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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성지가지 작업
금년에도 어김없이 성지가지 작업을 했습니다.
매년 주문하는 전국 본당에서 자동으로 주문이 오기때문에
거절하기도 어렵고, 본당 재정의 가장 큰 수입원이기 때문입니다.
참여하는 교우들도 적고, 젊은이들이 없어서
성지가지 작업을 끝내고 하는 말,
"내년에는 심각하게 고려해보자"고 하지만 또 하게됩니다.
큰 사고없이 무사히 마치고 전국에서 주문한 본당에
택배발송을 완료했습니다.
금년에는 140,000개(개당 300원)입니다.
작업하는 모습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야외작업 3일(2023년 3월20. 22~23)
실내작업(3월25~26)
발송(3월 27-28)
▼ 2022년 작업모습
▼ 2023년 성지 가지 작업
성지가지작업에 참여해주신 교우여러분 고생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박 신부님 8순을 맞아
2023.4.10(생신 4.15)
며칠 전(2023.3.6) 박 신부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은퇴하시고는 연락처를 알지 못했는데, 인터넷 카페에
국민학교 친구들 이야기를 하며 신부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다음과 같이 댓글을 주셨습니다(23.01.21)
'박** 신부님이 올해 팔순이시네요.
지금은 은퇴하시어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사십니다.
메일 주소를 올려 주시면 신부님의 연락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신부님 개인 번호는 없고 식복사님 전화로 연락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내 이메일을 알려드렸는데 한 달 가까이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려는 순간 이 메일이 왔습니다.(2월 17일)
캐나다에 살고 계신 분으로 여러사정으로 늦게 알려줘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신부님이 금년 8순 이라는 말, 식복사 전화번호,
신부님 자택 주소등을 알려 주셨습니다.
저도 마늘작업에 경황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 3월 6일에야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신부님은 너무도 반가와 했습니다.
지금은 책을 집필하시고, 피정강론도 자주 하시고, 성경강의도 하셔서
평일에는 저녁 5시 경에야 들어오시고
주일에는 집에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8순잔치는 아들신부 20명(박넝쿨 사제단)이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팔순(4월)에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국민학교 단톡방에 신부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축하메시지 동영상을 촬영하여 단톡방에 올리면
그것을 종합 편집하여 신부님께 보내드리자는 말과 함께~
그리고 단톡방 개설한 친구에게 연락이 되는 친구가 더 있는지 묻자
추가로 전화번호를 받았는데 여자 동창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지않아 내 소개를 한 메시지를 보냈더니
모르는 전화라 받지 않았다며 반가워 했습니다.
몇 명의 여자친구와 한 명의 남자친구도 알게되었습니다.
새로이 알게된 친구들은 무척 반가워했고
그들도 축하메시지를 보내겠다고 했지요.
인천 부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함께 신부님을 찾아뵐 계획이라 합니다.
몇 차례 경험한 일이지만 정말 세상좁다는 것을 느낍니다.
신부님도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냐고 물으셔서
캐나다 자매님 이야기를 했더니 역시 놀라시더군요.
새로운 국민학교 친구들도 알게되었고
신부님 연락처도 알게되어 신부님을 고리로
옛 추억으로의 여행도 한 층 업그레이드 된 느낌입니다.
친구들이 공통으로 기억하고 있는 신부님은
우리가 잘못 했을 때 앞줄부터 차례차례 회초리로 때리시고는
우리들 잘못을 선생님 잘못이라고 하며
맨뒤에 덩치가 큰 친구를 골라 자신을 때리라고
스스로의 종아리를 걷고 맞으시던 모습입니다.
오늘 동창대표로 4명이 8순 잔치에 다녀왔습니다.
장소도 협소하고 많은 축하객들이 오셔서 사진 찍는 것도 어려웠지만
신부님의 모습을 담아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60년 만에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나다
2023.4.14
며칠 전(4월 10일) 지금은 현직에서 은퇴하신 신부님이신
초등학교 선생님의 8순 잔치가 있었습니다.
동창대표 4명이 직접 참석하여 만남을 가졌지만
나는 사정이 여의치 못해 참석치 못한 아쉬움이 많았지요.
그런데 다음 날 선생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신학원 졸업생들과 2박 3일 제주를 방문하는데
시간이 되면 한 번 만나 차라도 하며 이야기를 하자는 말씀과 함께~
그 전화를 받는 순간 가슴이 벌렁거리며 잠시 옛 추억에 잠겼습니다.
신부님은 전화를 가지고 계시지 않기에
동행하는 분에게 내 전번을 알려주어 전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째인 14일 오후 3시까지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묵고계신 이시돌 피정의 집에 전화해서
숙박하고 계신 신학원 졸업생 중에 예약하신 분의 전번을 받았습니다.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통화가 되지않아
1시간 후 다시 전화해서 통화할 수가 있었습니다.
