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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 일기
정인섭
당신 집은 마당 끝이 바다
썰물 때 당신은 걸어서 우리 붉디 붉은 마음의
먼 세상으로 들어 갔습니다
낮달이 흰 좋은 시절이 다 지나가도록
나는 바람 이는 모래 위에서
꿈도 잊은 채 웁니다
역사랑 종교랑 오랜 사랑까지 저무는 바다에 던져
다시 당신을 불러낼 수 없다면
달이 되어 어두운 당신의 우물에 들겠습니다.
2,3면
2003년 답사 주제에 부쳐
아름다운 숲과 마을을 돌며,
자연(스러움)과 문화를 찾는 소중한 기억 여행
청명, 한식날에 집 주위에 꽃나무 한 그루를 심어보는 것도, 나무를 심고 가꾸는 민속을 알면 더 재미있을 것입니다. 실학자 홍만선이 17세기에 쓴 『산림경제』에 보면 " 집 동쪽에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심고, 남쪽에 매화나무와 대추나무를 심으며, 서쪽에 치자와 느릅나무를 심고, 북쪽에 벗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으면 청룡백호주작현무를
대신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수목이 四方神을 대신하여 집을 보호하고 신목이 되었던 것이지요.
거의 모든 나무는 싹튼 곳에서 자란 쪽이 훨씬 잘 자랍니다. 동물은
먹을 걸 구하러 쏘다니지만, 풀과 나무는 태양빛과 물과 흙이 있으면
살 수 있다지요. 수수백 년 천 년 자란 나무가 꽤 있는데 나무가 인간보다 오래 사는 건 아마도 욕심과 욕망을 좇아 쏘다니지 않기문인가
싶네요. 오래 사는 게 삶의 목표가 아니지만 몇 백 년 몇 천 년을 산 나무는 예사롭지 않은 존재 같답니다. 그 앞에 서면 존재의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지요. 생명을 가진 모든 것 중에서 나무는 특별한 존재 같아
엄숙한 느낌이 듭니다. 수수백 년 천 년 묵은 나무는 온 몸으로 태고의
고요와 원시의 기운을 뿜어 내고, 작은 나무도 작은 대로 고요와 기운
을 풍기고 있는 것 같지요.
큰 집 지을 땐 나무를 사지 말고 산을 사라
나무는 자란 방향대로 써라
나무는 생긴 대로 써라
자연의 흐름 속에서 자란 나무를 베어 집을 지었으니, 정성을 다해
오래오래 서 있도록 집을 짓는 거지요. 위의 말대로 자연을 받아들이면서 인간의 의사를 표현한 집(건축물)은 자연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의 합작이지요. 개심사 요사채 부엌칸 기둥이나 선운사 만세루의 대emf보, 안성 청룡사의 대웅전 옆면, 화엄사 구층암 요사채는 돌이나
목재를 가공하지 않고 가능한 한 자연 그대로 거칠고 투박한 자유분방한 표현법들입니다. 주변의 자연과 능동적으로 건축이라는 인공적
장치로 조화를 이루었지요.
옛날 가장 보편적인 우리네 서민 살림집은 지붕이 초가에, 벽체는 흙벽으로 된 집이었습니다. 본래 흙집이란 습기를 잘 빨아들이고 보온성이 높아,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의 기후에 가장 적합한 가옥형태라 할 수 있지요. 있는 사람들의 집이 기와집이었던 것에 비해, 초
가는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사치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부지런함의 문화였지요.
재료는 그저 주변에 널린 흙과 나무와 짚이면 되었고, 초가집은 굴뚝새도 살고, 지킴이 뱀도 살고, 굼벵이도 살고, 너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자연과 인간과 생활이 공존공생해 온 문화였습니다.
2003년 광주 민학회 답사 주제 <아름다운 숲과 마을을 찾아>떠나는
여정은 오롯이 사람사는 얘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숲을 이루는 곳에
마을이 있고,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마을에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역사란 국가나 고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작은 마을에도 있는
것이며, 마을의 영고성쇠를 통해 인간의 삶도 결정되는 거지요.
벽오동, 회화나무, 산사나무, 계수나무, 산딸나무, 모과나무, 은목서,
자귀나무, 뽕나무, 상수리나무...를 세면서 사람사는 이치도 깨닫는 工夫도 하면서, 우리 산천과 잘 어울린 마을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고향을 찾기를 바랍니다. 「이씨조의 산수화가」란 글에는 "畵不人師 造
畵師"란 글이 있는데 풀이하여 "그림을 그릴 때 사람을 스승으로 삼지
않고 천지자연을 스승으로 삼는다" 라는 글로 맺겠습니다.
