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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68회>
고창성의 호족들은 항복을 권유하러 온 백제의 사신을 쫓고, 고려에 귀부의 뜻을 전한다. 신라황실의 후예로서 이들은 견훤의 서라벌침공때의 야만성에 등을 돌리고 왕건을 도와 백제의 대군을 맞을 준비를 한다. 왕건은 주변지형에 밝은 이들의 도움으로 옛 공산에서의 복수를 다짐하는데... 한편, 견훤군과 협동작전을 펴기로 한 신검일행은 전방에 유금필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삼년산성때의 악몽을 떠올리며 전진을 늦추고 이를 모르는 견훤의 본군은 점차 고창 깊숙이 들어가는데...
씬 황톳길
견훤의 대군이 가고 있다. 끝도 없이 가고 있는 그 행렬 위로...
해설 단기 3262년 그리고 서기로는 929년 12월, 후백제의 견훤은 예순 세 살의 나이로 지금의 안동인 고창군 함락을 위해 친정에 나섰다. 그리고 이 사실은 지체없이 고려에 알려지고 고려 또한 군대를 일으켜 안동으로 향하게 된다.
씬 길
왕건의 대군이 가고 있다. 이번에는 최응과 더불어 최지몽, 복지겸, 유금필, 박술희, 홍유, 배현경, 염상, 왕충, 윤신달, 박수문, 박수경들이 보좌해 가고 있다.
해설 (계속) 고창은 지금의 안동이다. 이 안동이란 이름 또한 왕건이 이곳에서 승리한 이후 호족들에게 감사하여 본래의 이름인 고창군을 승격시킨 것이다. 고창의 호족들은 당시 성주였던 김선평과 신라 왕실의 일가가 되는 김행, 그리고 장정필이었다.
씬 고창성 외경
씬 동 성안
성주 김선평과 김행, 장정필이 부장들과 더불어 백제에서 온 전령을 보고 있다. 그 옆에 고려에서 온 사신 왕규가 서 있다. 김선평이 장계를 읽다가 말고 그대로 확 구겨 버린다.
김선평 지금 이게 뭐라고 한 것이냐? 뭐가 어쩌고 어째...? 항복이 아니면 죽음 뿐이라..? 이것이 누가 보낸 글이냐?
전령 문소성에 와 있는 총사 신검 태자마마께서 보내신 것이옵니다.
김선평 네 이놈... 네놈은 우리 고창의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였느냐? 우리의 군사만도 삼천이 넘느니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너희 같은 패륜의 무리들을 증오하는니라.
김행 네 이놈... 우리는 천년의 사직을 이어 온 신라국의 사람들이니라. 비록 지금 신라는 기울었다마는 너희들의 행포가 어찌 그리 심할 수 있다는 말이냐? 황제를 자진케하고 황후를 욕보였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가 어찌 너희 백제에 머리를 숙이겠는가?
장정필 그러하니라. 여기 지금 고려의 사신이 와 있느니라. 역시 고려는 우호의 나라이니라. 위기에 처한 우리 고창을 도우러 고려에서도 대군이 몰려오고 있음을 너희는 아느냐?
전령 ...............
김선평 이미 우리는 오래 전부터 신라와 동맹을 맺어온 고려에 귀부키로 하였느니라. 고려는 신라를 도우려다가 조물성에서도 그리고 공산 전투에서도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겪었느니라. 바로 너희 같은 패륜의 무리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제 다시 우리 고창을 구하러 오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전령 너는 들어라.
전령 예, 성주님
김선평 당장 너의 목을 벨 것이로되 사신과 전령은 베지 않는 것이라 하여 살려 보내는 바이다. 네가 보고들은 대로 다 전하라 알겠느냐?
전령 예, 성주님.
김선평 썩 돌아가라.
전령 예, 성주님.
전령은 눈치를 보며 그렇게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간다. 세 호족이 껄껄 웃는다. 그러다가 왕규를 본다.
김선평 우리는 오래 전부터 고려의 폐하께서 신라를 구하기 위해 여러모로 고초와 수난을 겪으신 것을 잊지 않고 있었소이다. 어차피 신라는 이제 그 힘이 다했소이다.
김행 그렇소이다. 나 또한 황실의 먼 일가이나 이미 신라에 충성하려 해도 그 길이 막혀버렸소이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고려에 귀부하여 고려의 군사로서 싸울 것이외다.
왕규 참으로 고마운 말씀들이십니다. 폐하께서 이리로 오고 계십니다. 또한 백제의 왕도 오고 있습니다. 고창의 대 호족들께서 이렇게 흔쾌하게 고려에 귀부를 결정하셨으니 이 또한 황제폐하의 복이시오이다. 이 전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오이다.
장정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결사항전 할 것입니다. 비록 고려가 백제에 몇 년을 거듭해 연패하였으나 우리는 개의치 않소이다. 우리는 신의가 있는 나라와 군대를 존경하오이다.
왕규 고맙소이다. 우리 폐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이오이다. 허허허...
김선평 자, 부장들은 무얼 하느냐? 백제에서 대군이 쳐들어오고 있고 고려에서는 우리를 도우러 폐하께서 오고 계신다. 군사를 준비하라. 전투 태세를 갖추고 고려군을 맞을 준비를 하라.
부장들 예, 성주님.
김선평 곧 이곳 성안에서만 항전을 한다면 저 많은 백제군을 한꺼번에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곳 지형은 우리들이 평생 살아온 곳이니 길목을 잘 찾아서 군사를 나누어 매복하고 공격해야 할 것입니다.
왕규 옳은 말일 것입니다.
김선평 그러자면 어서 폐하께서 이끌고 오시는 군대와 전략을 협의해야 할 것입니다.
김행 전령이 이미 떠났습니다. 우리도 속히 성 밖으로 나가 폐하를 뵙도록 하십시다.
김선평 그리 하십시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허허허....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라 소리가 들린다. 왕규의 밝은 표정과 전의를 다지는 그들 세 사람에서....
