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36]『전라도 천년사』 무엇이 문제인가?
전라도全羅道라는 지명이 이 땅에 정착된 것이 1018년(고려 현종 9년). 당시 호남의 큰 고을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었답니다. 조선 팔도八道중 두 번째로 생긴 경상도慶尙道 지명이 1314년에 생겼으니 296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하여 2018년 <전라도 1천년>을 기념하는 ‘기똥찬 작품’이 『전라도 천년』(김화성 글, 안봉주 사진, 맥스교육 2018년 발행, 367쪽, 17000원)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전라도 출신이 아니어도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읽어보시면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강추! 허나 그 땅은 역사이래 그대로 있었을 것이므로, 당연히 5천년이 넘었겠지요.
그런데, 전라남북도와 광주광역시가 사학자 213명을 중심으로 편찬위를 구성하여 5년에 걸쳐 만든 『전라도 천년사』라는 거창한 책(2만쪽 34권, 자료집 6권)이 반포를 앞두고, 전라남북도의 시민단체들이 ‘역사를 왜곡했다’고 들고 일어나 제동이 걸렸습니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된 내용은, 옛 마한과 백제때의 전라도 남원, 장수, 해남- 강진 그리고 구례-순천의 지명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술된 4세기 ‘야마토 왜倭’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지배했다는 ‘잘못된 역사의 지명’을 그대로 비정했다는 것입니다. 남원은 기문, 장수는 반파, 해남-강진은 침미다례, 구례-순천은 사토였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알고 들불같이 일어나 만든 긴 이름의 단체가 <전라도 오천년사 바로잡기 500만 도민연대>이고, 박형준이라는 분이 상임집행위원장이더군요. 이들은 소위 ‘강단사학자’들이 엉터리 <임나일본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바탕이 된 『일본서기日本書紀』를 그대로 인용한 것은 ‘식민사관植民史觀’이 아니냐는 것이며, 그 ‘저의底意’가 무엇이냐며 거세게 따지고 들더군요. 어제 KBS전주방송에서 양쪽의 입장을 대변하는 집필진 대표교수와 박형준 위원장이 대담을 벌이는데, 틈을 좁힐 수 없을만큼 날이 서있었습니다.
문제는 일파만파, 호남지역의 국회의원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역사왜곡을 바로잡으라며 회견을 갖고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회견문에 의하면, 고대사 기술과정에도 고조선의 영토를 한반도로 국한하고, 백제 근초고왕이 야마토왜에 충성을 다했으며, 일본의 백제 지배를 공인하는 듯하다는 것입니다. 집필진들은 하나같이 숲을 보지 않고 나무를 본다는 식으로 시비를 위한 시비라며 결코 식민사관에 입각한 게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더군요. 논란의 본질은 모르겠으나, 문제는 톡톡히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편찬위가 공람기간을 7월까지 늘려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듯했습니다.
이러한 때, 임실군의회와 시민모임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인 이덕일 교수를 초청, <백제-가야를 중심으로 한 고대사>라는 주제의 특강을 지난 월요일 임실문화원에서 가졌습니다. 이 교수 역시 시민모임의 주장과 같은 입장인 듯했습니다. 초여름 비가 엄청 쏟아지는 데도 전라도 각지(해남, 김제, 진안 등)에서도 소문을 듣고 참석, 100여명이 진지하게 경청을 하더군요. 저는 이런 자리는 꼭 참석해야 한다며 고교 친구를 꼬셨는데, 정작 강의시간 내내 졸았습니다(그전날 잠을 거의 못잤거든요), 하지만 내용은 유튜브와 신문 기사 등을 통해 파악했지요. 흐흐. 시종일관, 참석자들의 질문도 진지하고 심각하더군요. 김제에서 오신 분은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한 ‘금金수탈’과 ‘전북 5개군민 고사枯死작전’의 진상을 아느냐며, 이런 내용이 <전라도 천년사>에 들어가야지, 엉뚱깽뚱하게 ‘야마토왜’가 전라도를 지배했다느니, 이런 말도 안되는 것을 쓰면 되겠냐며 흥분하여 말문조차 막히더군요. 정말 웃기는 것은, 요즘 정치판처럼 말들이 전혀 정제되지 않고 거치는 게 문제입니다. 집필진 교수는 아예 “(독도가 다케시마냐는 등 무슨 저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몰아치고, 시민단체는 “(식민사관이 아니다. 전체를 보라를 말에 대해) 사탕발림”이라는 단어를 쓰더군요. 같은 말이래도 가짜뉴스, 사탕발림, 이렇게 원색적으로 공격해대면, 어디 이래서야 논쟁이 되겠습니까? 서로 막가자는 것과 다름 없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이 문제는 지금 전라도의 ‘뜨거운 감자’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관(광역 자치단체)에서 의욕적으로 벌인 일이 우리 '현 정부의 대일 외교관'과 맞물려 어쩐지 믿음직스럽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회에 <일본서기>라는 책에 나오는 수많은 ‘가짜 사실史實’과 ‘식민사관의 탄생과 진행과정 그리고 최근 일본 우익들의 막가파식 흐름’에 대해서도 공부해봐야 할 것같더군요. 이덕일 교수 특강 중 가장 돋보이는 PPT는 '5세기경 백제의 영역 지도'였습니다. ‘대륙백제大陸百濟’ 를 들어보셨나요? 중국 산동성 일대가 전부 백제의 땅이었고, ‘일본백제日本百濟’도 있었습니다. 지도만 보아도 민족적 자존심이 솟구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억해야 할 PPT중 하나는, 우리의 역사를 왜곡한 식민사관을 만들어 이 땅에 퍼트린 일본 역사학자 4명의 ‘쌍판때기’였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역사’에 대해 너무 모르고, 무관심합니다. “역사를 모르면 민족의 미래가 없다”는 말은 영원히 진리일 것입니다.
후기: 시골(농촌지역)에서의 문화향연은, 이런 명사들을 초청하여 귀한 특강을 갖는 것이 거의 유일할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준비가 소홀하고 접대예절이 없는 듯하더군요. 강의시간 이쪽저쪽에도 터져나오는 핸드폰 신호음은 어떻게 할까요? 강의 직전, 주제를 바꿔달라는 것은 아예 생떼이고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요. 제가 다 창피한 기억이 언젠가 순창문화원 인문학특강이었습니다. 호사카 유지라는 일류 교수에게 제가 왜 미안해 해야 할까요? https://cafe.daum.net/jrsix/h8dk/1269
이덕일 교수 특강에도 마이크가 내내 말썽을 폈습니다. 특강 내용에 신경을 써야 할 강사가 연신 마이크를 톡톡거리게 하는 것은 명백한 민폐이지 않나요. 그러니 ‘촌놈들 수준’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그래도 임실군의회와 임실시민모임이 ‘큰일’을 했습니다. 이런 특강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칭찬해줘도 부족하지 않을 일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