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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70s] 19
씬1 클럽 포엠, 통로(저녁)
더미, 멈춰 선다. 빈, 본다.
더미: 이런 덴 싫어요. 불편해. 할 얘기 있음 딴 데서 얘기해요.
빈: 꼭 만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더미: 만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 (불안한 듯) 누군데...요..
빈: 너도 좋아할만한 사람. 내가 아는 인간들 중에 가장 멋진 남자.
빈, 더미의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간다.
씬2 클럽 포엠 안(저녁)
빈, 더미를 데리고 걸어온다.
동영, 준희에게 양주에 쥬스를 섞어 칵테일을 만들어 주고 있다.
동영, 아직 더미와 빈을 보지 못했고, 준희, 걸어오는 두 사람을 봤다.
준희: .. (입술을 물고, 생각한다. 어떡하지? 동영에게 먼저 말해야 하나?)
동영씨..
동영: 응? (얼음을 집으며, 시선은 얼음 통에) 몇 개 너줄까??
준희: ..알아서..그냥..잔뜩..(시선을 두 사람에게 둔다)
빈, 더미를 데리고 와 앞에 선다.
더미: ! 준희..씨 (준희를 보다, 고개 숙이고 있는 동영을 본다) !!
빈: 형! 우리 왔어.
동영: 어, 빈이 왔구나. (고개 돌려 본다. 더미다) !
동영, 스프링 튕겨지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영, 예상치 못한 사태에 너무 놀라서 더미를 본다.
더미, 동영을 본다. 그 상태에서 시간이 흐른다.
빈: (웃으며) 뭐야, 형? 그 얼굴은? 첫 눈에 뻑 간 거야?
동영: ..(말이 안나온다)
더미: ..(곤란한)
빈: (동영에게) 아, 그렇게 눈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보지 마.
곤란해. (웃고) 소개할께. (더미에게) 우리 형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신뢰하는 사람.
더미: ..
빈: (동영에게 더미를 소개한다) 나한테 어떤 사람인지 말 안 해도 알지?
지리멸렬한 내 인생에 등불을 밝혀준 여자. 태어나길 잘 했다고
생각하게 만든 여자.
동영과 더미, 뭐라..말을 하기가 어렵다. 곤란하고 난처하고..답답하다.
준희, 동영과 더미를 보다 까르르- 웃어 버린다.
빈, ‘뭐야?’ 하는 표정으로 준희를 본다.
준희: 더 이상 못참겠다..(웃음을 못 참는)
빈: ..(뭔가 불안하다) 뭐야..?
준희: 신뢰하는 남자. 등불 같은 여자. 이걸론 너무 약한 것 같아.
내가 다시 소개해 줄께.
준희,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일어난다. 동영에게 더미를 소개한다.
준희: 여긴 내 룸메이트자. 장빈의 안기고 싶은 여자, 한더미씨.
(동영 보고) 당신 한테는 잊지 못할 꿈이지? 운명의 상대?
빈: !! (동영을 본다)
동영: (빈을 한 번 보고, 준희에게) 왜 이러니, 준희야.
준희: (아랑곳 않고 더미에게 동영을 소개한다) 여긴, 김동영씨.
더미씨가 사랑하는 남자인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
빈이 세상에서 제일 믿고, 신뢰하는 형. 이것도 넘 미진한
소개긴 한데. 그래두 빈이 보다 낫지?
동영: 그만해라.. (더미에게) 앉아. 더미야. 잘 왔다.
더미: 아저씨..
동영: (착잡한 미소) 앉자.
빈: ...(더미를 보고) 형이었어? 얘가 찾으루 왔다던 그 새끼가
형이었어?
더미: 미안해요. 미리 말 못해서..
빈: 하.. 하...하하...(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온다) 이거..골 때리네...
(손바닥으로 머리를 쓰다듬다가)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버럭 소리 지른다)
동영: 그만해. 그만하고 일단 앉아.
빈: 뭘! 뭘 그만해!! 하필이면,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하필이면
형의 여자라는데! 대가리 복잡해서, 돌아버리겠는데!
날더러 어쩌란 거야!!
동영: 앉으라고 했잖아!!
동영, 빈을 보다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힌다.
동영: 마음 가라앉혀. 차분히 얘기하자.
빈, 동영의 잔에 가득 담긴 위스키를 단숨에 벌컥벌컥 마신다.
술잔, 탁-놓고.
빈: 빌어먹을.. 드럽게 꼬이네.
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안쪽으로 걸어간다.
동영: 빈아!
준희: (더미에게) 자기가 태풍의 핵이구나? 나도 숨 막히는데,
더미씬 호흡곤란증 걸리겠다. 마셔. 맨 정신 갖군 우리 넷,
못 버틸 것 같잖아.
준희, 더미에게 동영이 만들어 준 칵테일 잔을 밀어 준다.
더미, 준희의 잔을 들어 꿀꺽꿀꺽 마신다.
씬3 클럽 포엠, 화장실(저녁)
화장실 문을 발로 박차고 들어오는 빈. 소변보던 남자1,
사고 칠 것 같은 빈의 모습을 보더니 겁먹고 슬금슬금 나가버린다.
빈, 수도꼭지를 힘껏 튼다. 세면대에 머리를 처박고, 찬물을 뒤집어쓴다.
(더미의 소리) 그 사람은 내 전부야.
빈, 고개를 쳐든다. 세면대에서 머리를 들면 얼굴로 흘러내리는 물.
(더미의 소리) 내 마음이 두개였으면..좋았겠지만...나, 빈씨를 내 마음에
담아 줄 수가 없어. 그 사람..혼자..간신히 담기에도 너무 좁아서 미안해.
빈, 반사적으로 거울을 향해 주먹이 나간다. 한 번, 두 번. 손에서
피가 흐른다.
씬4 클럽 포엠 안(저녁)
빈,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동영의 바깥쪽 옆자리다.
준희, 얼핏 빈의 오른손에 피가 흐르는 것을 본 것 같다.
준희: 손은 왜 그래?
빈: ..(술병을 들어 따라 마신다)
준희: 피 나잖아?
동영: 어디 봐. (손을 끌어당긴다)
빈: (동영의 손을 치는데)
동영: 가만있어!
동영, 빈의 손을 잡아챈다. 엉망으로 으깨진 손. 동영, 미치겠다.
화난 표정으로, 잽싸게 익숙한 손놀림으로 술병을 들어 빈의 손에
부어 소독한다. 동영, 시선은 빈의 얼굴에 박혀있다.
