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제국, 잠 못 이루는 황제
차이나 리스크의 기원과 축적 2008년 왕치산 경제 부총리가 헨리 폴슨 미 재무부 장관에게 “당신은 나의 스승이었지, 그렇지만 지금 당신네 시스템을 보게. 우리가 더 이상 당신들로부터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네.”라 말한다. 도광양회는 적어도 50년은 미국과 맞서지 말고 속내를 감추라는 덩샤오핑의 유훈을 버린 시진핑은 조급함에 비판한다. 현재 중국은 고립무원의 상황이다. 중국의 고립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도광양회를 폐기하고 중국몽을 내세운 시진핑이다. 그의 세계관은 신마오주의, 신 서구적 전통 보수주의다. 시진핑은 2013년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에 차이나 쇼크를 시진핑 이념적 노선은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에 형성된 것이다.
시진핑의 성장 과정부터 보자. 그는 태자당의 1세대 최고위층 자녀 출신이라 유복한 생활을 하다 마오쩌둥의 실정으로 직격탄을 맞아 하방을 받아 귀양살이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스톡홀름 증후군(인질 범인에게 동조하여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의 심리상태를 나타냈다. 시진핑은 마오쩌둥의 정신적 아버지를 닮고 싶은 사람으로 세계관의 기초를 삼는다. 대약진운동으로 중국 현대사는 참사를 맞는다. 이 운동으로 아사자가 3~5천만 명 죽는다. 실용적 성격으로 생산성 회복을 하자 순수 사회주의 이념에 기초하지 않자 마오쩌둥은 초조해져 죽을 고생을 해 사회주의를 성공시켜 놓으니, 다시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꼴은 볼 수 없었단다. 이런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문화 대혁명을 일으킨다. 여기서 시진핑은 하방을 당하여 산속 토굴 마을에서 7년을 보낸다. 22세에 황토 땅을 떠났다.
1978년 최고 지도자는 덩샤오핑이 오른다. 1970년대까지 중국 모든 농민은 인민공사라는 집단농장에 배속되어 공동경작 공동 분배 시스템이 초래한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갔다. 덩샤오핑은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농민에 개별경작지를 배분, 남은 생산물 판매를 허용했다. 1980년은 시범적으로 몇 개 도시에서 경제특구가 중국 노동력과 외국인 투자자들 덕에 대성공을 거둔다. 1990년대는 중국에 공장을 세우는 선진 공업국의 기업을 열렬히 중국은 환영했다. 1980년대 이후 몰아닥친 세계화와 정보화 혁명과 신자유주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임이 명백하다. 중국의 다스리는 9명의 지도부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다. 차기 지도자감으로 공청단의 ‘리커창’, 개혁파의 ‘리위 안치오’, 저장성 당서기 ‘시진핑’이었다.
2012년 터진 ‘보시라이’ 정변은 덩샤오핑이 만들어 놓은 집단지도체제를 무너뜨린다. 이 사건은 당시 주석 ‘후진타오’가 미 국방, 장관을 면담하면서 최첨단 전투기 ‘J-20’의 비행기를 항의하는 데 주석은 처음 듣는 정보에서 발발한다. 당시 중국은 현재와 달리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런 정치 상황은 지역 기반 야심가를 낳기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그 야심가는 ‘보시라이‘ 충징시 당서기였다. ’보시라이‘의 심복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망명을 요청하자 충칭 경찰이 장갑차로 영사관을 포위한다. 미국 정부가 항의하자 중앙정부는 ’왕리쥔‘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안전부와 인민 해방군으로 다시 경찰 장갑차를 포위한다. 결국 ’보시라이‘는 중앙정부에 굴복하고 경찰을 철수시킨다. 자칫하면 체제까지 흔들 쿠데타 사태에 구조적 원인은 명목상 지도자의 허약한 리더십과 계파 간 권력 분쟁이 지목되었을 것이다. 이 취약점이 집단지도체제의 효용을 다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구매력 평가지수 PPP로 중국은 2014년 미국을 초월하여 2020년 GDP는 미국의 71%까지 따라왔다. 그러자 기준 강대국이 신흥 강대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전쟁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 부른다. 패권국 미국은 중국의 권력 이양이기에 폭을 좀 더 허용해 전쟁의 위험성을 낮춰야 한다. 강대국 간의 전쟁은 더 이상 발전 확대를 기대할 수 없는 신흥국이 ‘도전의 창’이 닫히기 전에 패권국에 덤비면 일어난다. 2021년 중국의 명목 1인당 GDP는 약 1만 2천 달러다. 같은 해 한국은 3만 5천 달러로 중국의 약 3배다. 14억 중국, 3억의 미국 인구라, 중국이 1/6의 GDP가 1/4만 되면 미국을 추월한다. 중진국 함정은 1950년대 중진국에 속한 101개국 중에서 2008년까지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는 단 13국이다. 실패한 대표적 나라가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다. 성공한 나라는 대표가 한국과 대만이다.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이 최빈국에서 중진국으로 가는 문보다 훨씬 비좁다. 한국과 대만도 중진국 함정에 빠질 뻔했다. 두 나라는 반도체, 전자기기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단순 해외 브랜드 아웃소싱에서 자국 브랜드 기업 위주로 국가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데 성공해 중진국 함정을 탈출한 것이다.
