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개나리고 진달래며 목련이고 벚꽃 등의 화신(花信)이다. 시방 남쪽에서는 이것들이 화들짝 다 피어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꽃이 피는 시기는 매년 조금씩 차이가 나고 지역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삼천리금수강산 꽃으로 물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 이곳 대구의 엠비시4거리 쪽으로 가는 가로에는 꽃비인지 꽃눈인지 치대어서 밀려나는 벚꽃들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조만간 고기압과 저기압의 충돌로 한 차례 더 기습적인 비라도 올라치면 와장창 무더기로 다 무너지고 말리라.
황지우 시인은 그 꽃의 이미지와 특성에 맞게 콕콕 찍어 대표성을 지닌 장소에서 다 피어나도록 했다. 남쪽은 그렇게 피운 꽃들로 천지를 물들이는데 ‘개마고원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영변 약산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한강 이남의 따뜻한 지역에서는 계절에 맞춰 꽃이 차례대로 피지만 추운 개마고원 갑산에는 가을에 피는 메밀꽃이 여름에 피는 감자꽃과 동시에 핀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꽃이 피는 지역이라 언제 무슨 꽃이 피어날지 가늠하기는 매우 어렵다.
생존을 위해 두서없이 피는 메밀꽃과 감자꽃의 예화를 처음 소개한 이는 '민세 안재홍'이다. 안재홍은 해방공간에서 몽양 여운형과 함께 ‘부르주아 민족주의 좌파’로 분류되던 인사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면서 사물과 현상을 입체적으로 보자고 주장했다. 시절이 하수상하다보니 북측을 성토하는 데만 한목소리로 열을 올릴 뿐 ‘은율 광산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무슨꽃이 피었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열에 하나쯤은 백두산천지에 무슨 꽃이 피는지 궁금하고, 영변 약산에 진달래꽃이 언제 피냐고 묻는이가 있어도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