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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다가오는 줄은 알지만
몹시도 마음을 잡기 어려운 목사 후보생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분주하게 정신없이 지내다가
막상 시험지를 대하고 나니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해버렸습니다.
게다가 선택형은 하나도 없고,
전부 단답형이거나 논술형이 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시험지에 이렇게 답을 적었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
1번부터 20번까지 답을 똑 같이 적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자기가 대견스럽기까지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발하고, 영적이기까지 한 답을 적을 수 있지
멋진 답변에 시험감독관님도 감탄하실 거야!
그리고 기분좋은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갔습니다.
며칠후 시험지에 대한 결과통보 우편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합격
당신은 불합격”
하나님은 다 아신 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우리의 삶을 두렵게 하나요?
우리의 삶을 안도하게 하나요?
우리의 서운함의 눈물을 딲아주나요?
“참새 한 마리도 예수님 몰래 떨어지는 일이 없고,
그분 몰래 아무도 머리 숙여 기도 할 수 없다.
그분께서 어느 곳에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흘러내리는 괴로운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다 주시하신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을
결코, 결코,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한 대형 회사 건물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청소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아주머니의 하루는 새벽 4시 반에 시작됐습니다.
아직 직원들은 꿈나라에 있을 시간, 조용한 복도를 걸으며 쓰레기통을 비우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바닥을 닦았습니다.
사람들이 출근할 때쯤이면 건물은 언제나 깨끗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 깨끗함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인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바닥에 커피를 흘려도 누군가 치워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습니다.
퇴직하는 날, 아주머니는 조용히 사물함을 정리하고 아무도 모르게 떠나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 방송이 울렸습니다.
"잠시 모든 직원들께서는 1층 로비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려가 보니, 대표이사와 직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대표이사가 꽃다발을 들고 아주머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매일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저는 매일 아침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흘리신 땀과 수고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오늘까지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분 때문입니다."
순간 로비에는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아주머니는 꽃다발을 꼭 안은 채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아무도 내 수고는 모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20년의 모든 피곤함이 다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여러분도 사람들이.. 가족이.. 상사가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아 서운했었던 적 많이 있으시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서운함의 연속입니다.
밤늦게까지 가족을 위해 애썼는데 당연하게 여기고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합니다.
직장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지만 인정은 다른 사람이 받고,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섬겼는데 오해를 받고, 사람들 앞에서 눈에 띄게 사역한 사람은 인정받아 장로가 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서운함은 쌓이고, 섭섭함은 상처가 되며, 상처는 어느새 시험이 되어 우리의 믿음까지 흔들곤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주님께서 아십니다.
주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4)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과 자람을 기록하지만 요한복음은 위대한 하나님의 계시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이 기별을 듣고 요한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 두 제자는 누구일까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요 1:40)
또 다른 제자는 누구일까요?
우뢰의 아들에서 사랑의 제자가 된 사도 요한은 자신을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요 19:26)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요 20:2)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요 21:7)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요 21:20)
자신의 이름을 겸손히 숨깁니다. 또 한 제자는 바로 사도 요한 자신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안드레는 형제 베드로를 찾아서 주님을 소개합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요 1:41)
다음날 예수님은 빌립을 만나 직접 명령하십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 1:43)
어떻게 그 말씀에 빌립은 즉시 예수님을 따르게 되나요? 그 이유를 우리는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에 대해 설명하는 구절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5)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라는 표현은 무엇입니까? 바로 구약 성경을 말합니다.
이 말은 한마디로 평소에 빌립과 나다나엘이 구약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구약이 예언하고 묘사하는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간절히 품고 있었기에, 메시아가 실제로 나타났을 때 성경의 기록을 대조하며 곧바로 알아본 것이죠.
