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넘버 원’, 지나간 옛 노래
올해 입춘은 2월 4일 오전 11시 43분에 든다. 수년째 친지에 신년 연하장처럼, 위해 쓰다 보니 자꾸 장수가 늘어 이제는 60장이 된다. 3~4일 종이 썰고, 쓰고, 편지 봉투 주소 적어 붙이느라 300쪽도 안 되는 책이 9일이나 걸렸다. 일본이 흔들린다는 part 2의 명제를 내가 앞뒤를 전도해 빌린 제목이다. 일본이 위기라는 기사에 붓는 댓글이 ‘세상에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과 일본 걱정’이란다. 매년 해외자산에서 20조 엔의 이자와 배당을 받는 부자 건물주 일본을 월급쟁이 한국이 왜 걱정하는가? 이다.
일본의 국부는 경상수지와 국제수지에서 들어 온다. 경상수지에는 무역수지, 서비스수지, 1차 소득수지, 2차 소득수지가 있다. 국제수지는 경상수지+금융수지이다. 1차 소득수지는 해외자산에서 나오는 이자와 배당 수입이고 2차 소득수지는 정부 개발원조금 유출입이다. 경상수지는 유가와 환율에 크게 좌우된다. 환율이 달러당 130엔을 유지하고 유가가 90달러 이내에 들면 경상수지는 흑자지만 이것이 위 금액을 넘어서면 적자로 돌변한다. 엔화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30년째 일본은 최대 대외자산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대외순자산이 411조 1,841억 엔이다. 2위 독일, 3위 홍콩, 4위 중국이다. 2021년 말 엔화는 11.21엔으로 떨어져 평가이익은 81조 엔이다. 일본의 해외자산의 80%를 외화로 보유하고 있어 엔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보유금액은 늘어난다. 이 400조 엔이 넘는 자산의 이자와 배당이 20조 엔을 벌어들인다.
그런데 이런 대기업에 다니고 건물을 소유한 일본이 기업에서 정리해고가 된 셈이다. 월급(무역수지)이 0원이 되자 월급 믿고 쓴 마이너스 통장의 이자와 할부금(무역적자) 지출이 만만치 않다. 할부금을 상환치 못하면 건물을 팔아야 한다. 즉 대외자산이 흔들린단다. 일본은 부가가치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대신 아베노믹스의 엔저 유도를 했다. 기업은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고 현지의 수익은 일본으로 가지고 오지 않았다. 일본이 환경이 나빠지면 무역 적자국이 되는 체질로 변한 것이다. 일본은 국력이 순환하는 주기를 40년으로 본단다. 1905년의 러일전쟁의 승리에서 1945년 세계대전의 패배로 꺾이고, 1985년까지의 고도 성장기의 열매를 먹다, 2025년이면 전후 40년 내리막의 끝이라 믿는단다. 그리고 세 번째 욱일승천의 해로 맞이할 것으로 믿는단다. 그러나 믿었던 2021년은 코로나19가 노출된 약점을 구조개선 없이는 국력의 상승이 없음을 보여준다,
일본인은 이제 1만 엔도 비싸서 떨게 만들어 고급 참치·대게를 못 먹는 시대다. 일본 셀러리맨의 점심값은 평균 649엔이다. 뉴욕 15달러, 상하이 60위안의 절반이다. 1997년을 기준 100으로 해 2021년 일본의 급여는 90.3, 한국은 158, 미국 122, 영국 130이다. 애플의 최신형 아이폰 가격은 일본인 평균 월급의 45%이다, 미국인은 25%면 산다. 일본 최고급 호텔 ‘오쿠라’는 1박에 7만 엔을 넘으나 외국인은 항상 만실이다. 일본인은 이제 하루 5,000엔 안팎의 비즈니스호텔을 차지한다. 일본 애니메이터·연출협회 자료에 따르면 54.7%가 년 400만 엔도 못 번다. 민간인 평균 436만 엔에도 못 미친다. 원인은 세계의 흐름과 동떨어진 독자성이다. 예를 들면 ‘일본은 기술에서 이기고 사업에서 진다.’ 기술력을 과신하여 고집하다 흐름과 동떨어진 ‘갈라파고스화’를 반복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을 중시하는 가전 시장의 조류를 외면하고 ‘쓸고퀼(쓸데없이 고퀄리티)’을 고집한 게 패인이다.
대기업에 편중된 유보금도 문제다. 유보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쌓아 올린 적립금이다. 일본 정부는 의도적으로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법인세를 낮췄다. 기업은 이익이 늘면 근로자의 급여를 올려 소비 북돋아야 하는데 비정규직을 더 뽑아 인건비를 더 줄였다. 노동분배율을 72.3%에서 8년 뒤 아베가 퇴진할 때는 66.3%로 떨어졌다. 일본인이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은 기업 못지않다. 2021년 일본인의 저축률은 34.2%다. 2007년 세계 경제 위기보다 10% 높아졌다. 이 가계 금융자산의 54%가 예금과 현금이고 주식 비중은 10%다. 주식이 40% 현금이 10%인 미국과 정반대다. 원인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주식이 휴지가 된 트라우마가 원인이다.