그러면 중국을 보자 단언컨대 시진핑은 농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중국은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데 실패할 것이다. 중국의 도농 간 격차는 2.5 배이며, 상하이와 간쑤성의 소득 격차는 3배가 넘는다. 이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스웨덴과 그리스의 차이다. 중국은 후커우 제도라는 중국판 카스트 제도가 남아있단다. 이는 부모의 후커우에 따라 예외적 사례를 제공하면 평생 바뀌지 않는다. 이 제도가 남아있는데 한국과 대만의 중진국 탈출 모델을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이지 않은 중국 농민 자녀들의 인적자원 개발 수준이다. 2015년 중국의 고등학교 이수 비율은 30%다. 중국에 시간이 많지 않다는 가장 결정적인 신호는 바로 인구 문제다. 중국의 1가구 1자녀 정책이 시행되어 임신을 숨기고 벌금을 피하려던 시절이 있었다. 10년 만에 이 제도는 없어지고 지금은 제발 아이들을 낳아달라 사정하고 있다. 중국은 부자가 되기 전, 너무도 빨리 늙어버렸다. 게다가 중국이 한국이나 일본보다 심각한 건 아직 중국은 선진국이라 하기엔 소득이 낮고 상대적 가난한 국가라는 점이다. 한국 일본이 1만 달러 소득을 찍은 것은 1994년, 1983년이다. 중위 나이는 한국은 28~29세, 일본은 33세였다. 그러나 1만 달러를 돌파한 중국은 중위연령이 38.4세다.
중국 부채 문제의 근본 요인은 중국경제가 그동안 투자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에 기인한다. 투자에 과도한 의존을 줄이기 위한 정답은 경제에 정부 간섭을 줄이는 것이다. 인위적 경기 부양을 억제하기 위해 한계 기업과 은행에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일종의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시진핑의 ‘리코노믹스’는 시장개혁 조치였다. 그것은 경제와 사회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 약화, 지방에 대한 중앙의 영향력 약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시진핑은 하나의 칼을 갈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다. 중국은 한국 산업 중에서 철강, 조선,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중국의 도전에 한국은 버거워한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18%다. 그러니 중국은 한국의 반도체를 잡기 위해 칼을 가는 것이다. 반도체는 75%가 시스템 반도체. 나머지가 메모리 반도체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팸 리스, 개발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을 파운더리라 한다. 그러면 중국 파운더리에서 직접 반도체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반도체 산업의 문턱은 무척 높다. 어마어마한 현금을 태우면서 불기했으나 먹튀만 발생하고 반도체 생산은 성공치 못하고 생산한 것은 경쟁력이 없다.
그러면 시진핑을 중국인을 지지할까? 중국 인민들은 그를 조건부로 지지한다. 대만 통일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희생할 수 있다는 게 대다수의 중국 인민들의 생각이라는 것이라 필자는 주장한다. 시진핑의 통치와 정책에 불만이 있더라도 통일을 생각하면 인내한단다. 대만 수복과 통일을 위해 전쟁은 불가피한데, 이런 비상시 대비를 위한 지휘권 강화, 국론 일치, 일사불란한 동원 체제 구축을 위해 사상통일이 필수적이란 것이 먹힌다는 논리다. 반대로 말하면 대만 통일전쟁에 패하면 시진핑은 중국 인민에 용서받지 못하고 정권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 필자는 주장한다. 시진핑은 왜 대만을 노리나 그것은 반도체 TCMC 때문이다. 한국 반도체 가치는 미국과 중국이 보인 파격 움직임이다. 조 바이든은 한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백악관 회의에 삼성전자를 2021년에 여러 번 초대했다. 중국은 악명 높은 코로나 제로 통제에도 시안에서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은 파격적으로 가동하게 시켰단다. 결국 반도체 공장을 장악하려 대만을 통일하자는 얘기인데 과연 잘 될까?
1991년 소련 해체로부터 2022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30년이 ‘30년 탈 냉전 시대’다.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잘 지내며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대는 끝이 났다. 한국은 양쪽에서 ‘선택의 요구’를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시련과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첫 단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대가 지나갔으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회적 인식의 확산이다. 세계의 분쟁과 각축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이슈다. 한국의 군사력은 이미 북한을 압도하며, 북한의 안보적 위협을 혼자서 감당하기 충분한 수준이며, 한미동맹의 성격은 단순히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성격을 실질적으로 넘어서 버린 지 오래다. 한국은 퀘드 가입을 미국으로 받는 동시에, 중국에는 쿼드 가입을 하면 제2의 사드 사태가 발생할 것이란 협박을 동시에 받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다. 우리는 전 세계를 호령하는 문화혁명까지 갖게 되었다. 더 이상 스스로 약소국으로 포지션인 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중국은 현재 한국의 높은 경제력과 군사력 대외 영향력을 가진 한국이 공식적으로 반중 전선에 참여를 한다면 중국은 전전긍긍하는 중이라서, 중국은 한국이 최소한 미·중 간 중립 지대만 유지해도 성공이라 생각할 것이라 필자는 주장한다.
2022.01.10.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2
한청훤 지음
SIDEWAYS 발간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관심 늘 고맙습니다
“쫓기는 제국,
잠 못 이루는 황제”를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시메온님
새해도 대길하시고 다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