씬 길
왕건을 위시한 고려군이 오고 있다. 이들의 군대도 위풍당당하다.
최응 폐하, 이제 곧 고창이옵니다.
유금필 십여 년 전에 신은 이곳에서 백제군과 접전한 바 있사옵니다. 비록 고창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이 일대의 지리는 어느 정도 아옵니다.
박술희 그러하옵니다. 고창은 상주, 강주(영주)와 더불어서 그 지역이 매우 험난하옵니다.
왕건 알고 있다네. 자네들과 더불어서 나도 이곳에 오래 있지 않았는가? 특히나 고창은 비록 우리가 들어가 보지는 못했으나 험준하기로 유명한 곳이네.
최응 그러하옵니다. 산과 강이 험하게 어우러져서 지리에 어지간히 밝지 않고는 곤경을 당하기 십상이옵니다.
왕건 옳은 말이야. 어느 전장터이든 그것은 마찬가지일세. 그 고장의 호족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참으로 낭패가 큰 법이지.
그때, 두 필의 전령마가 급하게 멀리서 달려와 멈추어서고 군례를 올린다.
배현경 어디서 오는 전령인가?
전령 고창성의 성주님께서 보내신 전령이옵니다. 여기 장계를 올리옵니다.
그 장계를 홍유가 받아서 왕건에게 올리면 펼쳐본다. 그리고 비로소 크게 웃는다.
왕건 하하하... 고마운 일이로고. 이보게, 병부령?
최응 예, 폐하.
왕건 그대의 예측이 정확하기 들어맞았네 그려. 고창성의 성주 김선평이 우리 고려에 귀부할 것을 결정하였다네.
최응 다 폐하의 복이시옵니다.
왕건 그 뿐만 아니라 그곳의 군사 삼천으로 하여 오고있는 백제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네. 우리와의 공동전략을 마련 하겠다는군.
최응 내봉성령 왕규 공이 아주 일을 잘 처리한 모양이옵니다, 폐하. 어서 가시오소서.
왕건 자, 금필 아우, 서두르세. 저들과 함께 전략을 숙의하자면 서둘러야겠어. 성 밖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야.
유금필 예, 폐하. 행군도감은 행군을 서둘러라. 행군을 재촉하라.
부장들 행군을 서둘러라. 행군을 재촉하랍신다.
그들 그렇게 달려간다. 기쁨이 떠오르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어느 곳 벌판
김선평 일행들이 일단의 군사를 이끌고 기다리고 있다. 주변에 이미 군막들이 서 있다. 멀리서 흙먼지를 날리며 왕건 일행들이 도착하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점차 가까워진다. 그리고 서로 마주본다. 김선평과 김행, 장정필이 말에서 내려 군신의 예를 드린다. 왕건이 말에서 본다.
김선평 폐하, 신 고창성주 김선평 알현이옵니다.
김행 신 김행 알현이옵니다.
장정필 신 장정필 알현이옵니다.
왕건 고맙소이다. 그대들의 현명한 선택으로 이 고창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고려가 큰 희망을 갖게 되었소이다.
세 사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말에서 내리며) 백제의 왕이 이곳으로 대군을 몰아 오고 있소이다. 이 사람은 지체할 수 없어 달려오면서도 과연 고창의 호족들이 어찌할 것인가, 생각이 많았소이다. 헌데 이렇게 귀부를 결정하고 짐을 돕겠다 하니 너무도 반갑고 기쁘구려.
김행 패륜의 도적을 외면하고 순리를 앞세우시는 폐하시옵니다. 신들이 어찌 귀부를 결정하지 않겠사옵니까? 거두어주시오소서.
장정필 거두어주시오소서.
왕건 고맙소이다. 참으로 고맙소이다. 자, 성주는 앞을 서시오. 적군이 이미 가까이 이르렀다 하니 작전을 숙의하십시다.
김선평 예, 폐하. 저쪽 군막으로 드시오소서. 자리가 마련되어 있사옵니다.
왕건 자, 장군들도 가십시다.
그들 모두 함께 군막으로 몰려간다.
씬 동 군막 안
탁자에 대형지형도가 놓여있다. 김선평이 설명하고 있다.
김선평 이곳 고창은 태백산맥의 지맥이 동서로 횡단하고 있고 봉수산, 미면산, 연점산과 같은 산들이 북쪽 지역을 막고 있사옵니다. 또한 남서쪽으로는 보문산과 백자봉, 갈라산이 있사옵니다.
왕건 짐도 예전에 가까이 와 본적이 있어 대충 알고는 있소이다.
김행 이곳 고창은 겉으로 아시는 것과 자세히 아는 것의 차이가 아주 크옵니다. 북쪽은 높고 지형이 험하며 산세가 아주 험하옵고 또한 백제군이 오고 있는 남서쪽은 지형이 낮고 그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사옵니다.
김선평 그러하옵니다. 남과 북의 산과 그 사이의 낙동강을 이용하여 저들이 들어서는 길목을 잘 차단하고 막으면 상당한 전과를 올릴 수 있사옵니다.
최응 지금 백제군의 주력부대가 오는 곳은 어디어디이오이까?
김행 백제의 태자 신검이가 이끄는 일군 일만이 의성부를 떠났다고 들었고 또한, 백제의 왕이 이끄는 군사 이만이 며칠 전 전주를 떠났으니 지금쯤 고사갈이성을 지나 다인현 쪽으로 진입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장정필 백제군은 그리 되면 견훤왕이 이끄는 일군은 이쪽 보문산과 백자봉 사이로 접어들 것이고, 또 신검이 이끄는 일군은 백자봉과 갈라산의 여기 이 길을 지나 고창으로 들어설 것이옵니다.
왕건이 끄덕이며 보고 있다. 설명은 계속된다.
