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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연합사업단 성공 스토리
2011년 현재 우리 농업은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쌀을 제외한 농수산물 수입자유화율은 99.1%다.
대부분의 시장이 활짝 열려 있다는 얘기다. 개방화의 물결 앞에 영세농(零細農)ㆍ고령농(高齡農)으로 표현되는 우리 농업이 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경쟁력은 소비자의 니즈(needs)를 반영한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의 농산물 소비패턴은 과거 배불리 먹는 것을 중시한 ‘양적(量的) 소비’에서 식품의 안전과 위생, 품질을 중시하는 ‘질적(質的) 소비’로 변했다.
유통 구조도 달라졌다. ‘장을 본다’는 말은 ‘시장에 간다’는 말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깨끗하게 정돈된 상품을 쾌적한 공간에서 구매하는 데 익숙해졌다. 전국 방방곡곡에 대형할인점이 자리를 잡았고, 유통망의 주류(主流)로 등극했다.
대형할인점은 농산물의 대량 직거래 소비자인 동시에 이를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공급자다. 이렇게 자본력ㆍ유통망을 갖춘 대형할인점과 개별 농민 혹은 지역조합의 교섭은 처음부터 승패가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다.
직거래 과정에서 개별 농민이나 조합으로는 협상력을 가질 수 없다. 변화하는 소비자의 니즈와 유통 환경, 개방화에 맞서기 위해서는 농가 조직화를 통해 물량(物量)의 규모화를 이뤄내고, 시장교섭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 답은 바로 농업경영체에 있다.
農協, 全國 産地 유통 네트워크 구축 추진
농협은 ‘산지유통혁신 112운동’을 역점 추진하고 있다. 이는 1개 조합당 1개 품목의 공동선별출하회, 1개 시ㆍ군당 1개의 연합사업단을, 2년 이내에 육성해 산지유통을 농협이 혁신해 나가자는 운동이다.
농협은 이를 위해 모든 시ㆍ군에 연합사업단 및 조합공동사업법인을 육성, 소비지 농협 판매장과 민간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산지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연합사업단의 개념은 이렇다. 농민은 통일된 재배 매뉴얼에 따라 생산에만 전념하고, 사업단 혹은 법인은 브랜드 마케팅 및 판매를 전담하는 구조다.
연합사업단 조직은 2010년 말을 기준으로 약 140개다. 지난 3월 31일 공포된 농협법 개정안은 농축산물 판매 활성화를 중앙회와 조합, 농협 경제지주회사의 주요 책무로 명문화하고 필요한 조직과 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있어 경제사업단 설립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농협 연합사업단 중 강원농협연합판매사업단(이하 강원연합)이 2001년 1월에 최초로 설립됐다. 강원도 내 47개 조합이 참여하고 있는데,
주요 품목은 강원도의 고랭지 무ㆍ배추와 고추, 토마토 등의 친환경 채소류로, ‘맑은 청’이라는 브랜드로 출시되고 있다.
강원연합은 체계적인 시스템과 철저한 위생관리를 통해 최고 품질의 채소만을 취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농민은 우수 농산물을 생산하고, 참여농협은 공선(公選)출하회 육성, 생산지도, 공동선별 및 상품화 추진을 한다.
연합사업단은 조합의 품목별 조직을 육성하는 한편, 마케팅, 가격협상, 대금정산, 상품개발 등을 통해 거래주체 역할을 수행했다.
강원연합은 지난해에 82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목표는 1400억원. 강원연합은 뒤따라 설립된 연합사업단에 ‘역할모델’이 되고 있다.
강원연합의 성공 요인은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산지 생산농가의 조직화로 연합판매사업에 성공한 것이다.
농민들이 도매시장 및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적정 단가(單價)를 받기 위해서는 물량의 규모화, 품질의 균일화(均一化)를 이뤄야 했다. 이는 ‘공동선별ㆍ공동계산’을 통한 조직화가 최선의 조치였다.