빈: 필요 없어! (동영의 손 쳐낸다) 이런 건 아무래두 괜찮아!
(두 손바닥으로 머리를 치고) 대가리 속에 혈관이란 혈관이
다 터져 버렸는데! 심장에 박힌 핏줄이 몽땅 터져 버렸는데!
이깟 게 무슨 상관이야!
동영: 진정 좀 해! 이 녀석아!!
빈: 더미가 날 먼저 만났다면, 오늘 돌아버리는 건 내가 아니라,
형이었겠지.
사람들: (본다)
빈: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섬 처녀. 남자가 봐도, 반할 만큼
멋진 형 만나서 한 눈에 뻑 갔다. 재수 없게,
두 번째 만난 남자가 난 거야.. 더미가, 날 먼저 만났다면
얘긴 달라졌겠지. (시니컬하게 웃는) 시간에서 밀린 건가?
더미: 그게..운명 아닌가요?
빈: 시간이 운명이라구? 그러니까 날 더러 운명에 졌다. 포기해라?
더미: 빈씰..먼저 만났다면..어땠을까..
나두 모르겠어요. 근데..난, 아저씰 먼저 만났어요.
되돌릴 수도 없는 거구..되돌리구 싶지도 않아요.
준희: 운명이란 거 그렇게 함부로 갖다 붙이면, 서운해지는데?
더미: (본다)
준희: 운명이라는 게 꼭, 승리한 사람의 입장에서 쓰여지는 건 아니거든.
(세 사람을 보다) 더는 못 버티겠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네. (동영에게) 출장 잘 갔다 와. 빈이, 너두.
두 사람, 그 기분으로 일은 잘 할지 모르겠네.
동영: 더미하고 같이 가. (더미에게) 공항에서 연락할께.
준희하고 같이 들어가.
더미: ..(준희를 본다)
준희: 싫어. 내 기분두 빈이랑 다를 바 없거든,
더밀 나한테 떠넘기지 마.
더미: 나 혼자 갈 수 있어요. 걱정 말고, 가요. 준희씨.
준희: (더미의 말 무시하고, 동영에게) 내가 물어봤었죠?
당신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상처 받고, 다 등을 돌린다
해두 한더미여야 하냐구? 선택이 궁금해지는데..답 나오면
나중에 말해줘.
준희, 핸드백을 들고 걸어간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다가
춤곡이 흘러 나온다.
빈: 형! 나랑 얘기좀 해
빈,동영과 밖으로 나간다
씬5 클럽 포엠, 통로(저녁)
빈: 왜 하필 형이지?
동영: 그래. 나 역시 같은 심정이다. 왜..하필.. 넌가.
나도 너만큼 속상하고 답답해.
빈: 웃기네.. 그런 고상한 위로 비위 상해.
동영: (더는 못 참겠다. 벽을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정신 못 차려!
나라고 돌 것 같지 않은 줄 알아! 지금이 이렇게 흥분하고
흐트러질 때야! 갔다 와서 생각해! 니 기분 다 묻어 놔!
일 끝내고 얼마든지 들어줄 테니까!
빈: 형을 좋아하지만.. 형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 생각하지만.
(이쪽을 불안하게 보고 있는 더미를 본다) 저 앤 안 되겠어.
형이 포기해.
빈: 한 번 버렸으면, 두 번도 가능하잖아!! 그렇게 소중하면 버리고
오지 말았어야지! 울게 하지 말았어야지! 한 번 더 버려!
동영: 이게 억지 쓴다고 될 일이야!
빈 : 씨끄러~~
빈: (시니컬한) 데려가!
동영: ! (놀라서) 뭐...?
빈: 나중에 내가 데려올 여자야. 그때까지 잘 맡아줘!
빈 나가버린다
씬6 대한상사, 해외영업2부(밤)
빈, 포엠에서 들고 온 위스키를 병째 마시며 서랍에서,
동영이 자신에게 맡긴 상자를 꺼낸다. 상자를 열면 편지
한 통이 들어있다. 빈, ‘더미에게’라고 쓰인 편지봉투에서
편지를 꺼내 읽는다.
(동영의 소리) 더미야..네가 이 편지를 보게 된다는 것은,
두 번 다시 내가 더미의 옆에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겠지.
씬7 길(밤)
동영과 더미, 아무 말 없이 걸어가고 있다. 두 사람, 빈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무겁다. 더미,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동영을 본다.
동영, 생각에 잠겨 걷다가 더미가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돌아본다.
더미,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동영을 본다. 동영, 더미를 가만히 바라보다
손을 내민다. 더미, 그제야 동영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들 위로, 동영의 편지가 깔린다.
(동영의 소리) 이런 날이 혹, 오게 될까봐..행복해야 할, 더미의
날들이 눈물로 채워질까봐, 너를 애써 외면해보기도 했지만.
이게 우리의 운명이었나 보다.
나는 더미를, 더미는 나를 아프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
씬8 대한상사, 해외영업2부(밤)
빈, 동영의 편지를 읽고 있다.
(동영의 소리) 더미야.. 너를 만나서 내 인생에 아쉬움이 없네.
네 사랑 속에서..행복했다는 것만 기억해줘.. 울지 마.
웃으면서 나를 보내줘. 그리고.. 너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내 동생
빈이가 도와줄 꺼야..
빈, 동영의 편지를 책상 위에 던지듯 놓는다. 빈, 동영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다정했던 두 사람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그렇게라도 더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해보려는 듯.
(인서트) 빈과 동영의 다정한 한 때(짧게)
빈: 형..내가..포기해야..되나? 두 사람, 행복해지라고,
축하해 주는 것 밖에..남은 게 없는 건가?
씬9 앙상블, 아세아복장학원 앞(밤)
동영, 더미를 바래다주기 위해 왔다. 더미, 동영과 마주하고 있다.
더미: 겁나서 말 못했어요.
동영: (본다)
더미: 친 형제 같은 사이라구 들었는데... 혹시라두, 아저씨...
빈씨 때문에 맘 아파하구. 여자보단..우정이 소중하다구.
또 날 떠날까봐 겁났어요. 미안해요..
동영: 더미보다 우정이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 그렇게 멋진 남자가 못 돼.
더미: ..고마워요.. 아저씨. 고맙구..미안하구..속상하구..
동영: 빈인 내 동생이고. 뭐든, 그 녀석을 위해선 다..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더미, 너만은 이제 포기할 수가 없네.
더미: 나 왠지 불안해. 꼭 내일 빈씨랑 가야해요?
동영: (더미를 안심시키려는 듯 더미를 안아준다) 지금은, 당황하고
흥분해서 그렇지만...난, 빈일 믿어. 우릴, 이해해줄 거야.