김선평 우리 고창의 주력군이 모여있는 본 성은 바로 이곳에 위치하고 있사옵니다. 저들은 우리 성을 치기 위하여 이쪽과 이쪽 두 곳에서 진입하여 돌아와 폐하께서 이끄시는 고려 본군을 연점산과 미면산 쪽에서 막으면서 낙동강 기슭을 거쳐 올라가 우리 성을 공략하려 할 것이옵니다.
최응 일리가 있사옵니다. 특히나 우리가 북쪽으로 하여 남진한다는 것은 저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옵니다. 문제는 저들이 오는 길목은 알겠지만 저들을 막아내는 전략은 어찌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들에 비해 우리 군이 열세인 것은 분명하옵니다.
홍유 적의 숫자가 우리에 비해 배가 넘사옵니다. 큰길에서 서로 대적하는 것을 피하는 것은 병법의 상식이옵니다. 마땅히 숨어서 저들의 동태를 보다가 결정적일 때에 쳐야할 것이옵니다.
유금필 우리가 머뭇거리면 고창의 본성에 있는 삼천 군사는 그야말로 위기에 빠지기 십상이올시다. 죽을 마음만 가지고 싸운다면야 어찌 머뭇거릴 이유가 있소이까? 어서 길목에 군을 배치하여 오는 저들을 정면으로 맞아 싸우게 해 주시오소서.
홍유 소장은 무리한 전투를 피하자는 것이올시다, 유장군.
유금필 지금은 적군을 피할 때가 아니라 쳐야할 때이올시다, 홍장군.
왕건 아아, 왜들 이러는가? 아직 전략 숙의가 다 끝나지 않았네. 성주는 이야기를 계속해 보시오.
김선평 지난 날 폐하께서는 공산 동수전투에서 견훤왕의 유인책에 속아 크게 낭패를 보신 것으로 아옵니다.
왕건 그랬소이다.
김선평 이번에도 그 계책을 쓰시오소서. 그곳과 이곳의 지형이 흡사 비슷하옵니다. 남서쪽의 두 길로 적을 낙동강 이쪽으로 끌어들여서 그 길을 막아버리고 또한 강 입구 이곳과 저들이 도망치려고 하는 이 어귀를 막아버리면 어느 정도 승산이 설 것이옵니다.
김행 그러하옵니다. 더구나 이곳은 공산보다도 그 산세가 험하고 계곡은 더 깊으며 가운데는 낙동강이기 때문에 도망치거나 숨을 곳이 없사옵니다. 분명 엄청난 전과를 거둘 수가 있사옵니다.
박술희 폐하, 들을수록 흥분되는 말이옵니다. 강으로 끌어들여 몰살을 시키자는 것이 아니옵니까?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폐하, 들을수록 온 몸에 소름이 돋사옵니다. 이야말로 우리가 당한 공산에서의 치욕을 고스란히 되돌려 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옵니까?
박수문 소장 또한 모발이 곤두서옵니다. 백제왕을 노릴 수 있는 기회 같사옵니다.
왕건 어떤가, 병부령...? 모두들 흥분하고 있네.
최응 당연하옵니다. 저들을 계곡 깊숙이 끌어들여서 이 강으로 유인하시오소서. 일단 고창성의 본군들로 하여금 저들의 퇴로를 막게 하고 나머지 우리 고려군은 강 상류와 강의 남쪽, 북쪽을 모두 막아 저들의 도주로를 끊을 것이옵니다.
왕건 허나 지역이 너무 넓네 그려.
최응 넓다고 해도 저들이 오는 중요한 길목은 정해져있사옵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우리도 죽기로서 배수의 진을 치지 않는다면 승부를 논하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사옵니다.
왕건 알겠네. 그리 하도록 하세. 자, 그러면 제장들을 듣게.
모두들 예, 폐하.
왕건 나와 여기 병부령은 본군을 이끌며 북쪽을 담당할 것이야. 그 다음 군을 둘로 나누어 제 일군은 견훤왕 쪽을 막고 제 이군은 그 아들 신검 태자 쪽을 맡도록 할 것일세. 제 일군은 홍유장군을 총사로 하여 배현경, 염상, 윤신달, 왕충 장군과 함께 백제의 왕쪽을 맡도록 하시오.
그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왕건 또한 금필아우는 술희 아우와 더불어 박수문, 박수경 장군을 부장으로 하여 신검이 오는 길목을 맡도록 하라.
유금필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왕건 내의성령은 나와 함께 있도록 하라.
최지몽 예, 폐하.
왕건 자, 전략적 배치는 끝났소이다. 고창 성주는 본성의 군사들을 성에 배치하고 나머지는 짐과 함께 싸우도록 하십시다.
김선평 예, 폐하.
왕건 대단한 싸움이 될 것 같소이다. 백제도 운명을 걸었고 우리 고려 또한 이곳에서 뭔가 끝장을 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소이다. 우리의 계획이 잘 먹혔으면 좋겠소이다.
김선평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폐하. 우리 고창의 군사들은 모두 죽을 각오가 되어 있사옵니다.
왕건 고맙소이다. 자, 제장들은 모두 작전지로 가도록 하오. 곧 적군이 온다 하니 단단히 대비를 하도록 하오.
그들 예, 폐하.
왕건 적은 무려 삼만이 넘는 대군이라 하오. 공병병대는 각종 중장비들을 모두 끌어내어 강 언덕 숲 속에 위장 배치하고 적군이 들어서거든 사정없이 공격을 퍼붓도록 하오.
제장들 예, 폐하.
왕건 하하하... 견훤왕이 온다고...? 나를 보러 오겠지? 어서 그 얼굴을 만나보고 싶구먼. 그리고 저 세상에 있는 숭겸 아우에게 말해 주고 싶어. 이 전투의 결과를 말일세.
최응 그리 될 것이옵니다, 폐하. 백제군은 분명 폐하의 손안에 들것이옵니다.
기대감으로 끄덕이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산길
견훤의 대군이 오고 있다. 전령이 달려와 견훤 앞에 멈추어서며 군례를 한다.
박영규 너는 앞서 보낸 전령이 아니냐? 그래, 문소군 사정은 어떠하더냐? 고창에 보냈던 전령은 어찌되었어?
