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세상이 어지러울 때 어김없이 기승을 부리는 집단이 있다. 조직폭력배(일명 조폭)가 그들이다.
4·13총선, 유흥가의 호황 등과 맞물리면서 그들의 활동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10대 폭력배들이 활개를 치며 조폭세계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고 있다. 주먹의 세계를 보통 3기로 나누는데 제1기는 일제시대의 주먹으로 이들은 명분과 대의를 중요시 여겼다.2기는 6·25이후의 시기로 이 때 주먹은 정치적 사건과 연계되면서 이들은 정치깡패의 성향을 나타낸다.
조양은, 김태촌 등으로 대변되는 3기를 지나 요즘은 10대 조직폭력배들이 신흥조직을 만들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권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이루며 현대사의 흐름을 바꾸는데 한 축을 담당했고, 사회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그들의 변천사를 통해 사회의 흐름을 알아본다.
▲제1기 ‘협객’을 자처한 그들.
이성순(시라소니), 김두한(잇뽕), 고희경(구마적), 엄동욱(신마적)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은 협객을 자처했다.
일제시대의 주먹들은 핍박받는 민중의 삶과 같았다. 식민시대의 설움과 울분을 가슴에 품었던 그들은 의리와 명분을 중요시 여겼다.
지금처럼 칼, 쇠파이프 등 각종 무기가 난무하거나 뒤에서 공격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기는 크게 조선주먹과 일본주먹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조선주먹들은 이제 갓 걸음마를 걷기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은 미미했으며, 조선주먹이 가진 이권도 신통치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일본 야쿠자들은 일본도로 중무장한데다 고급술집 등 자금줄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일본 주먹의 보스는 ‘장군의 아들’로 알려진 하야시. 하야시는 평안도 출신으로 본명은 선우 영빈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직력과 자금력에서 월등한 일본패에 항상 밀리던 조선패가 거대조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종로 우미관극장을 주 활동무대로 활약한 김두한패의 등장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우미관패는 수표교(명동과 종로의 정계) 전투에서 일본패에 무참히 패하고 조직원들이 징병으로 끌려가면서 조직은 와해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조선주먹패가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2기 정치깡패의 출현
해방공간에서의 깡패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했다. 항상 혼란의 시기에는 그들의 힘이 막강해진다는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 것.
이 시기 깡패들은 좌우익 대립 속에 정치와 밀착하기 시작했다.
장충동 정치테러 사건을 비롯 4·19를 촉발시켰던 고대생습격사건 등 이 시기의 주먹들은 정치인들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
김두한이 대한민청 감찰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정치일선에 뛰어들자 주먹세계의 판도는 급격히 변했다.
명동과 동대문이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며 주먹계의 두 축을 형성했다.
명동은 만주와 이북에서 활동했던 주먹들, 이성순(시라소니), 이화룡 등이 포함돼 있었고 동대문에는 이정재, 유지광, 임화수 등이 있었다.
그러나 충정로 도끼사건으로 이승만은 깡패들을 잡아넣게 되고 이 와중에 명동은 완전히 무너졌고 동대문만 살아남게 됐다.
동대문사단이 ‘권력의 우산’ 속에서 비를 피한 것이다.
동대문의 보스 이정재는 야망이 대단했다. 대권까지 노렸던 이정재는 전국대회에서 세 번 우승한 탁월한 씨름꾼. 그의 손에 잡히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힘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는 자유당정권의 2인자 이기붕과 손을 잡으며 정치 판에 뛰어든다.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에 난입,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개헌 통과에 한 몫을 했던 이정재는 장충동 테러 사건(야당 발기인대회 방해 사건)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권력의 맛을 본 이정재는 경기도 이천을 기반으로 국회의원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기붕이 이 곳에 출마를 선언하자 그와 결별하게 되고 그것이 그의 몰락을 가져 왔다.
이정재의 뒤를 이은 것이 임화수.
임화수는 이승만을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그의 총애를 받았다.
그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영화계의 황제로 군림하게 됐으며 동대문사단을 움직이는 일인자로 자리매김한다.
