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can from Orpheus in the Underworld :
Gimnazija Kranj Symphony Orchestra
천국과 지옥(프랑스어 : Orphée aux Enfers,
직역하면 지옥의 오르페우스이다.)은
자크 오펜바흐가 작곡한
2막으로 이루어진 오페라 부프
(또는 오페라 페에리)이다.
프랑스어판 원어 텍스트는
메이악(프랑스어 : Meilhac)과 알
레비(프랑스어 : Halévy)가 만들었고
1858년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짜임새 있는 플롯으로 유명하며
음악은 더욱 유명하다.
클래식한 부분 외에도,
제2막 제2장에 나오는
지옥의 갤럽은
캉캉 춤을 위한 음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Cancan Dance
Moulin Rouge Cancan Dance
Lido Cancan Dance
자크 오펜바흐
(Jacques Offenbach, 1819년 ~ 1880년)는
독일 태생의 프랑스 작곡가이자
첼리스트이다.
어릴 때 파리에 와서
첼로를 공부하였다.
그는 프랑스 극장의 지휘자가 되어
경쾌하고 재미있는
오페라를 많이 발표하여
'프랑스 오페레타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작품으로 호프만의 이야기,
천국과 지옥 등 100여 편이 있다.
오펜바흐는 근대 뮤지컬 코메디의 전신인
오페레타 형식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들
중 하나이고,
많은 그의 작품들이
현재까지 공연 레파토리로 남아 있다.
대표작품으로는 호프만의 이야기,
지옥의 오르페우스,
아름다운 헬레네등이 있다.
오펜바흐는 독일의 쾰른(Köln)에서
성가대의 선창자(先唱者, cantor),
책제본자, 음악 교사이자 작곡가인
이자크 유다 에버스트
(Issac Juda Eberst)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살던 시기는
나폴레옹 칙령으로 인해
유태인은 계승된 가족성을
바꿀 것이 요구되었다.
그는 순회 공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미 관객들에게는
오펜바흐 암 마인의 출신이라
'그 오펜바흐'로 불렸기에,
성을 오펜바흐로 바꾸었다.
그의 아들에게는 출생시
야곱 오펜바흐
(Jacob Levy Offenbach)란
이름을 지어줬지만,
오펜바흐는 프랑스에 정착한 후
'자크'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오펜바흐는 1833년
파리로 이주하여
첼로를 공부하였다.
그는 오페라 코미크 교향악단에서
첼로 연주자 자리로 들어가서,
많은 기악곡을 작곡하였다.
1844년 오펜바흐는
로마 가톨릭교회로 개종하고,
에르미니에 드 알카인과 결혼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혁명으로인한 폭력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그의 아내와 딸과 함께
1848년 독일로 돌아왔으나,
일년 뒤 파리로 다시 되돌아가
루이 나폴레옹 3세 지배와
가장 가까운 음악가가 되었다.
1850년 오펜바흐는
프랑수아 극장의 지휘자가 되었으나,
1855년 몽시니 거리
(Rue de Monsigny)에서
부프 파리지앵
(Bouffes Parisiens)이라는
자신의 소극장을 설립하였다.
오펜바흐는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대부분 오페레타와
오페라 코미크에 헌신하며,
작곡가, 감독으로서의 성공을 거뒀다.
오펜바흐의 가장 인기있는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정기적으로 공연된다.
영어권 국가에서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오페레타는
지옥의 오르페우스와
아름다운 헬레네,
제롤스탱 대공비, 파리의 삶,
페리콜이다.
즐거운 파리의 아가씨,
유쾌한 파리인은
종종 발레 음악으로 듣게 되는데,
이는 혼성곡으로
1938년에 마뉴엘 로젠탈이
오펜바흐 멜로디를
관현악으로 화려하게 편곡하였다.
오펜바흐의 마지막 오페라인
호프만의 이야기는
그의 다른 작품보다 진지한 편인데,
아마도 어릿광대가
진지하게 여겨지기 바라는
영원의 소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880년에 그의 사망으로
미완성으로 남았으나,
친구인 에르네스트 기로에 의해
완성되고,
1881년에 초연되었다.
오펜바흐는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 묘지에 묻혀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9993B8425AD2243E2E)
Jacques Offenbach, 1819 - 1880
1830년대 7월 혁명 이후
프랑스 파리의 무도회장에서
시초가 된 단체 무용.
경쾌하고 신나는 빠른 템포로
무희들이 하이힐을 신고
여러 겹의 긴 스커트를
꽃처럼 흔들어서
다리를 치켜들어
점프를 하는 외설적인 춤이다.
샤위(chahut)라고도 한다.
2. 유래
1828년 발 타바랭이 재개되어
춤의 새바람이 일고부터
프렌치 캉캉이라는 이름으로
서민들 사이에서 유행을 하게 되고
1845년 카지노나 뮤직홀의
쇼로 진화되어
물랭루즈를 중심으로
프랑스 캬바레나 사교계의 명물이 된다.
3. 복장
캉캉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치마가 핵심이다.
입지 않고 다리만 위로 치켜올리는
특유의 동작만으로도
충분히 캉캉이라고 하지만
정통적인 스타일은
캉캉치마가 있어야 한다.