전령 예, 장군. 실은 지금 문소군에서 오는 중이옵니다.
최승우 그곳에서는 고창 성주에게 전령을 보냈다 하더냐?
전령 예, 파진찬 어른. 하오나 고창 성주와 호족들은 신검 태자마마의 항복 권유를 뿌리쳤다 하옵니다.
견훤 무엇이야..? 그 자들이 결국 죽음을 택하였다는 말이로구나. 허허허..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지금 고려군의 동정은 어떠하냐?
전령 고려의 왕이 이끄는 일만 오천의 군대가 고창성 북쪽으로 이르른 것으로 아옵니다. 그 이상은 산세가 험하고 저들의 경계가 심하여 어찌 되었는지 아직 파악이 덜 되고 있사옵니다.
견훤 더 파악해 볼 것도 없다. 고려군이 온다면 예천과 강주(영주) 쪽으로 해서 고창의 북쪽으로 들어올 것이다. 일만 오천이라면 딱하게 되었구나. 우리의 상대가 아니 돼...
최승우 그러나 이곳은 적진이옵고 저들은 죽기로 뭉쳐있사옵니다. 죽음을 앞세운 군대처럼 무서운 군대는 없사옵니다, 폐하. 조심하시오소서.
견훤 아, 조심은 해야겠지. 하지만 말이야, 고창은 고작 삼천의 군사밖에 없는 곳이고 왕건 아우의 군대는 일만 오천이야. 우리의 절반밖에 안돼. 또한 주변 호족들이 모두 등을 돌리고 있어. 우리가 질 여건이 아무 것도 없네 그려.
최승우 적진의 동향이 상세히 알기 어렵다는 점 또한 매우 불길한 것이옵니다.
견훤 하하하.. 저들이 지독하여 똘똘 뭉쳐서 경계를 하고 있으니 어찌 첩자가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겠는가? 그러니 첩보를 알기가 쉽지 않지. 그러나 저들은 독 안에 들어 있어. 우리가 꺼내면 되는 것일세. 그것 뿐이야. 하하하하.... 자, 천천히 가도록 하세. 조금 더 가서 영채를 세우고 그곳에서 전령을 보내 신검이와 전체적 공략 시점을 논의하도록 하세.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아아.. 산세가 아주 보기 좋구먼 그래. 오랜만에 나왔더니 기분이 아주 괜찮아. 좋다, 좋아... 좋아...
그렇게 여유 있는 견훤의 표정에서...
씬 어느 산속 길
강이 아래로 멀리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이들은 점점 이 강에서 벗어나 산 속으로 접어들고 있다. 유금필 군이다. 유금필이 박술희에게 말한다.
유금필 조금 더 가서 백제군을 기다리도록 하세. 신검의 군대는 이리로 올 것이야.
박술희 예, 형님. 그 아이는 어찌할까요?
유금필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박술희 사로잡을까요, 아니면 목을 따올까요? 그 신검이라는 아이 말이옵니다.
유금필 자네는 다 좋은데 서두르는 것이 흠이야. 저들의 군사도 오천이나 된다고 들었네. 민병대까지 합치면 일만에 가까울 것이야. 우리가 이쪽에서 확약을 주거나 아니면 매복지 안에 밀어 넣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네.
박수문 기왕이면 여기서 해결을 보는 것이 낫지 않겠사옵니까?
박수경 물론이옵니다. 뒤를 볼 것이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유금필 그러나 적은 많고 우리는 적네. 최후로 아니 될 때에 매복지를 통과시켜 낙동강으로 밀어넣고 공략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일세. 일단 두고 보세나. 자, 모두 조심해서 위장하여 분산하도록 하라. 매복지에 군사들을 잘 숨기도록 하라.
부장들 매복지에 군사들을 위장하라. 모두 깊숙이 숨어라. 신검군이 곧 올 것이다.
여러 부장들이 같은 말들을 반복하고 있다. 숲속으로 그들의 모습이 점차 숨어들기 시작한다.
씬 어느 벌판 길
신검이 휘하 군사들과 함께 오고 있다. 일만에 가까운 대군이다.
신검 아버님께서 벌써 고창 가까이 이르셨다 하는구나.
양검 언제 공격을 하기로 하셨사옵니까?
신검 글쎄다. 고창성 북쪽으로 고려군이 오고 있으니 저들의 동정을 보면서 결정해야 하지 않겠느냐? 가까운 거리이니 전령을 통해 다시 전하기로 하였다.
용검 이번에 금강이가 아버님과 함께 왔사오니 또 그쪽의 선봉을 맡지 않겠사옵니까?
신검 왜 또 금강이 이야기를 하는 게냐? 선봉을 맡든 아니 맡든 내 소관이 아니니 신경 쓸 것 없다.
종훈 태자마마, 첨병의 말을 들으니 저들의 경계가 하도 억세고 단단하여 첩자들이 고창성 안의 사정을 알아올 길이 없다고 하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다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옵니다.
신덕 일리가 있사옵니다, 태자마마. 저들이 결사항전을 외치며 고려군과 연합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마땅히 몇 번이고 조심을 해야 하옵니다.
신검 허나 우리 안에 갇힌 작은 촌락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다는 말이오? 나는 일전에도 고려왕을 혼내 준 적이 있소이다. 고려군대는 그리 무섭지 않소이다.
애술 그건 그렇사옵니다. 고려군이 무엇이 무섭사옵니까?
그때, 멀리서 전령 하나가 다가와 군례를 올린다. 모두들 서서 본다.
애술 무슨 일이냐? 적진에서 오는 길이냐?
전령 예, 장군. 이미 고려군이 고창군의 군대와 만나 공동 전략에 들어갔사옵니다.
애술 그래...? 그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숨이 가빠 그러느냐?
전령 엄한 저들의 경계를 간신히 뚫고 죽음을 무릎 쓰고 알아 보았사온데...
애술 아, 그런데...?