참 고 문 헌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김봉렬, 안그라픽스, 2002
*무등산, 박선홍, 금호문화. 1976
*사라져 가는 이땅의 서정과 풍경, 이용한, 웅진닷컴, 2002
*사람이 뭔데, 전우익, 현암사, 2002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 강판권, 지성사, 2002
*한국인은 왜 틀을 거부하는가, 최준식, 소나무, 2002
*호남3대 명촌 금안동, 김정호 외, 향토문화진흥원, 1992
4,5면-
미리 가본 답사
봄볕 따라 동백 따라 완도 찾아가는 길
봄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려간다. 앞산 골짜기에는 봄 생기가 돌고,
들판에는 봄이 속을 울렁이게 한다. 냉이도 캐고, 달래도 캐면서 싫증이 안나는 봄 기운에 게을러져도 보고 싶었다. 해마다 봄은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한다.
一春多病臥無聊 惟有閑愁酒可
(봄 내 병이 많아 무료히 누웠으니/ 한가한 시름은 술로 달랠 만하다.
晩日却來原上望 柳花漫雪麥齊腰
(해 저물녘 언덕 위에서 바라보니/ 버들 꽃 마구 눈처럼 날리고 보리는 허리만큼자랐다.) -「閑情」 高敬命-
자연에 대한 사람의 그리움은 도시화와 환경훼손이 심할수록 깊어만 간다. 무엇보다 자연은 신선해서름답다. 산길에서 매일 만나는 초목일지라도 한번도 같은 법이 없다. 자연은 한번도 실망을 준 적이 없다. 홍수나 한발같은 재앙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보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 단연 재앙을 뛰어넘는다. 계절마다 피는 꽃과 벌과 나비같은 곤충이 보여주는 상생의 모습은 사람이 자연을 떠나살 수 없고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즐긴다.
13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내내 변함없이 반겨주는 것은 청정한 소나무가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산이다. 완도대교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수목원에 든다. 백운봉(600m)과 상황봉(644m) 사이에 깃든 완도수목원은 봄볕에 눈부시고, 나뭇잎들이 반짝여 눈부시다. 겨우내 추위를 삭혀 꽃을 피어올린 동백은 동박새에게 꽃가루도 나누어 주고 지나가버린 행복을 떠올리게 하는 상처도 덧나게 한다. 아오리 나무, 조팝나무, 화살나무, 명자꽃, 광나무, 감탕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 군락이 모여 숲을 이룬다.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창덕궁과 종묘 대들보와
기둥이 되었고, 또한 청자와 백자를 구워낸 소나무, 팔만대장경의 대장경판이 된 자작나무와 오리나무, 대장경판을 흠없이 오래 보존하
게 해 준 도료를 생산해 낸 옻나무, 한지를 떠낸 닥나무 모두 이들이
있었기에 만들 수 있었다. 인류는 숲에서 지혜를 얻고 그것으로 문명을 창조하였다. 신화, 시, 소설, 동화, 음악, 건축 등 우리 주변에 숲과
관련이 있다. 숲은 문화의 산실이며, 문화는 숲으로부터 탄생했다.」
-산과 우리문화, 김종성, 수문출판사- 윤여정 회원 자료제공
'사실에서 진실을 찾는다'는 말처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나무에서 질서와 조화와 감동을 느낀다.
수목원을 뒤로 하고 바라본 장도 꼭대기에 동그란 상록수숲 속에 장보고 장군의 위패를 모신 당집이 보인다. 해마다 이곳은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당제를 지낸다. 읍내에 개포리에 있는 광주식당 주인의 소박한 손맛에 잠시 봄졸음이 쏟아지지만, 정도리 구계등 숲의 새소리와 파도소리가 부른다. 구계등은 갯돌층이 아홉 개의 계단을 이룬다고 하여 붙여졌다. 정도리 구계등은 수 만년에 걸쳐 형성된 갯돌과 독특한 방풍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태풍,
해일 그리고 염분으로부터 농작물과 삶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풍숲은 마을을 수호하는 당숲이기도 하다. 방풍숲은 박새, 직박구리, 노랑턱멧새, 오목눈이, 방울새가 살며, 숲 속에 금줄이 쳐 있는 할머니당과 할아버지당이 있다. 숲 속에 들어가 무심히 발길을 옮기다
보면 두려움이라는 이미지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면서 사물과 나와 조화의 극치를 느낀다.
827번 지방도로를 이용해서 서쪽 해안을 따라 나가면 바다가 보이며, 낙조를 바라볼 수 있어 섬을 찾아왔음을 알아차린다. 고려 때 시인
이규보「春望賦」라는 시에서 '오직 봄만은때에 따라 곳에 따라 화창해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며 저절로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고 노래했다. 완도에서의 하루는 이처럼 찬란한 슬픔의 봄이 밀려드는 하루였다.