생산농민들에게 급변하는 유통시스템에 대한 교육을 해, 연합판매사업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내부 구성원의 지지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단을 구성하는 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 연중(年中)공급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대형 유통업체의 상위 협력업체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강원도 농산물의 출하시기는 4~10월에 집중돼 있다. 유통업체에 지속적인 공급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강원연합은 다른 산지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유통업체에 신선채소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했다. 이로써 유통업체의 신뢰를 얻고, 유통채널을 계속 점유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강원연합의 성공 사례는 농협중앙회로 하여금 연합판매사업을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같은 브랜드여도 품종 표기는 제각각
2005년 쌀을 제외한 우리의 농수산물 수입자유화율은 99.1%로, 농업개방에 대한 준비가 시급하다. 사진은 2003년 한ㆍ칠레 FTA 비준저지 집회에 모인 농민들.
2002년,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 유통지원팀장이던 안재경씨는 중부지역 최대 복숭아 산지인 경기 이천시 장호원과 충북 음성군을 주목했다.
안 팀장은 두 지역의 농민들을 설득해 2개 도(道)ㆍ3개 읍면ㆍ4개 농협(감곡농협, 음성농협, 장호원농협, 동부과수농협)ㆍ2000여 농민이 참여하는 연합사업단을 설립했다.
당시 이 지역에는 3개의 복숭아 브랜드가 있었다. 같은 곳에서 생산된, 동일 품종의 복숭아라도 브랜드, 포장이 달랐다. 같은 브랜드를 써도 품종 표기가 제각각이었다.
예를 들어 황도 계열인 ‘앨버트’를 앨바도(桃), 알바도, 앨버타 등으로 표기했다. 당시까지 쓰이던 복숭아 브랜드는 포장지의 공백을 메우는 것 외에는 다른 역할이 없었다.
사업단을 구성했지만, 2개 지자체의 복숭아 브랜드를 통합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성ㆍ장호원의 조합과 농민들은 각자 자신의 ‘복숭아’와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조직화의 필요성은 인식하면서도 통합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안 팀장을 비롯한 농협경기본부는 거듭된 설명회를 통해 농가를 설득했다. 두 지역의 복숭아는 2003년 3월 공동브랜드 ‘햇사레’로 하나가 됐다.
햇사레 법인의 출하(出荷)조직은 공선출하회(630명)와 유통형 출하회(753명)로 나뉜다. 공선출하회는 농협 단위의 공동선별ㆍ공동계산 실천을 원칙으로 하는 출하조직이다. 회원이 물량, 품종에 대한 계약을 위반했을 때 위약금을 내거나, 제명을 당하는 등의 제재(制裁)가 가해진다.
현재 햇사레 법인의 4개 농협 APC (Agricultural Products Processing Centerㆍ산지유통센터)는 전체 복숭아 생산량의 43% 규모인 7530t을 선별(選別)할 수 있는 처리능력을 갖추고 있다.
유통형 출하는 개인이 수확ㆍ선별하고 나서 검품(檢品)인력에게 확인을 받아야 한다. 검품 기준은 색상, 모양, 당도(糖度) 등이다.
햇사레 법인은 품질관리시스템을 구축해 품질의 ‘균일화’를 추진했다. 재배방식 통일을 위해 ‘햇사레통합관리매뉴얼’을 농가(農家)에 나눠줬다.
이 과정을 통해 생산한 복숭아는 상품화 단계를 거친다. 선별장에 도착한 복숭아는 비파괴당도선별기, 잔류농약검사설비 등 현대화된 검사장비를 지나야 한다.
그 뒤의 과정은 ▲1차 선별 ▲에어세척기 통과 ▲2차 선별 ▲박스 포장 ▲운송차량 적재 순이다. 유통형 출하 물품도 17명의 검품원이 각 APC로 출하시기에 파견돼 검사한다.
2010년 현재 음성군과 이천시 복숭아 생산량의 85%가 이 과정을 거쳐 시장에 나가고 있다. 출하된 상품은 ‘소비자 시민모임 품질관리단’이 고객으로 가장해 품평과 진열상태 등을 모니터링한다.
