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전통철학과 현대철학의 차이는?
김태길은 수필집 제목을 ‘껍데기는 가라’고 했습니다. ‘껍데기’라고 할 때는 반드시 ‘알맹이’라는 말이 대비됩니다. 다시 알맹이와 껍데기라고 할 때는 알맹이는 좋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껍데기는 나쁜 것입니다. 알맹이는 진짜이고 껍데기는 가짜입니다. 요약하면 진짜는 좋은 것이고 가짜는 나쁩니다. 그래서 김태길은 ‘나쁜 것은 없어져라’라는 뜻으로 수필집의 제목을 붙였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김태길은 이세상을 ‘껍대기와 알맹이’라는 두 개로 나누어서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것으로 대비하였습니다. 이것을 ‘이원론’이라고 합니다. ‘이항대립’으로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좋은 것을 찾습니다. 서양 전통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고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좋은 것을 찾아 나섰습니다. 서양인들이 좋은 것의 전범으로 찾아 낸 것이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입니다. 이데아는 서양인이 추구한 가치이고 진리입니다.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입니다.
진리라고 할 때는 앞에 수식어로 ‘만고불변’을 붙입니다.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수 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가치라는 것을 뜻합니다. 진리 즉 이데아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선생님은 무슨 말인지 눈치를 챘습니까? 변하지 않은 것은 좋고 변하는 것은 나쁘다. 플라톤에서 시작한 서양 철학자는 만고불변의 진리 즉 이데아를 찾는데 온 힘을 다 바쳤습니다. 그러면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플라톤은 ‘저기 어디에, 또는 저 먼 곳에’라며 ‘이상의 세계’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도달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일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다른 주장을 합니다. 사물 바깥의 저 먼 곳에 있지 않고 사물의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물은 눈에 보이는 밖(현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안(본질)이라는 라는 두 개의 의미를 가지는 셈이 됩니다. 철학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이미 ‘본질과 현상’을 이야기 했습니다. 본질이 진리라는 뜻이 됩니다. 서양 철학을 보면 현상보다는 본질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변하는 현상보다 변하지 않는 본질을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처럼 서양 철학은 ‘진리’를 찾으려 수 천 년을 탐구했습니다. 서양인은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으로 진리와 가짜를 대비시켜서 그들의 사유 세계를 전개했습니다. 진리는 사유를 통해서 도달한다.(관념론)와 실제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경험론) 등등의 다양한 방법론이 나왔습니다.
진리를 찾는 방법론이 서양 철학사가 되었습니다.
* 서양 문화를 떠 받드는 두 개의 기둥을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도 만고 불변의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교리를 부정하면 이단으로 취급하여 제거해 버립니다. ‘이단’으로 낙인이 찍히면 대립적인 요소이므로 제거의 대상의 됩니다. 서구인들은 자기의 사고방식(철학)과 종교 즉 문화가 가장 진보된 형태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자부심은 서구인이 멋대로 세계를 난도질하도록 했습니다. 미개인은 나쁘기 때문에 진보시킨다는(좋게 만든다는) 명목을 내걸고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결과는 어떠하였습니다. 전쟁에 휘말리면서 인간생활의 파괴를 경험합니다. 불행을 경험합니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서구인들은 반성합니다. 과연 자기네의 문화가 좋은 문화일까? 의문을 가집니다. 우선 철학에 눈을 돌립니다. 만고불변의 진리도 만고불변의 신(기독교)도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정답이 아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그들이 옳다고 믿었던 진리는 시간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서구인은 시간이 들어가지 않는(만고불변) 진리를 부정합니다. 니체는 ‘모든 진리를 뒤 짚어 버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를 버리고 시간이 들어가는 현상에서 가치를 찾아 나섭니다. 시간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 진리를 찾아 나섭니다.
* 쇼펜하우어는 ‘현상과 의지로서의 세계’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현상은 현실 세계입니다. 현상의 반대편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쇼펜하우어는 ‘만고불변의 진리’의 자리에 ‘의지’를 놓았습니다. ‘의지’는 인간의 내면입니다. ‘이데아’와 ‘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인간의 의지’를 둔 다는 것은 혁명적인 사고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주장을 니체가 이어 받습니다.
니체는 ‘짜투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끊임 없이 의문을 제기합니다. ‘영원 회귀론’을 주장합니다. 영원 회귀론은 반복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반복 즉 되풀이는 시간 속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시간이 필수적으로 들어갑니다. 신도 부정합니다. 이성보다 감성을 우위에 둡니다.
*니체는 시간이 들어가는 진리를 철학적으로 정리하지는 못했습니다. 니체의 주장은 철학과 문학의 경계선상에 머문다고 합니다. 철학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베르그송입니다. 베르그송 철학은 시간이 들어간 진리를 찾는 철학이라고 합니다. ‘이데아’가 아닌 ‘인간의 삶’에서 찾습니다. 베르그송은 현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베르그송의 시간이 들어가는 철학에서 현대 철학이 시작합니다.
* 전통 철학과 현대 철학을 시간이 들어가지 않는 진리와 시간이 들어가는 진리로서 나눕니다.
앞으로의 철학 이야기에서는 현대 철학을 다루겠습니다.
현대철학이 나타나면서 문학이론도 바뀌는 것은 당연합니다. 앞으로 공부를 하도록 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