더미: (고개 끄덕인다) 얼른 가요. 아침에 출장 갈려면 짐도 싸고 해야죠.
동영: 그래..잘 자라.. 갔다 와서 연락할께. 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더미
한테 달려 올께.
동영, 더미를 꼭 안아주고 이마에 입 맞춘다.
동영 : 사랑해
동영과 더미 끌어안고 울고있다.
동영 : 사랑한다! 사랑해! 사랑한다!
씬11 을지 여인숙, 마당(밤)
양자, 방에서 가방 들고 나온다. 문 쪽으로 가려다 돌아보고.
씬12 을지여인숙, 앞(밤)
문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린다. 양자,
가방 들고 나와 길 쪽으로 발 내딛는데.
(준희의 소리) 또, 도망가는 거야?
양자, 놀라서 보면 컴컴한 벽 한쪽에 기대 서 있는 준희.
양자: 아구, 깜짝이야! 언제 왔어? 왜 거??어?
준희: 힘이 없어서.. 좀 쉈다 들어갈려구.
양자: 어디 아프니?
준희: 응. 엄마가 틈만 나면 도망칠라 그러니까, 마음이 아프네.
양자: 도망은 무슨. (둘러대는) 그게 그렇잖어. 엄마가 너 잠깐
얼굴만 보구 갈라구 그냥, (자기 차림새와 가방을 보고)
덜렁 왔거든. 장마철 지났는데. 집은 어떻게 됐나.
장독 뚜껑두 안 닫은 거 같구.. 단도리 하구 올라 그랬지.
준희: 됐어. 더 핑계댈 꺼 없어. 가! 내가 델다 줄께! (양자의 가방을 뺏고)
이번 기회에 엄마 어디 사는지 내 눈으루 확인하구, 잘됐네!
기차 타구 가는 거 보다 내 차 타구 가자구!
준희, 양자를 끌고 자신의 차 쪽으로 간다.
양자: 강희야. 왜 이래. 놔봐. 성질 내지 말구, 놓구 말 하자. 응?
준희: 가자니까!! 왜 안가!! 가, 장독 덮어야지. 그게 나보다, 더 중요하잖아!
양자: (우뚝 서서) 알았어! 기집애야!! 안가! 엄마가 졌다! 됐냐!!
다, 내가 지 생각해서 갈라 그랬지! 너 못되라구 이러겠어!
준희: (버럭 화를 낸다) 엄마라두 나 좀 맘 편하게 해주면 안돼!!
나, 지금 힘들어! 너무 너무 힘들다구!
엄마가 지금 날 생각해주는 건 도망치는 게 아니구,
그냥 내 옆에 가만 있어주는 거야!
준희, 속상해서 가방을 던지듯 본넷 위에 놓고 발을 구른다.
양자, ‘딸이 왜 이러나..무슨 일이 있나..’싶어 살피듯 본다.
씬10 더미, 준희의 방(밤)
더미, 들어와서 불을 켠다. 준희가 없다. 준희가 방에 들어왔던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더미, 어떻게 된 일인가..걱정하는데 잠옷 차림의 연경, 들어온다.
연경: 이제 와~ 까딱하면 또 기숙사 통금시간 넘을 뻔 했네.
더미: 글쎄 말야. 맨날 불량학생이네. 준희씬?
연경: 아까 전화 왔었어. 오늘 집에 간다구. 집에서 자구 온다구.
더미: 응..
연경: 너 준희씨하구 요새 안 좋냐? 껄끄러워?
더미: ..아니..왜?
연경: 쫌 그런 거 같애서. 분위기가..전에랑 쫌 틀린 거 같어.
경쟁 붙어서 그런가? 둘 다, 같이 옷 전시 되구. 엑스포두 있구.
(흘기면서) 니가 준희씨 질투하는 거 아니니? 니 물미역두
만들어 주구 그랬는데! 그럼 되냐!
더미: 글쎄 말야.. 그러면..안 되는 건데, 그지? 준희씨 나한테 넘
잘해 주구, 고마운 사람인데. 잘해야 되는데.
아무래두 내가 쫌 못됐나봐.
더미, 씁쓸하게 웃는다.
씬13 을지여인숙, 한 방(밤)
준희, 양자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다. 양자, 딸에게 부채질을 하고 있다.
양자: 앙상블인가 안 가두 돼?
준희: 전화 했어. 못간다고. 엄만 어제 온다 그래 놓구 왜 안 왔어?
양자: 안가긴..못 찾아서 그랬지. 서울이 하두 복잡해서..
당췌 못 찾겠잖어.
준희: 어제 아빠 왔었어.
양자: 왜?
준희: 갑자기..아침 일찍 오셔서, 돌아가신 엄마가 그립지
않냐구..물어보셨어.
양자: ! (뜨끔) 아니, 그게 뭔 소리야! 고사장이 내가 살아있는걸
안다는 거야! 뭐야! 내 얘기야! 준희 엄마 얘기야!
준희: 나두 몰라. (일어나 앉으며) 아빤, 그냥 사모님, 사모님한텐
엄마 소리가 안나오네.. 사모님이 보고 싶지 않냐는 뜻 같았는데.
잘 모르겠어. 마음에 걸려.
양자: 내가 괜히 왔다. 잘 살겠지 믿구, 널 다시 볼 욕심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준희: 엄마 살아있는 거, 이렇게 날 찾아온 거, 아빠가 아신다
그래두, 좋아하실 꺼야. 달라질 건 하나두 없어.
양자: 왜 달라질 게 없어. 행여라두 너한테 해 될까봐(하는데)
준희: 엄마..우리 아무 말두 말자. 너무 복잡하구, 머리 아파.
오늘은..그냥..엄마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자구 싶어.
그냥 엄마 꼭, 껴 안구 잘래. 아무..말 말자..엄마..
준희, 힘들고 지친 표정으로 양자를 본다. 양자, 뭐라 말을 하고
싶지만 딸의 지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문다.
씬14 대한상사, 해외영업2부(밤)
동영, 들어온다.
빈, 책상에 누워 술에 취해 자고 있다. 동영, 빈을 바라본다.
바닥을 드러낸 위스키 병. 자신이 더미에게 보낸 편지가 상자에서
나와 있다.
동영: (다정하게) 빈아..
빈: ..(정신 못 차리고 잔다)
동영, 술병을 책상 밑 휴지통에 집어넣고. 편지를 집어 잠시 본다.
동영, 편지를 상자에 넣어 자신의 서랍에 집어넣는다.
