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達城) 삼가헌(三可軒) 고택(古宅)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800
삼가헌(三加軒)이라는 이름은 중용에서 나왔다. 중용 제 9장에는 '子曰 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자왈 천하국가가균야, 작록가사야, 백도가답야, 중요불가능야)'라는 문구가 있다.
이 글은 "천하와 국가는 다스릴 수 있고, 관직과 녹봉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 위를 밟을 수도 있지만 중용은 불가능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천하를 다스림은 知이고, 작록을 거부하는 것은 인(仁)이며. 칼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용(勇)에 해당한고 한다. 즉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는 것이다.
종전 문화재 명칭은 묘동 박엽씨 가옥(竗洞 朴熀氏 家屋)이었으나, 사육신 박팽년의 12대손인 박광석이 이웃한 묘골에서 현재의 위치로 분가해 오면서 가옥을 건립하고 부친의 호를 따라 삼가헌이라 이름하였음을 감안하여 2007년 1월 29일 달성 삼가헌으로 변경하였다.
1979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현 소유자의 6대조 박광석(朴光錫)이 1747년(영조 23)에 건축한 것이다.
건좌손향(乾坐巽向 : 집터가 동남향을 바라봄)으로 좌향을 잡은 서사택(西四宅)의 하나로, 넓은 터에 대문간채 · 사랑채 · 안채 · 별당 · 연못을 배치하였다. 대문간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一자형 평면으로 곳간 2칸, 대문간 1칸, 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ㄱ자형 평면으로 사랑대청 4칸, 온돌방 2칸을 두었으며,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2칸의 온돌방에는 각기 골방이 있으며, 툇마루에 연하여서는 1칸의 청지기방이 있다.
사랑대청 안쪽으로는 1칸의 마루방이 있고 그 뒤로 1칸의 온돌방이 있다.
이 사랑채는 안채로 드나드는 중문간 1칸과 곳간 2칸으로 연속되어 있다. 안채는 ㄷ자형으로 2칸의 부엌, 2칸의 안방과 반 칸 폭으로 개방된 툇마루, 정면 · 측면 각 2칸의 대청, 앞뒤로 긴 2칸의 건넌방, 2칸 반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 서쪽에는 장독대 · 우물 · 곳간채 · 안변소[內厠]가 자리 잡고 있다.
별당은 안채의 서쪽 넓은 터에 있는데, ㄱ자형 평면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이다. 온돌방은 3칸이 넘고 마루는 가운데 1칸에 그쳤으며, 왼편 끝방 앞에 1칸의 누마루를 꾸몄다.
마루와 그 옆방 뒤편에는 툇마루가 있고 앞쪽에도 모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별당 앞에는 네모의 연못이 있고, 연못 가운데는 인공산(人工山)이 있다. 사랑채의 구조는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전면에 5개의 두리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세워 납도리로 결구한 민도리 소로수장집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구(架構)는 5량이며 팔작기와지붕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납도리로 결구한 민도리집으로 5량 가구이며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별당은 막돌기단 위에 둥글게 다듬은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 4개와 네모기둥을 세워 납도리로 결구한 민도리집이다.
누마루 쪽은 맞배지붕을 이루고 나머지는 합각을 형성,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대표적인 주택이다.
하엽정(荷葉亭)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800
하엽정은 원래 4칸 규모의 1자형 건물이었는데 앞에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붙였다고 한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이 있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어다. 이 별당은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으로 앞에는 <하엽정>이라는 당호와 함께 <파산서당 巴山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안채
안채는 전면 6칸 전퇴집으로 3평주 삼량집으로 2009년 4월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전체적으로 볼때,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대표적인 주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