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조갑제닷컴에 들어가 보면 한자 사용과 관련하여, 또는 한글전용과 관련하여 참으로 얼토당토 않은 주장들이 난무하여 길게 한숨을 쉴 때가 많다. 한자를 섞어 쓰자고 주장하는 이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 중에는 학자도 있고 또는 일반인도 있지만, 전혀 학문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저 감정적으로 한자를 쓰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든가 또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글자를 쉽게 쓸 수 있도록 정책을 펴니 한국에서 한글만 쓰자고 주장하는 것은 공산주의 또는 좌파라느니 하는 정말 넌센스에 해당하는 글들이 많다. 이런 글들에 일일이 반박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귀찮고 또 한심하여 그저 탄식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도가 지나쳐 가끔은 참지 못하고 대응하는 글을 쓰게 된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아래 상자 속에 인용한 글은 조갑제닷컴에 실린 글이다. 글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한국인들이 보험약관 등 서류를 잘 읽지 않고 서명하여 나중에 혼이 나는 경우가 있듯이 入國서류를 제대로 기입하지 않는 버릇이 좀체로 고쳐지지 않는다. 행동의 부정확성. 이의 한 원인은 말의 부정확성, 생각의 부정확성이다. 이런 부정확성의 한 원인-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漢字語를 한글로 表記하여, 한국어의 70%를 암호나 소리로 변질시킴으로써 정확한 意思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한국인의 “행동의 부정확성”은 “말의 부정확성, 생각의 부정확성” 때문이며, 그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漢字語를 한글로 表記하여, 한국어의 70%를 암호나 소리로 변질시킴으로써 정확한 意思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필자가 ‘아마도’라는 말은 넣어 그나마 자신의 주장이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비하고 있지만, 이런 주장은 인과관계에 대한 확실한 연구가 없이는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말의 부정확성이 한자를 사용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한자를 섞어 쓰면 더더욱 의사소통이 잘 안 될 가능성은 없는가?
예를 들어, 아래 인용한 글에서, 필자 자신이 쓴 한자는, 대(代), 입국(入國), 한자어(漢字語), 표기(表記), 의사(意思), 고온(高溫), 범(汎), 어문(語文), 대북(對北) 등 9개 단어다.
그러나 그가 한자로 표기하지 않은 한자어 단어를 보면, 공항, 출입국, 관련, 업무, 직원, 김포공항, 도쿄, 공항, 심사, 한국인, 특별, 일본, 풍경, 보고용, 용지, 서명, 안내, 여자, 중간, 확인, 명, 중, 보험약관, 서류, 기입, 행동, 부정확성, 원인, 한국어, 암호, 변질, 정확, 소통, 전용, 세대, 대화, 문장, 세대, 기자, 질문, 이해, 시간, 공장, 문제, 사고(事故), 음식, 상온, 보관, 폐해, 정책, 경제, 중요 등 50 단어가 넘는다.
이 글을 쓴 필자가 한자를 섞어 쓰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말이 부정확하여 생각이 부정확해지고 따라서 행동이 부정확해진다고 주장하면서, 이 글의 필자는 왜 한자로 쓰는 단어보다 쓰지 않는 단어가 더 많은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글을 쓴 사람이 자신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말라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썼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 인용한 글 자체가 보여주듯이 한자를 굳이 쓰지 않아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다. 한자어라는 것이 거의 외래어로서 이미 우리말로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자를 계속 사용하다보면 우리말과 너무나 다른 한자 특유의 표현이 생기게 되어 그 때는 그 한자어를 우리말로 대체하든가 아니면 대체할 말을 찾기 전까지는 한자를 괄호 안에 넣어 쓰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릴 때 ‘도수체조’란 말을 많이 들었다. 도수체조를 한글로만 적어 놓으면 그 뜻을 잘 모른다. 이것을 도수(徒手)체조라고 적으면 알아들을 사람들이 더 많을까? 이런 말은 한자로 표기하여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徒手라는 한자어는 우리 말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맨손’이라고 쓰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것이다. 어려운 도수체조라고 쓰지 말고 맨손체조라고 쓰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의사소통이 잘 될 것이다. 이것을 굳이 도수체조라고 하면 한자로 써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가 한자를 쓰지 말고 꼭 필요할 경우에는 한자를 괄호 안에 넣어서 쓰자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자를 계속해서 쓰게 되면 도수체조 같은 단어가 계속 생기게 되어 있다. 다른 예를 들면, 우리가 어릴 때 ‘수도’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이것을 水稻라고 쓰면 몇 명이나 그 뜻을 알까? 한자로 표기하여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물논벼라고 한다면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 우리가 백악관(白堊館)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그냥 하얀집이라고 하면 안될까? 한자를 쓰면 백악관 같은 한자어가 자꾸 생긴다. 그러나 우리말을 쓰기 시작하면 백악관으로 번역하지 않고 하얀집으로 번역하게 될 것이다. White House를 번역하면서 왜 굳이 백악관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래야 그것이 고급언어가 되고 문명어가 되는가? 편견일 따름이다.
