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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 본 문 : 요한복음 16장 25절 - 33절 (신약 176쪽)
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
+ 함께 인사를 나눕시다. / ‘주 영광’ - ‘승리하십시요.’
힘으로 하는 일에 작은 사람은 언제나 불리합니다. 싸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저는 언제나 제 키를 평균 신장이라고 우깁니다만, 솔직하게 작습니다.
어렸을 때도 작았기 때문에, 같은 또래들끼리도 아예 싸워 볼려고 해본적이 없습니다.
제 옆집에 나이는 같지만, 학년은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인 덩치가 좋은 아이가 있었는데,
상급생인 나를 상급생 대접이 아닌 학교 가는 길, 오는 길에 자꾸 쥐어박고 못살게 굽니다.
우리 때는 학교와 한 동네지만, 언제나 지정된 장소에 모여 줄을 서서 학교를 갑니다.
어느 날 그 지정된 장소에서 모이기를 기다리는데, 그 아이가 역시 나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너무 화가 난 제가 나도 모르게 그 덩치 큰 아이에게 한판 붙자고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그렇게 도전장을 내밀고 학교에 가서 곰곰히 생각하니, 붙어봐야 실컨 얻어맞게 뻔한데,
좀 괴롭힘을 당하고 말걸 왜 붙자고 큰소리로 도전장을 내밀었는지 후회가 막심합니다.
학교 파한 후, 그래도 비겁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 얻어맞을 각오로 나갔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쫙 둘러서고, 거기에다 그 싸움의 심판관으로 그 아이의 삼촌이 나섰으니,
그 싸움은 백전백패, 결과가 뻔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졌느냐고요, 졌으면 뭐 하러,
이야기합니까, 이겼으니까 이야기 하는거 아닙니까. 이야기의 주인공이 지는 거 봤습니까?
시작 소리가 나고 싸움은 시작이 되었는데, 역시나 밑에 깔려 뒤지게 얻어맞았습니다.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필사적으로 팔을 휘두르는데, 제 엄지손가락이 그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때부터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 아이 입을 움켜쥐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삼촌이 비겁하다고 놓으라고 해도, 그것 놓으면 나는 만신창이가 되는데요?
그래서 그 아이는 견디다 못해 항복했고, 그렇게라도 이기고나니 상황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그 후, 그 아이로부터 재도전 신청이 들어왔으나, 재도전 신청은 제가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 어느 명절날 고향에서, 나는 목사로, 그는 집사로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때 한바탕 쌈박질을 했던 어린 시절 일을 이야기하면서 한바탕 웃었던 일이 있습니다.
어떻든 저는 어렸을 때부터 힘이 있어야 이긴다는 승리비결을 그 싸움을 통해 체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모든 승리는 힘과 연결됩니다. 어린아이들의 싸움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경기도 힘이 있어야 이기고,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도 힘이 있어야 승리합니다.
승리하면 기뻐 날뛰지만, 지면 비참하고, 불행한 일입니다. 운동경기가 끝난 후, 이긴 사람이나,
이긴 팀은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뻐합니다만, 진 사람이나 진 팀은 털썩 주저앉아 웁니다.
1997년 IMF 경제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나라가 심각한 경제 전쟁에서 지고 나니,
당시 김대중대통령 당선자께서는, 안방까지 내주면서 달러 좀 달라고 구걸하러 다닙니다.
대통령 당선자로서 외교상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도 달러를 준다면 다 만나잖아요?
그래서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정치든, 경제든, 전쟁이든 지면 비참하고 불쌍한 법입니다.
온 국민이 금 모으기, 달러 모으기로 외환위기를 벗어난 일은 온 세계가 다 놀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되어 경제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 되어 힘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지금의 영적위기를 이겨내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에게도 싸워도 싸워도 끝이 없는 삶의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강한 사탄 마귀와의 영적 전쟁을 계속해서 해야만 합니다.
이 모든 삶의 전쟁터와 영적 싸움터에서, 어떻게 싸워야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모든 싸움에서 싸워 이기는 방법에는 몇 가지 승리비결이 있습니다.
