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래?”
그녀의 물음에 난 아무 생각 없이 ‘응’ 이라고 대답해 버렸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대답 하나로 난 겨우 18살의 나이에 결혼식을 올리게 생겼다. 둘 만의 비밀 결혼식을.
1장 결혼식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난 볼을 꼬집어 보았다.
으악! 아픈 것을 보니 꿈은 아닌데.....아무리 생각해도 장난에 당한 것만 같은 이 느낌은 뭐지? 그래. 장난일거야. 혜미 같은 애가 나 같은 꼴통한테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할리가 없잖아? 우어!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네. 역시 난 너무 깊게 생각하면 안돼! 머리가 아프거든.
여하튼 아침부터 엄마의 잔소리 고지를 넘어서, 학교에 도착!
그런데 교실 안으로 들어가기 싫다. 아니, 싫다는 표현보다는 들어가기가 민망하다.
혜미 얼굴을 어떻게 보지? 흠...눈이라도 마주치면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할까?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그냥 안녕이라고 할까? 아니면 평소처럼 아무 인사도 하지 말고 그냥 모른 척 할까? 이런 젠장! 아침부터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용량초과야, 용량초과! 으...아무 생각 없이 살자가 내 좌우명인데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들어가고 보자. 으라차차!
난 힘차게 교실문을 열었다. 그런데!
‘쿵!’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는 교실문!
어라? 문이 떨어져 버렸네. 긴장한 나머지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이 고요한 침묵과 어이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반 친구들의 시선.
그리고 창가 쪽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혜미의 묘한 눈빛.
으...아침부터 이게 무슨 망신이냐.
잠시 후, 자리에 앉자 혜미가 다가왔다. 이 밀려오는 향긋한 냄새.
향수 냄새일까, 아니면 샴푸 냄새일까? 전에는 이런 좋은 냄새가 나는 줄 몰랐는데......
“강공! 나한테 문제집 빌려달라고 했지?”
“문제집? 그런 적 없는.......”
‘탁!’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책상 위에 문제집을 내려 놓았다.
이상하군. 문제집 같은 건 빌려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강공. 문제집 안에 보면 해설집도 있으니까, 꼭 안에 잘 살펴봐야 해. 알았어?”
“해설집? 어, 그래.”
혜미의 찌릿한 눈빛에 차마 나는 싫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해설집을 안보면 아무래도 목숨이 위태로울 것만 같았거든.
그래서 해설집을 펼쳤는데, 첫 장에 적혀 있는 짤막한 글.
‘수업 끝나고 공원에서 만나.’
공원에서 만나자구? 어제 나한테 쳤던 장난을 사과할려고 만나자고 하는 걸까?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흠...원래부터 수업에는 집중을 잘 안했지만...하하하.
1교시, 2교시, 3교시...그리고 8교시!
무려 8시간이 넘는 수업시간이 끝나고, 담임 선생님 종례시간이 이어졌다.
“자, 모두 집에 가서 인터넷 게임, 문자팅, 연애질 같은 거 할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라. 지금은 공부하는 게 지겨울지 모르지만,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네 녀석들 남편이나 부인의 직업이 달라진다. 다들 돈 많이 벌어서 편안하게 살고 싶지? 그러면 공부를 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알았나?”
선생님의 훈시와 함께 종례는 금방 끝났고, 난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왜 선생님들은 늘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걸까?
공부를 더 하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이유가 될까?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편안하게 사는 것도 좋기는 한데, 그게 내 행복의 모든 이유가 될지는!
그나저나 오늘 따라 공원까지 가는 이 짧은 길이 너무 길게 느껴지는군.
왜 그런 걸까? 혜미를 만나러 가는 이유 때문일까?
“야! 강공! 어디 가냐?”
앗! 철민의 녀석의 목소리다.
친한 친구이기는 하지만, 입 싸고 귀 얇기로 소문난 녀석.
이 놈이 내가 혜미와 만난다는 사실을 알면, 거짓말 약간 보태서 내일이면 아시아 모든 인구가 알지도 모르는 일! 보안유지가 생명!
“어디 가긴. 집에 간다.”
“집? 너네 집 반대 방향이잖아.”
