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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석동호회 단톡방에서]
[장영봉회장님제공]
⚛ [ 죽음, 삶을 가르치다 ]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자동차로 꼬박 나흘을 달려 찾아간 인도 서북부 히말라야.
자동차 길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해발 5,360m의 타그랑고개.
지대가 너무 높아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갈색의 민둥산이 아득하게 이어졌다. 산소가 적어 보통 사람은 숨쉬기조차 힘든 언덕 너머엔 2,000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록파족이 살고 있다.
구름마저도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지 못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다.
영하 40도의 맵찬 날씨를 견디도록 집은 돌로 쌓았는데, 록파족은 겨울철인 10월에서 3월까지만 이곳에서 생활한다. 나머지 반년은 보름에 한 번씩 자그마치 열두 번이나
가축들을 몰고 풀을 찾아 여기저기 떠돈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들, 의식주 모두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백여 마리의 양과 염소에
한 가족의 생계가 매달린
그들에게 혼인으로 인한
형제들의 재산 분할이 불가능하자 일처형제혼 등
일처다부제가 만들어졌다는 내용이다. 생존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궁여지책 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의 특이한 결혼풍습보다는 어느 노인의 죽음 의식과 거기에 깃든 그들의 생사관에 더 큰 관심이 쏠렸다.
3월 말, 봄이 되면 그들은 가축의 방목을 위해
겨울을 보낸 돌집을 나선다.
처음 자리 잡은 곳에서
보름 남짓 머물면 풀이 바닥나 새로운 곳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난다.
남자들은 이삿짐을 싸고
여자는 가는 도중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데 시아버지인 일흔여덟 살의 노인은 성치 못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시무룩하다. 물이 있는 다음 정착지까지는 대략 40에서 80km. 움직임이 더딘 고산지대에서 사흘을 꼬박 걸어야 한다.
하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은 오늘 가족과 함께 떠나지 않는다. 이젠 너무 늙어 며칠씩 걷기에는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세월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연의 순리. 자식들은 노인을 위해 혼자 지낼 텐트와
두툼한 옷을 준비한다.
버터차와 밀가루빵 등
한 달 치 식량을 남겨두고 떠나는데다시 돌아왔을 때 노인이 살아 있으면
또 한 달 치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한 달을 넘겨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이 고독한 죽음 의식은
노인과 가족 간의 타협이 아니다. 힘든 이동을 거듭해야 하는 고산지대의 오랜 풍습으로 노인 스스로의 결정과 가족들의 수긍이 만든 고립이고 헤어짐이다.
손자에게 마지막 차를 대접받는 노인은 착잡한 표정을 짓고 아들과 손자는 울음을 삼킨다.
정든 사람과의 이별을 두고 열여덟 살의 손자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자
쉰두 살의 아들도 걸음이 휘청거린다.
새로운 생을 받기 위해 몸을 바꾸는 것이니 슬퍼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극진한 신앙도 이 순간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긴 인연에 비해 짧은 이별, 노인은 모든 걸 마음으로 받아들인다.심경을 묻는 기자에게“나도 27년 전에 아버지를 이렇게 했다. 자식들을 탓하지 않는다.행복하기만 빌 뿐이다”라고,노인은 담담히 마니차를 돌리며 허공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이나 절망이 아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걸려 넘어지는 문턱이 아니라, 이번 생과 맞닿은 또 다른 삶으로 건너가기 위한 매듭이고 통로다.
늙고 병든 몸에서 벗어나
스스로 평온을 찾아가는 구도의 길이고 일상의 수행이 일러준 혼자만의 여행이다.눈 맑은 그들에겐
저 히말라야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신성한 발걸음인 것이다.
가축들을 앞세우고 멀어져 가는 자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노인은 자리에 눕는다.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몸을 티베트 말로 ‘루’라고 하는데 이 말은 ‘두고 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거대한 자연의 품 안에서
신에 대한 겸손을 배워왔을 노인, 원망이나 미련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 그의 영혼은 몸뚱이를 남겨둔 채 이제 어디로 떠날 것인가. 이마 위로 테 굵은 안경이 벗겨지고 손톱 밑이 까만 그의 손이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죽음의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근본적인 까닭은 단 하나, 태어났기 때문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
처음 왔던 그대로 다시 돌아가는 길, 그 길을 히말라야는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대자연으로 돌아가 그 속에서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죽음은 태어남을 뒤쫓고 태어남은 죽음을 뒤쫓아 그것은 끝이 없다’고
그들의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는 말하고 있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듯이
죽은 자는 무엇으로든
반드시 세상에 다시 온다는 믿음으로 모든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는 사람들,
죽음의 하늘길을 열기 위해 그것과 홀로 마주하는
비감한 모습이 차라리 숭고하다.
이들은 평생 떠남에 익숙하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생명이 남아있는 부모를 저승으로 보내는 것도
이승의 인연으로 받아들인다.
지상의 거인 히말라야의
가혹한 자연과 이천 년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
어쩌면 그 덕에 어느 문명보다 자연에 가까운 전통을 배우고 이어왔는지 모른다.
