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죽음
(창 23 :1-20)
주요내용 - 천국 안식론
지난 시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리운 고향 소식을 듣게 하신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곧 지상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듣게 되는 천국의 소망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장차 떠날 이 세상에 소망 두지 말고 항상 말씀과 성령으로 천국의 소망이 충만해야 합니다.
오늘은 사라의 죽음입니다. 성경이 참 신비하지요?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시더니 이제는 사라가 육신의 생을 마치고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됩니다. 이 상황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그럼 사라의 임종과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헷족속 에브론의 밭을 산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을까요? 먼저 문자적인 의미로서 이 이야기는 창12:7의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첫 사건이라는 점에서 아주 의미가 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증명이 되도록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가나안은 천국의 예표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밭을 산 것은 우리 주님께서 자기 피 값으로 천국을 예비하심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은 가나안의 중심부에 아브라함의 소유의 깃발을 꽂은 것으로 천국이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의 것이 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라는 교회의 예표요 우리 성도의 예표입니다. 이런 사라가 거기 장사됨은 예수 믿는 성도들이 천국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것을 시사해 줍니다. 그런데 천국이란 이 지상에서도 믿음 안에서 현재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본문은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 천국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예수 안에서 온전히 죽어져야 합니다.
1절에 “사라가 일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가 죽자 슬퍼하며 애통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온전히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안식을 경험합니다. 주일학교 교사가 예수 믿고 천국 가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천국에 가지요? 돈으로 가나요? 아니오. 권세로 가나요? 아니오. 노력으로 가나요? 아니오. 그럼 어떻게 가지요? 교사는 지금 예수 믿으면 갑니다 라는 대답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불쑥 "죽어야 가요" 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와 하고 웃었지만 거기에 진리가 있어요. 진정 죽어야 갑니다. 내가 살아 있으니 마음에 폭풍이 일고 마음이 지옥처럼 되는 것이지 죽으면 안식입니다. 우리 성도는 육신의 초상집 분위기는 필요가 없지만 신앙적으로는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별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예수 안에서 죽었다 죽었다 하는데 조금도 죽은 것 같지 않는다면 그것은 별세의 삶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죽으면 소용이 없어요. 불교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념무상의 죽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사라는 어디서 죽었나요? 2절에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 아르바에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헤브론은 먼저 ‘연합, 동맹’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거기서 죽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죽음이어야 합니다. 다음에 헤브론의 옛 이름을 살펴보면 기럇 아르바인데 바로 거기서 죽어져야 하는데 그 의미는 ‘네 구역의 성읍, 네 도시’입니다. 이 네 도시란 무엇일까요? 이 네 도시의 4는 성경에서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사라가 헤브론 곧 기럇 아르바에서 죽었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되 이 세상과 죄에 대하여 죽는 그런 죽음이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우리가 죽는다 죽는다 해도 달리 죽으면 안 되고 이 죽음이어야 해요. 그렇지 않고 도덕이나 수양이나 다른 것으로 말미암아서는 약간의 도움은 될지언정 천국은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갈6:14에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참 죽음을 선사할 수 있지 달리는 결코 죽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죽을 때만이 우리 삶에 참된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2. 천국을 누리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3-4절에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사하기 위해 헷족속에게 땅 팔기를 간청하는 장면입니다. 가나안에는 여러 족속들이 살고 있었지만 가나안 땅을 헷족속의 땅이라고 일컬을 만큼 헷족속이 가나안의 주요 거민입니다. 그래서 헷족속이 있는 땅이 가나안이요 가나안 땅이 바로 헷족속의 땅으로 불리웠습니다. 이 거민들의 도움 없이는 사라를 장사하지 못해요. 이처럼 우리가 복음으로 보면 예수 안에서 죽었지만 어떤 분의 도움이 없이는 죽음을 경험할 수가 없어요. 그 분이 누구실까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헷족속의 지배 아래 가나안이었듯이 우리도 예수님 성령님의 지배 아래 천국이요, 그들이 돕지 않으면 안될 귀한 매장지는 바로 옛사람을 장사하는 성령 세례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 안에서 죽었지만 성령 세례로서 아주 십자가 아래 매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늘 성령으로 나의 옛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롬8:12-13에도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했습니다. 그 때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되며(계14:13) 심령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는 것입니다(롬14:17).
3. 천국을 누리려면 하나님을 잘 경외해야 합니다.
사실 같은 말인데 다각도로 교훈함입니다. 5-6절에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했습니다.
여기 헷족속이 아브라함을 “내 주여”라고 불렀던 극존칭과 또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불렀던 대답에서 그들이 아브라함을 크고 높게 보았는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아브라함 역시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자세가 없었다면 헷족속이 결코 자기들 중에 땅을 아브라함에게 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을 누리려면 우리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은혜 받으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 없이 어떻게 은혜가 임하고 은혜 받지 않고 어떻게 천국을 누립니까? 이 자세가 잘되어 있지 않으면 주신 은혜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약4:6에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4. 천국은 시험에서 승리한 사람이 소유합니다.
8-9절에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아브라함은 아무리 헷족속들이 자기에게 호의적이어도 돈을 주고 합법적으로 사지 않으면 시대가 지나면 대대로 상속할 수 없음을 알고 합법적인 절차와 대가를 지불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일차로 우리 주님께서 천국을 자기 피의 공로로 예비하심을 시사합니다. 이차로는 우리가 우리가 시험을 이김으로 천국을 누리게 됨을 시사해줍니다. 천국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셨고 계시록에도 이기는 자가 받는다고 했습니다. 마5:10에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것임이라”, 야고보도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했고, 베드로도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4) 했습니다. 그러므로 언짢은 시험이 왔다고 싫어하지 말고 나에게 변장된 축복이 왔다고 기뻐하면서 믿음으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이기고 이길 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사 천국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럼 아브라함이 샀던 밭의 임자는 누구입니까? 소할의 아들 에브론이라고 했습니다. 이름의 의미를 분석해 보면 소할도 ‘황갈색’이라는 뜻이요, 에브론도 ‘황갈색’이라는 뜻입니다. 이래도 황금 저래도 황금 대를 이어 보배인 이들은 무엇일까요? 이들이 보배되어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크게 입혔는데 그들은 바로 성도들에게 신령한 보배를 안겨다 주는 순경과 역경이라는 축복입니다. 교회를 통한 큰 은혜도 은혜이지만 고난도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에브론에게 지불한 은 사백 세겔은 무엇일까요? 역시 은은 통화수단으로 구속의 상징인데 구체적으로 400은 4에 10을 자승한 것으로 4가 세상이라면 10은 온전수 구비수입니다. 그런데 제곱했으니 겉과 속이 온전하다 즉 칭의와 성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상징입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는 교훈입니다. 이 구속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죽으면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면서도 예수 안에서 죽어지면 천국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죽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령으로 죽어집시다. 그래서 참된 안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