햇사레법인의 매출은 첫해인 2003년 284억원으로 시작해 2009년에는 544억원으로 증가, 연평균 10%를 웃도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2007ㆍ2009ㆍ2010농식품파워브랜드대전 장관상’ ‘2007ㆍ2008 FTA 연차평가 전국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시민 74%, “햇사레 알고 있다”
2009년 발표된 농산물 브랜드 자산가치 중 햇사레는 954억원으로 ‘임금님표 이천쌀’ ‘횡성 한우’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05년에는 쌀을 제외한 농산물로는 처음으로 상표도용(盜用) 사건이 일어났을 정도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농업 컨설팅업체 지역농업네트워크가 2009년 8월에 조사한 바로는 서울시민 300명 중 햇사레 브랜드를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4%였다. 높은 인지도와 대량 공급 덕분에 서울 청과물도매시장에서 복숭아 시세의 기준은 햇사레의 가격이다.
5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의 시장별 배분을 살피면 ▲도매시장 60% ▲대형거래처 30% ▲기타 도매거래처 10%다. ‘햇사레’는 총 생산량의 60%를 도매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시장가격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산지중심 유통’을 실현했다.
현재 햇사레 법인은 지역과 품목확대를 통해 매출 1000억원 달성을 비전으로 채택했다. 복숭아를 중심으로 사업기반 권역을 넓혀 ‘전국복숭아품목연합’을 구상하고, 한편 음성 사과ㆍ장호원 배를 브랜드 ‘천생연’으로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햇사레와 비슷한 시기에 경남 진주에서는 진주농협연합사업단이 조직돼 풋고추, 청양 고추, 꽈리 고추 등을 ‘초로미(처음 느낀 그 맛)’란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사업단 설립 당시 노호종 단장은 농가와 지역농협을 다니며 연합사업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그렇게 사전준비 기간 1년이 지나 연합사업단이 설립됐지만, 농민들은 조직화의 핵심인 공동선별ㆍ공동계산에 대해 반발했다.
노 단장은 1:1 대화를 통한 설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수확 후 선별 및 판매는 진주연합이 책임지므로 농가의 노동시간이 줄었다. 농민들은 재배면적을 확장해 더 많은 수입을 올리거나, 여가를 즐기는 등의 ‘신나는 변화’를 맞았다.
고품질과 규모화로 시장경쟁력을 확보한 진주법인의 ‘초로미’는 유통업계에서 명실상부한 파워브랜드로 발돋움했다.
호평(好評)은 농가 소득증가로 이어졌다. 거래교섭력 강화에 따라 수취가격이 올라갔고, 선별·포장비 보조(輔助)를 통해 10~15%의 소득증대 효과도 생겼다.
연합사업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사업 참여 농가는 2002년 120여 농가에서 지난해 310개 농가로, 매출액은 2003년 18억원으로 시작해 2010년에는 271억원으로 늘었다.
국내 최초 道 단위 연합사업, ‘잎맞춤’
햇사레의 주인공 안재경씨는 2006년 경기농협연합사업 단장직을 맡으면서 경기도와 공동으로 ‘잎맞춤’ 브랜드 선포식을 갖고 연합판매사업을 시작했다.
잎맞춤은 경기도와 경기농협연합사업단이 공동으로 기획ㆍ출시한 포도와 배 브랜드로 국내 최초 도(道) 단위 연합사업이다.
안성ㆍ평택ㆍ화성ㆍ안산 등 도내 4개 지역의 12개 지역농협과 600여 농가가 참여했다. ‘잎맞춤’은 “푸른 자연과 태양이 입맞춤해 맛이 풍부하다”는 뜻으로,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 투표로 선정했다.
잎맞춤은 사업 첫해인 2006년 18억원에서 2007년 36억원, 2010년엔 56억원을 기록해 매출 신장이 계속되고 있다.
경기연합은 총 1800억원 규모의 사업기반을 보유하고 있어, 배와 포도 물량을 규모화할 수 있다. 위치도 수도권 소비시장에 인접해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
규격화된 영농, 엄격한 품질관리 등을 통해 과실(果實)의 질을 향상시킨 것도 성공 요인에 해당하지만, 잎맞춤 성공의 원동력은 단연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연합은 농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한해 동안 600여 명을 대상으로 20회의 교육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잎맞춤 교육의 특징은 14개 작목회별 유통 리더와 기술 리더를 선발하고 전문화된 집합교육을 하는 것이다. 이로써 농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한편 ‘경주시 농협원예조합 공동사업법인(이하 경주법인)’은 앞서 언급한 연합사업 사례와 달리 지자체가 먼저 움직인 경우다.