‘죽음을 배우라. 그래야만
삶을 배울 것이다.’ 설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돌풍 한 자락이 하늘의 소리를 전하며 칠흑 같은 벌판을 짐승처럼 내닫는다.
( 조 헌 🖌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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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 저장해서 두고두고 봐야한다는 레전드 인생명언]
인생에서 가장 부질없는 것들
1.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것
2. 지나갈 인연에 목매는 것
3. 끝난 일을 계속 생각하는 것
4.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
5.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것
6. 무작정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한 것
상황이 안 좋을 때 무조건 떠올려야 하는 말
1. 그럴 수도 있지
2. 오히려 좋아
3. 망하면 어때 괜찮아
4. 일이 망했지 내가 망했냐
절대 잊으면 안되는 사실
1. 힘들 때 누가 곁을 지켜줬는지
2. 힘들 때 누가 내 곁을 떠났는지
3. 잘 됐을 때 누가 기뻐해줬는지
4. 안 됐을 때 누가 기뻐했는지
흔들릴 때 다짐해야 하는 것
1.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를 탓하지 않을 것.
2. 사람과 사랑을 가장 생각할 것.
3. 더는 그 무엇도 기다리지 않을 것.
4.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을 것.
5. 모든 것에 많은 의미부여 하지 않을 것.
6. 남들이 쉽게 하는 말을 귀기울이지 않을 것.
7. 지나간 것을 연연하지 않을 것.
있을 때 존중하고
없을 때 칭찬하고
곤란할 때 도와주고
은혜는 잊지 말고
베푼 것은 생각하지 말고
서운한 것은 잊어라
지나갈 것들에
연연하지 말고
오늘도 화이팅하셔요?
화 이 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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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7일 아침편지
" 두 번 산다 "
우리 모두 두 번 살 수 있다.
그리고 두 번 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부터
'인생 이모작'을 꿈꾸고 있다.
그 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은퇴의 개념은 따지고 보면
"자식들도 다 길러냈고 근력도
옛날 같지 않으니 편히 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개 60세를 전후하여
현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남은 인생을 정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은퇴를 하고
살아야 할 기간이 길어졌고 평생
건강을 잘 관리한 이들은 은퇴
후에도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 최재천의《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중에서 -
* 두 번뿐만이 아닙니다.
세 번, 네 번 살아야 하고,
살 수 있습니다.
뜻밖의 병고와 재난을 당했습니까?
오늘부터 다시 산다, 다시 살겠다
생각하고 힘을 내십시오.
사람 사이의 믿음과 사랑이
깨졌습니까?
이 시간 이전의 나는 죽었고, 이제
다시 태어나 새롭게 사십시오.
인생은 나이 들어도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합니다.
5년이 지나야 자라는 나무
https://m.cafe.daum.net/dusktrain/9HU8/27328
You Raise me Up - Martin Hurkens
https://youtu.be/4RojlDwD07I?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 강산에
https://youtu.be/D7tMoeeN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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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緣分)과 인연(因緣)
"복수불반분
(覆水不返盆)"
엎지른 물은 다시는
물동이로 돌아가지
못 한다.
다시말해 한 번
저지른 일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한 번 헤어진 부부는
다시 돌이킬 수 없고
한 번 헤어진 벗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중국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버지
'문왕'의 시호를 가진
‘서백’ 이 어느 날,
황하강 지류인 위수로
사냥 나갔다가 피곤에 지쳐
강가를 거닐던 중,
낚시를 하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한 노인을 만났다.
수인사를 나누고 잠시
세상사 이야기를 하다가
서백은 깜짝 놀라고 만다.
초라한 늙은 시골 노인이
외모와는 달리 식견과
정연한 논리가
범상치 않았다.
단순히 세상을 오래 산
늙은이가 가질 수 있는
지식 정도가 아니라,
깊은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논리였다.
잠깐의 스침으로 끝낼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서백은 노인 앞에
공손하게 엎드려 물었다.
"어르신의 함자는
무슨 자를 쓰십니까?"
"성은 강이고 이름은
여상이라 하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 보니
제가 스승으로 모셔야 할
분으로 여겨집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너무 과한 말씀이요
이런 촌구석에 사는
농부가 뭘 알겠소."
‘강여상’ 은
거듭 사양을 했으나
서백의 끈질긴 설득으로
끝내 그의 집으로 따라갔다.
그때 강여상은 끼니 조차
잇기 함든 곤궁한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못 견디어
아내‘馬씨’ 마저 집을
나간지가 오래됐다.
강여상은
서백의 집으로 따라가
그의 아들 ‘발’ 의 스승이 돼
글을 가르쳤다.
그 발이 바로 주나라를
창건한 무왕이고
강여상은 주나라의
'재상'이 되어 탁월한 식견과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했다.
강여상이 어느 날
가마를 타고 행차를 하는데
웬 거지 노파가
앞을 가로 막았다.
바로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아내 馬씨였다.