동영: 아까는 형이 미안했다. (잠시 보다) 네가 이제 건강하게
살고 싶은 이유가..더미라는 거 아는데..너한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아는데.. 어쩔 수가 없네.
난..네가 더미와 날 받아줄 꺼라 믿고 싶다.
빈: ..
동영: 푹 자고, 내일 보자.
동영, 양복윗저고리를 벗어 빈에게 덮어주고, 문 쪽으로 간다.
불을 끄고, 동영 나간다.
씬15 김홍석 장군의 집, 거실(아침)
동영, 아버지에게 절을 한다.
동영: 다녀오겠습니다.
김홍석: 조심해라.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이 포착 되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
동영: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제 걱정 마시고, 건강하셔야..해요.
김홍석: 그런 말 마라. 일주일도 안 되는..출장에,
그런 인사는 받고 싶지 않구나.
동영: ..(가만 보다가) 용서하세요..저번에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김홍석: 지금 와서, 네게 어머니를..돌려줄 순 없지만..진심으로..
아버지가 용서를 빌마. 미안하다..동영아.
씬16 김홍석 장군의 집, 마당(아침)
김홍석, 동영을 배웅한다.
동영: 됐어요. 더는 나오지 마세요, 아버지.
김홍석: ..부디 이 애비 곁으로 이 모습 그대로 돌아와 다오.
동영: (목이 메인다) 예..그럴께요. 돌아와서 뵙겠습니다.
김홍석, 동영을 바라보다 와락 끌어안는다.
씬17 김홍석의 집, 대문 앞(아침)
동영, 걸어 나오다 빈의 윌리스 지프가 정차 돼있는 것을 본다.
(빈의 소리) 굿모닝?
동영, 쳐다보면 벽 쪽에 서 있던 빈, 손을 들어 보인다.
두 사람,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동영: (미소) 잘 잤어?
빈: 뭐 별로. 날도 더운데 (동영의 윗저고리를 동영에게 던져서)
그거 때문에 땀띠 솟을 뻔 했잖아.
동영: 지금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
빈: 그럴 꺼까지야 있나. 차 있는 내가 오는 게 맞는 거지. 타.
빈, 윌리스에 올라탄다. 동영, 안심한 표정으로 옆 좌석에 오르는.
씬18 비행기 안(아침)
동영과 빈, 자리에 착석하고 있다.
동영: 계덕공항까진 네 시간쯤 걸린다.
빈: 아~ 참. 이거 너무 무시하는데. 내가 홍콩 한두 번 가보나.
사업 차 형보다 더 많이 가봤는데?
동영: 사업 차? 녀석..(웃는)
빈: (표정 바뀌고) 어젠 내가 잠깐 돌았어. 형이 이해해라.
동영: 고맙다. 이해해줘서..
빈: 그렇다고, 더미를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냐. 밤새 생각해봤는데.
형은 형이고..더미는 더미라는 결론이 나오데.
동영: 빈아.
빈: 비행기 뜨기 전에 그 말만은 해야 될 것 같아서.
나, 더미한테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선택은 더미한테 맡기자고..
형이 사랑하는 여자니까,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란 말만 하지 마.
동영: ..
빈: 잘께. 계덕에 도착하면 깨워줘. 어제 잠을 못자서.
빈, 좌석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는다. 동영, 그 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본다.
씬20 앙상블 식당(아침)
더미, 연경과 함께 선생들에게 국과 반찬을 서빙하고 있다.
장봉실 독상 받고, 방육성과 차연, 겸상. 학생들은 뷔페식으로
밥솥과 국 냄비에서 직접 밥을 떠서 먹고 있다.
연경: (장봉실에게) 많이 드세요~
장봉실: 고맙다.
더미: (방육성과 차연에게 미역국과 미역무침을 서빙한다) 많이 드세요~
차연: 아우..지겨워. 누가 애났니?
넌, 물미역, 미역국, 미역무침 이거 아니면 못하니?
더미: 많이 드세요~ 여자한텐 미역이 왔다래요!
차연: 왔다..좋아하네. 너나 많이 먹어. (밥에 컵의 물 말아서, 먹는)
방육성: (차연에게) 어른답지 못하게 반찬투정은. .
더미: 선생님..전..엄마한테 잠깐 갔다 오면 좋겠는데요..엄마한테두.
.밥 갖다 드리구 싶어서..
차연: (혼잣말로) 학원비 한 푼 안내는 게. 이젠 밥까지 싸 내간다네..
염치두 좋지.
장봉실: 그래. 그렇게 해. 어머니하고 오전은 잘 보내구.
오후 강의에 맞춰서 와도 좋아.
더미: 고맙습니다!!
차연: 고준희는 아직두 안 왔어!
더미: 네. 오후에 올 껀가 봐요.
차연: 암튼..일호실 콩가루네..아우, 더워. 더워. 고준희,
한더미 니들만 생각함 더워 죽겠어.
씬21 을지여인숙 앞
더미, 밥과 반찬 든 찬합과 작은 국 냄비를 보자기에 싸들고 걸어오고 있다.
씬19 을지여인숙, 한 방
양자와 준희, 더운 줄도 모르고 꼭 끌어안고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씬22 을지여인숙, 한 방
양자, 하품하며 깨어난다. 준희, 그때까지 양자에게 팔을 올려 껴안고 자는.
양자: (창문을 보다) 아구..날이 언제 이렇게 훤해. 일어나 인제.
강희야? 일어나야지. 옷 만드는 데 안가?
준희: 쪼끔만...엄마..쪼끔만..더 눠있자..응?
준희, 양자를 억지로 옆에 눕히는데.
(더미의 소리) 엄마~~ 엄마~~
양자: !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는다)
(더미의 소리) 엄마, 아직 안 일어났어?
준희: 이게..무슨 소리야? 엄마? 엄마가 뭐야? 누구야?
양자: (놀랬지만 내색 않고) 누가 잘못 찾아온 거겠지.
양자, 얼른 문 쪽으로 가서 문고리의 걸쇠를 걸려는데 준희,
보다가 푼다.
준희: 뭐야? 엄마, 재혼했어? 나 내 버리구, 얼씨구나 좋다.
팔자 고쳐서 동생 봤어?
양자: 무슨 쓸데없는 소리야!
(소리) 똑똑..노크소리
양자: 안되겠다. 내가 나가봐야지. 아침부터..넘의 방은..
왜 자꾸 두드려..(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준희: (양자의 옷을 잡는다) 사실대루 말해.
누군지, 왜 그러는지 말하라니까!
