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광한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너무 늦어서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가혹하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 소설은 몸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3인칭 화법을 활용하였지만, 모든 것은 중심 인물인 필립 캐리의 인식을 한 번씩 거쳐가게끔 되어있다.느긋한 전개와 에피소드 중심의 구성이 특징인 이 작품은 캐리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를 추적하며, 그의 힘겨웠던 유년기와 학창 시절 (그는 안짱다리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신앙을 잃게 된 과정, 그리고 자기만의 힘으로 세상에 나아가려는 한 젊은이로서의 역경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캐리는 다른 인간들의 삶을 관찰하며 그들이 모두 고통 속에서 인색하고 부질없는 생을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자신의 경험 역시 그의 이런 냉소적인 진단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 인생의 파란을 대면하고픈 욕망과 철학에의 추구를 잃지 않는다.그의 관점은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분류를 거부하고 대신 다윈식의 인생관을 선호한다. 사실“선”과“악”이라는 단어는 사회가 개인을 그 틀에 끼워맞추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지, 인간 존재 자체로선 그런 구분이 아무 의미도 없지 않던가. 느슨하게 이어지는 이 소설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얻어낸 캐리의 스토아적인 결론은, 생각하는 인간만이 인생의 불규칙한 사건들의 미학 속에서 자유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ㅡ 필립 케어리'라는 한 절름발이의 남자이다. 이 책은 총 2권인데, 줄거리를 한 줄로 말하자면 필립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필립의 초등학생 시절부터 필립이 자라서 결혼하기까지의 내용이 나온다. 이 책을 보면 왠지 네이버 웹툰 '찌질의 역사'가 생각이 난다. '필립'과 '민기' 둘 다 연애에 있어서 고구마 100개는 처먹은 것 같이 답답하게 구는 게 비슷하다. 차이점은 민기는 자기가 쓰레기 짓을 많이 했고 필립은 쓰레기같은 사람이 꼬인다는 점이다. (물론 필립도 잘못된 행동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두 작품의 주인공들에게 애정이 가는 이유는 누구나 방황을 하고 잘못된 선택을 많이 해서가 아닐까 싶다. 청춘이라고 하면 도전과 열정이 떠오른다. 그리고 실수와 방황도 같이 뒤따라간다. 이 책은 그런 청춘을 보내는 필립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위로를 해주는 것 같다. 어떤 작품이든 제목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인간의 굴레에서'라고 제목을 지은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여기서 필립도 그러하다. 밀드레드나 크론쇼, 애설니 그리고 샐리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울고 웃고 아파하고 행복해했다. 우리의 감정은 그들에 의해 결정지어 질 때가 많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에게 인간은 필연적인 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제목을 인간의 굴레라고 지었다고 생각한다. 장면1 장면을 떠올렸을 때 가장 빨리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책을 읽으면서 제일 화났던 부분인 밀드레드의 필립 통수치기이다.
필립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장관리하고 필립에게 얹혀 살면서 딴 남자랑 여행까지 간다. 여기까지만 해도 화가나는데 심지어 필립의 집 물건을 다 칼로 찢고 망가뜨려 놓고 가다니...정말 내 앞에 밀드레드가 있다면 죽빵 한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일이 있어서 필립이 밀드레드에게 오만정이 떨어져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욕해놓고서 뒷부분에서 밀드레드가 나오는 것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일관성 있게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장면2 크론쇼가 준 페르시아 융단도 빼먹을 수 없다.파리에서 미술공부를 할 때, 필립이 존경했던 크론쇼는 한없이 나약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 한다. 필립은 크론쇼가 죽기 전 그에게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필립에게 페르시아 융단을 주며 이 것이 해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필립은 산전수전을 겪고 나서 어느 날 문득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ㅡ 인생은 양탄자의 무늬짜기다
세상은 정말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왜 안좋은 일은 항상 겹쳐서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도대체 언제쯤 행복해질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첫째, 필립은 태어날 때부터 보통 사람들에겐 없는 장애라는 선천적 굴레를 가졌습니다. 그는 발 하나가 기형이라,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야 하지요. 둘째, 아홉 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됩니다. 유년의 행복을 너무 일찍 ?빼앗긴 소년은 외로움이라는 굴레 떄문에 남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셋째, 십대의 대부분을 보낸 기숙사 학교의 간섭과 구속도 예민한 청소년기의 필립에게는 현실적 굴레였습니다. 넷째,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무작정 떠난 독실 유학에서 필립은 새로운 사상에 눈뜨며 그때까지 믿어 왔던 신앙을 오래된 외투처럼 훌훌 벗어던지죠.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환경에 의해 강제된 신앙은 하나의 굴레에 다름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섯째, 필립은 독일 유학을 끝낸 뒤 런던에서 회계 수습 일을 시작하는데,반복되는 사무에 금세 싫증을 느끼고 맙니다.
