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전제적 신앙을 내려놓고 고민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욥기서에서 사단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욥기서에서 욥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욥기서에서 욥의 친구들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욥기서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욥기서 저자의 창작인가?
설교할 때 욥의 친구들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의 말을 인용하면서
욥기서의 하나님 말씀이라고 인용하면 옳은가?
예를 들면 욥의 친구 엘리바스가 욥을 비난하는 말 가운데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욥4:7-9)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교훈하면 그 엘리바스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또한 욥의 친구 빌닷이 욥을 비난하는 말 가운데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4-7)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교훈하면 빌닷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또한 욥의 친구 나아마가 욥을 비난하는 말 가운데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욥11:11-18)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욥의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할 하나님이 말씀이라고 교훈하면 하나님의 말씀인가?
전제적 신앙......
소위 말하는 성경에 대한 자아 주체적 믿음이 강한 사람은
이러한 말씀의 도전을 받으면 심기가 아주 불편하고 발작증세를 일으킬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은 마음의 몽사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신탁을 받은 참 선지자 예레미야를 구박하고 압박하고 핍박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과 모세 언약과 다윗 언약의 근거로
예루살렘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으로 넘칠 것이라는 말은 거짓 선지자의 몽사요,
예레미야 선지자의 신탁은 줄과 멍에를 만들어 목에 얹고.....
시드기야 왕에게 왕과 백성은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살리이다는 말씀은 참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계시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전제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신앙을 더욱 옥죄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인가?에 대한 합리적 의혹은
아마 절망적인 발작을 일으킬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라는 말씀은
성서저자의 신적인 강조를 위한 유대 문학의 표현기법은 아닌가?
골머리가 아플정도로 고민해야
비로서 기록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입문이 시작될 것입니다.
확증편향된 자기 신념으로 충만한 맹신자들은 무슨 소린가?
사탄아! 물러가라며 고함칠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은 천편일률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말씀은 에덴 동산이요,
그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싯점은 창세기 저자의 오늘날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또 그 말씀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은
시공을 초월한 어느 시점에서 바라본 신적 권위를 강조하는 유대적 문학 기법이라고
많은 성서학자들은 실제로 주장합니다.
성서문학이라고 할 때 친근한 정서를 느끼게 하지만
성경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첫 단추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은
말하는 시점과 그것을 기록하는 시점의 차이가 수 십년 혹은 수 백년, 그 이상입니다.
신약의 예수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도
말씀하신 시점과 그 말씀을 글로 기록한 시점의 차이는 수 십년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은 히브리어나 아람어일 텐데
복음서는 히브리어나 아람어가 아닌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동시 녹음이 있고
스튜디오 녹음이 있습니다.
성경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라는 말씀은
절대 동시 녹음이 아닙니다.
예레미야서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도
예레미야가 기록하였지만 계시가 임한 시점과 그 말씀을 두루마리에 기록한 시점이 다릅니다.
예레미야는 당사자이지만
아담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과 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과 아브라함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은
그 말씀이 임한 시점과 그 말씀을 기록한 시점은 수 백년, 혹은 수 천년 그 이상의 간극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기록한 창세기 저자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창세기 저자는 전혀 알지 못하였으며 그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않는 사실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으로 몇 백년 뒤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문제는 기독교의 성경으로 인정되지 못한 토비트, 유딧, 집회서, 바룩서 등에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 녹음이 아닌 말씀하신 시점과 그 말씀을 기록한 시점의 엄청난 차이는
그 말씀을 기록하기 전의 하나님 말씀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성서는 구전과 잔승으로 기록된 말씀과 하나님의 계시가 혼재되어 있는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믿음은 사실은 불가역적입니다.
성경은 대부분 계시적 영감으로 기록되었는데
정제되지 않는 구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보전 가치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시점은
히브리 문자가 상용될 때일 것입니다.
고고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히브리 텍스트는
주전 2세기 경의 사해 사본입니다.
고대의 애굽이나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페르시야의 문자는 고고학적 문헌으로 발견되는데
히브리 텍스트는 성경의 원문으로 추정되는 그 어느 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고고학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출애굽의 사건은 설정된 역사요,
다윗 시대의 유적이나 문헌도 고고학적으로 발견되지 않아 가공된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모세 오경을 모세가 기록하였다고 하지만
모세 시대 히브리 문자가 있었는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고대의 문자는 B.C 3000년경
메소포다미아의 설형문자와 애굽의 상형문자가 있었을 뿐입니다.
구약 성경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창세기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여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성경의 말씀도 전혀 없습니다.
창세기를 모르면......다른 성경을 모두 외우고 있다고 해도
아브라함의 언약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에게 하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것이 모세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성경의 말씀도 전혀 없습니다.
다만 모세가 기록한 율법이라는 말씀만 있습니다.
성경의 저자는 모세가 기록한 율법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나
구약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 대한 문자적 이해가 전무하였습니다.
율법, 혹은 모세가 기록한 율법이라는 말씀은 있으나
출애굽기를 비롯하여 신명기에 나오는 모세에게 하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을
인용한 구약의 성경은 전혀 없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도 모세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 기록된 말씀을 하신 적이 없고
다윗의 시편에도 율법과 율례와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말씀은 언급되었어도
그 내용이 누구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인지, 또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의 저자도 모세의 율법이라는 말씀은 하였어도
모세에게 하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을 인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 등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을 인용한 적이 없고
또한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레미야는 미가서의 말씀을 인용하였고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칠십년 예언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은 언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었는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일 뿐입니다.
열왕기나 역대기의 저자들도 다양한 선지자의 글을 알지 못하였고
선지자들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다른 선지자의 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할 때 활동하였던 선자자는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하박국과 스바냐 등이 있었지만
다른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 곧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은 서로가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기록된 말씀의 정형화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을
제일 처음으로 기록한 사람은 누구일까?
구약 성경은 성서지대의 성경의 시대가 모두 끝나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기록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용되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훨씬 전인 다니엘서를 알지 못하였고 스가랴서도 알지 못하였으며
열왕기나 역대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여하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듣는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충만할 기회가 주어진 신약과 구약의 어떤 시대보다
더 복 받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다만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의 문제만 남았으며
신불신 간의 복불복이 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알고 깨닫는 유일한 지식이요, 특별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밖에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 고민의 시작과 끝은
오직 성경 안에서 이루어지는 빛과 어둠의 세계입니다.
성경의 갈등 구조로 인한 말씀의 고난, 그 연단은
전에는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는 눈으로 보나이다는 욥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그 확실한 믿음은
성서지대의 귀납법적인 내적 증거와 그 검증의 과정을 거친 결과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의 우상화,
곧 금,은,동,목,석의 우상을 바알신으로 믿는 그 미신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