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要塞)
언젠가 지인들과 함께 군위의 화산산성에 갔다. 아래쪽 도로에서 7km의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그곳에 갈 수 있었다. 그곳은 해발 800m의 고지로 천혜의 아름다운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에 왜군의 침입에 방어선을 구축한 산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전망대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풍광이 아름다웠으며 멀리 군위 댐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래쪽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전원주택이 들어서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곳에 마을이 생겼을까 싶었으며, 문득 지난 추억이 떠올랐다.
오륙 년 전에 남미 지역을 순례했다. 멕시코 성모님 발현지 과달루페를 거쳐 아르헨티나의 이구아수 폭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페루의 쿠스코에서 80km 떨어진 마추픽추에 기차를 타고 갔다. 그곳은 해발 2,500m 고지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갔다. 옛날 15세기 잉카문명의 제국이었다.
그곳은 하늘에서만 볼 수 있는 천혜의 요새였다. 그런데 스페인의 식민지 개척으로 침략당하여 도시가 사라졌으며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하늘을 나는 콘도르가 휘휘 날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고 믿고 있다. ‘엘 콘도르 파사’(철새는 날아가고)라는 노래가 널리 알려져 부르고 있으며 70년대 대학가에서 즐겨 불렀다.
또 한곳이 기억 너머에서 다가온다. 이스라엘의 마사다 유적지이다. 그곳은 헤롯왕이 제2의 궁전으로 지어졌다. 그곳은 사해 부근에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기원후 70년에 이스라엘은 로마항쟁에서 패하여 조국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맞았다. 그러나 끝까지 조국을 지키겠다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그 요새에서 버티었다.
로마 군사는 침공하였으나 깎아지를듯한 절벽을 넘을 수 없어 실패하고 돌아갔다. 다시금 재정비하여 유다인 포로들을 동원하여 절벽에 비스듬히 흙벽을 쌓아 올라갔으나 아무도 없었다. 이스라엘 그들은 붙잡혀 종이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고 모두 자결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곳은 조상의 숭고한 얼이 깃든 유적지로 이스라엘의 국민이면 누구나 한번은 찾는 곳이다.
그 어떤 나라도 천 년을 버티지 못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하늘의 유일신을 믿고 지키는 신앙은 이천 년을 지켜왔다. 그것은 믿음의 무장으로 철옹성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믿음은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그 너머 이상의 세계이다. 믿음으로 무장된 요새는 어떤 것에도 뚫리지 않으리라.
화산산성을 둘러보면서 요새의 의미를 되새겼다. 세상 풍파의 침공에 나를 지키는 ‘요새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곰곰이 짚어보니 신앙이 아닐까 싶다. 지천명에 이르러 삶의 벽에서 헤쳐나옴도 삶의 궤도를 ‘신앙’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또 불치라고 알려졌던 암초를 만나 좌초했을 때도 믿음이 지켜주었다. 금성철벽과 같은 요새를 튼튼히 하기 위해 믿음의 성을 쌓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