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이 들려준 극락의 바람
건령산 자락을 따라 천천히 오르는 길이었다. 도심의 소음이 하나둘 뒤로 밀려나고 숲의 숨결이 가까워질수록 마음도 조금씩 느려졌다. 여름 햇살은 뜨거웠지만 산바람은 그 열기를 품어 안은 채 부드럽게 흘렀다. 그 길 끝에서 만난 곳이 칠곡 지천면의 극락사였다. 이름처럼 극락은 멀리 있는 세상이 아니라 잠시 마음을 쉬게 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찰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나를 맞아 준 것은 오래된 반송이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굵은 줄기는 세월을 견디며 비틀어졌고, 사방으로 뻗은 가지는 하늘을 향해 수없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나무껍질마다 시간이 새겨 놓은 주름이 선명했다.
수령 150년. 경상북도 보호수라는 안내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나무가 품은 생명의 기운이었다. 사람도 오래 살면 얼굴에 인생이 새겨지듯, 나무 역시 살아온 세월을 줄기와 가지에 남겨 두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반송 아래에 서 있었다. 햇살은 가지 사이를 비집고 내려왔고 바람은 솔잎을 흔들며 조용한 노래를 불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무 앞에서 오히려 마음속 소란이 먼저 잠잠해졌다. 오래된 것은 말이 적다. 대신 존재만으로도 많은 것을 들려준다.
극락사의 풍경은 화려하지 않았다. 잘 다듬어진 잔디와 오래된 돌담, 소박한 전각들이 건령산 숲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사람의 손길보다 자연의 시간이 더 많이 머문 공간이었다. 경내를 걷다 보니 분홍빛 배롱나무가 눈길을 붙든다.
여름 내내 피고 또 피는 꽃답게 뜨거운 햇살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검은 기와와 초록 숲 사이에서 피어난 붉은 꽃송이는 산사의 고요함 속에 작은 웃음을 피워 놓고 있었다. 꽃은 화려했지만 결코 요란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행자의 미소처럼 절제된 아름다움이었다. 처마 끝에는 작은 풍경 하나가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산바람이 스치자 맑은 종소리가 허공으로 번졌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사람의 말은 귀에 남지만 풍경 소리는 마음에 남는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극락사의 하늘은 유난히 넓었다. 푸른 하늘 위로 흰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그 아래에는 오래된 석탑이 묵묵히 서 있었다. 수많은 계절을 견디며 그 자리를 지켜온 석탑은 시간의 무게를 말없이 품고 있었다.
돌은 침묵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삶을 살아가지만, 돌은 움직이지 않음으로 시간을 견딘다. 그래서 오래된 탑 앞에서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추게 된다. 사찰 한편에는 『몽산화상육도보설』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조선시대 불교 사상을 담은 귀한 목판본이 이곳에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극락사가 단순한 산사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함께 살아 있는 공간임을 말해 주었다.
문화유산은 박물관 안에서만 숨 쉬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숲과 바람, 예불 소리와 함께 살아 있을 때 더욱 깊은 생명을 얻는다. 높은 곳에 오르니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수국이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있었고, 잘 다듬어진 잔디와 소나무가 조용한 풍경을 완성하고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았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정원이었다.
극락사에서는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른다. 바람도 천천히 불고, 구름도 천천히 흘러가며, 사람의 발걸음도 어느새 느려진다. 우리는 늘 빨리 가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산사는 가끔 멈추는 법을 가르쳐 준다. 서둘러 올라온 길보다 천천히 내려가는 길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절을 나서며 다시 반송을 돌아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든든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나무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오래도록 그 반송을 기억할 것 같았다.
삶은 어쩌면 높은 곳에 오르는 일이 아니라,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키며 깊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건령산 숲을 품은 극락사는 그 사실을 한 그루 반송과 한 줄기 바람, 그리고 한 번 울린 풍경 소리로 조용히 들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