2006년 6월 경주시는 수확 후 판로(販路)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농민의 고민을 덜고자 총사업비 105억원을 투입해 APC를 완공했다. 하지만 운영권을 위탁할 곳이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역농협들은 ‘각 조합 보유시설 처리문제’ ‘수수료 문제’ 등을 거론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공동선별ㆍ공동계산’에 대한 불만이었다.
경주시는 APC의 고정비용을 지원하기로 하고 연합사업단 구성을 도왔다. 전국 최초로 공무원 3명을 파견해 ▲시설과 장비의 유지관리 ▲참여품목에 대한 농정관리 ▲마케팅행사 지원 등을 맡게 했다.
경주시의 지원으로 구성된 경주연합사업단은 농민들에게 출하장려금과 포장비 지원 등을 설명하면서 사업참여를 유도했다.
경주법인은 취급품목을 늘려 연중 가동함으로써 APC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 했다. 현재 경주연합의 취급품목은 ▲APC 공동선별 8개(토마토, 사과, 배, 체리, 단감, 새송이, 파프리카, 멜론) ▲검품 6개(부추, 시금치, 양송이, 포도, 산딸기, 딸기) 등 총 14개로, ‘맛의 임금’을 뜻하는 ‘이사금(尼師今ㆍ신라 왕호)’이란 브랜드로 시중에 내놓고 있다.
‘황토배기G’ 수박은 5년 연속 대한민국 최고 브랜드로 선정
전남 신안군은 전국 천일염 생산량의 62%인 23만 5000t(2009년)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산지다. 신안천일염연합사업단은 성장하는 천일염 시장에서 가격을 선도하기 위해 설립됐다.
경주시는 이사금을 지원하기 위해 2005년까지 200개 이상으로 난립(亂立)하던 지역농산물 브랜드를 ‘이사금’으로 통합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2007년 89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사금’은 ▲2008년 144억원 ▲2009년 191억원 ▲2010년 225억원을 기록하는 등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농협 연합사업단 중 호남 지역의 성공사례는 ‘고창군 농협조합 공동사업법인(이하 고창법인)’ ‘나주시조합공동사업법인(나주법인)’ ‘신안 천일염연합사업단(신안연합)’이 꼽힌다.
여름철이 되면 다른 산지의 수박이 ‘고창 수박’이란 이름을 달고 나올 정도로 고창은 대표적인 수박 산지다. 고창 수박이 맛이 좋은 이유는 황토로 이뤄진 토양에 여름철 평균기온이 높고, 일교차가 큰 환경 덕분이다.
한때 고창 수박은 화학비료 축적으로 인한 연작(連作) 피해가 나타나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고창군은 수박시험장(현 채소연구소)을 설립해 우량품종 개발ㆍ비 가림 시설 지원 등을 통해 ‘기능성 친환경 수박’을 탄생시켰다.
2007년 조직된 고창법인은 수박을 비롯해 배ㆍ멜론 등에 ‘황토배기G’를 붙여 출하하고 있다. ‘황토배기’는 고창의 주 토질인 황토를 가리키고, ‘G’는 ‘Good’ ‘Green’ ‘Gochang’ 등을 나타낸다. 고창군은 고창법인의 산지유통을 돕기 위해 97억원을 들여 APC를 건설했다.
대표 취급품목인 수박의 경우, 품종선택, 육묘장 관리, 정식(定植ㆍ온상에서 기른 모종을 밭에 내어다 제대로 심는 일), 수정, 생산기술지도, 출하 모두 고창법인이 담당한다. 생산된 수박은 비파괴당도선별기를 이용해 철저한 선별을 거쳐야 한다.