신부님과 직접 통하하여 저녁식사가 예정된 곳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일찍 서둘러 출발하여 약속시간보다 30분 전에 도착해서 기다렸지요.
기다리는 동안 옛날 4학년 시절을 다시 되새김질 하면서~~
오늘 몸이 불편한 아내와 내일 부활2주 제대꽃꽂이 꽃을 사러 시내에 다녀왔지요.
꽃을 사고나서 동문시장에 잠시 들리자 하여 들렸는데
아내가 신부님 선물용과 일행들이 먹을 오메기떡을 샀습니다.
신부님 만나면 드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나는 용돈 좀 드리고 집에 열려있는 하귤을 드리려고 했는데
선물이 풍성해졌습니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자 신부님이 타신 차가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시는 신부님을 발견하고 다가가 인사를 하자
바로 알아보셨습니다. 축하 동영상에서 보셨기에 그렇겠지요.
신부님과 손을 맞잡자 길에서 만나면 몰라보겠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만나자 마자 저에게 주실 책을 들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하루'라는 책입니다.
8순 기념으로 사제생활 하시면서 쓰신 성서영성강의 글 모음입니다.
신부님의 삶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안쪽에서 신부님이 친필로 쓴 글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이름을 몰라 저보고 적어넣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음식점 들어가기 전에 앞에서 신부님과 사진을 찍고
예약된 테이블로 가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신학원 졸업생 모임 회장님이 내 자리를 신부님 바로 앞에
앉도록 배려해 주셔서 신부님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바로 제 소개를 하시고 나서
저에게 한 마디 인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현재 임플란트 하기위해 이가 하나 없는 상태라
웃으면 영구처럼 웃길 수 있어 미리 말씀드리고
가능한 입을 벌리지 않고 말하려니 어색했습니다.
선생님과 일행들이 괜찮다고하여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일행들은 어떻게 60년 전 일을 기억하느냐며 놀라워했고
1년 가르친 선생님과의 만남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술 한 잔 하고 싶었지만 차를 운전해야 하기도 하고
신부님도 술을 자제하고 계셔서 음료수로 대신했습니다.
2시간이 넘도록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부님은 고향이 용인(서리) 이라고 합니다.
본적은 용인이지만 성장하기는 수원에서 했다는 이야기~
사범학교시절 공부를 잘 해 시험을 쳐서 서울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었지만
사범학교 성적이 좋아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학생을 가르칠 수 있었고
교편경력이 몇 년되면 바로 서울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함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그 때 어느 신부님의 권유로 사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동창들에 대한 이야기
선생님으로 계시던 때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제일 보고싶고 궁금한 동창인지, 선배인지 확실치 않지만
적동부근에 살던 친구 집을 방문하시고는 가족모두가 건강상태가 좋지않았는데
특히 그 친구(이름을 기억 못하심)가 위태로워 자전거에 태워서
30킬로가 넘는 비포장 도로를 달려 몇 번을 넘어지면서
수원도립병원에 갔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도착해 보호자가 20세도 안된 청년이라 사유를 물어보아
학교선생이라며 그 학생가정에 대해 말하자
치료비도 받지않고 학생 영양관리하라며 돈도 주었답니다.
선생님이 떠난신 후 그 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해 하셨습니다.
신부님에게 용돈을 드리자 무척 고마워하시며
식사자리에서 봉투를 보이시며 자랑하셨는데
그 모습이 동심으로 돌아가신듯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같이 참석하신 신학원 졸업생들과 신부님의 모습이
흡사 오래고 친한 친구처럼 화기애애한 모습이었습니다.
여행 중에도 매일 신부님과 미사를 드리는데
신부님이 짧게 강론을 마치면 미사참례한 분들이
몇 분 나름의 강론을 한다고 합니다.
복음나누기 하듯이 생활체험 등을 나누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풍성한 말씀전례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신부님이 많은 분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거의 자리가 마무리 되어갈 때 저는 먼저 일어났고
일행중 대표자에게 가지고 간 하귤과 오메기떡을 건네면서
보관방법 등을 설명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해 보니 오메기떡을 드시는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최고의 오메기떡을 주셔서 하나씩 먹으면서
감사인사를 드린다는 메시지와 함께~
집에 도착해 잘 왔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신부님께 잘 도착했다는 전언을 했으며
신부님은 사진도 잘 나왔다고 흐뭇해 하셨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정말 주님과 함께 한 기쁜 날이었습니다.
선생님 아니 신부님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오랫동안 저희와 함께 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딸 생일날 단상
2023.4.19
오늘은 무남독녀 딸 유나의 생일이다.
정기적인 검진을 하고 딸 생일을 함께 축하해준다던 아내가
검사 후 곧바로 입원을 했다.
어제 검사 후 폐렴이 있어 응급실에서 하룻 밤을 지낸 후
오늘 간호병동으로 입원을 한 것이다.
