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한 반점이 있는 귤 몇 알이 창가에 놓여있다. 한 귀퉁이에 검푸른 빗금이 쳐진 단감과 줄무늬가 고르지 않는 호박도 그 곁에 앉아있다. 이곳에서는 못난이 농산물을 파지라고 부른다.
멀지 않는 곳에 포송포송 솜사탕 같은 구름에 싸여있는 한라산이 보이는 여긴 제주시 도립병원 최고층 한 병실이다. 다섯 명이 정원인 병실에 네 명의 교통사고 환자가 누워있다. 64살, 52살, 45살 그리고 38살인 세 살 아이 아빠 이렇게 남자 넷이 있다. 이들은 종일 서로 말 한 마디 없이 핸드폰과 노트북 티비를 보면서 통증을 달랜다.
네 명 모두가 교통사고 환자, 거동이 불편해 조용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기치 못한 일이 하루걸러 하나씩 꼭 생기곤 한다. 이틀 전에는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게 큰 리본을 단 밀짚모자를 꾹 눌러 쓴 초로의 여인이 폴더폰을 흔들며 병실에 들어섰다. 무거운 듯 배낭을 내리면서 창문 쪽 침상을 가리키며 몸으로 말한다. 저기 누가 있느냐는 신호다. 고개를 저으니 안심한 듯 들어와서는 가쁜 숨을 크게 한번 몰아쉰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서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모습이다. 배낭에서 작은 페트병 여섯 개와 귤 한 봉지, 단감 봉지를 꺼내 놓는다. 애걸하듯 자기 곁에 좀 와 보란다. 나는 여행 왔다가 뒤에서 덮친 오토바이에 한 쪽 다리를 크게 다친 52살 서울남자의 간병사다. 여인은 그 여섯 개의 병을 가리키며 설명이 길다. 어렵사리 달여 온 곰국이니 자기 막내아들에게 먹여 달란다.
“젊은이들은 잘 안 먹지 싶은데요. 어르신이나 드시지요?”
“전화도 안 받고 승강기에서 분명히 그 아이 맞지 싶은데 휙 지나 가버렸어요. 부디 좀 먹게 해 주세요”
다시 이틀이 지나고 또 그 여인이 절뚝이며 배낭을 내려놓는다. 아직 곰국이 그대로 냉장고에 나란히 있는데 세 병을 더 보탠다. 잘 먹고 있는지 점검 차 왔단다.
그 여인의 아들 마흔다섯 살의 남자는 이미 열아홉 살 아들이 있단다. 그 아들이 아홉 살 때 이혼을 했는데 어머니 때문이라고 간략하게 말했다. 전 부인이 아주 미인이었다는데 아이까지 있는 부부가 별리의 아픔을 간직했을 때는 말 못 할 사연이 있었으리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두 달째 입원 중인 그 남자는 전화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주소를 묻고 노트북을 두드리고 가끔 목발을 짚고 통화를 하면서 나가서 한 참 있다가 들어오곤 했다. 병원 밥이 질린다고 밥상 채로 내게 내밀곤 했다. 나는 아침마다 삶은 계란이며 따뜻한 햄버거를 사다가 내가 돌보는 환자와 그 남자에게 나눠주곤 했다.
꽤나 먼 거리의 마트에 가서 소금이며 실파 후추를 샀다. 말로 하기엔 고함이 나올 것 같아 간호사실에서 A4용지를 얻어다 간결하나 간곡하게 메모를 했다. 곰국의 효능을 적고 부디 몸도 불편한 노모의 정성을 받들어 먹으라고 했다. 묵묵부답. 그 메모지도 이내 파지가 되었다. 푸른색 실파가 누렇게 변하도록 곰국 먹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자주 오는 그의 여자 친구조차 아예 곰국은 안 먹는다고 한다.
다시 메모를 한다.
‘이 봐요! 당신 어머니 돌아가시면 가슴 치지 말고 염증 치료와 뼈에 좋다니 약이라 여기고 좀 먹어봐요’
이번에는 포스트잇에 쓰고 잘 보이는 베개 위에 올려 두었다. 자기는 먹으면 토할 것 같으니 나더러 먹으란다. 과일도 봉지 그대로 주면서 자기는 이미 많이 먹었단다. 다시 메모를 하다가 조각조각 찢었다. 그래 우리 세대는 살아내기 바빠 사랑 법 못 배웠다. 먹고 싶다는 것만 주어야 하는 것도 모른다. 그 여인의 마음이 내 가슴에 박혀 아리다. 이미 고인이 된 친정어머니가 날라 오는 먹거리들을 어지간히 소홀히 했었기 때문이다. 죽을힘을 다해 농사지었지만, 귤과 당근 단 호박에 특산물 과자까지 파지를 먹는 서귀포인이 되어 그것들을 와작 씹는다.
그녀가 가져다 놓은 곰국도 곧 파지가 될 게 뻔하다. 소원해진 모자, 내 가슴이 찡하다.
첫댓글 병원에 근무하시면서 격은 일을 작품으로 역으셨네요.
파지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게 합니다.
파지가 될 곰국이 아프네요
사랑은 참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