그는 무료한 일상이 라는 굴레를 간단히 풀러 놓고, 파리로 미술 공부를 하러 떠나 버립니다. 여섯째, 파리에서 만난 예술가들의 모순된 삶을 통해 예술에 대한 맹목적 열정은 허상에 지나지 않으며,그 허성에 갇혀 사는 것도 하나의 굴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일곱째, 화가의 길은 포기하고 런던에서 의대생이 된 필립은 밀드레드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불행히도 밀드레드는 허영심과 속물근성으로 가득 찬 여자로, 필립에게 큰 상처만 남기고는 떠나 버리지요. 그렇지만 정념의 불꽃이라는 굴레에 갇힌 필립은 그녀를 쉽게 잊지 못하고 노예처럼 그녀에게 매달립니다. 여덟째, 주식 투자 실패로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필립은 가난이라는 굴레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것을 깨닫죠. 그러고는 돈이란 경멸할 대상이기보다는 삶의 기본 조건이란 것을 인정합니다. 필립은 숨 돌릴 틈 없는 신산한 삶을 살아내면서 줄곧 한 가지를 갈구 합니다. 모든 굴레들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지는 것!
그렇지만 마침내 의사가 되어 경제적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숨겨진 삶의 의미를 좇아 자유로이 떠돌아 다니는 게 아니라, 평범하지만 진실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파리에서 만난 노인 크론쇼가 그에게 던졌던, 인생은 온갖 무늬의 페르시아 양탄자 일 뿐'이라는 말의 참뜻을 발견한 것이지요.그는 지난 인생에서 자신을 힘들게 했던 많은 굴레를 역시, 저주해야 할 삶의 고통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다채롭게 꾸며 준 양탄자 무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필립은 순수한 아가씨 샐리와 소박한 삶을 꿈꾸며 행복을 느끼고,소설은 끝을 맺습니다.소설 인생의 굴레에서는 주인공의 여러 가지 체험을 담고 있어 '교양소설'에 속하면서, 내용의 상당부분이 작가 서머싯 몸의 실제 삶과 겹치기 때문에 '자전적 소설'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서머싯 몸은 인간 내부의 모순성과 인생의 의미를 날카롭게 파헤친 작가고, 얼마 전 국내에 개봉된 영화 <페인티드 베일>의 원작자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영화의 제목입니다. 영국의 시인 셸리의 시구, "오색의 베일, 살아 있는 자들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하는데, 이 얘기를 듣고 뭐가 떠오릅니까? 바로 '페르시아 양탄자'와 '오색의 베일'의 공통점입니다.다채로운 인생을 비유하는데, 서머싯 몸은 '천 조각' 만큼 더 어울지는 것을 찾지 못했나 봅니다.
ㅡ 이 책이 이런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이러면 어떻고 또 저러면 어떠냐'라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양탄자에 무늬를 새겨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의 양탄자의 무늬는 단조롭고 지루한 무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아파해본 사람은 양탄자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새길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아파하는 것은 내 인생에 무늬를 더해놓는 과정인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경험이 있다.
그렇기에 양탄자의 무늬 또한 저마다 다른 것이다. 누구의 인생이 더 나은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다.그저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무늬의 양탄자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감수성이 나름 풍부해서 조금이라도 슬프거나 감동적인 것을 보면 눈물을 흘린다. 언제 울었는지 생각해보면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1화를 봤을 때도 울었던 것 같고 영화 '어바웃타임'을 보면서도 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