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
제5장 그리스도의 직임-1
그리스도의 직임, 즉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임에 대해서 장 칼뱅의 기독교강요 제2권 제15장,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요리문답, 그리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그리스도의 3중직 강의를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기독교강요’는 개신교 신학 전반에 관해서 쓴 장 칼뱅의 대표적인 저서입니다. 장 칼뱅의 ‘기독교강요’는 기독교 교리가 정립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536년에 라틴어 6장으로 초판이 발행된 기독교강요는 그 후 계속해서 증보판을 발행했고, 1550년에 21장으로 늘어난 최종판을 발행했습니다.
장 칼뱅은 그의 고국인 프랑스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 사회 전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진리에서 떠나 어두워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삶을 살지 못하는 자들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해서 진리를 알게 하려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1절 중 보 자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의 직임을 말할 때는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중보자’이심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중보자시라는 것을 무시하고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보(中保)라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일이 해결되도록 주선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두 사람 사이에서 이견을 조정하는 일을 중보라고 하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중보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중보의 일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조정하는 일만 말하는 것이 아닐 수 있고, 따라서 중보자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중보자 중에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중재하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전서 2:5]을 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사람 사이에서 문제해결을 중재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과 사람을 중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8장 2절은 예수님이 중보자시라는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삼위일체 중의 제2位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본체를 가지시고, 아버지와 동등이신데, 때가 차매 사람의 성질을 취하시되, 사람이 가지는 모든 본질적 고유성과 그것으로 인한 공통적 연약성을 가졌으나 죄는 없으시다…….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사람이시나 한 분 그리스도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36문부터 제42문까지는 중보자에 대한 것입니다.
[제36문] 은혜 언약의 중보자는 누구입니까?
답: 은혜 언약의 중보자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며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고 동등하신 분으로서, 때가 찼을 때 사람이 되셨고, 한 위(位)에 구별되는 두 본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고 사람이셨으며, 지금도 그리고 영원하게 한 인격이십니다.
[제38문] 중보자는 왜 반드시 하나님이셔야 합니까?
답: 중보자가 반드시 하나님이셔야 하는 것은 人性이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와 사망의 권세 아래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서 지키고, 그분의 고난과 순종과 기도에 가치와 효과를 주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그분의 은혜를 얻고, 선택한 백성을 값 주어 사고 그의 성령을 그들에게 주고, 그들의 모든 원수를 이기고 그들을 영원한 구원에 이끌어 가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9:13~15]는 예수님이 중보자시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다음으로 [제39문]은 ‘중보자는 왜 반드시 사람이셔야 합니까?’라는 질문인데, 이렇게 대답합니다.
답: 중보자가 반드시 사람이셔야 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을 향상시키고, 율법에 순종하고, 우리의 본성에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받고 기도하며,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體恤)하여, 우리가 양자 됨을 얻고, 위로와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감을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14]과 [갈라디아서 4:4,5]이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갈라디아서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제41문] 우리의 중보자를 왜 예수라 불렀습니까?
답: 우리의 중보자를 예수라 부른 것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제42문] 우리의 중보자를 왜 그리스도라 불렀습니까?
답: 예수님은 낮아지고 높아지신 두 지위에서 자기 교회의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행하시려고 구별되게 세워지시고 모든 권위와 능력을 충만히 갖추시기 위해서 성령으로 한량없이 기름 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34~36]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이 말씀들을 종합하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겪으셔야 하므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중보자로서의 사역인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했기 때문에 교인들이 중보기도를 한다든가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해도 그것은 죄 용서를 위한 기도는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뿐이시지만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 잘못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꼭 중보기도라고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더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성도가 다른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 성경에도 있고, 예전에는 사용했었습니다. 도고(禱告)라는 용어입니다.
[디모데전서 2:1]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첫째, ‘간구’는 ‘긴박한 상황에서의 어떤 특별한 성취를 위한 탄원’을 나타냅니다.
둘째, ‘기도’는 일반적인 의미로 ‘하나님을 향한 모든 경건한 아룀’을 말합니다.
셋째, ‘도고’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간구하는 기도’를 가리킵니다.
넷째, ‘감사’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말합니다.
도고(禱告)는 기도로 고한다는 의미인데, 개혁주의 신학자이며 박형룡 목사님의 아들이신 박윤선 목사님은 도고(禱告)를 자기 외에 가족과 친척들, 교회와 성도들, 국가와 위정자들, 선교지와 선교사 및 선교단체들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기도의 제목들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5]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라고 번역했는데, 기도라고 번역한 말이 헬라어 성경에서는 2:1과 같이 도고라는 말로 쓰여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성도들은 도고로 거룩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자기를 위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기도를 함으로써 거룩해진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도고라는 좋은 말이 성경에 있는데 굳이 중보기도라는 말을 가져다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죄인이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보증하시고, 하나님으로서 죄인에게 죄 사함을 보증하시는 것으로 중보자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중보자이시라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