준희. 양자를 쏘아보고 양자, 안절부절 못한다.
씬23 을지여인숙, 마당
더미, 의아해서 갸웃거리다가 문득 방 앞을 본다.
양자의 고무신과 준희의 힐이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다.
더미: ..(힐을 보며, 고개를 갸웃갸웃 한다)
씬24 을지여인숙, 한 방
양자: (미칠 것 같다) 이러지마. 강희야. 제발 줌. 이러지 말어.
준희: 누군데 이래! 진짜! 엄마가 이러니까 답답해서 미칠 것 같잖아!
그 순간, 문 열리고 더미 ‘엄마~’하면서 보자기를 들고 들어온다.
준희, 더미를 보고 눈이 튀어 나올 것 같다. 더미도 놀라서 그만 들고
온 국 냄비를 떨어트리고 만다.
더미: 준...희씨...
준희: ..(생각이 복잡하다.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양자를 본다)
양자: (강희의 눈빛을 무시하고) 으응..이게..뭐야. 다 쏟았네.
칠칠치 못하게. 손님두..계신데.
양자, 한쪽에 놓인 걸레로 엎지른 국물을 닦는.
더미: 준희씨..가 여긴 웬 일이에요? (벽에 걸린 준희의 핸드백을 보고.
이부자리에 나란히 두개 놓인 베개를 보고)
여기서..우리 엄마하구 잤어요?
준희: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더미: 엄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준희: ..
양자: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한다)
더미: 엄마!
양자: 뭘 엄마, 엄마 거려. 인사해. 전에, 엄마가 잠깐 서울 살 때 모시던
사장님댁 아가씨야. (준희한테) 제 딸입니다, 더미라구.
아가씨랑 아시는 사인 줄은 몰랐네요.
준희: ! (양자의 거짓말에 놀라서 보는)
더미: ..(안 믿기는)
양자: (준희의 핸드백을 챙겨주며) 아구, 아가씨 이제 그만 가셔야죠요.
댁에서 기다리시겠어요.
더미: ..
양자: 나중에 또 기회되면 뵐께요. 이렇게 잊지 않구,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사세요. 사장님한테두
안부 전해주시구요.
양자, 준희를 밀어 낸다. 더미, ‘준희씨..있다 학원에서 봐요..’
의혹에 사로잡힌 시선으로 인사한다. 대답 없이 문 닫히고, 준희 나간다.
씬25 을지여인숙, 방 앞
준희, 구두를 신다가 입술을 깨물며 방을 본다.
씬26 을지여인숙, 한 방
더미, 양자를 흘겨보고 있다.
양자: 뭐...뭐야..그 눈은?
더미: 엄마 한번두 맹골도 나가 본 적 없다며? 서울가본 적 없다며?
갑자기 뭐야? 준희씨가 왜 아가씬데?
양자: (세게 나와서 더미를 누르려고, 화내는) 남의 집 식모 살던 게 뭐
그리 자랑이라구 자식한테 떠들겠어!
더미야, 엄마 옛날에 서울서 식모했다. 자랑할 일 있어!
더미: 그래두 내가 태을방직 가구 싶다 그랬을 땐 얘기했어야지!
준희씨 아빠가 태을방직 회장님인 건 알았을 꺼 아냐!
양자: 그딴 얘길 왜 해! 가뜩이나 서울 바람 잔뜩 들은 기집애한테.
그 소리하믄 물 만난 고기처럼 얼싸 좋다 할 텐데. 내가 미쳤어!
더미: 나 엄마, 말 못 믿겠어! 엄마가 뭐라 그래두 믿어지지가 않는단 말야!
양자: 이 년이! (더미의 머리를 쿡, 쥐어박는다) 속을 갈라 보여줄 수두 없구.
믿거나 말거나 맘대루 해!
더미, 화가 나서 빨딱 일어선다. 더미, 엄마를 바라본다.
더미: 나, 엄마 딸이야. 엄마, 표정만 봐두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느낄 수 있어. 뭘 숨기는 것까진 몰라두,
그게 거짓말이라는 건 안다!
양자: 이 기집애가 진짜! (짐짓 째려보는)
더미: 내가 바보야! 준희씨하구 나, 동갑이야. 왜 나한텐 준희씨에
대한 기억이 하나두 없는 건데! 엄마가, 그 집 식모 살구 일했으면,
나한테두 준희에 대한 기억이 있어야잖아! 내가 생각나는 건,
맹골도 밖에 없단 말야!
양자: 그래서! 없는 기억을 엄마가 찾아줘, 어째!
더미: ..나중엔..사실대루 말해줘... 엄마가..거짓말 시키면 슬퍼져.
갔다 나중에 또 올께.
양자: (베개를 들어 나가는 문에 던지며) 오지 마! 이년아!
엄마, 맹골도 가버릴 꺼니깐 오지 말어!
문, 쾅! 닫힌다. 양자, 화낼 때와는 전혀 다른 불안한 표정이다.
양자, 초조해서 사다 윗목에 놓은 소주를 병째 꿀꺽꿀꺽 마신다.
씬27 을지여인숙 앞/준희의 차 안
준희, 한 쪽에 주차 해 놓은 차에 타고 있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가는 더미가 보인다.
운전석 문 열리고, 준희 내린다.
준희: (더미의 뒷모습을 보며) 더미가 엄마 딸이라구..?
한더미가...엄마..딸? 하! 하아..(기가 막힌다) 그걸 나보고
어떻게 믿으라구!! (무서운 눈으로 여인숙을 쪽을 노려본다)
씬29 고창회의 집, 서재
가정부, 고창회의 서재를 청소한다. 책상 위를 조심스럽게 치운다.
서류를 들어서 그 밑 책상을 닦고, 그대로 다시 올려둔다.
가정부, 서류파일을 들어 치우다 거기서 떨어지는 서류 하나.
(인서트) 이양자의 사진이 붙어 있는 대구 교도소 서류.
가정부, 무심히 보다 깜짝 놀란다.
문 열리고, 평상복 차림의 고창회, 최비서와 함께 들어온다.
창회: (다가와서) 아..됐어요. 이 방은 나중에 치워요.
가정부: 예..회장님..(하면서 망설이는)
최비서: 나가보시죠.
가정부: ..(망설이는)
창회: ? (양자와 관련된 서류 챙기다가 무슨 일이지? 하는 표정으로 본다)
가정부: ..회장님..(이양자의 사진에 시선 두며) 저..이..여잘..봤는데요.
창회: 아니! 옥천댁이 이 사람을 어떻게 봐!!
