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F사는 지난해부터 생산 아이템을 바지, 재킷, 조끼 등 상·하의를 막론한 ‘전천후 생산’을 진행하고 있다.8년 동안 신사복 바지, 한 아이템만을 고집해왔으나 근래 들어 한 아이템을 생산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공장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아이템이 바뀔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라인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소로트 작업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게 K사장의 설명. “경기가 어려워도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건 여러 아이템의 생산으로 오더가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위안을 삼는다.품질이나 생산능력을 인정받고 있거나 인지도가 있는 업체의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중저가 브랜드 제품을 생산해 온 업체들의 경우 ‘오더 기근’로 재래시장 쪽을 기웃거리고 있지만 오히려 재래시장의 오더는 ‘가물에 콩 나는’ 수준이다. 이미 재래시장의 봉제품은 중국産이 점령한지 오래인 탓이다.재래시장에 의류를 납품해 온 봉제업체들은 최근 경기 악화로 일감이 전년대비 절반 이상 줄어 들면서 폐업하는 업체가 속출하는 등 중소 봉제업체들의 기반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부산 양정동의 J사장은 “보통 2월말이면 봄철 신상품 출고를 위해 2~3교대로 근무했을 정도로 매우 바쁜 시기지만 지난해부터 물량이 감소해 최근에는 4~5시간만 기계를 돌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내수 경기가 침체된 데다 브랜드 제품에 이어 재래시장도 해외 생산을 늘리면서 물량이 크게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신규 쇼핑몰의 등장으로 재래시장도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상가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요. 기본물은 재래시장에서 이미 해외 생산이 일반화된 실정이죠. 중국에서 수입해오고, 우리 업체들이 중국에서 생산해오는 제품들로 중소 봉제공장들은 설 자리를 잃은 상태입니다…”지난해부터 더욱 악화된 미국 경기위축과 5~6년째 거듭되는 의류 수출단가의 추락으로 국내 생산 수출오더가 급격히 감소되면서 봉제산지인 부산의 봉제공장들은 최근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실제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의류제품 수출은 49억3천7백만 달러로 전년의 51억 8천3백만 달러보다 5% 줄었으며, 금년 2월말 현재 대미 의류쿼터 소진률은 2001년 미국의 9.11 테러사건 여파로 최악을 기록했던 작년 동기보다 오히려 15%나 감소해 경기불황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하고 있다. 더욱이 월마트나 타겟 등의 디스카운트 스토아 뿐 아니라 미국의 백화점들까지 가격인하를 위해 인터넷 비딩을 대폭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금년 초에 실시한 某백화점의 인터넷 비딩에서 셔츠 가격이 15%나 폭락하는 등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이 때문에 국내 생산을 고집하던 수출업체들이 오더를 해외 공장으로 이동하면서 현상 유지가 어려워진 하청공장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특히 부산지역의 봉제공장들은 그동안 수출용 오더의 비수기 시즌에 내수 제품 생산으로 공장을 유지했으나 작년 10월 이후 내수경기마저 급격히 떨어져 돌파구가 없는 상황이다.의류 부자재 업체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자재 업체들은 이번 춘하시즌 수주 물량이 전년대비 절반 정도로 떨어지자 납품 가격 인하로 오더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의류업체의 물량 감소와 함께 중국 생산이 늘면서 원·부자재를 전량 현지에서 조달하는 추세여서 국내 업체들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의류업체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가장 먼저 부자재 가격을 낮추고 있고 중국산을 비롯한 가격이 싼 수입 제품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 부자재 업체들의 가격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현재 국산 버튼의 경우 개당 50원, 중국산은 20원선에 거래되고 있으며 라벨은 중국산이 국산보다 20원 정도 싼 30원에 공급되고 있다. 또 스토퍼는 국산이 18원, 중국산이 8원, 버클은 중국산이 국산보다 평균 38원 정도 싸게 수입되고 있다. 따라서 일부 부자재 업체들은 판매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추동시즌물량을 늘리고 판매 단가를 낮추는 전략으로 공장 가동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의류 수출이 극심한 부진에 빠져든 상황에서 내수 시장마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중소 봉제공장들은 고사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 원청사들의 내핍경영으로 하청업체들의 부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중소 봉제공장들 사이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상황이 더 어렵다”는 하소연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월 중소기업 생산설비 평균가동률은 70.5%로 의복·모피(66.9%), 가죽·가방·신발(67.9%) 분야의 가동률은 70% 미만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심각한 자금난이 계속되면서 급전을 융통하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연쇄 부도 공포도 확산되고 있다. 이미 의류업계에는 “4월에 또 한차례의 연쇄부도가 이어질 것”이라는 소문도 파다하다.더욱이 은행들이 불황업체들을 ‘요주의 대상’으로 특별관리하면서 돈 구할 곳이 없는 중소 공장들은 사채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 몇몇 업체는 오더 확보를 위한 창구로 공동으로
프로모션을 설립하거나, 뜻이 맞는 업체들 간 오더를 공유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재 우리 업계의 현실이다.부산의 한 봉제공장 운영자는
“중소 공장들이 겪는 고통은 대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며 “업계 차원에서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을 경우 산업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빈저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