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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자) 대림 제4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시켜 다윗에게,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겠다.”고 하신다(복음).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리라고 예언한다(복음). <다윗의 나라는 주님 앞에서 영원할 것이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7,1-5.8ㄷ-12.14ㄱ.16 다윗 1 임금이 자기 궁에 자리 잡고, 주님께서 그를 사방의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셨을 때이다. 2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 3 나탄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엇이든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4 그런데 그날 밤,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8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7-79 그때에 요한의 67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68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69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70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71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72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73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74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75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76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77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다윗 임금은 주님께 바칠 성전을 세우려고 합니다. 나탄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몸소 다윗에게 한 집안을 일으키시어 그 나라의 왕조를 영원히 튼튼하게 해 주시리라고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합니다. 옛날부터 늘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그 예언을 메시아 왕국의 의미로 이해하였습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즈카르야는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시어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지켜 주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그의 아들이며 메시아의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에 충실하시다는 표징입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교회의 기도로, 시간 전례의 아침 기도에서 날마다 반복해서 바칩니다. 이 노래는 ‘마니피캇’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기다림과 희망을 다시 반복해서 들려주며, 구약의 인용과 설명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입니다. 이 노래의 첫째 부분은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노래이고, 둘째 부분은 다가오는 메시아에게 길을 준비하는 선구자 요한의 등장으로 미래의 희망을 노래합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떠오르는 별이신 메시아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이 성탄의 밤에 태어날 아기 예수님께서는 한밤중의 별을 권위 있게 밝혀 주십니다. 그 밤은 오직 파스카 축제의 밤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려고” 당신 백성을 찾아오십니다. 죄의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눈앞을 가릴 때 사람은 오직 하느님만이 자신을 구원해 주실 분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놀랍고 또 놀라운 하느님의 육화 강생과 자기 낮춤의 신비, 성탄! 놀라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벌써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내 나이가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합니다. 큰 여조카가 아기를 낳아서 벌써 6개월이나 지났습니다. 지난달 선친 장례식 때 그 아기를 처음으로 봤습니다. 엄마를 닮았는지, 6개월 밖에 안됐는데, 머리숱이 풍성하니 좀 특별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태어난 지 6개월 됐을 뿐인데, 벌써 ‘갓난 아기’ 신세를 면했습니다. 목에도 힘이 붙어 고개를 똑바로 가누었습니다. 다리에도 힘이 붙어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다하더군요.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습니다. 키는 고작 50~60센티 될까말까한데, 벌써 왠만한 사람 모습을 다 갖춘 아기가 ‘까르르’ 웃는 모습에, 세상 모든 시름과 스트레스가 일거에 다 사라지더군요. 한국 남자 표준키, 175센티인 저였지만, 50~60 센티인 아기를 위해 자동으로 키를 낮추게 되더군요. 그 아기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방긋 웃어줄 뿐이었는데, 자동으로 제 무릎이 꿇어졌습니다. 사랑스럽고 해맑은 아기와 시선을 맞추었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았습니다. 또 다시 성탄입니다. 성탄의 핵심 의미가 무엇이겠습니다. 크시고 위대하신 하느님, 왕중의 왕이신 하느님, 삼라만상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키를 낮추셔서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신 겸손의 대사건입니다. 오늘 아기 예수님 성탄 대축일에 우리는 다른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땅에 육화하신 하느님, 겸손하신 나자렛 예수님을 본받아, 그저 밑으로 내려서면 충분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셨던지, 자신의 키를 낮추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백번 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또 드려야 마땅합니다. 하느님이시면서 우리 사이에 끼어드신 예수 그리스도, 그냥 천상에 편안하게 계셔도 그만인 주님께서, 굳이 진흙탕같은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신 대 사건, 아기 예수님 성탄 앞에 그저 무릎을 꿇고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드려야 하는 성탄절입니다. 성탄절만 다가오면 언제나 떠오르는 존경하는 인물이 한 분 계십니다. 그립고 또 그리운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이십니다. 저하고 세례명이 같은 관계로 더욱 그립습니다. 살아 생전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향한 사랑이 각별하셨습니다. 저희 살레시오 아이들을 향한 사랑도 특별하셔서, 성탄 전야 때만 되면, 저희 아이들과 수도자들을 찾아오셔서 함께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이런 전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다시 성탄입니다. 성탄 미사에 참여하고, 구유 경배를 하고, 성탄 축하 파티를 마음껏 만끽하십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성탄의 가장 본질적 의미인 육화강생, 극단적 자기낮춤, 지극한 겸손의 덕을 기억하며, 낮은 곳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위안부 할머님들의 숙소인 나눔의 집, 미혼모의 집,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아이들을 위한 보육 시설, 노숙인 무료 급식소...꼭 한번 찾아가보시기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아이는 부모의 기대 범위 안에서 자란다>
김새해 작가가 ‘생각의 선택이 운명을 만든다’라는 책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책 속에 있는 이러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의사가 침묵을 지킨 다음 산모에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죽는 게 낫겠어요.”
