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마당에 있는 전용 콘서트장
● 상상마당의 아주 특별한 밴드 '인큐베이팅' 시스템
● 문화기업이 지켜줬으면 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
필자는 학창시절에 '대학가요제'나 '유재하가요제'같은 가요제에 출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은근히 대중음악 지망생들에게 '가요제'란 꽤나 유용한 존재로 자리매김 해왔다.
이제는 인기 밴드로 자리매김한 '좋아서 하는 밴드'의 보컬인 조준호 역시도 비슷한 경험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쉽게 말해 대중음악에 편견을 갖고 계신 부모님의 반대를 뒤집을 수 있는 공신력(?)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부모님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코스란, 각종 가요제 출전과 입상 그리고 기획사와의 자연스러운 접촉을 통한 앨범 발매 정도이다. 여의도 연예인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갓 스무 살 넘은 아티스트들에게는 이것이 '딴따라'를 가능케 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었다.
인디밴드에게 필요한 것은 상상력을 제약하지 않는 음악적 자유다
■ '가요제'란 자기만족 보다는 부모님 설득용?
그런데 이제 대안적인 방법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식은 인터넷 같은 뉴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빛내 스스로의 힘으로 뜨는 속칭 '자력갱생(自力更生)' 전략이다. 이는 수많은 인디 선배들에 의해 시도된 방법이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인생에 3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가? 그 기회들 가운데 하나를 쉽지 않지만 스스로 잡아채야만 한다.
이밖에 음악계가 진화하면서 새로운 방법들도 모색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상마당 밴드 인큐베이팅' 시스템 같은 문화 기업들의 투자이다.
홍대 앞 '상상마당'은 이미 주차장 골목의 '랜드마크'로 홍대를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브랜드다. 조금 더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상상마당'이 한국담배인삼공사(KT&G)의 사회적 기업으로의 문화적 브랜딩을 위한 투자라는 것을 알고 있을 터이다.
필자가 보기에 '상상마당'은 문화를 표방하는 기업들이 홍대 주위에 투자한 모델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한 모델이다.
무엇보다 전용 '라이브 극장'과 '전시관'을 확보하고 있어 다양한 행사를 자체적으로 기획해 개최할 수 있다. 또한 '브뤼트'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디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이벤트 행사를 꾸준하게 열어왔다. 웬만한 지자체 문화회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홍대 인디 문화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단연 인디문화계의 주목을 받는 행사가 있다. 올해로 3회차가 된 '상상마당 밴드인큐베이팅'이란 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아마도 잘 보살피고 키운다는 의미의 '벤처 인큐베이팅'에서 따온 상상마당 밴드 인큐베이팅'이란, 말 그대로 무명 뮤지션들에게 '현찰'과 '스포트라이트'를 동시에 제공하는 일종의 가요제이자 훈련생 선발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도전자에게는 3단계에 걸친 강도 높은 테스트가 기다린다. 물론 깐깐한 시험에 걸맞은 달콤한 열매도 기다린다. 1년에 선발되는 6개의 팀에게는 1800만원의 상금과 더불어 무료연습실 그리고 데뷔앨범제작이란 상당히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진다.
무명의 20대 초반 밴드에게 이 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을까. 자금과 기회를 주면서 앨범을 내라고 강요하는 국내 유일의 '가요제'인 셈이다.
2010 상상마당 밴드인큐베이팅 선정팀-클린치clinch
■ 상상마당 밴드 인큐베이팅의 혁신적인 선택 2가지
이 뿐만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또 있다. 그간 인디밴드를 후원하는 가요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쌈지스페이스'를 비롯한 적잖은 문화기업들이 행사를 기획해왔다. 그런데 이런 문화기업의 가요제는 일정정도 강요되는 음악 스타일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OO가요제는 '모던록'을 해야만 통과할 수 있다거나 혹은 '펑크록'만이 통과되는 식으로 수혜자를 제한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상상마당'은 그러한 음악적 색깔을 완벽하게 제거했다. 지난 3년간의 선정 결과를 살펴보면 마치 무지개 색칠하듯 6가지 음악 색깔로 골고루 분산되어 있었다. 필자는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공이자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6월말, 제3회 선발대회가 열렸고 무려 180여 팀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클린치'를 비롯해 활동 중인 밴드 가운데 '라이밴드', '루버더키', '서드스톤', '신가람밴드', '오후만있던일요일'이란 팀들이 상상마당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누군가에게는 영광스러운 결과였고, 또 탈락한 팀들에게는 눈물나는 결과였을 것이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와 윤도현 밴드의 기타리스트 유병렬 등이 세심한 기준을 세워 평가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물론 평가의 기준이나 뽑힌 팀들의 음악적 성향은 논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저 앞으로 달라질 이들의 음악환경이 과연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또한 이렇게 선발된 친구들이 다양한 음악적 성과를 거두며 포기하지 않도록 조용하게 후원하는 일도 필요하다.
아직도 TV 속에는 '대중음악vs인디음악' '록음악vs발라드' 등등의 흑백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가요제 역시도 마찬가지다. 음악 색깔을 가요제가 먼저 규정해 버리면 자라나는 새싹이 상당히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면 이들의 손에 문구사에서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프리즘을 쥐어주고 싶다. 이를 통해 세상을 본다면 빛은 다양한 색으로 구성됐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마저 제대로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중음악이란 4개의 선택 답안만이 존재하는 객관식 시험이 아니다.
2010-08-27
김마스타 / 가수 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