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정원*
우리의 산책은 팔 없는 팔을 휘휘 젓는 회양목 같습니다. 무너지길 기다리는 담장 같습니다. 흐르지 않는 수석이며 울분에 찬 분재일까요? 흔히 볼 수 있는 괴석이고, 자주 가슴에 올리는 손입니다. 아무 말 없이 심장을 덮고 싶은 모자입니다. 빛에 닿으면 풀어져서
옆으로 걷는 모양새입니다. 앞과 옆은 구분할 수 없고, 뒤를 보면 뒤가 없습니다. 있음으로써 말하지 않는 우리는 없음으로써 말하려 합니다. 옆을 잃었을 때 옆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돌아서기는 이미 어둑했으므로
발힘을 빼고 옆구리에 힘을 줍니다. 그것은 어울리는 기암괴석이거나 들고 가는 모자입니다. 정맥이 파랗게 살아있는 손등이거나 곧 증발할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벌어진 거리를 유심히 쳐다봅니다.
거리는 쉴 틈이 없고, 몇 바퀴 돌고 보니 우리는 이미 거리가 되었습니다. 연못을 지나 담장을 넘어 어딘가를 향해 길어지고 있어서, 거리를 당겨 봅니다.
잘 들어 봐요. 왼 발 오른 발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슬리퍼 같은, 킬 힐 같은, 소리는 0dB부터 들을 수 있다는 데요. 우리의 산책은 소리 밖에서 시작되어 소리 밖으로 이어지고 있는 걸까요?
* 고순철 화가 개인전
스투키는 오직 스투키
테이블이 기우뚱거리면 쓰러지는 것. 나인지 화분인지 잠시 헷갈리는 것은 현재 진행형, 그것은 am과 ing 사이의 속삭임 혹은 비어 있음이다. 수시로 바꿀 수 있고 뒤집거나 뒤집히는 속내를 한 번쯤 들여다 볼 걸. 쏟아지는 흙이고 부러지는 줄기이고 뽑혀가는 뿌리다. 속을 들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매번 뭔가를 잃는 다육이와 자주 이별하는 페페와 이미 익사해 버린 나의 호야 대신에 질긴 뭐 없을까. 그래서 스투키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외면 받을수록 씩씩하고 끈질길 수 있다는 믿음은 위험하다고. 뾰족한 당신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각 테이블의 다리는 네 개이고, 한 개가 흔들려도 테이블은 테이블일 뿐인데, 그 순간에 자라는 것은 누구의 스투키인지. 잠이 덜 깬 얼굴로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고 포크를 챙기고. 응원이 필요한 순간에, 찌르면 자르고 찔리면 뒤틀려도, 무엇이든 심는 것이 우리의 am이고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ing이길. 우리는 말없이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한다. 화분 대신 놓은 것들. 그것을 빵과 커피라고 부르지 않는다.
피플
우리는 접시를 놓쳤습니다. 놓친 다음에는 다시 접시가 되지 않았지요. 깨진 조각들과 희미한 빛을 내는 부스러기들. 작은 접시였고, 작은 손이었을 뿐인데, 새됐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날개이고 발톱일까요. 이리저리 뛰는 철새가 되어 날파람이 되고 날벼락이 되고, 지금 우리가 본 것만을 이어 붙여도, 새됨은 새가 흉기일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무기가 단지 무방비일 뿐이라면, 순식간에 날아가는 나락일 겁니다. 나름대로 손을 잡느라 우리는 이마를 마주하고 서 있습니다. 몸집을 부풀리는 새됨과 계속해서 작아져 가는 새됨 사이, 다리 뻗고 잠든 기도가 깨진 접시가 될 때. 혹시 빠지고 싶다면 말해. 바닥을 쓸다가, 뒤를 돌아보다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마가 자라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마는 왜 항상 앞에 있는지, 이마에 물을 부으면 발뒤꿈치로 흐른다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검은 새들이, 검은 비닐봉투 속에서 부딪치는 소리. 어지럽게 되풀이 되어도, 검은 옷이 빛을 잘 흡수한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둘러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수상 소감>
아주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때로는 더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시 앞에서는 누구나 즐겁고 고통스럽고 두려워집니다. 시란 무엇일까 생각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모든 게 시이고 모든 게 시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전쟁과 폭력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미움과 분노가 있습니다. 머리를 흔들 때마다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잡듯이, 결국에는 잡지 못하고,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발견할 때처럼, 세계와 나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고요와 평화가 아니라서, 시가 다정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여행은 끝날 것이고,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연시를 따서 건네주던 노인, 서낭당 앞에 쌓인 돌탑,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숲길, 낚싯대를 드리우고 몇 시간이고 앉아 있던 사람, 그 뒤에서 어디 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나, 그리고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또 다른 나, 그리고 다정하게 손을 건네주던 낯선 세계들.
조금 더 여행을 해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고양행주문학상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지만 늘 함께 고통을 지고 가는 문우들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 항상 내 편인 남편, 그리고 사랑스런 두 딸 선영이 도영이, 그리고 가족이 되어 준 사위 동진이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꿈에서 힘껏 도망쳐 나온 방향에서 아침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꿈을 꾸기 위해 밤의 방향으로 떠나겠습니다.
* 안미옥 시 <아주 오랫동안> 중에서
약력 : 2019년 <시로여는세상> 신인문학상.
시집 <양은 매일 시작한다> 있음.
[출처] 2024 고양행주문학상 시 당선작-소금 정원/스투키는 오직 스투키/피플/ 최지온|작성자 천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