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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줘"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드릴께요."
그들은 이렇게 서로 사랑을 다짐했단다.
역사상 가장 잘 생긴 화가라는 평을 듣는 이탈리아 출신의 미남 화가와
여학생처럼 청순한 처녀 잔느 에퓨테른느.
모딜리아니는 선천적으로 병약했다.
조각을 하고 싶었으나 체력적으로나 지나치게 비싼 재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술적 성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생전에는 세상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그는 가난 속에 과음과 방랑을 일삼다가 몽파르나스의 로톤드(카페 이름)에서
눈동자도 머리 빛도 밝고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진 19살의 잔느를 만나게 되었다.
모딜리아니의 부모는 유태인으로 스스로 유태인임을 자랑스러워 했고
잔느의 집안은 독실한 카톨릭 집안이었다.
사랑했으나 부모들의 반대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채 잔느는 사랑하는 그를 따랐다.
한 모델을 대상으로 여러 점의 작품을 남겨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작가 모딜리아니
평생을 모딜리아니의 곁에서 모델이 된 여인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그의 아내 쟌느.
파리의 몽마르뜨나 몽파르나스지역에 모여 활동하던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 파리파) 사이에서도 로맨티스트로 유명했던 모딜리아니를
사랑했던 쟌느는 얼굴이 길어 슬픈 여인이라는 그만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원천이 되었다.
1919년 무렵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화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느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좋아진 상황과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모딜리아니는 작품에 대한 열정과 끝없는 음주벽을 놓지 못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잔느 에뷔테른느>(1919년작)는 이때에 그려진 것이다.
임신한 잔느의 모습은 왠지 처연하다. 그 눈동자 없는 눈은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담아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사진의 인물작품에서 눈동자를 표현하지 않은 점은 매우 특이한데 오히려 푸른색만으로
표현한 눈의 표정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영원으로의 응시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1920년 1월 겨울 어느날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되는 자화상을 완성시켰다.
(20세기 최고의 초상화가로 꼽히는 그이지만 특이하게도 자신의 자화상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는 얼음장 같이 찬방에서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에는 만삭의 잔느가 웅크리고 앉아 죽어가는 모딜리아니를 조용히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모딜리아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잔느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침대 주변에는
몇 개의 빈 포도주 병과 반쯤 얼어버린 정어리 통조림이 뒹굴고 있었다. 친구들이 달려와
이 모습을 발견하고는 곧 병원으로 옮겼으나 36세의 모딜리아니는 세상을 떠나 버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께요"라고 전설처럼 말했다는 잔느 에뷔테른느.
그녀 역시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자신의 양친의 집 6층 창에서 투신 자살한다.
그의 아기는 단 한번도 입 밖으로 울음소리를 토해내지 못한 채 부모의 뒤를 따랐다.
아마도 모딜리아니가 죽자 모든 생의 의미를 포기하고 그의 뒤를 따른 그녀의 순애보적 사랑이
바로 그의 모델이 되어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속에 녹아 우리는 그의 그림에 중독는건 아닐런지~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모딜리아니는 직설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아프리카 조각과 가면에서 영감을 받아 당시의 관습적인 공간개념과 원근법을 무시하고 형태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독특하고 절제된 조형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16세 무렵부터 앓아 왔던 결핵과 같은 질병으로 인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작업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당시 화상이었던 폴 기욤이 회화로의 복귀를 권유하여 그는 결국 조각가로서의 길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조각에 대한 미련은 원시 조각의 단순한 형태와 조각적 양감이 반영된 그의 회화에 나타나고 있다. 1919년에 그린 모딜리아니의 자화상_ 브라질 상파울로미술관 소장 Self-portrait, 1919, oil on canvas, São Paulo Museum of Art, Sao Paulo, Brazil Jeanne Hébuterne in Red Shawl_ 붉은 숄을 두른 잔 에뷔테른 잔 에뷔테른의 초상의 대표작으로 치는 이 작품도 이번 한국전시회에 오지 않았다.
-Amedeo Modigliani ◈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1917)
운명적인 사랑
1917년 7월 어느 날 모딜리아니는 가난 속에 과음과 방랑을 일삼다가
몽파르나스의 로톤드(카페 이름)에서 눈동자도 머리 빛도 밝고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진 잔느를 만나게 되었다.
