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님이 쓰신 것입니다
제가 디펜스 코리아에서 충격적인 글을 보았습니다 전혀 모르던 내용이었는데 국민 방위군 사건이라는 것이 있었군요....
... 거듭말씀 드리는 거지만 50년대의 남한의 비극을 소재로 하는게 '대한 민국을 두번 죽이는' 건 아닙니다. 신천 학살이나 남조선의 북침 같이 근거가 희박하면서도 논쟁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남한 공식전사에 기록된 '상처'를 소재로 하는 것입니다.
50년대 전대 미문의 전쟁에서 '우리 편'이라고 할수 있는 조직이 과연 구성원들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수치스런 역사라도 과감히 마주대할때 역설적으로 우리 조부 세대의 아픔을 느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픔을 이해할때 'tv나 책 몇권'의 충격으로 이념적 방황을 하는 일이 없이 세상을 넓은 눈으로 볼수 있다는 것이 '실천하지 못하지만' 제 신념이죠 -_-;;;
이승만때 많은 의혹 사건-숙군, 김구 암살, 한강교 폭파, 김성주 고문치사, 국회프락치, 기타 여러 민간인 학살-과는 달리 상당한 수준의 기록이 남아있으나 수치스런 역사로 재대로 연구되지 않은 사건을 통해서 50년대의 비극을 한번이라도 이해 했으면 합니다.
1. 국민방위군 사건이란 이승만 시대 가장 추악한 정치-권력-군사적인 비리 사건으로 당연히 좌익 학자들에 의해서 비난을 받고 우익 서술가 들에게도 대단한 비난을 받는 소재입니다. 특히 안용현의 한국전쟁 비사나 기타 여러 저술, 고지마 노부루의 조선전쟁, 최근의 가장 동일주제에 대한 세밀한 연구인 유영익의 '한국과 6.25 전쟁'및 기타 여러 자료를 소재로 하였습니다.
국민방위군의 탄생은 1950년 12월 17일 대통령 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날짜를 보면 아시겠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한국 포기론'까지 공공연하게 논의되는 시점이었습니다. 특히 후일에 가면 '과장'이라고 평가되는 '인해전술'에 대항하는 방침이자, 전쟁 초반 '의용군'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인적 자원들이 적에게 이용당했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구성 연령은 17~40세의 군,경,학생이 아닌자로서 결성된 준군사조직이었습니다.
이 조직 자체가 결코 나쁜 건 아니었습니다. 발지 전투 전후로 독일에서도 비슷한 조직이 운영되었고, 일본에서도 이런 연령이 전쟁 말기에 군에 징집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죠.. ( 마흔살을 바라보는 작가 지망생 오오카 쇼헤이는 이렇게 군에 가서 유명한 '포로기'를 남깁니다. --;;)
유영익은 기존의 통설에 덧붙여서 이승만의 청년단체 ( 청년방위대)같은 반공 사조직을 준군사조직으로 개편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도 봅니다. 실제로 청방 관계자들이 전쟁 초반에 적에게 잡혀서 살해되거나 해서 와해된 터라, 이 조직을 재건하는 측면과 함께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거죠.. 이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2. '국방장관령으로 설치되서 육참총장의 지휘를 받는'다는 구성과는 달리 대부분의 간부는 군대와는 전혀 무관한 청년단체 ( 나쁘게 보면 깡패요, 멋있게 보면 야인 -_-;;)이었습니다. 하룻밤사이에 '준장'으로 승격된 김윤근은 전직 씨름꾼이었답니다. ( 대략 정신이 -_-;;)
1.4 후퇴기에 피난행렬의 일환으로서 이 방위군 조직은 이동을 합니다만 피난지 부산으로의 이동중에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즉 거지 군대이 모습으로서 '뺘만 남은 청년들이' 담요 한장 없이 다니면서 쓰러져 죽거나 탈영하거나 구걸하는 모습
이 목격되고 국회에 보고되는 것이죠. ( 지청천 같은 경우는 방위군 내부의 고발자에 의해서 들었다고 합니다.) 잔치집을 습격해서 밥을 훔쳐먹다가 '너무 갑자기 기름진 걸 먹어서 그날밤 죽은 청년' '배가 고파서 바닷물을 마시고 죽은 청년'등등 기괴한 보고가 들려오자 국회에서는 진상조사단을 요구하고 답은 '공산당의 모략선전'이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결국 이런 참상에 대해서 당시 국회는 방위병 수를 50만으로 잡고 총 209억 830만원 ( 이제부터 나오는 화폐단위는 당시의 화폐단위를 그대로 씁니다. 그때는 1원도 통용되었습니다. ^^;:)을 책정합니다만 그 투명성의 문제로 말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결국 51년 3월에 이르러 엄항섭, 서민호 (나중에 육군 대위 사살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등의 의원들의 노력으로 진상 조사단이 만들어지고 '신체적으로 쓸모가 없어진 ^^' 1만명을 귀환시키는 령이 내려지죠 ( 귀환비도 횡령되었습니다. -_-;;)
결국 '허위 영수증 작성'및 이중 장부등을 통해서 대단히 많은 돈이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 밝혀지고 특히 기밀비 명목으로 부대장들이 무분별로 ( 한번당 몇억씩 -_-;;) 쓰는 대신 막상 필요한 물품은 전달되지 않는 ( 장부상 명태가 368780짝 구입, 실제는 4051짝만 전달 -_-::) 현상이 적발되었습니다.
