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1. 큐티
사도행전 22:1 ~ 16
예루살렘의 무리들 앞에서 바울이 목숨을 걸고 간증하다
관찰 :
1) 바울이 말하는 자기 소개
- 1절.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 사도 바울은 동족 유대인을 향한 사랑이 남달랐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기회를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다. 그리고 많이 맞아 고통스러웠지만, 이 기회를 통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큰 소리로 무리들에게 간증을 하고자 한다. 간절함으로 동족 유대인들이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 2절.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 여기서 바울이 일반 아람어로 말하고 있었다면, 무리들이 이처럼 집중하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희소해진 때에 유창한 히브리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조용하게 되었다. 그가 하는 말에 권위가 발생한 것이다.
- 3절.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 => 사도 바울은 우선 자신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라는 큰 도시 출신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랍비’라는 칭호까지 받은 바 있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가말리엘은 당대 최고의 학자로 인정된 사람으로 역대 7명의 랍비에 드는 정도의 학자였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생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 그룹에 속했다고 한다. 자신이 바리새파에 속했지만 여기서는 밝히지 않는다. 사두개파도 있고, 바리새파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도 무리들 중에는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그것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다만 엄한 가르침을 따랐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 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 4절.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 사도 바울은 그 열심이 대단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죽이고자 결박하여 옥에 넘기는 일을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 5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결박하여 옥에 넣은 일에 대한 증인이 바로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리들에게 이러한 내용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거짓말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 뿐만이 아니라 다메섹까지 가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압송하여 형벌 받게 하고자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가 얼마나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자였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무리들 중에는 그 누구도 이와 같이 열심을 낸 사람이 없었다.
2)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남에 대하여
- 6절.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 바울은 이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자세히 말하고자 하고 있다. 장소와 시간까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 체험한 것임을 변증하는 내용이 된다. 하늘에서 큰 빛이 내려오고 그 빛을 경험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 7절.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 큰 빛이라는 초월적 경험으로 인해서 바울은 땅에 엎드러져 경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신이 들은 음성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 곧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음성의 주인을 박해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 8절.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 바울은 그 음성의 주인이 누구이신지 몰랐다. 그래서 묻게 되었다. “주님 누구시니이까” 이 질문은 합당한 질문이었고, 그 질문의 답에 따라 바울의 입장은 매우 달라지게 되어야 했다. 그 음성의 주인은 바울이 핍박하고 있던 이들이 믿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것은 바울에게도 엄청난 내용이었고, 이 내용을 듣고 있던 무리들에게도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엄청난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 9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 사도 바울은 그 상황에서 다메섹으로 함께 가던 이들이 그 빛은 보았지만 음성은 듣지 못했다는 것을 부연한다. 가능한 자세하게 설명함으로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남기지 않고자 하는 바울의 심려가 보인다. 실제로 그 때 다메섹에 같이 갔던 이들에게 무리들 중의 일부가 물어보았을 경우 잘못된 정보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 10절.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 자신이 핍박하는 자들의 주인이 빛 가운데 임하신 소리의 주인이심을 알게 된 바울이 심정은 정말 난처했을 것이다. 바울은 스데반의 죽음에 법적 책임을 진 사람이었고, 이미 예루살렘에서 여러 성도들을 결박하여 감옥에 넣었고, 그들 중에는 죽임을 당하게 된 자들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바울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주님은 그 순간에 바울에게 사명을 주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바울이 해야 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가이드 해 주시고 있다. 다메섹으로 가게 하시고, 그곳에서 바울을 인도할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주님은 대체로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을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다.
- 11절.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 사도 바울은 너무나 강렬한 광채를 직면했던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광채에 눈을 뜨지 못하고 빛을 피했지만, 바울은 그 빛 가운데서 음성을 듣고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바울은 시력을 상실했다. 그래서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까지 가게 되었다. 바울을 위시로 해서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을 발본색원해서 예루살렘으로 압송하고자 한 계획이 모두 틀어지게 되었다.
3) 다메섹에서 아나니아를 만나 사명을 받은 것에 대해서
- 12절.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 사도 바울은 자신을 만나 준 아나니아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아나니아는 그리스도인들 뿐만이 아니라 다메섹의 모든 유대인들들에 칭송을 받고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 부분 역시 얼마든지 소환해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순절에 다메섹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아나니아를 알고 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율법을 따르는 경건한 자라는 표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표현이 아니었고, 그런 사람을 통해서 바울이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이 바울이 율법을 경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변증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
- 13절.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 아나니아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생략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간증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은 모르지만 명망이 있던 아나니아가 자신에게 찾아와서 갑자기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라고 명했고, 자신의 눈이 보이게 되는 이적을 체험했다는 것을 무리들 앞에서 말하고 있다. 이 일에 대한 증인들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거짓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무리들은 알았을 것이다.
- 14절.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다. 그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게 하시기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알게 되는 내용이다.
- 15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 아나니아의 말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고 듣게 된 것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권면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 16절.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 사도 바울은 아나니아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아 죄를 씻을 것을 명령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내용이고, 그를 죽이고자 하는 상황에, 이미 많이 맞았고, 쇠사슬에 매여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간증을 힘을 다하여 하고 있다.
가르침 :
1) 사도 바울은 목숨을 걸고 간증을 하고 있다. 무리들은 사실은 바울의 말을 듣고자 하지 않았다. 이미 성전에서 그를 끌어내어 때릴 때, 묻지도 따지지 않고 죽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런 무리들이 더 많이 모이게 하시고, 높은 위치에서 보호받는 가운데 간증을 하게 되었다. 비록 쇠사슬에 매여 있고, 이곳 저곳 피멍이 들어 매우 아프고 힘들었지만, 담대하게 무리들 앞에서 자신이 경험하고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2)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아는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누구보다 율법에 열심을 내며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자 핍박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실 바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 법적 책임을 지는 존재이기도 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스데반이 설교하고 돌로 쳐 죽임을 당했는데, 바울은 먼저 매를 많이 맞고 간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증거하는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담대히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며 그 피를 자신들과 자손들에게 돌리라는 주장을 했던 자들이다. 그렇기에 예수에 대해서 언급이 되면 두려운 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가 살아서 바울에게 말을 하고, 그의 사명을 받았다는 내용은 유대인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뒤집어질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담대히 이 메시지를 증거하고 있다.
적용 :
1) 사도 바울은 동족 유대인을 향한 사랑을 목숨을 건 간증을 하고 있다. 진정 가치있는 사랑에는 댓가가 따르는 법이다. 가장 사랑해야 하는 대상에 대해서 가장 큰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한다.
2)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것이 바울이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나 역시 말씀을 통해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 그것이 예수 부활의 증인의 조건이 되었다. 이 주님을 증거하는 것에 내 목숨을 드리는 것이 합당한 가치를 지님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을 드려서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새로워지고 날마다 깊어지기를 소원한다.
3) 코로나의 상황에 대한 소식은 희망적이지 않다. 그럴지라도 주님의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기에,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또 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