가정부: 엊그제 아가씨 다니루 오셨을 때..집에 왔었는데..
이층 화장실 쓴다구, 아가씨가 허락해줬는데요..
창회: !!
씬28 을지여인숙, 한 방
양자, 술을 마시고 있다. 문, 벌컥 열리면서 준희 들어온다.
양자, 올게 왔구나 싶어 놀라지도 않고 술만 마신다.
준희: 한더민 누구야?
양자: ..
준희: 쟨 대체 누구냐구!! (앉아서 엄마를 흔든다) 누구야! 누구, 누구!!
양자: (귀찮다는 듯) 니 동생이지 누군 누구야.
준희: 뭐? 내 동생?
양자: 그럼 엄마가 언제까지, 떼 놓고 온 너만 바라보며
혼자 살 줄 알았어? 엄마두 사람인데. 외롭구, 적적해서
혼자 어떻게 살어. 말벗이나 할라구
부모 잃은 애 하나 데려다 길렀다.
준희: 그만 줌 해!! 엄마, 거짓말엔 넌더리가 나!! 사리원서부터,
내가 철나구 기억나는 건 엄마, 거짓말 밖에 없어!
그땐 먹구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쳐. 지금은 뭣 땜에 또
이런 말 안 되는 소릴 꾸며 대는데!!
양자: 엄마한텐..너나..더미나 진배없다. 내 배에 품고 있지 않았다
뿐이지..더미 없었음 엄만..못 살았어. 친 동생이다 여겨.
준희: 그래..좋아. 그렇다 치자. 그럼...더미 몸에..난 그 상천 뭐야..?
양자: (본다)
준희: (자신의 어깨를 보여주며) 왜, 하필 나랑 똑같은 자리에..똑같은...
흉터가 있는데?
양자: 우리 동네에 미친개가 있었는데, (하는데)
준희: 더미두 미친개! 엄마두 미친개!! 미친개 소린 제발 그만해!
내가 미쳐 버리겠어!! 세상에 우연이란 게 그렇게 흔해!
세끼 밥 먹듯이 일어나는 거야!!
양자: 믿는..안 믿든. 엄마가 어쩌겠어. 사실은 사실인걸.
준희: ...준희야..?
양자: 뭐..?
준희: (또박또박) 한더미가..고준희야?
양자: 뭔 늑대 풀 뜯어 잡숫는 소릴 하는 건지. 죽었다메?
죽은 앨 내가 염라대왕한테 가 데려왔겠어! 머리 시끄럽게
굴지 말구 얼른 가!!
준희: ..
준희, 양자를 매섭게 보지만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준희, 자리에서 허탈하게 일어난다.
씬30 동 장소(시간경과)
고창회, 혼란스러워 오락가락 한다. 최비서, 그런 고창회를 바라보고.
최비서: 아가씨가 그러실 줄은 몰랐습니다.
창회: ..
최비서: 회장님께서 아가씨를 어떻게 키우셨는데, 회장님 눈을 피해,
생모를 불러 들이다니요.
창회: 준희라고..생모가 그립지 않았겠나. 나와..우리 준흰, 세월로
쌓은 부녀지간이지만. 생모와 준흰, 하늘이 맺은 천륜이 아닌가.
(자신을 이해시키고, 다독이는) 그럴..수 있었겠지.
최비서: 그러시다면, 더더군다나 친 따님을 찾으셔야지요.
진짜 준희 아가씨를 찾는 것이 회장님의 천륜 아닙니까.
창회: .. 그러니 어쩌면 좋겠나? 최비서, 나는 정말 준희에게만은..
상처를 줄 수가 없어. 준희한테 상처 주지 않고, 친모를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최비서: 이양자씬 아가씨 곁을 멀리 떠나진 않을 껍니다.
여기까지 아가씨를 찾아 온 것을 보면 틀림없이 주위에
있겠지요. 사람을 아가씨 옆에 두겠습니다.
창회: ..(생각하는)
씬31 더미, 준희의 방
더미, 수업에 올라가기 위해 필기구와 스케치 노트를 챙기고 있다.
문 열리고, 준희 들어온다.
더미와 준희, 서로를 바라본다.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막상 말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두 사람, 터질 것 같은 심정으로 서로를 본다.
준희: 우리, 참 재밌는 사이지? 점점 재밌어지네.
더미: 나, 준희씨한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요.
준희: 말해.
더미: 날 어렸을 때 본 적 있어요?
준희: 글쎄? 아니. 없어. 적어도 한더민 본 적 없어.
그것만은 확실히 말해줄 수 있어.
더미: 어렸을 때부터 답답했어요. 왜 딴 사람들은 일곱 살 때 뭐 하구.
여덟 살 때 뭐 하구. 다 기억하는데. 난 못할까.
답답했지만, 꾹 참았는데. 이젠... 못 참겠어요.
준희: ..
더미: 아까, 엄마랑 같이 있는 준희씰 봤을 때, 머리 속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았어요. (자기 배에서부터 손으로 끌어 올리며)
여기 밑에서부터 뭔가 뭉텅이루 올라오는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어요,
답답해요..
준희: 내가 알 꺼라 생각해?
더미: 모르겠어요..근데..아아..정말 모르겠는데. 내가..혹시..준흰가요?
준희: (쿵- 놀라는) 왜..그런 생각을 하지?
더미: 그 날..말했잖아요..비 오던 날..어깨 아프던 날.. (흉내 내며)
나는 강희야. 한강희. 넌 누구니? 준희니?
준희씨 말이 생각나서..
준희: ..잊어달라고 했었는데..
더미: 내가 우리 엄마 친 딸인 것도 알구, 이러는 거 말 안 되는
것도 알구. 근데..근데...준희씬..내가 모르는 걸..알구 있는 것 같아요.
말해줘요..준희씨가 알고 있는 걸 나한테두 말해줘요.
준희: ..(망설이지만) 글쎄..별로 할 말이 없네.
준희, 자신의 노트와 필기구를 들고 나간다.
씬32 앙상블, 강의실, 연경 있는 곳
장봉실, 원생들의 초기 스케치를 봐주고 있다. 더미와 준희,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준희, 자꾸 시선이 더미에게로 간다.
더미와 준희, 스케치를 다듬고 있다.
장봉실: (연경에게) 재밌어. 큐트하고 해피하고. 근데 너무 제멋대로야.
컬러도, 데코레이션도.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어.
연경: 고맙습니다.
장봉실: (상희에게) 라인도 좋고 색감도 좋은데 결정적으로 너무
평범해. 어깨라인을 좀 더 살리고. 여기 카라는 차이니즈
스타일이 어떨까?