“그냥 기분도 꿀꿀하고 그래서, 공원에서 바람이나 좀 쐬고 갈려고.”
“그래? 그럼 이 형님께서 또 희생을 하셔야겠군.”
“무슨 희생?”
“우울해하는 널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치냐? 가자. 우울할 때는 한 대 빨아야지. 내가 또 의리 빼면 시체 아니냐?”
의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같이 폐암 걸려서 죽자고 하면서 맨날 담배 권하는 게 의리 있는 친구냐.
“됐네, 친구. 오늘은 그냥 혼자 가려네.”
“야! 강공! 내가 창피해?”
“응.”
“알았다. 이 치사한 놈아. 우울증이나 걸려라!”
“그래. 넌 폐암 걸려라. 여하튼 미안하다. 오늘은 좀 생각할 게 있어서 말이야.”
“생각은 무슨 생각이냐? 너 생각하고 담 쌓은 놈이잖아?”
“그건 맞는 말인데, 그래도 일년에 한번 쯤 은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되지 않겠냐? 인생에 대해서 말이야.”
“놀고 있네. 그럼 생각하는 강공 많이 해라, 나 먼저 간다.”
“응, 잘 가라.”
잠시 후, 철민이 시야에서 사라 질 때쯤, 난 공원을 향해서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미 공원의 한쪽 구석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혜미.
젠장! 가슴이 또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이 놈의 가슴에 진동으로 된 핸드폰이라도 달린 것만 같다.
내가 다가가자, 혜미가 뾰로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늦었네.”
“미안. 오다가 이상한 녀석을 좀 만나서 말이야.”
"이상한 녀석?“
“응. 이상한 녀석.”
“그래? 그래도 다음부터는 늦지 마. 오늘은 처음이니까 봐줄게.”
역시 혜미는 도도한 공주님이었다.
공주 앞에 선 꼴통인 내가 무슨 말을 할까? 그냥 고개를 숙여야지.
“응, 알았어. 그런데 무슨 일이야? 어제 일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마. 가끔 장난치고 싶은 마음 이해하니까.”
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혜미가 내게 한 말이 장난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한테 심한 장난을 쳐놓고 그녀가 미안한 마음에 날 불러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혜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장난? 누가 장난이래? 내가 만나자고 한 건 결혼식 장소 같이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야.”
“그게 무슨 소리야? 결혼식 장소라니?”
“어제 분명히 ‘응’ 이라고 대답했잖아. 나랑 결혼하기 싫어?”
“야! 나혜미. 너 자꾸 장난......”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장난치지 말라고 소리치려고 했다.
그런데 혜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입은 거짓말을 해도, 눈빛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고리타분한 사랑공식이 있는데, 난 그게 뭔지 이제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잠시 후, 묘한 침묵을 뒤로 하고 혜미가 내게 말했다.
“따라와.”
“어디 가는데?”
“말했잖아. 결혼식 장소 간다구.”
“아...결혼식 장소. 그런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뭐?”
“왜 하필 나야?”
“꼭 이유를 말해줘야 해?"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말 안해줄래.“
“어, 그래.”
그녀 앞에만 서면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내 자신이 답답했다. 그런데 답답한 내 자신을 포함해서, 이 묘한 흥분과 재미, 그리고 가슴 떨리는 두근 거림이 싫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한 느낌마저 들었다.
첫댓글 재밌어요 뭐랄까 되게 코믹적인 그런거요 . 진지 코믹 = 님의 소설 ㅋㅋ 죄송합니다 망쳤다면 ........ 음 .. 이유가 뭔지 빨리 알고싶어요 . ^^
감사...진지코믹이라..그게 목표였는데 적중했구려^^
크히힉 웬지 많이 기대되요 재밌을거 같다는 .
점점 지루해진다는 말 나중에 하지 말길!!ㅋ
키키킥~~~~>_<.. 근데. 좀.. 띠어쓰기좀 해주세요 <태클 아님.
그러지요^^태클 해도 상관없는데.ㅎ
강공.. 이라. ;;// 혜미가 적극적인성격 같은데요 ㅎ
내 이상형을 그리고 싶은..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