남편 여상이
주나라 재상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천리 길을 걸어서
찾아온 것이다.
마씨는 땅에 엎드려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강여상은 하인을 시켜
물을 한 동이를 떠오게 한 후
마씨 앞에 물동이를
뒤짚어 엎었다.
물은 다 쏟아지고 빈 동이는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런 후 마씨에게
"이 동이에 쏟아진
물을 도로 담으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당신을 용서하고
집에 데려 가겠소."
마씨는 울부짖으며 말했다.
"아니! 한 번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도로 담습니까?
그것은 불가능 합니다."
강여상은 그 말을 듣고는
"맞소.한 번 쏟은 물은
주워 담을 수 없고
한번 집과 남편을 두고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소."
마씨는 호화로운 마차에 올라
멀리로 떠나가는 남편 강씨를
멍하니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노인 ‘강여상’이 바로 낚시로
세월을 낚았다는
‘강태공’ 이다.
이 "복수불반분"의 이야기는
긴 세월 동안 전승돼
오늘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
조선 숙종 때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인
‘옥단춘전’ (玉丹春傳)에
한 마을에
‘김진희’와‘이혈룡’ 이라는
같은 또래의
아이 두 명이 있었다.
둘은 동문수학하며
형제같이 우의가 두터워
장차 어른이 되어도
서로 돕고 살기로
언약했다.
커서 김진희는
과거에 급제해
평안감사가 됐으나,
이혈룡은 과거를 보지 못하고
노모와 처자를 데리고
가난하게 살아가던 중
평양감사 된 친구
진희를 찾아갔지만
진희가 만나주지 않았다.
하루는 연광정에서
평양감사가 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찾아갔으나
진희는 초라한 몰골의
혈룡을 박대하면서
사공을 시켜 대동강으로
데려가 물에 빠뜨려
그를 죽이라고 한다.
이때
‘옥단춘’ 이라는 기생이
혈룡이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사공을 매수, 혈룡을 구해
그녀 집으로 데려가
가연 (佳緣)을 맺는다.
그리고 옥단춘은
이혈룡의 식솔들까지
보살펴 준다.
그 후 혈룡은 옥단춘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급제,
암행어사가 돼
걸인행색으로
평양으로 간다.
연광정에서 잔치하던
진희가 혈룡이가 다시
찾아 온 것을 보고는
재차 잡아 죽이라고 하자
‘어사출도’ 를 해
진희의 죄를
엄하게 다스린다.
그 뒤 혈룡은
우의정에까지 오른다.
어린 날의 맹세를 생각하며
찾아온 이혈룡을 멸시
죽이려 한 김진희는 겉으로는
우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체면과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양반층의 숨겨져 있는
추악하고 잔인한
이중적인 본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 강태공과의 천생연분을
함부로 끊은 아내 馬씨와
이혈룡과의 친구간 우애를
칼로 무자르듯 잘라버린
김진희는 모두 말로가
매우 비참해졌다.
이 것은 상식입니다.
연분과 인연과
우정의 맺힌 끈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삶에서 생긴 고리도
함부로 끊는게 아니고
푸는 것입니다.
일단 끊어 버리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사랑도 그렇고,
우정도 그렇습니다.
인연과 연분을
함부로 맺어도 안 되지만
일단 맺은 인연이나 연분을
절대 쉽게 끊으려 해선
더욱 안 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는
말처럼 연을 함부로 맺고
또 마구 자르는 것은
무식한 자의 몰상식한
소치에 불과합니다.
사랑과 우정 등
인연의 진정한 가치는
'어떻게 끊어 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륜에서 생긴 매듭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여기서 '군자' 와 '소인배'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소인배는
인연과 연분을 마구 끊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는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상대가 잘못했다.' 는
'독설'로 상대를 공격하는
잔인성을 드러내고 맙니다.
공자는 '論語' '衛靈公篇'에,
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 ;
"군자는 자신에게
허물이 없는가를 반성하고,
소인배는 잘못을
남의 탓으로 들춰 낸다."
고 했다.
자신의 과오는 모른 채
나를 그 지경에 빠뜨린
상대방 탓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똑 같은 경우에
맞딱뜨리게 돼 끝내는
허방에 빠져들고 맙니다.
사랑과 우정에 혹시라도
얽힌 매듭이 생겼다면
하나 하나 지혜롭게
풀어 나가야합니다.
그게 숱한
인연과 연분 속에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잠시의 소홀로
연을 함부로 끊어버리면
양쪽 상대 모두 비참해지고 인간성마저
추악하고 피패해 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연분과, 인연과
우정을 무 자르듯 잘라내는
'불학무식'(不學無識) 상태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연에
매듭이 생기면 더 오래
인내하면서 풀어 나가는
지혜로운 습관을 습득한
지성인만이 인생의
최종 승리자가 됩니다.
오늘도 건강관리 잘 하시고
행복한 날들 기쁨듬뿍
은총충만 하시와요
사랑합니다
♡♡♡♡
* ABBA - I Have A Dream
https://m.youtube.com/watch?v=b-_X-XezE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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