고창법인은 당도 11Brixㆍ중량 6kg 이상의 상품에만 브랜드 사용을 허락해 고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2010년 매출액이 254억원을 넘었고, ‘황토배기G’ 수박은 5년 연속 대한민국 최고 브랜드로 선정됐다. 복분자 브랜드인 ‘선연’도 3년 연속 대상을 받아 브랜드파워를 키우고 있다.
‘고창 수박’의 계절이 지나면 ‘나주 배’가 나오는 가을이다. 나주는 예부터 벼농사의 중심지이며 과수농업과 원예농업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가장 널리 알려진 특산품은 역시 ‘배’다. 나주 지역은 배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나주의 연평균 기온은 13℃, 연 강수량은 1407mm다. 토질이 과수농업에 적합하고, 배가 한창 익을 8~9월의 일조(日照)량이 풍부해 일제시대부터 전문적인 배 농사가 이뤄졌다.
‘나주 배’는 과형(果形)과 색깔이 좋고, 육질이 연하고, 당도 높은 과즙을 머금고 있다. ‘나주 배’는 나주법인에 의해 ‘비단고을’과 ‘청미래’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2003년 4월 나주 지역 13개 지역농협과 농협 시지부가 연합ㆍ발족시킨 ‘나주연합사업단’은 배ㆍ멜론ㆍ참외ㆍ한라봉ㆍ새송이버섯ㆍ고추 등 나주 지역에서 출하되는 거의 모든 농산물에 두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상품(上品)은 ‘비단고을’로서 백화점, 농협유통, 대형 유통업체에 가고, 중품(中品)과 하품(下品)은 ‘청미래’로 분류돼 공판장으로 향한다.
햇사레’와 ‘잎맞춤’의 주인공 K-멜론 만들어
나주법인은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통해 매출액을 매년 확대하고 있다. 사업단 발족 이듬해인 2004년 65억5300만원이었던 매출이 2006년 109억3400만원, 2010년 204억원을 넘었다.
나주법인이 위탁운영하는 APC가 농림수산식품부의 ‘전국 과실 전문 APC 경영평가’에서 전국 1위를 함으로써 운영능력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
2009년 9월 출범한 신안연합은 관내 9개 농협이 참여해 ‘신안 천일염’을 연합판매하는 조직이다. 전남 신안군은 전국 천일염 생산량의 62%인 23만5000t(2009년)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산지다.
천일염은 염전에서 해수(海水)를 자연증발시켜 제조하는 소금으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어 인체에 유익하다. 특히 신안 천일염은 염도가 80~85% 정도라서, 다른 산지보다 더 풍부한 천연성분이 들어 있다.
국내 천일염 시장은 2008년 기준으로 1300억원. 하지만 같은 해 3월 천일염이 ‘광물’에서 ‘식품’으로 인정되면서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이 전망하는 2013년 천일염 시장 규모는 약 1조3000억원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이나 대형 유통업체의 진출이 예상돼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여겨졌다.
새롭게 재편되는 시장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추가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개별 생산농가나 지역단위 농협의 규모는 미약했다.
신안연합은 단순히 물량을 집적(集積)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내 최대 천일염 산지로서 시장가격을 선도(先導)하려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다른 연합사업단과 마찬가지로 생산자는 최고 품질의 천일염을 생산, 농협은 출하계약 체결 및 시기 지도, 신안연합은 포장재 개발, 판매처 확보, 대금정산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동안 신안 소금의 명성은 자자했지만, 가격에 반영되지는 못했다. 지역농협 간의 경쟁으로 인한 가격하락이 심했기 때문이다. 신안연합은 산지와 소비지(消費地)에 ‘단일매입가격’을 고시(告示)해 시장교섭력을 강화했다. 연합판매사업 이후 천일염 가격은 81% 상승했다.
신안연합은 출범 1년 후인 2010년에는 전국 1000여 개 농협 등 대량 거래처를 발굴해 신안지역 전체 생산량의 43.2%(217억원)의 천일염을 판매했다.
농협의 연합사업 중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K-멜론(King of melon, Korean melon)이다. 햇사레와 잎맞춤의 주인공 안재경 농협중앙회 품목연합추진팀장은 개방화 시대에 우리 농업의 생존법은 전국 브랜드를 키우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농협도 시ㆍ군 단위 연합사업을 전국 단위로 광역화해 생산자 주도 유통시스템과, 소비자에게 고품질 농축산물을 연중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다.