일반적으로 공항에서 입국서류를 쓸 때 대부분 앞면만 쓰게 되어 있다. 유독 일본만 앞뒷면으로 쓰게 만들어 사람들을 혼란케 하고 있다. 이것이 한자 때문인가? 아니면 일상생활에서 경험한 관행 때문인가? 사람들이 보험약관을 잘 읽지 않는 것이 한자로 쓰지 않아서인가? 평소 한자로 된 글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보험약간을 다 살펴보는가? 이런 문제는 그리 간단하게 답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답을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들여 연구를 하여야 한다. 그냥 머리 판단으로 넘겨짚을 문제가 아니다.
아래 인용한 글을 보면 한자어를 쓰지 않아서 문제가 되기보다는 왜 특정 단어만 한자로 쓰고 나머지 단어는 한자어임에도 쓰지 않았는지 의문이 더 커진다. 또한 한자 문제보다는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의사소통은 단지 한자 사용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문화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의사소통학을 공부하면 그 이유를 더 잘 알 수 있다.
이 글을 쓴 사람이 그렇게 의사소통에 대해 걱정을 한다면 한글로 표기하여 이해하기 힘든 한자어에 대해 괄호 안에 한자를 표기해 주는 방법을 쓰면 어떤가? 이 방법이야말로 한자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한자를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 아닌가?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이미 역사적 대세가 되었다. 무조건 한자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모든 사회 문제가 한자를 사용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수구적(守舊的) 자세다. 역사적 발전의 대세에 따르면서 그 부작용을 고치는 방향으로 생각을 고치면 좋을 것이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조갑제닷컴에 올라와 있는 황당한 글들에 대해 하나하나 비판하는 글을 올리려고 한다. 이번 기회에 한자를 섞어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나와 같이 한글만 쓰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괄호 안에 넣어서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번 대토론회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 몇 시간이 걸리든, 또는 며칠이 걸리든, 이 문제에 대해 끝장토론을 하여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
오늘 하네다 공항에서 있었던 일
한국인들이 줄을 서 있는 곳으로 온 한 50代 출입국 관련 업무 직원이 소리를 질렀다. '"플리즈 체크, 백 페이지!"
趙甲濟
오늘 오전에 김포공항을 떠나 도쿄의 하네다 공항에 내렸다. 入國심사를 받는데 한국인을 위한 특별 서비스가 있었다. 사실은 일본의 어느 공항에서나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한국인들이 줄을 서 있는 곳으로 온 한 50代 출입국 관련 업무 직원이 소리를 질렀다.
"플리즈 체크, 백 페이지!"入國 보고용 용지의 뒷페이지를 읽고 서명을 하라는 뜻이다. 한국인들은 앞면만 적어넣고 뒷면을 읽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런 안내를 별도로 한다.
그뿐이 아니다. 한 여자직원이 列의 중간에 들어와 안내대로 적어넣었는지를 또 확인한다. 열명중 서너 명은 여기서도 걸린다. 한국인들이 보험약관 등 서류를 잘 읽지 않고 서명하여 나중에 혼이 나는 경우가 있듯이 入國서류를 제대로 기입하지 않는 버릇이 좀체로 고쳐지지 않는다.
행동의 부정확성. 이의 한 원인은 말의 부정확성, 생각의 부정확성이다. 이런 부정확성의 한 원인-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漢字語를 한글로 表記하여, 한국어의 70%를 암호나 소리로 변질시킴으로써 정확한 意思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글전용 세대와 대화를 하다가 보면 문장이 되지 않는 말을 하는 데 놀란다. 한글전용 세대 기자의 질문을 받으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공장에선 한글전용에 의한 소통의 문제로 하여 사고도 난다고 한다. "이 음식을 상온에 보관하시오"라고 써놓으면 高溫에 보관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한글전용의 汎사회적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語文정책은 경제정책, 對北정책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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