첫 번째 승리의 비결은, 이 모든 싸움에서 내 힘껏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러나 내 힘에는 한계가 있기에 나보다 더 강한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 나보다 더 강한 다른 힘을 빌리는 방법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33절 말씀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에게 주신 이 예수님의 말씀은, 온 세계와 거기 사는 모든 사람들과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다 이기었다는, 우리 예수님의 위대한 승리의 선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위대한 승리를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 말씀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3절에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환난을 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가 들어가 살게 될 하나님 나라에는, 환난도 고통도 없는 너무나 좋은 곳이지만,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끊임없이 환난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과 고통은 환경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돈 때문에 당하는 환난과 고통일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당한 환난과 고통일수도 있으며,
인간관계에서 오는 환난과 고통, 육체적인 질병 때문에 당하는 환난과 고통일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과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요즈음 경제난으로 크고 작은 기업들, 자영업자들이 무더기로 도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교회들은 교회 교인 중에, 사장이 도산하면 그와 함께 교회 나오는 직원들이,
함께 직장을 잃어버리므로 경제적인 환난과 고통을 겪는 가정들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목사님들은 이런 환난과 고통을 겪는 가정들을 위로하러 다니느라고 바쁘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환난과 고통이 닥쳤을 때, 저는 히브리서 12장을 읽으라고 권면합니다.
특별히 히브리서 12장 6절, 8절, 11절 말씀을 읽고, 위로를 받고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에게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하나님 자녀들에게도, 환난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환난과 고통이 끝이 아니라, 의와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약속합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절망적인 환난과 고통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그 환난과 고통 때문에 자포자기 하지 말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믿음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 환난과 고통을 긍적적으로 받아들이고,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리스도인 저와 여러분이 환난과 고통을 이겨내도록 주님이 길을 여실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 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도 환난과 고통을 당합니다.
우리는 내 삶의 환난과 고통을 인정하고, 그 환난과 고통을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첫째, 지금 내게 임한 힘든 환란과 고통을 놓고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지금 내게 임한 힘든 환란과 고통의 결과를 하나님께 떠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지금 내게 임한 환란과 고통 중에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것들은 고쳐야 합니다.
넷째, 지금 내게 임한 힘든 환란과 고통을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어떤 부모도 자식이 환난을 당해 실패하거나 불행해지는,
것들을 기뻐하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그 환난을 돕고 싶고, 고통에서 건져내 일으켜 세우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심정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가 환난을 당해,
실패하거나,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환난을 당해 실패하거나,
불행해졌을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그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환난을 당했을 때, 담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3절 말씀에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믿는 것을 자신감이라 하는데,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에든지 자기가 자신을 믿는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맙니다.
능히 고칠 수 있는 병에 걸린 사람도 자신이 먼저 포기해 버리면 그 병으로 죽는답니다.
그런데 자신감이 있어야 하지만, 자신감만으로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환난을 담대하게 대처하느냐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으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왕의 꿈을 해석하였고, 마침내 그 나라의 국무총리 자리에 오르는 출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총애를 받은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다니엘을 환난에 빠지게 합니다.
왕의 신상을 만들고,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그 신상에 절하도록 명령이 떨어지게 됩니다.
다니엘은 그 왕의 명령을 알고도, 우상숭배를 할 수 없어 그 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하는 대로,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지므로 죽게 될 줄 알면서도, 오직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기도했다는 것은, 그의 신앙이 얼마나 담대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담대하다.’ 는 단어는 ‘하자크’ - 곧 ‘달라붙다.’ ‘묶는다.’
‘강하게 하다.’ 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누가 담대한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하자크’ - 하나님께 달라붙는 사람이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달라붙고, 자신을 하나님께 묶어 버리는 사람이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2절 말씀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담대한 신앙은 담대한 행동을 하게하는 큰 능력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짐으로, 강하고 담대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어떤 시련과 환난과 고통이 닥쳐와도 능히 이길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환난 당했을 때,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하여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겼으니,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을 당하더라도, 담대하라고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 예수님은 전쟁을 하는 군인도 아니시며, 최신 병기를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총과 칼로 세계를 점령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총과 칼이 아닌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고 했습니다. 이런 고백을 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좀 아쉬운 것은 그들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이런 고백을 했어야 했습니다.
‘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는 당신에게 항복합니다. 당신은 영원한 승리자이십니다.
당신은 나를 이긴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했다고 인정하는, 나폴레옹을 위시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고, 불명의 영웅들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랑으로 세계를 이긴,
정복한 위대한 정복자이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7절 말씀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 예수님 때문에 승리함을 감사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이김은 예수님 만의 이김이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이김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의 이김은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이요,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의 세상을 이긴 이기심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이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님의 이김이 곧 나의 이김이요, 주님의 교회의 이김이라고 믿는 사람은,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으며, 항상 주님의 일에 힘쓰는 주님의 일꾼들이 됩니다.”(고전 15:5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도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을 당했을 때에 담대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항상 함께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인 된 저와 여러분들이 환난을 이기는 담대한 믿음을 가져, 이김을 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