‘미국은 IX (Innovation Transformation), 유럽은 CX (Corporate Transformation)'으로 미래를 향하는 데 일본은 쇼와(昭和) 모델을 벗어나지 못한다.’ 소화는 1926~1989년 일황으로 낡고 구식의 이미지다. 일본 제조업은 ‘모노즈쿠리’로 대표한다.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올린 원동력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고만고만한 경영인은 일본기업 어디에서나 흔하다. 이를 ‘마트료시카 현상’이라 부른다.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는 큰 인형에서 작은 인형이 잇따라 나오는 데서 빗댄 말이다. 일본은 외국인 인재 채용을 전문성보다는 소화 모델을 벗어나지 못해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을 채용했다. 연공 서열 방식의 종신 채용에는 회화 능력이 과도하게 중시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회화 능력보다는 전문성을 중시하여 필요 직종에 인재를 직무 기술형으로 채용하는 제도가 일반화됐다.
스위스 ‘비즈니스 스쿨 IMD’가 발표한 2021년 세계 디지털 경쟁력순위에서 일본은 64국 중 28위다. 중국이 15위, 한국이 12위, 대만 8위, 싱가포르 5위, 홍콩 2위, 미국이 1위다. 이런 이유는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인재가 부족해 시대의 대응 속도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IT 투자 부족에 기인한다. 한국도 8위에서 12위로 밀려났다. 일본이 디지털 전쟁에서 패한 요인을 한국도 곱씹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2050년 자동차 시장은 반토막이 난다. 이동수요 급감으로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자동차다. 요인은 재택근무, 온라인 쇼핑, 온라인 진료 등이다. 생산성 향상으로 출근 일수가 줄어들고, 교육기관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디지털화가 가속화된다. 이동 수요가 줄어들면 자동차를 보유할 필요성이 없다. 개인 소유 자동차는 일상의 발 역할의 소형차와 이동 수단 이상의 가치를 추국하는 고급 차 시장으로 양분될 것이다. 전기차와 공유경제의 시대가 본격화되면 자동차업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표준화된 가전제품의 한 분야로 업종이 바뀐단다. 개인의 소유욕이 사라지면서 ‘싸고 편리한 이동 수단, 공간과 체험의 가치를 누리는 오락 수단’ 정도로 된다는 설명이다.
2025년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나라 일본, 이유는 800만 명에 달하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 전원이 75세 이상의 고령자가 된다. 인구구조는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30.3%)이 14세 이하 청소년 비율(11%)을 크게 웃도는 항아리 형태가 된다. 1970년 처음 1억을 돌파한 일본 인구는 80년 만인 2050년이면 9,000만 명에 턱걸이할 전망이다. 인구 1억을 유지하려면 출산율이 2.07명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15세 이하의 인구는 세계 최저로, 다음이 한국과 이탈리아다. 1,719개 지자체와 47개 광역 지자체 가운데 인구가 늘어난 곳은 도시지역 8곳뿐이다.
하드웨어를 만드는 일본은 정교하고 꼼꼼하며 성실하여 세계 1위다. 반면 전례를 고수하다 위기에 큰 약점을 드러낸다. 한국은 즉흥성과 임기응변의 민족이다. 끼가 넘치다 보니 매일매일 ‘매뉴얼’ 대로 일하라면 병이 난다. 한국인이 만든 무대에서 일본인이 출연하는 연극은 재앙이지만 그 반대라면 최고의 것이라 자신한단다. ‘후카가와 유키코’ 교수가 인터뷰에서 ‘한국은 단거리 주자, 일본은 장거리와 마라톤 주자로 나서는 육상팀이 드림팀’이란 말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소득이 일본의 1/6일 때는 불가능한 조합이나 2040년이면 세계에서 노인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 드는 한국도 주변 경쟁국과 경쟁에서 헉헉댈 것이니, 경제 침체와 인구 절벽에 직면한 일본도 홀로서기에 한계가 올 것이니, 한국과 일본이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또 주변 환경이 미국과 중국이 냉전이 일어나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한국이나 일본의 경제는 역성장할 것이라 필자는 경고한다. 한국과 일본이 경제 협력 이상으로 손잡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10~20년 앞으로 다가오고 있단다. 한·일 한 팀이 당장 미국과 중국 수준의 초강대국이 되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미국과 중국에 굴리지 않는 선진국은 되고 남을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일본이 만든 무대에서 한국이 열연하는 연극의 상연을 기대하는 것은 결코 몽상이 아니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3.01.19.
일본이 흔들린다-2
정영호 지음
한국경제신문 간행
첫댓글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