아이의 손가락, 발가락이 다 부러져 있었고 손발이 다 꺾여 있었으며 머리통은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온 몸의 뼈가 다 부서진 상태로 태어난 것입니다. 누구도 이 아이를 건드리거나 안으면 안 되었습니다. 의사는 덧붙였습니다.
“이 아이는 달걀처럼 뼈가 부서지는 증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골 성형 부전증’이란 쉽게 뼈가 부서지는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아기. 그러나 부모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살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이의 뼈는 2백 번이 넘게 부러져 수도 없이 수술을 받아야했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되풀이하다보니 키가 90cm에서 멈추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속닥거렸습니다.
“왜 이렇게 고생을 사서해? 의사 말을 듣지. 쟤는 죽었어야 해!”
그런데 그 아이가 지금은 굉장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심리 치료사를 하고 있고, 동기부여 명강사이고 사람들 앞에 나설 때마다 “저는 사는 게 즐거워요!”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항상 좋은 생각만 하기로 결심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은 누구에게서 왔을까요? 부모님이 먼저 그렇게 생각해 주었기에 자녀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부모가 버리기로 했는데 자녀가 어떻게 긍정적일 수 있었겠습니까? 부모는 아기를 포기하라는 의사의 말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분명히 세상에 나온 좋은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런 부모의 생각이 자녀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생각의 변화가 자신도 변화시키고, 자녀도 변화시키고, 그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도 변화되게 만든 것입니다. 성녀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생각을 조심하세요. 언젠가 말이 되니까. 행동을 조심하세요. 언젠가 습관이 되니까. 습관을 조심하세요. 언젠가 운명이 되니까.”
텍사스 레인저스의 명포수였던 짐 선버그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그가 은퇴한 후 강사로 활약할 당시 자신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자신을 믿어주었던 아버지 때문이었다고 말해줍니다. 그가 어느 날 교도소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한 복역자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버그씨, 당신과 반대로 내 아버지는 늘 내가 못난 놈이고, 뭐하나 잘하는 것 없는데다 언젠가는 철창신세가 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죠. 그래서 나 역시 내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렸죠.”
이렇게 자녀의 삶은 부모의 기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안 된다고 하는데 자녀가 잘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즈카르야는 입이 열려 주님을 찬미하며 자신의 자녀에 대한 이러한 예언을 합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벙어리가 되었던 즈카르야는 이제 천사의 말을 믿고 아들이 어떻게 자라게 될 지를 예언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아기뿐만이 아니라 그 부모도 이 아이의 운명에 동의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모의 예언대로 자녀는 성장하게 됩니다.
만약 자녀가 나의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맡기신 소중한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주님께서 왜 이 아이를 자신에게 맡기셨는지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믿어줄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의 기대만큼 자랍니다. 어떤 과일에 어떠한 모양의 거푸집을 해 주었을 때 그 과일이 그 거푸집 모양대로 자라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하느님의 자녀로 자라고 싶은데, 부모가 아이를 인간의 수준에 가두어 놓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자녀의 목숨을 단 한 순간도 연장해 줄 수 없다면 자녀는 인간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녀는 하느님이 어떤 목적을 위해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자녀의 인생에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 개입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주님의 계획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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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시조 아담과 하와 ADAM and EVE
Sant' Adamo Primo uomo
Sant' Eva Primo donna
아담은 '붉은 흙', '사람' 이란 뜻이다.
