡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였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결정의 골짜기에 우리에게 이르렀느니라!
[15]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도 빛나기를 그쳤느니라.
[16] 여호와께서 치욘에서 포효하시며 예루살렘에서 천둥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라.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의 피난처가 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실 것이다.
@jwha 아멘 ~!!!
소망의 날, 기쁨의 날, 보복의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자유하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