전령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목에 고려의 장수 유금필이 이끄는 군대가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애술 누구...? 누구라 하였느냐?
전령 고려의 장수 유금필이라 하였사옵니다.
애술 유금필....?
애술이 눈을 크게 뜨며 비로소 정신이 바짝든다. 그리고 입맛을 다시며 어색해 한다. 신검이 보다가 말한다.
신검 유금필이라면 장군께서 혼이 나신 바로 그 장수가 아닙니까?
애술 아, 예... 그 유금필이가... 예, 그런 일이 있었지요.
신덕 폐하께오서는 전장터에 나간 모든 장수는 일단 유금필의 군대를 조심하라 하였사옵니다. 고려의 맹장이옵니다.
신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애술 비록 한번 혼이 난바 있으나 소장으로서는 좋은 기회이옵니다. 허락하시면 소장이 앞을 서서 대적해 보고 싶사옵니다.
종훈 이미 적군의 동향이 들어오기 시작했사옵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매복지에 대책도 없이 들어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옵니다. 잠시 군사를 대기하면서 적진을 살피는 것이 옳을 것이옵니다.
신검 허나, 아버님께서 이미 가까이에 이르렀다 하지 않습니까? 우리와 협공을 하게 되어있는데 여기서 멈추어 버린다면 이거야말로 아니 될 일이지 않소이까?
상귀 싸우러 온 군대가 멈추어만 있다면 어찌되겠사옵니까? 태자마마, 그대로 가시오소서. 우리가 가지 않으면 비겁하다 할 것이옵니다.
신검 허나, 적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고 우리는 저들이 얼마인지 무슨 속셈이 있는 지를 모르겠소이다. 그것 정도는 알 필요가 있어요. 더군다나 유금필이라는 장수가 있다면 말이올시다. 일단 이곳의 진을 치고 적정을 살피도록 하십시다.
종훈 잘하신 일이옵니다. 그리하실 필요가 있사옵니다, 태자마마. 절대로 서두르지 마시오소서. 이번 전투는 너무도 완강하고 독한 자들을 만난 것 같사옵니다. 그만큼 주의를 하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끄덕이는 신검, 뭔가 그는 계산을 하고 있다.
씬 견훤의 군영 (밤)
씬 동 견훤의 군막 안
견훤 역시 지형도를 펴놓고 최승우, 금강, 박영규 그리고 부장들과 함께 해 있다.
견훤 지금 신검이가 문소성을 나와서 고창 이쪽 남서쪽으로 오고 있어. 그리고 우리는 이쪽 보문산과 백자봉 사이의 길을 앞에 두고 있고 말이야. 고려군은 어디쯤에 있을까?
최승우 이미 고창성과 손을 잡았다 하니 이 북쪽의 봉수산과 미면산을 넘어서 낙동강 기슭에 포진해 있을 가능성이 높사옵니다.
박영규 그러하옵니다. 저들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고창에 들어간 것은 분명하옵니다. 첩자들의 보고가 한결같사옵니다.
금강 우리는 남쪽에서 오고 저들은 북쪽에서 오고 가운데는 낙동강이 있고.... 그리고 우리는 삼만의 군사가 있고 저들은 일만 팔천의 군사가 있어.
최승우 고창 전투는 숫자로 헤아리실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저들을 잘 유인해 끌어내거나 아니면 치거나 하는 것에 달려 있사옵니다. 또한 그 반대로 우리가 저들의 계략이나 매복에 휘말릴 수도 있사옵니다. 고창으로 가려면 반드시 남쪽이든 북쪽이든 협곡을 지나야 하옵니다.
견훤 (끄덕인다) 허나, 어쨌든 전력은 전체적으로 우리가 우수하네. 신검이와 우리가 양면으로 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이번 총사는 금강이가 맡아봐. 어차피 매형이 도울 것이 아니냐?
금강 예, 폐하.
견훤 그래도 자네가 매부라고 조카 중에 우리 금강이를 가장 생각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 모두들 다 금강이를 질시하고 미워하고 있어. 사위라도 좀 지켜주어야지.
박영규 예, 폐하.
견훤 알다시피 금강이가 너무 형들을 앞서가는 것을 많은 신료들이 좋아하지 않고 있어. 이럴 때에는 자네같은 황실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해.
박영규 이를 말이옵니까, 폐하? 신은 오직 폐하의 뜻을 모시고 사는 몸이옵니다.
견훤 그래, 그래... 뭐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길게 할 것은 없고... 아무튼 날이 밝는 대로 더 정세를 관망한 뒤에 고창으로 들어가도록 하세. 밤에는 위험해. 매복군이 있을 수도 있고...
최승우 예, 폐하. 그렇사옵니다.
견훤 헌데 이거 신검이 한테서는 왜 아직 전령이 아니 오는 게야? 문소성을 출발하였으면 지금쯤 어디 와 있다고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허허, 이것 참... 고려군은 벌써 저들과 군을 합쳐서 방어를 시작했다는데 이렇게 여유가 많아서야, 원 쯧쯧쯧... 글쎄 늘 이렇다니까...?
씬 어느 산 입구
울창한 숲속 길에 홍유 군이 작은 영채들을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다.
홍유 첩자의 말을 들으면 이미 백제의 왕이 산 저쪽 삼십 리밖에 영채를 세웠다 하오이다. 아마도 밤이 지나고 나면 내일쯤 고창으로 들어설 것 같습니다.
배현경 그렇겠지요. 이만의 대군인데 밤에야 움직이겠소이까?
염상 유금필 장군이 간 곳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소이다.
홍유 아, 그곳에서 방금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백제의 태자 신검이 이끄는 군대가 유장군이 있는 길목으로 오다가 역시 행군을 멈추고 사정을 엿보고 있다고 합니다.
왕충 저들도 내일 날이 밝아야 움직일 모양입니다.
윤신달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유금필 장군이올시다. 저들이 삼년 산성에서 그야말로 혼줄이 났었지요. 백제가 자랑하는 애술이라는 장수가 큰 낭패를 보았던 전투였습니다.
