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마음과 무거운 마음을 안고 금년 들어 두 번째 예배를 드리러 갔던 교회는 송파구 정신여자중.고등학교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주님의교회입니다. 김동호목사님이 어느 날 갑자기 교인 수가 괘 많던 이문동의 동안교회를 사직하고 높은뜻숭의교회를 숭의여대 강당에서 유형의 건축물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2001년 개척한 이력이 신선한 충격을 준 시절이 있었습니다.. 높은뜻숭의교회는 2010년 교인 5,000명이 되자 높은뜻광성교회, 높은뜻정의교회, 높은뜻푸른교회, 높은뜻하늘교회 4개의 교회로 분립되어 또 한 번 한국교회에 귀감이 되었습니다. 대학생 때 숭실대학 교목으로 계시면서 제가 다니던 교회의 헌신예배 강사로 오셔서 설교하시던 김동호목사님은 예수를 정말 잘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주님의교회는 1988년 한남동 여성청년교육원에서 창립되어 1998년 창립10주년에 정신여고 대강당(김마리아홀)을 신축, 학교에 기증하고 현재까지 대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 치고 교회의 모습조차 없는 무형의 교회입니다. 모임에 힘쓰고자 장소만 마련한 초대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는 강당만 크고 구석진 한쪽에 작게 보이는 사무실, 교회라는 유형의 흉내만 내고 있을 뿐입니다. 어찌 보면 높은뜻숭의교회 보다 더 먼저라고 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주일날 교회가 학교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차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운동장에 주차를 하지만 많은 차로 인해 혼잡하며 비 오는 날은 운동장이 손상될까봐 주변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한다고 합니다. 내 교회가 아니라서 불편하다는 느낌입니다.
주차된 자동차를 제가 운전미숙으로 접촉사고를 내고 차주와 만나서 보험관계 이야기를 나눈 후 예배당이 있는 강당으로 급하게 들어가는 순간 눈에 들어온 부착물이 있었습니다. 복도에 두레교회처럼 크게 패널을 전시해 놓지는 않았지만 교회역사, 역대 담임목사, 그리고 역대 부목사까지 소개한 패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교회역사와 역대 담임목사를 소개하는 교회는 많이 보았지만 부목사까지 소개한 교회는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학교 강당이라 여러 가지 화려한 치장를 해 놓지 못했지만 주님의 교회도 로비에는 차와 커피를 무료로 마시게 하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3, 4층 예배당은 많은 사람으로 거의 자리가 메워졌으며 강대상은 학교 강당무대라 그런지 포디움 2개 양 옆에 설교자, 사회자 좌석이 전부이고 정면 벽면에는 대형 스크린, 상단 현수막거치대에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는 표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평화! 관념적 단어가 아니고 전교인이 추구할 목적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줍니다. 박원호담임목사님은 안식년 휴가로 미국에 출타중이시고 여러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조광민전임목사님(부목사)이 ‘일어나 빛을 발하라’라는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지난주와 어제 부목사님이 설교하는 주일예배를 오래간만에 봅니다. 예전에 두레교회는 김진홍목사님이 출타중일 때 거의 부목사님들이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당시는 부목사님이 친근했었는데... 저는 새벽예배와 수요예배를 거의 참석하지 않아서 부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부목사님의 얼굴 조차 거의 모릅니다. 1,2,3부 예배 사회도 거의 사회 담당 목회자가 정해졌을 정도로 사회 보는 목회자의 얼굴만 기억합니다. 담임목사님이 외부 출타중일 때도 두레교회는 주일 설교를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드린 경우는 보았습니다. 뭐가 불안해서 그러는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중앙집권적인 체제는 버리고 동역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현재의 두레교회 분열 양상도 없었을 것입니다.
두 가지 새롭게 보이는 내용 보였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데 여름에 그 파송지에 봉사하러 가기를 원하는 성도들을 모집하여 파송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금년은 베트남, 헝가리 등 5개국에 파송한다고 한다는 내용과 헌금의 50%는 교회 외부에 사용한다는 교회재정 사용 원칙이었습니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 곳에 성도들이 함께 방문하여 봉사하는 프로그램은 성도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고취시키고 선교사님들의 고충을 함께 나누다는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두레교회의 선교, 어디에 선교하는지 누가 선교하는지 성도들은 잘 모릅니다. 관심이 없어서 일까요? 알려주지 않아서 일까요? 2월두레이야기에서 잠시 읽기는 했지만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은 아니였습니다. 다시 한 번 돌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재정의 50%를 외부에 사용하는 것은 유형의 교회건물이 없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건물을 유지하는데 쓰이는 재정을 아끼고 성도들이 헌금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선교, 구제, 교육에 쓰여 지는 것이 교회의 참 모습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단법인 섬김과 나눔을 설립하고 그 투명성을 외부 감독기관에서 감사를 받는 것이 교회로서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수많은 재단법인, 사단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 진정한 재정 투명성을 보장하는 곳이 몇 군데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언론에 보면 교회가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재정을 빼돌리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교회도 많이 보입니다. 사단법인 섬김과 나눔도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재정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회법 테두리에서 재정투명성을 감사받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사회 법안에서 재정 공개 요구 권한도 가능하고 의무도 주어지기 때문에 불법이 어느 정도는 걸러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의 교회는 출석교인이 많은 교회에서 교회 건물을 소유하지 않아서 이렇게 자유롭고 모범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두레교회가 한다리마을에 교회를 신축하고 건물을 소유하고 후임을 청빙한 것은 축복이 아닌 커다란 아픔의 시작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동산과 물질에 대한 아픔이었겠지요. 인창동 지하 두레교회는 축복이었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광림교회, 금란교회, 임마누엘교회(3형제의 교회), 충현교회, 왕성교회 등 한국교회에서 세습한 교회와 순복음교회 등 분란이 있는 교회의 대부분은 성전 건축이라는 미명아래 화려하고 부유한 건축물과 물질을 소유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09년 업무 때문에 퇴계로 명동성당 근처를 지나며 김수환추기경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줄을 서 있는 긴 행렬의 시민을 보면서 우리시대의 참 스승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종교는 달라도 김수환추기경, 법정스님, 한경직목사, 장기려박사 등 우리시대의 스승은 소유하지 않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분들을 존경했고 그 분들이 후대에도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머리 둘 곳이 없다던 예수님과 초대 공동체의 모습만 남고 화려한 건축물과 물질을 멀리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두레교회를 다시 한 번 그려봅니다.
첫댓글 귀감이 갑니다.
교회의 본질이 회복 되기를 바랍니다.
부럽군요
좋은 교회 순례를 하시는군요. 섬기는 교회를 두고 영양가 있는 교회 찾아 다니시는 디조님의 모습을 그리면서 왜 눈물이 앞을 가리는지... 두레교회의 교인이라는 거에 자부심을 가지고 다니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건지...
주님, 가슴메어 흐르는 이 눈물을 닦아주옵소서...
인창동 두래교회는 당시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저도 유랑생활을 빨리 끝내고 두레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죄송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동감입니다 그런 좋은 교회에서 좋은 성도 좋은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한국교회는 크게 한 번 바뀌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대로는 사라지거나 소수 종교로 전락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개혁하겠다는 이문장 목사는 지금 모습으로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ᆞ잘 읽었습니다
누구신지 한번뵙고싶네요
님의 글을 보면서.....과거를 돌이켜 저를 생각해 봅니다.
감사드립니다.......^0^
많은것을 깨닫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디조님의 순례가 바르게 다시 세워질 두레교회를 위해
귀하게 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