상희: (메모하면서) 네. 다시 수정하겠습니다.
장봉실: (피에르방의 스케치를 지적하며) 섬세하긴 한데 너무 올드 해.
소매랑 힙에 버슬(bustle)이 좀 부자연스러워. 소매품을
좀 더 줄이고, 버슬보단 가슴부분에 시선을 줘봐.
씬33 앙상블, 강의실, 더미 있는 곳
(준희의 소리) 너 정말 준희니? 내 맘속은 그렇다고 하는데..내 머리는
아니었음 좋겠다고 하네. 넌..누구니? 정말.. 넌 누군 거야.
내게도 누가 속 시원히 말해주면 좋겠다.
장봉실, 준희를 부른다.
장봉실: 고준희.
준희: ..(딴 생각에 빠져 있다)
장봉실: 고준희! (책상을 들고 있던 색펜으로 탁, 친다)
준희: 아. 예. 선생님.
장봉실: 한 번에 한 가지만 몰입해 주겠어?
준희: 죄송합니다. (스케치 노트를 보여준다)
장봉실: 컨셉이 뭐지? (넘겨보는)
준희: 격식과 전통이에요.
장봉실: ..(조금 염려스러운) 격식과..전통..아름다운 말인데.
자칫하면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 괜찮겠어?
준희: 선생님, 전 히피문화가 너무 싫어요. 언제부턴가 우리 생활에,
예술에 자유라는 이름으루 들어와 있는 그 무질서하구
뒤죽박죽인 세계를 견딜 수가 없어요.
장봉실: (본다)
준희: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이 전 격식과 전통이라고 봐요.
그 안에 있는 고상함이랄까? 우아함이랄까..그런 절제된
가치를 드러내고 싶어요.
장봉실: 네가..디자이너로 활동할 때쯤의 고객은..좀 더 젊은 사람일 꺼야.
소수만 열광하는 예술을 하는..사람은 고달플 텐데.
준희: 제가 뷰티를 버렸을 때, 대중성도 함께 버렸어요.
예술이란, 결국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만 누리는 거니까요.
장봉실: ..(미소 짓고, 시선 돌려 더미를 본다)
더미, 자신의 스케치 노트를 떨리는 심정으로 보여준다.
제법, 그럴 듯하게 스케치노트에 색펜으로 그려져 있다.
장봉실, 여성바지 정장을 본다.
재킷 안에 목폴라 티가 스케치 되어 있다.
장봉실: (고개를 갸웃하다가, 색펜으로 목폴라 티를 가리킨다)
이건 뭐지? 터들 넥을 이렇게 표현한 건가?
아님..스카프를 감아서 안으로 넣은 건가?
더미: 목폴라 티에요.
장봉실: 목폴...라?
더미: 겨울이 너무 추워서요. 저희 동넨 섬이라.. 바람불면..
진짜, 뼈가 시리거든요? 목이 쩍, 달라붙는 거 같구.
어른들은 겨울내 목에 수건 감으시구. 전 봄 될 때까지 스카프,
감구 있거든요. 겨울옷은 따뜻한 게 젤 좋은 것 같아요.
장봉실: ..(다시 본다)
더미: 이상..한가요? 선생님.
장봉실: 호호호~~ (웃는다) 넌, 정말 재밌는 아이구나.
처음엔 손재주 있는 원숭인가 했더니. 호호~ 정말 재밌어.
물미역에서 동백에, 목폴라까지? 칭찬해 줄께. 기대가 크다.
더미: 고맙습니다!!
장봉실: (빙그레 웃는다)
씬34 앙상블, 의상실 안
장봉실, 방육성과 차연에게 당부하고 있다.
방육성: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더미에게 감을 주지 말라니요?
지난 번 여사님께서 미국에 다녀오실 때 사 오신 게 한 감
남았는데요. 순면은 아니지만.
장봉실: 그 감은 그냥 트렌드를 보기 위해 가져온 것뿐이야.
목폴라 티. 발상은 좋지만, 그게 여성정장에 어울린다고 생각해?
차연: 정말 말 안되죠. 어디 고상한 숙녀들이 목 폴라티 같은걸
입나요. 한겨울에 무슨 면을 입어요. 겨울하면 울이죠.
암튼, 진짜 한더민 맘에 안든다니까요.
방육성: 여사님이 직접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수정하라고.
장봉실: 말로 하는 것 하구, 직접 몸으루 부딪혀 깨지는 건 틀린 거야.
방육성: (보면)
장봉실: 난, 준희. 더미가 철저하게 부서졌음 좋겠어.
아무리 고상한 예술이라두 대중성 없인 존재 기반이 없구.
아무리 좋은 의도, 빛나는 상상력이라두 품격을 갖추지 못하면..
시장 물건으루 떨어지는 거야.
차연: 걘, 원래 시장 앤데요, 뭐. 다듬는다구 모조품이 진짜가 되나요.
예술하곤 담 쌓은 애잖아요. 무식해 가지구.
장봉실: 예술을..창조하고, 느끼는 덴 지식이 중요한 게 아냐.
감수성이 중요한 거지. 다듬으면, 돼. 더민,
이 장봉실의 손으로 반드시 다듬어.
씬35 앙상블, 의상실 안
방육성, 더미의 스케치를 보며 난감해하고 있다.
방육성: 목..폴라 티..
더미: 예~ 이제 제 스케치 알아보시겠죠? (자신의 스케치를 보며)
이 색으루 찾아주세요, 선생님~
방육성: 안에 소재는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더미: ..왜요..?
방육성: 우리나라에선 아직..이런 짜임을 짤 수가 없구.
진정한 숙녀는 겨울에 울을 입어. 더미야, 우리 앙상블의
고객들은 그렇게 춥게 살지 않는다.
더미: ..
방육성: 바꾸겠니? 울로? 터틀넥이 어떨까?
더미: (생각하다) 아뇨. 선생님. 제가 찾아볼께요. 못 찾으면,
제가 만들어서라두 꼭, 폴라틸 만들겠어요.
씬36 앙상블, 실습실
더미, 자수를 놓고 있다. ‘Indios’ 라는 글자를 수로 놓고 있는 더미.
연경과 상희, 피에르 방 들어온다.
연경: (보다) 웬 수? 조선시대두 아니구. 시집 갈 때 베갯닛 만드는 고야?
더미: 아니. 목 폴라티 문양이 없으니깐 너무 밋밋하잖아.
나중에 (가슴 가리키며) 요기다 수로 떠 넣으려구. 어때?