홍유 (조금 떨떠름하다) 그 소문이 참으로 오래도 갑니다 그려. 어떻게 서경에서 내려온 왕식렴 총관도 그저 그 얘기만 물읍디다?
윤신달 하하하... 그만큼 대단했었으니까요.
홍유 어흠, 흠..... 장수로서 싸움터에 나가 마땅히 한 일을 가지고 자꾸만 그 공을 운운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요. 더군다나 위기에 처하신 폐하를 구하신 일이올시다. 그런 민망한 일은 가급적 입에 담지 않는 것이 신하들의 예가 아니겠소이까? 어흠, 흠....
배현경 거 뭐 듣고보니 홍장군의 말이 일리도 있소이다. 아, 유장군 만큼 싸움터에서 아니 싸우는 장수가 누가 있소이까? 언제나 그래서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고 하는 것이올시다. 아니 그렇소이까, 홍유장군?
홍유 아, 왜 아니겠소이까?
윤신달 그나저나 내일이면 우리는 견훤왕과 부딪혀야 합니다. 오는 것을 잡을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계획대로 매복지 안으로 밀어 넣을 것입니까?
배현경 지난번에는 우리 폐하께서 곤욕을 치르셨으니 그대로 해 주십시다. 밀어 넣읍시다. 서툴게 잡으려고 하다가 놓치는 수도 있어요. 차라리 밀어 넣고 포위를 해서 폐하로 하여금 지난 한을 풀어드리도록 하십시다.
홍유 좋은 생각이올시다. 그리 하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뒤를 끊고 막아버리면 끝나는 일이올시다. 내일이라.... 내일은 아주 볼만하겠습니다 그려...
씬 낙동강 변
어둠 속으로 멀리 강물이 보인다. 숲 속에 영채들이 많이 서 있다. 왕건이 나와 어둠 속의 강을 보고 있다. 최응과 최지몽이 따르고 있다. 김선평, 김행, 장정필들이 함께 해 있다.
최응 각군의 보고가 속속 들어오고 있사온데 백제의 양군은 모두 행군을 멈추고 우리 동정을 살피고 있다 하옵니다.
김행 그럴 것이옵니다. 저들이 그 깊은 계곡을 어찌 밤에 함부로 넘어오겠사옵니까? 내일이 아마 볼만한 것이옵니다.
김선평 그러하옵니다. 저들이 예정대로 오고 있사옵니다. 내일이옵니다.
왕건 밤이 깊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구려. 예정대로 저들이 이 강으로 들어와 우리에게 포위된다면 내가 과거에 대구의 공산에서 저들에게 갇힌 것과 같은 형국이 되는 것이올시다.
최응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미 그렇게 되어 가고 있사옵니다.
왕건 그날 밤에도 백제의 왕은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게야. 사실 백제왕은 내가 만나 보았지만 얼마나 걸출한 인물인가?
장정필 아니, 폐하..? 적의 수괴를 칭찬하시옵니까? 당치 않으시옵니다.
왕건 비록 그 사람이 거친 전국시대를 운영하느라 좋지 않은 일도 저질렀지만 대장부로서 평가한다면 그는 분명히 호걸 중 하나요. 내일 그 운명이 다할 수도 있다하는 생각을 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우리는 너무 숙명적으로 싸워왔소이다. 내 의제들도 저들에게 죽었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적 연민의 정이 드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소이다.
최응 폐하께오서는 늘 덕과 정으로서 세상과 만물을 보시기 때문에 그러하신 것이옵니다. 그러나 이곳은 전장터이옵고 적을 앞에 두고 있사옵니다.
왕건 알고 있네. 그렇다고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니 염려 말게. 백제의 왕이 내 목을 그렇게 애타게 갖고 싶었듯이 나도 그러하다네. 어쨌든 내일을 기다려보세. 내일이야....
그렇게 어둠 속을 응시하는 왕건의 모습에서... 디졸브
씬 인서트 (산야)
여명 속에 아주 서서히 아침 햇덩이가 솟아오르고 있다. 그 붉은 빛깔이 구름과 산야를 물들이며 오르고 있다.
씬 신검의 군영
수많은 영채들이 서 있다.
씬 동 신검의 군막 안
제장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모두 심각하다.
신검 날이 밝는 대로 아버님이 이끌고 오신 군대가 고창으로 들어간다 하였소이다. 우리는 협공하라는 영을 받고 있으니 역시
움직여야 합니다.
신덕 물론 군령을 받았으니 가기는 가야합니다마는 ...
양검 그러나 고려 유금필의 군대가 우리 길목을 막고 있다 하지 않사옵니까?
용검 조심해야 하옵니다. 우리 애술 장군도 당하지 못했사옵니다.
애술 어흠, 흠..... 그때는 워낙 운이 없어놔서...
최필 그 장수가 얼마나 용맹한지는 몰라도 이렇게 도중에서 머뭇거릴 수는 없사옵니다. 영을 내리시오소서, 태자마마.
신검 유금필이라는 장수가 무서워서가 아니오. 우리는 고려의 왕이 삼년군에서 겪었던 똑같은 상황을 맞고 있소이다. 저들은 지금 고창 땅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서 얼마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몰라요. 좀 더 적진을 살펴보십시다. 무리해서 들어가다가 낭패를 볼 수가 있습니다.
김총 하지만 폐하께서 내리신 군령이옵니다. 우리는 협공을 하기로 되어 있지 않사옵니까?
종훈 (긴 생각 끝에 입을 연다) 그래도 더 행군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차라리 폐하께 전령을 띄워서 고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류하라 하심이 맞을 것이옵니다.
신검 허면 나보고 또 겁쟁이라 하실 것인데... 허허, 이것 어찌하나..? 앞에는 유금필의 군대가 있고, 뒤에는 아버님께서 몰아 부치시고, 우리는 저들의 속을 알지 못하고, 어허 이것 참....