이 숙명의 여인은 그 때 갓 열아홉 살이었고, 모딜리아니는
서른세 살이었다. 잔느는 그 동안 모딜리아니가 만난 모든 여인 중
가장 믿을 수 있고 헌신적이며 가장 순정적인 여자였다.
-Amedeo Modigliani ◈ Jeanne Hebuterne (1917-8)
한 모델을 대상으로 여러 점의 작품을 남겨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모딜리아니... 평생을 모딜리아니의 곁에서 모델이 된 여인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그의 아내 쟌느이다.
모딜리아니의 부모는 유태인으로 스스로 유태인임을 자랑스러워 했고
잔느의 집안은 독실한 카톨릭 집안이었다. 사랑했으나 부모들의
반대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채 잔느는 사랑하는 그를 따랐다.
-Amedeo Modigliani ◈ Portrait of Jeane Hebuterne,
Left Arm behind Head (1919)
20세기 초엽 인상주의 물결이 휩쓸던 유럽에는 많은 화가들이 파리에
모여들었다. 새로운 시각이 고정된 형태나 관념을 탈피해 다양한
형태(양식)로 시도되는 시기였다. 고전적인 초상화의 틀에서 벗어나
왜곡된 얼굴의 형태(유달리 길다란 목과 얼굴)속에서도 우수에
찬 표정에 담겨져 있는 인물의 심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 파리파) 사이에서도 로맨티스트로
유명했던 모딜리아니를 사랑했던 쟌느는 `얼굴이 길어 슬픈 여인'
이라는 그만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원천이 되었다.
이러한 목이 길쭉한 인물 스타일은 아프리카 원시 조각이나
모딜리아니가 활동하던 시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일본의
우끼요에서 영향을 받고, 세잔느와 입체주의가 가미된 그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Amedeo Modigliani(伊,1884-1920)◈ The Servant Girl
(La jeune bonne,1918)
농촌에서 도회지로 온 처녀들...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녀라는
직업이다. 하루 종일 허름한 옷차림으로 근면하게 일 해야만 되는게
이들의 인생이었다. 특히 유럽인들의 사람 씀씀이는 고약할 정도로
가차 없고 지독하다. 그러나, 그녀들은 이러한 일들,어린애를 돌보고
주부의 잔심부름을 도맡고 하는 것을 묵묵히 감당해 낸다.
이들을 프랑스 말로 본느라고 부른다.
인생의 뒤안길에서 살고 있는 애환의 표정들, 모딜리아니는 이러한
이웃을 사랑했고 그가 즐겨 그린 서민의 한 표정을 그녀는
대표하고 있다. 이 모델은 카뉴슐멜 출신이며, 마리훼레라는
이름의 처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농부였으며, 이 젊은 처녀의 삶을 모딜리아니는
공감했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Amedeo Modigliani ◈ Little Girl in Blue (1918)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와 쟌느 사이에 여자 아이가 생기기 얼마 전에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웨르나의 해석에 의하면 모딜리아니는 몽파르나스의 이웃에
살고 있는 하층 계급의 어린이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꼬마아이는 고운 옷을 입고 있는데, 아마 단벌 옷일 것이다.
소녀의 얼굴은 밝지도 쾌활하지도 않다.
그녀의 표정은 훨씬 연상의 다른 모델들의 경우처럼 쓸쓸하고
체념마저 느껴진다. 이 소녀는 천진 무구하지만 애처로움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는 화면을 통해 우리는 모딜리아니의 진심을
엿볼 수 있으며, 서민에 대한 깊은 애정을 함께 느낄 수 있다.
-Amedeo Modigliani(伊,1884-1920)◈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1919)
이그림은 2004년 소더비경매에서 3130만달러(347억6000만원)가
넘는 가격에 익명의 입찰자에게 팔렸다.
너의 영혼을 알게될때 눈동자를 그릴 수 있어.. 1919년 무렵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화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느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좋아진 상황과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모딜리아니는 작품에 대한 열정과 끝없는 음주벽을 놓지 못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잔느 에뷔테른느;(1919년작)는 이때에 그려진
것이다. 임신한 잔느의 모습은 왠지 처연하다.