상희: (본다) 인..디오스? 외국어 못하는 줄 알았는데 곧 잘하나 봐?
연경: 인..디오스..가 모야?
더미: 아파치. 그런 거. 인디안의 스페인어래. 멋있지?
상희: 별걸 다 아네.
더미: (웃으며) 저번에요~ 조기 자료실에서 책 찾아봤는데
사진 나왔거든요~ 넘 멋있어서.
피에르: 다..좋은데 목폴라 감을 어서 구해요? 짜는 데두 없는데.
상희: 그러게. 우리 집이 염색공장해서 아는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거든. 양말두 아니구.
목에다 그게 되니? 늘어져서?
더미: ! (피에르에게) 칠호씨! 양말 좀 보여주라!
피에르: 피에르라니깐.
더미: 암튼! 양말 좀 보여줘! 얼른.
더미, ‘어어어..’ 거리는 피에르의 발을 들어올려 바지를 쭉, 올린다.
발목에 고정되어 있는 고정밴드. 양말 목 부분.
더미: ..
연경: 크으..발 냄새. 더미야. 너, 왜 그러니..정말.. 이상해.
어떨 땐 같이 놀기 정말 창피할라 그래.
더미: 칠호씨! 나, 이거 한 짝만 주라!!
씬37 태을방직, 회장실
고창회, 생각에 잠겨 있다. 문 열리고, 최비서 들어온다.
최비서: 회장님. 손님이 찾아왔는데요.
창회: 지금은..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니까.
최비서: 예..알겠습니다. 아가씨하고 같이 앙상블 계신 분이라
혹시나 하고..
창회: 누구지?
최비서: 한더미양입니다. 아가씨하고 같음 방 룸메이트분인.
창회: 오.. 그 아이. 들어오라고 하게.
씬38 태을방직, 비서실
더미, 기다리고 있다. 최비서, 나온다.
최비서: 들어가 봐요.
더미: 고맙습니다. (꾸벅 인사하고)
씬39 태을방직, 회장실
더미, 들어와서 인사한다.
더미: 안녕하세요~~
창회: (미소를 짓는다) 어서와요.
더미: 준희씨 빽 믿구 염치없이 왔는데 들여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웃고)와~ 근데, 방이 넘넘 좋아요!
창회: (미소) 고맙군. 자, 앉지.
더미: 아니에요. 바쁘실 텐데. 그냥 한 가지만 여쭤 볼라구요.
태을방직이 우리나라서 젤루 크니까, 꼭 회장님한테 여쭤봐야
될 꺼 같아서요.
창회: 뭔데, 그렇게 거창할까? 서론이.
더미: 목폴라 티를 만들고 싶어요!
창회: (놀라서) 목폴라 티?
더미: 겨울에 너무 너무 춥잖아요, 우리나라. 좀 사람들이 따뜻하게
지냈음 해서요. (주머니에서 양말을 꺼내, 목을 보여준다)
양말도 할 수 있으니깐 (자기 목 만지며) 목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창회: 하하하- (웃고) 점심 먹었나?
더미: (고개를 젖는다)
씬40 동 장소(시간경과)
소파에 앉아 있는 더미와 창회. 그 앞에, 빵과 음료가 놓여 있다.
창회, 열심히 먹고 있는 더미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창회: 직원식당에 가 같이 먹으면 좋은데. 내가 곧 바이어들을
만나야 해서. 맛있나?
더미: (고개 끄덕인다) 네. 회장님도 드세요.
창회: 됐어요. 나는..빵을 안 먹어.
더미: 왜요?
창회: (어렸을 때 준희와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이라는 말은 못하고)..
글쎄. (보면서 미소 짓는다)
더미: ..(창회의 따뜻한 눈을 의아하게 바라본다)
창회: 부모님이 참 예쁘게 키우셨군..보고 있으면 나까지 마음이
따뜻해지는군. 먹는데 자꾸, 쳐다봐서 미안하네.
소화 안 될라. (쥬스를 건네준다)
더미: 고맙습니다. (마신다)
창회: 목폴라는 내가 공장장하고, 우리 제품 개발실 실장하고
상읠 해보지. 결론이 나오면 연락줄 테니까 기다려요.
더미: 꼭, 부탁드려요. 제가 어떡하든 시제품 천 값은 마련할께요.
목 폴라티..꼭.꼭 만들 수 있게 도와주세요.
더미, 창회를 보며 미소 짓는다.
씬41 홍콩, 계덕공항
입국자 게이트에서 동영과 빈, 나온다.
환영객들 사이에 ‘한성관광’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여행사 직원
으로 보이는 요원.
동영: 저기다.
빈: 응. 봤어.
동영과 빈, 여행사 직원에게로 다가간다.
직원: 어서 오십시오~ 홍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동영: 예~ 반갑습니다.
빈: (고개 까딱한다)
동영과 직원, 악수하는데. 멀리 기둥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남자1?2
동영을 따라 다니던 예의 요원1?2다.
씬42 호텔 방
동영과 빈, 웃저고리를 벗는다.
빈: 아..끈끈하다. 홍콩은..날도 덥지만 습기가 너무 많아.
이래서야 머리가 돌아가겠어.
동영: 빈아, 긴장해라. 지금부터 일초도 방심하면 안돼.
빈: 알구 있어.
문 열리고, 종이봉투를 들고 들어오는 직원.
직원: 시장하실 꺼 같아서, 빵하고 딤섬을 좀 사왔습니다.
드시죠. (티 테이블에 올려놓는)
동영: 고맙습니다.
직원: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빈: 그냥 가면 어떡하나? 뭘 준다면서 줘야지?
직원: (표정 잠시 굳어졌다, 다시 웃으면서) 거기 보세요~
자유 관광이시라, 제가 필요한 관광코스는 다 뽑아 뒀습니다.
그럼 쉬세요.
직원, 인사하고 나간다. 동영, 봉투를 열어본다. 빵과 딤섬이 나온다.
그 다음 서류봉투 꺼낸다.
빈, 딤섬을 하나 집어 먹고 봉투 열어 김중린의 스케줄 표를 꺼낸다.
동영, 봉투에서 권총과 망원경을 꺼낸다. 빈, 휘파람을 분다.
동영, 테이블 위에 긴장 된 표정으로 권총을 올려놓는다.
빈: 스릴이 감도는데. 좋았어.
동영: (표정 굳히고) 이 순간부터. 우린, 김중린에게 각하의 밀서를
전하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한국도 잊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잊는다. 물론 더미도 잊는다.
동영, 빈을 강하게 쳐다보는 모습에서(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