힘으로 얻은 권력은 힘에 의해 무너지는 법.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군사정부는 이정재, 임화수 등 정치깡패들을 줄줄이 재판에 회부했고 단죄를 내렸다.
이정재, 임화수는 형장의 이슬로, 유지광은 사형 판결을 받은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 받아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렇듯 격동의 시대에 등장했던 주먹들은 비록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이 시기는 분명 주먹의 황금시대였다.
▲제3기 ‘회칼’의 등장
군사정권는 초기 부정부패와 해소, 구악일소를 내세워 주먹을 탄압했다.
그러나 잡초는 밟아도 끈임없이 자라는 법. 경제개발이 진행되면서 지방의 깡패들이 상경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1975년 명동의 사보이 호텔에서 주먹계의 판도를 바꾸는 사건이 벌어진다.
서울 중심가를 장악하던 신상사파와 주먹계의 원로들이 모여 신년모임을 가지던 중 조양은이 이끄는 전라도파(후 양은이파)가 습격한 뒤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한다.
또 광주에서 올라온 김태촌의 서방파도 상경, 주먹의 한 축을 담당한다.
양은이파와 서방파, 이동재의 OB파 등 호남 3대파가 서울의 주먹세계를 분할 점령하게 됐다.
이 시기는 정치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이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세대교체를 부르짖던 때.
주먹세계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새로운 세력이 급부상하게 된 것.
80년대 부산쪽에서는 일본 야쿠자 조직과 최초로 손을 잡은 국제적인 폭력조직인 칠성파가 장악하게 된다.
이 시기는 회칼, 일본도, 쇠파이프 등 갖가지 무기들이 등장하게 되고 기습적인 공격이 유행하게 된다. 비겁해지고 흉포화하기 시작했다.
정치와 연계는 이 시기에도 계속됐다.
87년 호헌철폐, 직선개헌을 내세운 김대중, 김영삼씨가 통일민주당 창당을 시작하는데 지구당 창당때 주먹패들이 방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일명‘용팔이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후에 5공 핵심인사 장세동(당시 안기부장)씨가 계획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 94년 슬롯머신사건, 98년 한나라당 서울역집회 방해사건도 조직폭력배가 일으킨 사건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시각.
▲제4기 몇 명만 보이면 ‘조폭’
이번 총선에서 386세대 등 젊은 피들이 대거 출마, 정치권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주먹세계도 마찬가지.
이제 새로운 시기에 맞춰 젊은 세대들이 조직폭력배로 탄생하고 있다.
소규모로 구성된 군소 조폭들이 대도시 유흥가를 중심으로 겨울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펴고 있는 것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전국적으로 조직폭력배가 400여개파에 1만200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이 지난해 12월부터 1월 중순까지 전국에서 검거한 신흥조직 57개파 788명을 검거했다.
그중 10대후반에서 20대 초반이 전체 77.3%(609명)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 조폭등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거대 ‘패밀리’ 형태로 운영되던 폭력조직이 10代의 소규모 조직으로 분화되고 있는 것.
이는 계보를 거느린 대조직의 경우 수사기간에 노출되기 쉽고 조직을 이끌 자금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범죄단체를 구성한 두목급에 대해서는 최고 사형까지 처벌할 수 있는 중형이 선고되기 때문에 이 같은 경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10대들의 조폭 가담은 일선 학교의 불량서클을 모태로 하고 있다.
학교 내에서 동료학생을 상대로 금품갈취와 폭력을 행사하던 이들이 퇴학이나 정학 등을 통해 사회의 폭력조직에 진출하게 된다.
이들은 각 조직의 행동대원으로 활약, 학교후배를 조직에 끌어들인다.
이후 일정한 노하우가 쌓이면 이들은 조직에서 뛰쳐나가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에는 몇 명만 모이면 조직을 만든다”며 “10대들이 활개를 치면서 점차 흉폭해지고 있다. 폭력조직에 몸담기 전인 학교나 가정에서 문제학생을 잘 선도한다면 이 같은 현상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