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나무꽃(십자나무꽃)
집 앞 남매 공원에 산딸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나뭇잎에 하얀 꽃이 매달려 순백함을 드러내고 있다. 잎 모양이 딸기나무잎과 닮았다고 해서 산딸나무라 하며 꽃은 네 잎으로 십자 모양을 하고 있어 십자나무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물끄러미 꽃잎을 보고 있으려니 지난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작년에 일본 나가사키의 고토(五島) 섬을 다녀왔다. 그 섬은 17세기 기리스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곳이다. 다섯 개의 섬이지만 사람이 사는 곳은 두 개의 큰 섬, 상·고토(上五島)와 하·고토(下五島)이다. 상·고토는 동백꽃이 섬을 뒤덮은 듯했다. 그 꽃은 그 섬을 상징하는 꽃이다. 왜 그렇게 동백꽃을 곳곳에 심었을까. 붉은 동백꽃의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쓰러지는 모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란다.
동백꽃은 다섯 잎으로 되어 있으며 성당의 유리창 스테인드글라스에는 한 잎을 떼어낸 네 잎의 붉은 꽃 모양으로 십자 모양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심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이 갔다. 또한 그들이 사는 곳곳 마을에는 작지만, 성당이 있는 것으로 그들의 신앙심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일본은 원폭으로 나가사키 일대는 폐허의 ‘원자 벌판’이 되었다. 그때 나가이 다카시라는 박사는 원폭으로 원자병을 앓으면서도 자신은 돌보지 않고 의사로서 구호 활동의 십자가를 짊어졌다. 그러다 몸이 불편하여 한 평 남짓한 다다미방에서 집필활동을 하며 그 인지세로 벚나무(사꾸라) 수천 그루를 사서 나가사키 일대에 심었다고 한다. 벚꽃의 화사한 모습을 보고 그들 삶에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 본당의 성전에는 앞에 제대가 놓여 있고 뒤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이 세워져 있다. 그 상은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받는 상이 있는가 하면 부활하여 기쁨의 미소를 짓는 상도 있다. 또 어떤 성전에는 원형의 모양에 위와 아래에서 빛이 맞닿는 희망의 형상도 있다.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이지만 그 너머의 희생, 희망, 사랑일 수도 있으니 여러 형상으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때로는 지친 삶의 고통이기도 하지만, 그 너머의 희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한때는 십자가를 내팽개치고 싶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버리지 못할 봐야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십자가 없는 구원은 없다.’라는 경전의 말씀을 되새기니 오히려 편안하고 가벼웠다.
언젠가 양로원에 봉사하러 갔다. 건물 앞에 우람하게 자란 나무가 건물을 보호하듯 버티고 있었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십자나무라고 했다. ‘웬 십자나무!’하고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더니 꽃이 십자가를 닮았다고 했다. 그 뒤로 산딸나무를 알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나도 저 꽃처럼 누구에게 필요하고 좋아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이해인 수녀님의 ‘십자나무꽃’ 시를 읊조린다.
십자나무꽃/이해인
괴로운 당신을/위로할 방법을 찾지 못해/그저 울기만 하였습니다.
아무 대책이 없더라도/조금이나마/당신을 돕고 싶었습니다.
이젠 좀 쉬시라고/제가 대신 아파드리겠다고/고백하고 싶습니다.
그 말 하기도 전에/당신은 말씀하셨죠?/“참으로 고맙다/네 마음 오래 기억할게!
다신 나 때문에/피 흘리진 않게 해 줄게”/오오, 주님/송구합니다/감사합니다.
더 아름답게 살아/당신을 닮은 기도의 꽃을 피워/사람들에게/ 눈물이 되겠습니다/기쁨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