발목을 감싸고 주름이 많으며
여러 겹을 층층이 쌓아서
안에 공기층이 쌓여
풍성하게 만든 치마를
일명 캉캉치마라고 한다.
속도 마찬가지로
보였을 때
아름답게 보여야 하기 때문에
속치마에 프릴을
화려하게 집어 넣는다.
한복의 무지기 치마가
이 캉캉치마를 닯았다.
다리를 활짝 벌려야 되기 때문에
플레어 스타일로
치마의 각도는 360도로 이루어져 있어
한계까지 다리를 찢어도
턱이 걸리지 않는다.
현대사회로 들어서면서
캉캉댄스는 쇠퇴했어도
치마의 스타일은 남아
아직까지도 미니스커트나
미디움 스커트로도
캉캉스타일은 명맥을 잇고 있다.
![파일:M_01.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ww.namu.la%2Fs%2F81f12903785db9b2623d107dfa3c7336751036e934c0a8d65cec61ca520e2373ac8332fb29a10d6f48eeb31498391b9f75e64026a9009d1e50698057e45058e5759e75e752c799dd7250a1aea608bccf8393a7d48987ae861551b485b519b35b)
외설이 목적인 만큼
단순히 미적인 의미뿐 아니라
다리를 벌릴 때
안이 훤히 드러나는게 핵심.
이 춤이 유행한 물랑루즈는
유흥업소였는데,
동물의 사육제 오페라 초연 때
블루머를 입고
검은 양말을 신은 채
캉캉 춤을 춘 것이
그 당시 보수적인 풍조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대목이 있지만
스타킹과 가터벨트를 입고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캉캉춤을 선보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4. 시대의 편법
보수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여자가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였다.
아무리 술집이라도
경찰의 단속이라도 들어오면
가게 망하는 건 시간 문제니
남자 손님들의 관심은 끌어야 되고
단속은 피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대놓고 보여주는 것이 아닌
치마를 흔들고 다리를 치켜 들어서
슬쩍슬쩍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었다.
설령 단속이 들어온다 해도
엄청나게 두꺼운 치마를 입고
멀뚱히 서 있으면
위법을 증명해내기 힘드니
캉캉은 이를 이용한
가장 안성맞춤인 퇴폐문화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러한 프랑스에서 시작된
독특한 춤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열정적인 남유럽 백인들의
사랑을 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근대화로 접어들면서
페미니즘이 시작되자
샤넬 스타일을 필두로
무릎을 드러내면서
일반 여성들이 너도나도
노출에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캉캉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현재는 하나의 고전 무용 장르로서
행사 퍼레이드나
물랭루즈 관광의 명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5. 대표곡
캉캉 주제곡 하면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이 가장 유명하다.
이외에도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나
카르멘의 서곡 등이 캉캉에 사용된다.
6. 관련 인물
포스터의 라 굴뤼
실제 라 굴뤼
라 굴뤼 :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릭에 의해
선전용 석판화 포스터에
묘사되기도 한 물랭루즈의 메인 댄서.
캉캉춤은 그녀의 특기 중 하나였다.
라 굴뤼라는 이름은
먹보라는 뜻의 별명이다.
큰 인기를 모아 번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하고 알콜중독에 빠진 후
몽마르트로 돌아와
담배나 땅콩을 팔다가 생애를 마친다.
![파일:janeab.pn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ww.namu.la%2Fs%2F5500cf72ca29b3646b6d4c1af9cf41387ade82970bc26a0abfefa1a53d53fc8bfc9846caf5f9839f9dff285ad17618e966191926e64c839b1e6007cd2d30ee5a990bf593cb79200dd4dd96695d56e7b9f8d29e3f787c610e4c7bcbd31c258644148578520b359bf3069e7b48a035a3fc)
제인 아브릴 : 라 굴뤼가 떠난 후
물랭루즈의 메인 댄서가 된 무희.
이후 결혼을 했으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아 요
양원에서 생애를 마친다.
물랭 루즈(Moulin Rouge)
1900년부터 댄스홀로 사용된 ‘붉은 풍차’라는 이름의 물랭루즈는
건물 앞에 있는 붉은 풍차 장식 때문에
그 이름이 붙여졌다.
1890년대 이곳은
캉캉춤의 발생지는 아니지만
프렌치 캉캉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고
스트립쇼 공연도 했다.
또한, 이곳은 마약과 매춘 등이
공공연하게 행해지던 곳이다.
하지만 관객들의 무관심으로
1902년 12월 29일의
마지막 공연 이후로
잠시 영화관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다시 쇼 공연장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샹젤리제의
리도쇼와 더불어
파리의 유명한 공연장이다.
하지만 처음 생길 때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입구의 풍차뿐이다.
현재는 캉캉춤은 없어졌지만
화려한 쇼를 관람할 수 있으니,
파리에서 화려한 쇼를 즐기고 싶다면
한번 들러보아도 좋다.
가격
저녁 식사+공연 : 150~180유로
21:00 공연 : 102유로
23:00 공연 : 92유로
음료 없이 21:00 공연 : 90유로
음료 없이 23:00 공연 : 80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