3. 결국 1951년 5월 중앙고등 군법회의에 의거하여 부대장 등에게는 3년 6개월의 징역을 나머지는 무죄내지는 파면조치로 끝났습니다만 판결 다음날 국회 진상 조사단의 발표로 인해서 여론이 비등해집니다.
1) 전체 국회 책정 예산중 138억원만이 전달되었음
2) 후송도중 각종 질병,동상,아사 (어느 시대라도~~~), 도망등으로 40%에 해당하는 27만 4000명이 사라짐
3) 국민방위군 캠프의 5할 이상이 회복불능의 환자임
4) 각 방위군 장교들은 경향각처에 첩이 있으며 -_-;;; 부대에서 빼돌린 쌀로 엿공장 ( 고지마 노부루의 기록, 일설에는 과자 공장이라는 기록도 있음)을 운영했음 ( 돈이 돈을 범 -_-;;)
등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에 이승만은 그전에 있던 거창 양민학살과 이번 스캔들의 책임을 물어 국방장관 신성모를 주일대사로 영전 -_-;; 시키고, 이기붕 국방장관 ( 4.19때 바로 그 사람)과 이종찬 이용문 투톱체제의 군 조직 개편을 이루었습니다. ( 유영익의 견해로는 방위군 재 수사가 군 세력 재편의 영향이라는 걸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건 안용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4. 결국 7월 공개재판 ( 고지마 노부루의 기록에 의하면 비공개 재판은 봐주기 수사가 있을수 있다고 해서 -_-)으로 김윤근, 윤익헌, 강석한,박창언, 박기환에게 사형이 구형되고 8월 전격 공개 처형됩니다.
5. 그럼 도대체 국민방위군 사건의 피해자 수는 얼마나 될까요? 초기 기록에 의하면 이승만-신성모의 경우 80만에서 100만으로 국민방위군 수를 잡습니다. 김윤근은 공판에서 그 수를 68만으로 잡습니다. 국회 예산책정수는 50만으로 봅니다. 즉 최소 인원이 50만이라는 이야기인데.. ( 50명이 아니라) 이중 2/3가 피해를 보았다고 하죠.. 서민호 의원의 국회 보고에 의하면 귀환명령을 받은 장정중 80%가 '정상인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폐인 -_-;:)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들은 '전사'처리 되지도 않고 '행려병자'로 처리됩니다. ( 잘 ~들 합니다.)
6. 이런류의 사건에 늘 따르는 '정치권으로 흘러간 검은돈'의 문제는 대단히 이슈가 되었습니다. 안용현의 기록은 ( 사실 저자는 이 사건 자체를 아주 경멸합니다.) 당시 떠돌던 의혹을 100% 사실인 것처럼 기술합니다만, 민간인들이 돈을 먹고 장관및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돈의 경우는 대부분 '친분상'으로 넘어가고 결국 '무혐의' 처리됩니다.
7. 서민호등의 야당의원들은 이 관점을 이승만까지 돌립니다만,,, 안용현이나 기타 다른 저술도 이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죠.. 유영익은 당대의 여러 정치권 자금설은 긍정하지만 이승만 개인으로의 자금 유입설은 대단히 부정적으로 그립니다. ( 자세한 상황은 한국과 6.25 전쟁을 읽어보시길.)
8. 다만 방위군 간부들 자체가 기밀비로 몇억씩 '합법적' --으로 타갔다는 점이나 그 용도가 대단히 정치권 구석구석으로 흘러간점 ( 미군 고문 하우스만 파티비 , 김활란 여사 외교지원비 -_-;;)을 보면 과연 혼자먹고 만 돈이라는 생각은 들기 어렵죠..
9. 전쟁터는 말 그대로 헛된 죽음도 많고 별일도 많습니다. 2004년까지도 검은 돈에 얽힌 부정은 우리를 괴롭히지만 그런 부정이 '사람을 죽이는'건 극히 드물죠, 마킷가든이나 현리 대패주와 같은 '헛된 죽음'이 있지만 국민방위군의 죽음만한 것도 드물었고 그것이 '전쟁을 한다는 나라'의 실상이었습니다.
다시한번 그때 돌아가신 분들에게 묵념을 올립니다. 후손된 입장에서 그런 비극은 없어야합니다. ( 잘될지는????)
ps: 좌파 학자 리영희가 본격적으로 이승만에게 반감을 느낀게 바로 이 사건을 목격한 후라고 합니다.
사건 전반 당시 육참총장인 정일권은 회고록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 한마디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_-;;
서민호( 다른 사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의원이 실상 파악을 하러갈때 가마니를 뒤집어쓴 어느 거지 방위군을 봤다고 합니다. 어디 가냐고 묻자? 이 굶주린 병사의 말씀 '김일성에게 간다 왜?' ... -_-;;;;
첫댓글 국민방위군 사건의 대체적인 전말을 이해하려면 한국전사를 다루는 전집류 등을 참조하시기를 권합니다. 겉핥기식의 글을 읽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