2003년 3월 답사 안내
-아름다운 숲과 마을을 찾아서①
봄볕따라 동백따라 완도 찾아가는 길
·언제 : 3월 16일 (일) 오전 8시 30분(약속한 시간에 출발)
·어디서 : 광주 민학회 사무실 앞(계림동)
·찾아가는 곳 : 청해진 유적지,정도리구계등숲, 완도수목원
·인원 : 45명 (선착순 마감)
·참가 방법 : 전화 신청 후 온라인 입금
·답사비 : 30,000원
·온라인 : 광주은행 072-122-304522 조청일
6면-
민학사람들
2003년 정기총회는
로또의 행복한 상상만큼이나 민학회의 인생역전이었습니다. 정기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 주를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보내는 회원이 있었고, 2월 22일 꿈자리가 좋고 토요일 오후 3시, 하루 일진이 좋아 신의 계시로 여겨 정기총회에 오셨습니다. 문서재물운이 겹쳐 좋은 자
료도 챙기시고, 맛있는 떡과 과일도 듬뿍 드셨답니다. 채정기 교수의
<아름다운 숲과 마을을 찾아>떠나는 답사 주제에 대한 강의는 행운의
총량설을 입증하는 강의였습니다. 아름다운 숲과 마을을 찾아 다니다
보면, 3년 안에 민학회원 모두 건강운과 재물운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다가오는 운이 아니라 어떤 行을
하느냐가 결정하겠지요. 인생역전을 이룰 민학회에서 민학회원 여러분의 行을 기대합니다.
서울 민학회에서 보내 준
은은한 향기(축하화분)는 제 18기 정기총회를 더 향내나게 했습니다.
스쳐지나갈 수 있었는데도 광주 민학회 정기총회에 걸음을 멈춰 준
윤열수 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 조상들과 더불어 살면서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지켜주는 지킴이들이 많이 있지만 윤열수회장님께서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담고 있는 민화박물관을 세우셔서 든든한 지킴이가 되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가회박물관: 02-741-0466)
장흥 강수의 이사님께서
정기총회에 오셨습니다. 강수의 원장님을 민학회 이사님으로 모셨습니다. 민학회를 따스하게 덥혀주실 작은 불씨를 장흥에서 광주까지
담아 오시는 이사님의 정성에 민학회원들은 감동하지요. 민학회의 정겨운 상징이신 강수의 이사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진전
작년의 일들을 희미한 선으로 기억하는 동안 고영두 부이사장님,이강재 이사님, 강현구 부회장님, 박정지, 유옥남, 박창준, 임소연, 허성균, 허명옥, 김은하 회원의 선량한 미소와 눈빛을 아주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시간들이 있었지요. 작년 동지행사 때 희미한 것을 사랑하고
애달파하는 신장용 회원의 힘으로 사진전을 열었는데 도움을 주신 열
분의 회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연회비 내주신 회원
2002년 12월- 김경중, 윤여정, 이정애, 송혜자, 임채일, 김은하
2003년 -박선홍, 오달삼, 김 영, 조청일, 박매순, 노영대, 김종렬,박정지, 김형태, 변미경, 김양근, 김호순, 박근옥, 이맹범, 허명옥, 나홍채,
김경영, 서화금, 배성자.
⇒연회비(삼만원)는 민학회를 위해 소중하게 쓰겠습니다.
박태학 회원의 도움으로
계림동 민학회 사무실이 확 달라졌습니다. 전기공사와 실내 인테리어로 일요일도 없이 바빠 답사는 늘 마음뿐이지만, 민학회에 대한 사랑으로 바뀐 주소와 전화번호도 알려주고, 연회비도 보내주시는 정성에 어찌 보답이나 할 수 있을지. 눈에 띄게 넓어진 사무실에서 정기
총회며, 어린이 민학당이며, 동지행사랑 모두 치를 수 있게 되었지요.
정말 고맙습니다. (박태학 : 전기/ 실내인테리어 017-657-0015)
김재홍 회원의 교통편과 운전으로
3월 완도행 예비답사를 잘 다녀왔습니다. 교육현장에서 자신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도 살필 줄 알며, 전남역사교사모임 회장으로 일하면서 고대사와 현대사를 통한 '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정말 힘든 예비답사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내 건강하길요!
3월 16일 오전 8시 30분에
계림동 사무실에서 출발합니다. 쪽빛바다에 띄운 봄바람 따라 완도를 갑니다. 완도는 아열대식물이 무성해서 새파란 생기가 가득하며,
수목원 주변에 동백꽃이 붉게 붉게 피었습니다.
좋은 터 잡아 사방팔방 다닐 때 아무 탈 없길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며,
정도리 갯돌에 부딪히는 파도소리와 숲에서 들리는 새소리, 바람소리가 완도군 일대의 문화와 역사를 들려줍니
다. 그 때 뵙겠습니다. 내내 좋은 일들만 있길요!
첫댓글 와.. 이렇게 살아있는 기행을 하시다니.. 이럴줄 알았으면.. 저도 따라갈텐데요..으미 아깝네요...민이님 글 넘 멋지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