딸의 생일을 챙기기는 커녕 두 돌이 안된 딸도 사위에게 맡기고
엄마의 입원 등 수속하며 분주하게 보내서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다.
그래도 생일 축하금을 조금 보냈더니 엄마 병원비에 보탠다고 한다.
나도 서울에 올라가 딸과 교대로 병 간호를 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간호병동은 환자를 돌보아주는 분이 있고
면회나 환자방문이 금지되어있어 제주에 머물며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딸이 엄마 배속에 있을 즈음인 1982년
회사동료들과 수다를 떨던 때가 기억난다.
그땐 책상배열이 입사서열 순으로
가장 신입이 맨 첫째 줄, 그리고 맨 뒤에는
과장, 부장이 앉았지요. 즉 앞 사람의 뒷통수를 보는 격이지요.
관리자가 자리를 비우면 우리 신참들은 일하다가
뒤돌아 앉아서 마주보며 수다를 떨며 졸음을 쫒기도 했는데
이른 봄 어느 날, 출산을 앞둔 3명이 수다를 떨었지요.
내가 제일 먼저 결혼했지만 2년 만에 임신이 되어
나보다 늦게 결혼한 2명과 거의 같은 시기에 아이를 갖게 된 것입니다.
농담으로 내가 아들을 낳으면 '성인' ,
딸을 낳으면 '내리'라고 짓겠다고 하자(지성인, 지내리)
부자집 귀공자같이 생긴 빈**씨가
나를보고 지화자나 지겨워로 짓는 것이 좋겠다고 공격,
나는 네가 아이를 낳으면 (빈)대떡 이라고 지으라며 반격했지요..
우리 이야기를 듣던 안동출신의 권**씨가 그거 좋은 생각이라며 웃길래
너는 아이 이름을 (권)태기라고 지으라고 말하며 즐겁게 웃던 생각이 납니다.
결국 나는 4월 19일 딸을 ,
빈씨는 5월 16일 아들,
권씨는 6월초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부활대축일을 지내고 다시 시작한 성경쓰기와 함께
3개월 동안 방치하였던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었습니다.
나는 어떤 어려운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는
어떤 일에 몰두하면서 기분전환을 합니다.
그래서 아내의 입원으로 착잡하고 걱정스런 마음을 달래기위해
열심히 밭에 나가 일도 하고 성경을 쓰면서
아침에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보냅니다.
그리고 정원을 둘러보니 이미 피었다 진 꽃들,
이제 막 피어나는 꽃,
연두색으로 제법 많이 나와있는 나무들이
왜 이제야 보느냐고 원망하는 듯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봄이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봄이 와 버렸습니다.
아쉬움에 시를 낭송하며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 3월 26일 사진
▼ 4월 19일 사진
봄이 오는 소리 / 안숙현
사박사박 소곤소곤
또로록 툭툭
예쁜 꽃 요정들이
속삭이는 소리
빨리 일어나
맑고 따뜻한 햇빛에
일광욕하고 싶다고
맑고 투명한 이슬로
샤워하고 싶다고
꽃 요정들의
봄을 알리는 소리
코 간지러워
잎이 나고
귀 간지러워
꽃이 피네
봄생각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학창시절 배웠던 한시 중에서 생각나는 두 편을 올립니다.
송인(送人)
- 정지상 -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뒤에 긴 언덕에 풀빛이 짙어 오는데,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그대를 남포로 송별하니 슬픈 노래가 나오네.
大洞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언제 마르리오.
別淚年年添綠派 (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의 눈물을 보태는데....
<해설>
임과 이별하는 애달픈 정서가 애틋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동강 가에서 이별을 하며 눈물을 흘리면
대동강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했을까요?
작가의 과장법이 더욱 멋있습니다.
夢魂(몽혼) - 꿈속의 넋
- 이옥봉(李玉峰) -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어떠하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창첩한다)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꿈 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해설>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는 연모의 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성입니다.
이 시는 이러한 사무치는 연모의 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승구(承句)에서는 그리움을 달빛에 비추어 하소연하였고,
결구(結句)에서는 꿈 속의 발자취가 현실로 옮겨진다면 하도 많이 방문해
님의 집앞 돌길이 반쯤 모래가 되었으리라 하여
임을 만나고 싶은 애타는 심정을 하소연하였습니다.
저도 옥봉이 님을 그리워한 것보다
더욱 주님을 그리워하며 살고 싶습니다.
이도행 신부님과 황태순 모니카 부부
4.19
황태순 모니카 부부와 본당 신부님 두 분 수녀님 두 분
그리고 사목위원들이 제주에 방문하셨다.
일정 중에 우리 집 근처 김대건 신부 표착기념관에서
미사를 드리신다고 하여 찾아가 만나뵙고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소공동체 반모임
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