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흘리는 것이다 " 울지마 ! 이만하길 천만다행이야" 한동안 내품에안겨 그렇게 흐느끼고 다시 회복실로 향했다.
머리에 칭칭 붕대를 감고 약간 눈이 부었을뿐 정말 멀쩡했던 것이다
이제 께어나 우리를 보고 아는척을하는데 김회장이 달려가 아들을 안았다
한동안 그렇게 흐느껴 울어대는데 아들이 " 엄마 나갠찮아 " " 그래 울아들 고마워 이렇게 살아줘서"
나와 감독은 회복실에서 나와 밖으로 나온다 하늘에선 여전히 눈발이 새하얗게 날리고 있고 나는 담배한대 물고 길게 연기를 품어댄 것이다.
" 저 먼저 가볼께요" " 어디를 ? " 여기에 청소년 대표팀 애들 훈련하러왔는데 코치가 후배잖아요 " " 내일쯤 올라갈려구요" " 아 그래 여긴 걱정말고 서울에서 보자구" " 네 고생좀 하시구요" " 고생은 무슨"
그렇게 감독을 보내고 났는데 그녀가 나오더니 내품에 안겨 또다시 흐느끼면서 " 자기야 ! 정말 고마워 " " 고맙긴 내가 미안하지 애들 관리 못해서" " 아니야 정말 고마워" " 이렇게 살아준것 만으로도 다행인데"
" 밥먹자" " 그래 배고프겠다" 병원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내팔장을 낀 그녀의 손에는 힘이잔뜩 들어가 있다.
차를 마시면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제주에 가있는 동안 남아있는 저학년 아이들을 간간히 들려서 간삭을 사다 먹였다는 이야기와 또 희소식은 앞으로 개학하게 되면 다른데서 전학온 아이들을 위해 숙소를 만들기로 하였는데 내가 쓰고있는 3000평의 공터한쪽에 임시로 숙소를 봄에 짓기로 하였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부삭및 식자재를 확보해 노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네 아파트 부녀회장 이다보니 그당시는 동대표 보다 부녀회 파워가 쎄서 아파트 안에 일주일에 두번씩 이동식 상가를 열고 있었는데 그 이동식 상가 대표하고 합의하여 남는 식자재를 축구부에 자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앞으로 이틀더 있으면 퇴원해도 된다는 의사샘의 이야기를 듣고 그날저녁 호텔로 향했다. 하루종일 긴장된 몸을 탕속에 밀어넣고 그렇게 간장감을 풀어내고 그녀와 그간장감을 풀고자 밤이 새는줄 모르고 그렇게 두사람 한몸이 되어 첫날을 보냈던 것이다
한층 붓기도 빠지고 몸도 활기차고 웃음도 띠는 이들을 보면서 그녀는 이제 환자아들의 엄마가 아닌 나와 둘이 신혼여행 떠나온 연인처럼 둘만의 시간을 원없이 보낸다.
개학이 되고 이사실이 교장 귀에들어가면서 대책회의가 열렸다 결론은 축구부를 헤체하는 쪽으로 나로선 더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었는데 김회장이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 내이들이잘못해서 일어난 일인데 이걸이유로 축구부를 해체 한다면 난 이문제를 교육청에 보고할겁니다" " 그렇게 되면 교장선생님은 무사하실까요"
그러니까 겁박아닌 겁박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없던일로 하고 조용히 이사건은 마무리 되었고 그초등학교 축구부는 지금까지도 명문으로서 그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첫댓글 다행히 수습은 잘 됐는데 앞으로 축구부를 어찌 끌어갈지 걱정됩니다
ㅎㅎㅎ감사합니다
저위 고구마순 김치도
있네 맞있것네
고등어넣고 ㅎㅎ
와~김여사님 파이팅~!! 암튼 빽도 그정도 빽이 되어야만이 사랑을 유지해 나갈수 있드란
그렇지요 ㅎㅎㅎ
수고가 많군요
수고는요 ㅎㅎ삶방식구면 의무감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