애술 태자마마, 행군을 명하시오소서. 태자마마 말씀이 맞사옵니다. 아니 가면 폐하의 꾸지람이 크실 것이옵니다. 선봉은 소장이
서겠사옵니다.
종훈 위험하다 하였소이다.
애술 아닙니다. 가지 않으면 분명히 문책이 따를 것이올시다. 저들의 수가 얼마나 되겠소이까? 일단 접전을 붙어 보십시다. 저들의 숫자도 기껏해야 우리보다는 많지 않을 것이올시다.
최필 옳은 말씀입니다. 가야하옵니다, 태자마마.
김총 가야하옵니다.
신검 알겠소이다. 전면전보다는 첨병들을 충분히 앞세우고 저들의 동정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가십시다. 가도록 하십시다. 나도 겁쟁이라는 소리는 듣고싶지 않소이다. 가십시다.
종훈 태자마마...
신검 그만 하시오, 종훈 군사. 나도 군령을 받았으니 어찌 하겠소이까? 가 보십시다. 내가 알기로는 좀 멀기는 하지만 가다가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도 있는 것으로 들었소이다. 아버님과 합류하는 길은 정 안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할 수도 있소이다. 아버님께도 그렇게 알려드리십시다. 전령을 보내도록 하세요. 우리도 예정된 시각을 맞추어 보겠노라고...
모두들 예, 총사.
신검 .............. (한숨, 생각이 많다)
씬 고창 낙동강변
숲 속에 석포며 각종 공격용 장비들이 숨겨져 있다. 왕건과 최응, 최지몽, 그리고 세 호족이 함께 해 있다. 강물과 산 쪽을 본다. 왕건은 초조하다.
왕건 백제의 왕이 어찌하고 있는지 모르겠소이다. 이미 날이 밝고 한참 지났어요.
김선평 예정대로라면 움직이고 있을 것이옵니다. 전투를 하러 온 군대가 기다리고만 있겠사옵니까?
왕건 지금 우리 장수들이 두 곳으로 나가 백제의 왕과 그 아들 신검 태자 쪽을 각각 맡아 기다리고 있소이다. 일차로 저들이 막지 못하면 저들은 예정대로 이 안으로 들어올 것이외다. 준비는 되었소이까?
김행 염려 놓으시오소서. 고창의 군사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 하였사옵니다.
장정필 백제의 견훤왕을 일러 지렁이의 후신이라 하옵니다. 이에 우리 군사들이 어젯밤에 낙동강에 엄청난 소금 가마니를 풀었사옵니다.
왕건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소금 가마니라니..?
장정필 지렁이는 소금 기운만 씌우면 그대로 녹아버리지 않사옵니까? 군사들의 사기도 올릴 겸해서 그렇게 한 것이옵니다.
왕건 하하하... 지렁이라... 하긴 나도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소이다. 조물성에서 저들은 지렁이를 통해 약재를 얻었고 우리는 속수무책이었소이다.
김선평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
왕건 그 일로 하여 우리는 결국 백제에 머리를 숙였소이다. 그 지렁이 때문에 말이오. 허허허... 그때 한번 보인 약점이 몇 년을 갔소이다. 공산에서도 그리했고 삼년군에서도 그리했고....
최응 하오나 폐하, 백제의 왕이 지렁이의 후신이든 아니든 간에 낙동강 물에 소금을 풀었다는 것은 곧 지렁이를 죽인다는 뜻이옵니다. 우리 쪽의 군사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위로가 되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왕건 그건 그러하이... 그래, 지렁이라...? 그것 참... 용이라는 말을 써도 모자랄 사람인데 왜 지렁이라 하였을까...? 허허, 그것 참...
씬 길
견훤의 군대가 오고 있다. 최승우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최승우 폐하, 이상하리만큼 이번에는 밖으로 보낸 척후병들이 제 소임들을 못하고 있사옵니다.
견훤 저들이 차돌같이 뭉쳐서 철통같이 경계를 하고 있는데 어찌 우리 척후병들이 잘할 수 있겠는가? 너무 걱정 말게. 길은 뻔하고 또한 어디쯤에서 싸워야 하는지를 우리는 다 알고 있지 않는가? 금강아..?
금강 예, 폐하.
견훤 신검이한테서는 전령이 왔느냐...?
금강 예, 폐하. 방금 전에 도착하였사옵니다. 형님께서도 군대를 다시 움직여 약속대로 집결지에서 우리와 만나겠다고 연락을 주셨사옵니다.
견훤 들었는가, 파진찬...? 신검이도 움직였어. 그 아이도 이제는 상당히 노련한 장수가 되었네. 내가 시키지 않아도 얼마나 적정을 재고 또 재고하면서 적진으로 들어가고 있는가? 그런 점은 그런 대로 이제 좀 공부가 된 것 같아.
최승우 예, 폐하. 그곳에는 우리 군사 종훈이 있사옵니다. 종훈 군사 또한 적진의 내용이 철저하게 가리어져 있는 것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견훤 사실 말일세... 언제나 그렇지만 전투란 것은 뻔한 것이야. 첫째로 적을 알아야 하고 둘째로 지형을 알아야 하고, 셋째로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말일세. 이미 우리가 알 것은 다 알고 있네. 너무 조심하고 겁을 내는 것도 옳지 않아.
최승우 하오나 폐하...
견훤 이번 고창 전투는 아주 중요하네. 내 말을 했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어. 이제 왕건 아우는 그야말로 이곳에 온 이상 내 먹이일세. 내가 원하면 언제든 먹을 수 있어.
금강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이번에 고려왕이 나온 것도 그 한을 갚으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이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럴 것이야.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아주 신이 나서) 한두 번도 아니고 한두 달도 아니고 몇 년을 내리 내 발 밑에 깔려 있었어. 이제 그만 가지고 놀고 아예 잡아 버리자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잡아야지 무얼 더 꾸물거린다는 말인가?