그 눈동자 없는 눈은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담아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사진의 인물작품에서 눈동자를 표현하지 않은 점은
매우 특이한데 오히려 푸른색만으로 표현한 눈의 표정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영원으로의 응시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평론가 웨르나의 해석
예술가들의 사랑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어떤 예술적 작품을 탄생시켰을까? 현재 고양문화재단 아람미술관에서는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연인이자 예술가적 동반자로서의 삶과 작품을 보여주는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 展>이 열리고 있다.
가느다란 긴 목에 슬프고 애잔한 듯 보이는 눈빛의 여인 초상으로 잘 알려진 화가 모딜리아니는 우리에게 친숙하고, 또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관계만큼 모딜리아니(1884∼1920)와 잔 에뷔테른(1898∼1920)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 展>은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작품들을 함께 보여주는 전시로 모딜리아니의 유화 및 드로잉 45점, 잔 에뷔테른의 유화, 과슈, 아크릴, 드로잉 65점과 두 화가의 공동 드로잉 1점,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엽서와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번 전시의 작품과 사료들이 근년에 알려진 잔 에뷔테른의 개인 컬렉션으로 잔 에뷔테른에 관한 새로운 자료의 발굴을 통해 얻은 중요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잔 에뷔테른의 소묘, 수채화, 유화작품, 그리고 잔 에뷔테른과 가족들의 귀중한 미공개 사진이 다수 출품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는 귀중한 컬렉션이라고 하겠다.
1906년, 유럽 전위예술의 중심지이자 20세기 예술의 토대가 마련되고 있던 파리로 이주한 모딜리아니는 남들과는 다른 스타일로 작가적 길을 걷는다. 당시 유행하던 미술 사조나 다른 사람들의 관점과는 다르게 미술관이나 화랑, 전시회 등을 통해 그림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면서 독립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는 당대 브랑쿠시의 조각, 조형에 있어서 혁신을 이루었던 세잔과 피카소의 청색 시대의 작품, 그리고 이탈리아의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여인상의 영향을 흡수하고 발전시켰다. 작품 <클라라의 초상>(1915), <부인상(C.D. 부인)>(1916), <여인의 초상>(1918) 등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모딜리아니는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를 만나 한때 그의 권고에 따라 조각에 대한 새로운 의욕을 불태웠다.
모딜리아니의 주변에는 늘 여자가 끊이지 않았고 언제나 술에 절어 있었다. 워낙 병약하게 태어난 데에다 마약에까지 손을 대서 결국 서른다섯이라는 짧은 나이로 생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소식을 들은 잔 에뷔테른은 당시 임신 8개월이었는데 모딜리아니가 죽은 지 이틀 뒤 친정집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자살과 관련된 충동을 그린 작품으로는 문 밖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고 침대 위에는 자신을 그린 수채화인〈죽음〉과 <자살>이 있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그림으로 그린 그녀…. 참으로 슬프고도 비극적인 사랑이 아닌가.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경우처럼 미술사의 서술이 남성 위주로 쓰인 까닭에 잔 에뷔테른의 작품에 대한 자료나 평가 역시 잘 이루어지지 않은 면이 있다. 그러나 잔 에뷔테른의 삶과 예술이 베일 속에 가려졌던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의 자살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1920년, 잔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의 죽음 직후에 자살을 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던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언급을 피했고, 이는 ‘잔 에뷔테른’이라는 예술가의 자취를 감추게 만들었다.
잔 에뷔테른은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로 알려졌지만, 제대로 된 한 장의 사진도 공개된 적이 없었다. 단지 모딜리아니의
작품의 앞면과 뒷면에 각각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작품 <기모노를 입은 여인(어머니 외독시의 초상)&과일과 꽃>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브르타뉴 여인&강가>가 무척 흥미롭다.
이들 작품뿐만 아니라 당시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엽서들도 시간을 할애해 꼼꼼하게 읽어 보길 권한다. 당시 그들의 상황과 한번쯤 열렬하게 편지를 주고받았던 우리들의 연애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또한 잔 에뷔테른이 그렸던 넬 도프의 소설 《기아와 비탄의 날들의 삽화를 위한 밑그림》(1915) 삽화용 그림과 그녀가 남긴 머리카락 등도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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