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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일 현대기계건설 대표이사 |
사람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간혹 뜻밖의 결과를 가져온다. 원력(願力) 또한 마찬가지다. 우공이 산을 옮기듯 간절히 원을 세워 실천하다 보면, 자신도 놀랄만한 열매를 얻을 때가 있다.
지난 6월21일 영월 법흥사에서 만난 주식회사 현대기계건설 정우일(54, 법명 지안)대표이사는 원력이 가져다 주는 긍정의 효과를 누구보다도 확신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원력의 놀라운 힘 앞에 불가능이란 없죠”
원 세워 기도하니 삐걱거리던 사업도 반듯해져 먼 길 오가며 예불, 피곤함 대신 에너지 솟구쳐
사진설명 : 정우일 현대기계건설 대표이사를 지난 21일 영월 법흥사에서 만났다. 1998년 어느 날, 법흥사에 머물던 한 노보살이 그에게 일주문 시주를 권선했다. 가끔씩 들러 기도하고 가는 참배객이나 다름없던 자신에게 의외의 권유였다.
1~2만원의 시주금을 내는 것도 아니고, 일주문 불사 전체를 도맡아서 하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시기는 IMF로 경기가 바닥을 치던 무렵이라, 회사도 어려운 터였다.
“통장에 잔고를 보니 100만원을 오락가락하더라고요. 불사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습니다.” 어디서 용기가 난 것일까. 그는 덜컥 일주문을 세우겠다는 약속을 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일단 원을 세우고 나니 놀랍게도 일이 수월하게 풀리더라고요. 삐걱거리던 사업도 안정을 찾아가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원을 세우고 기도하면 이뤄진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법흥사 초입에 세워진 일주문은 이렇게 해서 세워졌다. 그 때 일주문 시주를 권선했던 노보살은 정 대표이사를 불교의 길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월정사는 물론 법흥사 중건 당시 화주보살을 자처하고 나섰던 고(故)유이춘 보살이다. 법흥사 주지 도완스님은 유 보살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날 때 법흥사장(法興寺葬)에 준하는 장례를 치러줬다.
“아내를 따라 사찰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 유 보살님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저희 부부를 아들 딸처럼 대해주는 보살님의 권유여서 두말 않고 시주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찌됐든 이 일로 신심이 깊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기도에 대한 확신이 생겼거든요.”
원주에서 법흥사까지는 차로 1시간 거리. 그는 주말마다 이 길을 오가며 기도했다. 토요일이면 의례 법흥사로 퇴근을 했다. 중대에서 기거하면서 월요일 새벽예불까지 올리고 출근하는 날도 많았다.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집에서 출퇴근하며 새벽예불을 올렸다. “어느 해 겨울로 기억됩니다. 예불을 올리려고 새벽 2시에 아내와 함께 나왔어요. 적멸보궁까지 걸어가면서, 가로등도 없는 그 길을 눈빛에 의지해 올라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이야 차가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좁은 산길을 오르내려야 했었습니다.”
그렇다고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길 바라는 심정으로 기도만 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원력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몇 배의 에너지를 분출하며 뛰어다녔을 것이다. “남보다 더 노력해야 했고, 당시에는 분명 힘들어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도움을 준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때마다 부처님 가피라고 생각해 더 열심히 사찰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욕심쟁이’라고 했다. 10여 년을 한결같이 부처님을 찾아와 소원을 빌고, 무언가 얻어가려 애썼기 때문이다. 사업이 안정되길, 가족들이 건강하길 끊임없이 빌면서 자신의 요구만 부처님 전에 쏟아놓다 보니, 정작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됐다.
“오랫동안 사찰에 다녔지만, 실상은 흔히들 말씀하시는 기복신앙이었지 않습니까. 매번 부처님께 소원을 들어달라고 비는 기도를 넘어서보자는 생각에 교리수업을 신청했습니다.”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법흥사 불교대학 1기 과정에 원서를 냈다. 그리고 3달간 매주 수요일마다 법흥사로 퇴근을 했다. 직장 때문에 한 두번 결석은 했지만, 무사히 졸업장을 받았다. 평소 만나기 어려운 스님과 불교전공 교수들로부터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그만큼 소중한 시간이었다.
“변한게 있냐고요? 딱 꼬집어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기도하는 마음이 변했다고 해야 하나. 부처님께 뭔가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즐거움을 알았다고 하면 공감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한결같이 요구만 하는 욕심쟁이의 모습에서는 한 걸음 나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요즘엔 가족들과 함께 사경을 한다. 일과가 끝난 이후에 집이나 사무실에서 <법화경>을 사경한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아마추어 골프선수인 그의 딸 예슬(17)양은 고된 훈련을 끝내고 난 뒤에도 거르지 않고 사경을 하고 있다. “부처님 말씀을 한 글자씩 종이에 써내려 가면서 그 뜻을 눈으로 마음으로 되새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아이들도 아직은 어려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고 따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행활동을 한 세월이 켜켜이 쌓여갈수록, 그는 물론 가족들까지 변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스스로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불 같이 급하던 성격도 차분해지고, 욕심껏 살기보다 주변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어느새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됐단다.
그의 아내 성현옥(47)씨는 그보다 더 보살이다. TV를 보다가도 힘들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의 사연이 소개되면 자동으로 후원전화를 건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는 지역의 소녀가장을 후원하고 있다. 이런 그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강원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가끔 모르는 곳에서까지 후원을 요청해와 곤란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돕는 즐거움과 보람을 알게 된 이상 쉽사리 중단할 수 없더라고요. 더 많은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배운 부처님가르침 이웃으로 전하며 살터”
5년 전 법흥사 원주거사림회장을 맡으면서, 그는 신행활동은 물론 포교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향기나는 부처님 가르침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부처님 덕분에 저와 제 가족들, 저희 회사 모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좋은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줘야죠.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법흥사 법회나 행사에 적극 참여하면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불법을 전하는 일을 소임으로 알고 실천해나가겠다는 것이 제가 세운 원입니다. 이뤄질 거란 믿음을 갖고 열심히 뛰는 일만 남았어요.”
현대기계건설 주식회사는
기계설비나 소방설비, 신재생에너지사업 전문건설업체인 현대기계건설은 정 대표이사가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경제적 도움도 받지 않고 일궈낸” 노력의 결정체다. 그는 “초창기 구성원들과 지금까지 형제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가족 같은 직장”이라고 자신의 회사를 소개했다.
그는 1987년 현대닥트공사를 세워 1998년 7월 주식회사 법인을 설립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주요 업무는 냉난방배관, 방축열배관을 비롯해 옥내소화전이나 스프링클러 설비, 태양열 시공 등이다.
정우일 대표이사는 1954년 광주에서 태어나 원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 시멘트 회사에 재직하다가, 1987년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05년에는 강원대 산업대학원을 수료했다. 현재 대한설비건설협회 강원도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원주시 체육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이와 함께 5년 전부터 법흥사 원주거사림회장 소임을 맡아 거사포교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2003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강원도지사 표창을 수상했다. 불우이웃돕기 및 자원봉사에 앞장서 온 것과 지역발전 및 건설사업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이밖에 2005년에는 대한설비건설협회 최초 60억 달성을 이뤄 60억탑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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