2009년 11월 농협 품목연합추진팀과 전국 12개 시군ㆍ23개 지역농협ㆍ1111명의 농민이 합세해 멜론전국연합사업단(단장 안재경)을 설립해 K-멜론을 출시했다.
K-멜론, 철저한 품질관리로 지난해 생산량 40%가 브랜드 못 달아
전국 12개 시군ㆍ23개 지역농협ㆍ1111명의 농민이 참여한 멜론전국연합사업단(단장 안재경)은 2009년 11월 K-멜론을 출시했다.
K-멜론은 대한민국 최초의 품목 중심 전국연합사업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K-멜론은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이력추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ERP란, 기업 내(內) 인적(人的) 물적(物的)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통합정보 시스템을 일컫는 말이다. 소비자는 ERP를 통해 K-멜론이 재배 매뉴얼에 의해 안전하게 생산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멜론의 파종(播種)시기 조절에서 수확까지 과학적인 생산관리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연중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국의 멜론 산지 간에 출하시기가 겹치지 않게 해 모든 곳이 적정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농가 소득은 늘고 소비자들은 안전하고 맛 좋은 멜론을 연중 안정적인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K-멜론의 가장 큰 특징은 공산품(工産品)처럼 균일한 품질의 멜론을 생산한다는 데 있다. 품질 유지 비결은 재배기술 통일 덕분이다. 품질 관리도 꼼꼼하다.
회원 농민이 교육에 불성실하거나, 재배일지 작성에 소홀하면 K-멜론 브랜드를 달 권한을 박탈한다. 수확 때도 표본을 채취해 일정 당도 이상이 나와야 허가를 내준다.
당도별로 특급(13Brix 이상), 상급(12Brix 이상)으로 나눠 출하하고, 12Brix 미만은 브랜드를 달지 못한다. 지난해 생산량 중 약 40%가 브랜드 없이 시장에 나왔다.
그 결과 지난해 K-멜론은 시장평균 가격보다 28% 비싼 금액으로 나왔지만 115억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참여 농가의 수취가격 역시 2009년보다 26% 상승했다. K-멜론의 올해 생산예정량은 2만t으로, 매출액은 2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스프리 年매출은 K-멜론 113배인 1조3000억원
제스프리 CEO 레인 제이거. 뉴질랜드 2700여 농가가 주주(株主)로 참여한 제스프리는 전 세계 70개국에 키위를 수출해 약 1조 3000억원(2009년)의 연매출을 거두고 있다
우리는 농업선진화를 얘기할 때 주로 썬키스트나 제스프리를 예로 든다. 미국 애리조나의 6000여 농가 등으로 구성된 썬키스트 농협의 연간 매출규모는 1조원이 넘는다.
뉴질랜드의 2700여 농가가 주주(株主)로 참여한 제스프리도 전 세계 70개국에 키위를 수출해 약 1조 3000억원(2009년)의 연매출을 거두고 있다.
제스프리에 비교하면 햇사레 매출은 1/28, K-멜론은 1/113 수준이다. 제스프리가 이룬 거대한 성공의 비결은 간단하다.
뉴질랜드 키위 농가들이 힘을 합친 것이다. ‘개미’ 농민들이 모여 ‘공룡’이 된 것이다. 세계시장을 움직일 만한 ‘크기’가 된 것이 제스프리의 가장 큰 강점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농협 연합사업단과 공동사업법인의 사업모형은 제스프리와 같다. ▲공선출하를 통한 조직화 ▲물량의 규모화 ▲품질의 균일화가 성공의 핵심이다.
한마디로 뭉치니까 강해진 것이다. 2011년 현재 우리 농ㆍ축산물 브랜드는 약 5300개다. 개방화의 물결 앞에서 지금과 같은 사분오열(四分五裂)의 피해자는 결국 농민 자신들이다. 농업을 ‘사양산업’이 아닌 ‘돈 되는 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역할 역시 결국 농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