"성경을 통해 예수를 미리 알고 있지 못하면, 그분이 직접 나타나도 못 알아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이 계속 그 내용입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를 만나는 평소의 경험이 없으면 실제로 그분이 와도 모릅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은 성경이 제시하는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 함께 나누며 소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런 말씀 연구 자리를 갖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 정작 주님이 오셔도 초림 때 유대인들처럼 모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의 반응은 의외입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합니다. 나사렛은 당시 변두리의 보잘것없는 동네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험한 시골 동네에서 메시아가 나올 수 있겠느냐"며 나다나엘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죠. 성경 예언에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자 빌립이 하는 대답이 무엇입니까? "와서 보라"고 합니다. 이 공식이 똑같이 반복되죠. 39절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와서 보라" 하셨고, 46절에서는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Come and see)"고 합니다.
이것은 지적 인식으로만 끝내지 말고 직접 와서 경험하라는 뜻입니다. 신앙 세계는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본인이 직접 와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체험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는 표현처럼,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설명만으로 다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단계를 건너뛰어 제자를 부르실 때 "와서 보라"고 초청하십니다.
와서 보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뭐라고 하시는가 하면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십니다. 이 표현은 엄청난 극찬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맨 처음 나오는 곳이 어디죠? 창세기 32장 27-28절입니다. 옙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야고보에게 천사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묻고 그가 "야곱이니이다" 하니,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라고 하신 성경 최초의 기록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엘'은 하나님이고 '이스라'는 본다는 뜻이 있어서 '하나님을 본 자' 혹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로 해석됩니다. 야곱의 인격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어진 이름이고, 그 후손들이 조상의 이름을 따서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죠.
그런데 야곱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전체 역사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실패와 실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여기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걸어오는 것을 보시면서 창세기 32장의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야곱과 씨름하며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던 그 천사가 바로 성육신하기 이전의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역사상 최초로 부여하셨던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다나엘을 보시며 "내가 그때 야곱에게 이 이름을 주면서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 되기를 바랐는데, 바로 그런 사람이 여기 오는구나" 하고 알아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또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그 한마디에 나다나엘은 무너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의 자리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무화과나무 아래’는 단순히 그늘에서 쉬는 장소가 아니라,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자리였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눈물과 탄식, 메시아를 기다리며 드리던 간절한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그의 눈물과 탄식, 외로움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만 주님은 이미 다 보고 계셨고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겉모습만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도 모르는 새벽의 눈물도, 말 못 할 고민도, 가족을 위한 기도도, 사역의 부담도, 생계를 위한 몸부림도 모두 보고 계시며 이렇게 말하십니다.
“내가 다 알고 있단다”
우리는 금장 잊혀질 사람들의 인정 때문에 흔들릴 때가 많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 알고 있다."
이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눈물로 드린 기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믿음의 걸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섬김.. 하나님은 하나도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 절망 가운데서도 무화과나무 아래로 나아간 나다나엘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앞에 머무는 사람이 되어 "내가 너를 보았다" “내가 너를 안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새 힘을 얻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이 겪는 고통을 외부인의 시선이 아닌 '내부자의 경험'으로 아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울 때, 주님은 단순히 '울지 마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아픔을 안다'**며 곁에 앉아 함께 우십니다."
- C.S. 루이스
"당신이 외로울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기도하시며 가장 깊은 외로움을 경험하셨습니다. 당신이 눈물 흘릴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무덤 앞에서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눈물 흘리셨던 주님이 당신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몸소 겪으셨기에, 오늘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아무도 모르는 제 눈물과 기도, 수고와 아픔까지 모두 알고 계심을 믿습니다.
사람의 인정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확신으로 오늘도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게 하옵소서.
"내가 너를 보았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날마다 듣게 하시고, 그 위로와 힘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zkaJx53FYFk?si=7z5s8T3YFf358_ZB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배반당하셨던 주님은
당신의 아픔을 아십니다.
자신을 알아 주는 이
하나없는 이 세상에
33년 반을 사셨던 주님은
당신의 고독을 아십니다.
십자가에서
뼈마디 마디 마다
고통하셨던 주님은
당신의 눈물을 아십니다.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큰 절망을 경험하셨던
주님은
당신을 위로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새힘을 누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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