아담의 아내인 하와는 '생명', '여자', '살다' 란 뜻이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창조자 하느님께 불순종한 죄로 하느님께서는 아담은 이마의 땀을 흘리며 노동하면서 살도록 하셨고 하와는 아이를 낳을 때 해산의 고통을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흙으로 빛은 그들의 몸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성인 성녀이시다.
아담. Adam '사람'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말이며 인류의 원조를 지칭하는 이름.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고(창세 4장) 하느님을 불신하고 불순명함으로써 원죄를 범한 첫인간 아담은 '미래의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교회헌장 22) 이요 '장차 오실분의 원형'(로마 5, 14) 이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콜로 1,15)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둘째 아담 또는 새아담이리고 부루기도 한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고 죄인이 되어 죽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무죄판결을 받고 풍성한 은총을 입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로마 5, 12-21)
하와 Eva. Eve
'생명' 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말이며, 원조 아담이 자신의 아내에게 생명을 지닌 모든 인류의 어머니라 해서 붙여준 이름 (창세 3,20) 불가타(Vulgata)에서는 이를 Eva(에바) 로 번역하였다.
하느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함으로써 아담과 더불어 원죄를 범하였으며 이레네오를 비롯한 교부들은 성모 마리아를 '둘째 에바'라고 불렀다.
즉 "에바의 불순명이 묶어 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순명이 풀어주었고 처녀 에바가 불신으로 맺어 놓은 것을 동정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었다" 고 하며, 에바와 비교하여 마리아를 '산 사람들의 어머니' 라 부르고 가끔 "에바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다" 고 주장한다.(교회헌장 56)
성 그레고리오 (Gregory)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스폴레토(Spoleto)
활동연도 : +304년경
같은이름 : 그레고리우스 그레고리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무차별 학살할 때에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신전에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절하였는데, 그들 중에서도 가장 용감했던 사람이 바로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 신부였다.
군인들이 그를 법정에 연행하여 심문을 했는데, "너희 하느님은 누구냐?" 는 질문을 받자 그는 "당신 모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전능하시고 불사불멸하시며, 우리의 행업에 따라 상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 때문에 그는 설독죄로 판정되어 불에 태워 죽이기로 하였으나, 갑자기 지진이 일어 나서 그 다음날에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녀 바울라 엘리자베타(Paula Elisabetta)
신분 : 과부,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연도 : 1816-1865년
같은이름 : 빠올라, 빠울라, 엘리사베따, 엘리사베타, 엘리자베따, 체리올리, 코스탄차, 파올라, 파울라
성녀 바울라 엘리자베타는 1816년 1월 28일 이탈리아의 손치노(Soncino)에서 귀족 출신의 부모인 프란체스코 체리올리(Francesco Cerioli)와 프란체스카 코르니아니(Francesca Corniani)의 16명의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코스탄차 체리올리(Costanza Cerioli)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병약했기 때문에 11살까지 집에서 머물다가 비로소 베르가모(Bergamo)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코스탄차는 집을 떠난 외로움으로 큰 고통을 겪었는데, 이 체험은 그녀가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살고 홀로 위안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19살 때 고향인 손치노로 돌아왔을 때 이미 그녀에 대한 결혼 계획이 서 있었다. 아내를 잃고 홀로 된 59세의 가예타노 부세키(Gaetano Busecchi) 백작이 그녀의 남편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이를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제안을 받아들여 1835년 4월 30일 결혼식을 올렸다.