최승우 조심을 하자는 것이옵니다. 몇 날 며칠, 아니 몇 년이 더 걸리면 또 어떠하옵니까? 성급함은 금물이옵니다.
견훤 파진찬도 이것 참 너무 사람이 소심해진 것 같아. 물론 작은 희생쯤은 있을 수도 있어. 아니, 보다 많은 희생이 날 수도 있지. 하지만 전쟁에서 그것은 당연한 것이야. 문제는 결과이지. 어떤 결과를 얻었는가 하는 것 말이야. 아니 그런가, 파진찬...?
최승우 신의 말씀을 한번 따라주시오소서. 며칠만 더 시간을 주셨다가...
견훤 이번에는 내 말 좀 따라주게. 오늘이야. 오늘과 내일 중으로 끝내자는 것이야. 알겠는가...? 서둘러라, 금강아.. 척후병을 계속 내 보내고 사방으로 첨병을 깔아서 적진을 잘 살피라고 해. 그리고 행군을 계속해. 언제든 공격할 수 있도록 말이야.
금강 예, 폐하.
견훤 지금 너의 형 신검이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이번에 전공을 뺏기지 않도록 해라. 허허허....
금강 예, 폐하. 제장들은 들으라. 폐하께오서 서둘랍신다. 척후병을 계속해 앞서 띄워라. 모두 공격대형으로 행군을 하라.
부산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씬 산길
산 계곡이다. 울창한 산림 사이로 휘어져있는 제법 큰 오르막길을 신검의 군대가 오르고 있다. 맨 앞에 애술과 부달, 소달이 함께 가고 있고 그 뒤로 신검과 제장들이 따르고 있다. 그들은 사방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속도를 맞추어간다. 특히나 애술의 긴장감은 극에 달해 있다. 그렇게 얼마쯤 가고 있을까...?
씬 그 계곡 길 어느 곳
멀리서 백제군이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유금필과 박술희, 박수문, 박수경 형제들이 보고 있다.
박수문 장군, 저기... 백제군이옵니다.
유금필 ............. (끄덕인다)
박술희 앞에 오는 자가 애술이 아니옵니까..?
유금필 지난번에 나에게 혼좀 났다네.
박술희 허허허... 그래도 상당한 무예가 있는 장수이옵니다. 여기서 만나다니 참으로 반갑사옵니다.
유금필 사람 하고는... 전장터일세. 궁수들은 무얼 하느냐? 활을 들어라.
부장들 활을 들어라. 소리를 내지 마라. 모두 숨을 죽여라. 백제군이 가까이 올때까지 모두 숨을 죽여라.
점차 백제군들의 모습이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애술의 모습이 그 부장들과 더불어 선명하게 보여온다.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겨눈다. 보고 있던 박술희가 안타까운 듯 말한다.
박술희 형님...?
유금필 왜 그러는가..?
박술희 저런 장수를 활로 쏘아 죽이면 되겠사옵니까?
유금필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박술희 그래도 정깨나 들은 적장이옵니다. 어차피 군사 몇을 잡으려고 활을 쏘기보다는 처음부터 저들과 대적해 보십시다.
그 말에 유금필이 비시시 웃는다. 그 속셈을 다 아는 것이다.
유금필 허허허... 하긴 일리가 있네. 지금 활시위를 당기면 저 애술이라는 자는 죽네. 한번 해보겠는가?
박술희 예, 형님.
유금필 부장들은 들으라. 활을 쏘지 마라. 활을 쏘지 마라.
그렇게 백제군은 가까이 이르고 있다. 활을 든 첨병을 앞세우고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오다가 그들은 숲 속의 웃음소리에 멈칫하며 모두 정지한다. 유금필과 박술희가 웃고 있다.
박술희 하하하... 앞에 오는 장수가 누구신가? 백제의 애술 장군이 아닌가? 날세... 나 박술희 일세...
애술 .................(긴장하다가 웃는다) 아니..? 저 못난이가 여기 있었구먼 그래. 히히히..... 야, 박술희... 오랜만이로구나. 오랜만이야... 잘 있었느냐..? 나도 잘 있었어.
박술희 여전하구나. 여기는 전장터가 아니냐..? 옛날의 약속을 잊었느냐? 옛날에 우리 한번 다시 만나면 멋지게 싸우자고 하지 않았느냐?
애술 히히히.... 그랬지, 그랬어. 나는 자네의 형인가 누군가 하는 유금필이가 기다리는 줄 알았지...
유금필 하하하.... 지금 내 이야기를 하였는가...?
애술 (웃음이 싹 사라진다) ..... 그렇다... 내 동무 박술희의 형이지만 복수의 기회를 기다렸다.
유금필 술희 아우, 어쩌겠는가? 내가 내려갈까, 아니면 자네가 가겠는가?
박술희 이보게, 애술이...? 형님께서는 내게 기회를 주시겠다네. 어쩌겠는가?
애술 그것도 나쁘지는 않네. 어서 오게.
박술희 기다리게.
이러한 정경을 양쪽 장수들과 부장들이 보고 있었다. 박술희는 눈을 꿈뻑하고는 말에 올라 칼을 들고 달려나간다. 양쪽 군사들은 경계태세를 취하고 저쪽에서도 드디어 애술이 칼을 들고 달려나온다. 그들은 그렇게 숲속 작은 공터에 마주선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른다.
애술 결국 이렇게 마주서는구나, 박술희...?
박술희 그렇다. 이것이 장수들의 운명이 아니겠느냐? 자, 애술아. 내 검을 한번 받아 보너라. 오늘 네 목이 떨어진다고 후회하지 말렸다.
애술 내가 할 말이다. 조금도 인정을 두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 자, 간다... 술희....
박술희 오냐, 어서 오너라...
먼저 칼을 날린 것은 애술이다. 그리고 박술희는 그것을 피하며 순식간에 십여 합이 오고 간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의 검이 부딪히면서 그렇게 둘은 서로를 본다. 씩 웃는 애술의 표정과 역시 웃음으로 답하는 박술희의 표정에서.....
<168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