19년의 결혼 생활 중 뒷부분은 모든 측면에서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까다로운 성격과 좋지 않은 건강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리고 3명의 자녀가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장 큰 위안이었던 카를로(Carlo)마저 16살까지밖에 살지 못했다. 1854년 1월 심각한 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카를로는 마지막으로 “어머니, 울지 마세요. 하느님께서 다른 아이들을 주실 거예요.”라는 예언과도 같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그해가 끝날 무렵인 12월 25일 남편 가예타노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코스탄차에게 있어 암흑기와 같은 이 시기는 그녀에게 심각한 실존적 위기를 초래했다. 그녀의 인생은 무의미하고 무감각해 보였지만 그녀의 아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계속해서 그녀의 영혼을 울렸고, 결국 이는 그녀를 이끄는 빛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영적 지도를 찾았고 자신의 모든 비극과 생애 전체를 하느님의 손길에 내어맡기며 신앙의 힘으로 살기 위한 하느님의 은총을 끊임없이 청하였다. 코스탄차는 카를로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의 모성을 표현하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을 계속해서 느꼈다. 결국 38살의 나이에 복음에서 영감을 받은 그녀는 애덕만이 유일하고도 참되며 의미 있는 삶의 길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병든 이들을 찾아 돕고 가난한 이와 고아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나눠주기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고아들의 두려움에 젖은 눈은 그녀가 더욱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도록 이끌었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과 모든 소유를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그녀의 집에 고아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문과 이웃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하며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보석까지 팔아 고아원을 위한 물품을 구입하였다. 그녀는 모든 재물을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 즉 하느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봉헌하기 위해 1856년 12월 15일 영속적인 정결 서원을 했고, 1857년 2월 8일 가난과 순명의 서원을 발했다.
곧이어 다른 젊은 여성들이 코스탄차와 함께하기를 소망하여 그녀의 자선사업에 기꺼이 참여하였다. 하느님의 계획은 가려져 있는 듯 보였지만 그녀는 침묵 중에 기도와 명상을 통해 자선 사업을 위한 규칙을 만들게 했다. 그래서 ‘많은 고아들의 어머니’인 코스탄차는 1857년 12월 8일 이탈리아의 코몬테(Comonte)에서 성가정 수녀회를 설립하였고, 바울라 엘리자베타라는 수도명을 선택하였다.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의 카리스마는 나자렛 성가정에서 찾을 수 있는 겸손과 단순함, 가난과 사랑을 영성의 기초로 하고, 예수 마리아 요셉이 성가정 안에서 실천한 명상과 은둔 그리고 겸손한 노동으로 충만하여 수녀들 스스로 그러한 삶의 모범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울라 엘리자베타 원장은 수녀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고, 남성들을 위해 1863년 11월 4일 빌라캄파냐(Villacampagna)에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성가정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이 두 수도회의 모범으로서 나자렛의 성가정을 제시하고, 수도회의 모든 사업을 성 요셉(Josephus)의 특별한 보호하심에 맡겼으며, 고아들을 ‘성 요셉의 아들과 딸들’로 부르며 보살폈다. 그녀는 부모 없는 아이들의 교육과 가난의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의 모성은 끝이 없었고, 수도회의 수사와 수녀들을 주의 깊고 적절하게 양성하는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도자들의 보살핌에 놓인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 명이라도 방치하거나 잃지 않고 사랑으로써 교육하도록 가르쳤다.
성녀 바울라 엘리자베타 원장은 1865년 12월 24일 49살의 나이에 코몬테의 수녀원에서 갑자기 선종하였다. 그녀는 1950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4년 5월 16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 중에 고아들에게 참된 가정을 주기 위해 헌신한 그녀의 노력을 치하하며 그녀가 퍼트린 신앙의 가치가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들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의 증거자가 되도록 했다고 말씀하셨다.
성녀 아델라 (Adela)
신분 : 과부, 수녀원장
활동지역: 팔젤(Pfalzel)
활동연도 : +734년
성녀 아델라는 프랑크 왕국 아우스트라시아 분국의 공주로 메로빙거 왕가 출신이다.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 의 왕 다고베르투(Dagobert II, 12월 23일) 와 켈트 출신 마틸다의 딸이며, 지게베르트 4세의 이복누나였다.
성녀 아델라는 성녀 이르미나의 자매였다.
아키텐 공 에도우와 결혼하였으나 뒤에 알베리히(Alberich)와 재혼했다.
남편 알베리히가 죽자 수녀가 되었다.
그녀는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 근교 푀르출(Pfalzel)에 수도원을 세우고 초대원장이 되어 여생을 보냈다.
734년에 사망했고, 사후 가톨릭 성인에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