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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역사가 에마뉘엘 토드가 말하는 진실
주도권은 미국 아닌, 방산 시스템 갖춘 러시아
지금 위기는 ‘한통속 앵글로색슨 세계의 위기’
미국의 개입 진짜 이유는 독일-러시아의 접근차단
끼인 폴란드가 K방산 대량 구매한 이유도 관련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에 원격으로 참석하고 있다. G7 외교장관들은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과 중국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정세에 관해 논의했다. 2023.11.08. AP 연합뉴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미 졌다.
프랑스의 역사가이자 인류학자, 인구통계학자인 엠마뉘엘 토드는 서방 주류 미디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태를 제대로 직시하지도 전달하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이 전쟁의 승패는 사실상 정해졌다. 미국의 패배는 거의 확정돼 있다”며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얘기한다.
미국이 충분한 무기, 탄약을 물리적으로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화폐를 제공하는 것’과 ‘실물 제품을 제공하는 것’은 다르다. 방대한 액수의 군사지원을 약속했지만 군사물자 자체는 우크라이나에 (제대로) 반입되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반전(반격) 공세’는 거의 실패로 끝났다.
일본 <문예춘추> 12월호 기고
토드는 최근 간행된 일본 월간 <문예춘추>(2023년 12월호)에 기고한 “미국은 이미 패배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보수우파 성향의 이 잡지에 실린 그의 글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 예컨대 누가 왜 전쟁을 일으켰으며,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될지 등에 대해 특히 미국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직설적으로, 거침없이 설파한다.
그의 글은 좌든 우든 그의 관점에 동의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여러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가운데) 러시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로스토프나도누에 있는 남부지구 사령부를 방문해 세르게이 쇼이구(왼쪽) 국방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과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날 오데사항을 공습하는 등 최근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을 대상으로 군사작전을 확대하고 있다. 2023.11.10. 타스 연합뉴스
무기생산력, 러시아가 미국보다 강하다
토드는 지난해 6월에 이미 장기전에서 군수품을 계속 소비하게 될 경우 ‘고도의 군사기술’보다 ‘무기 생산력’이 관건이라며 “미국에게 ‘(무기)생산력’ 문제가 이제부터 중요해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면서,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에 따른 ‘산업 공동화’라는 미국의 약점이 이제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국내의 산업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는 그런 점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여차하면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본다.
토드는 우크라이나(이하 ‘우크라’로 약칭) 전쟁과 관련해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러시아 경제의 강점이라면서, 서방은 제재를 받은 러시아 경제가 숨통이 끊어질 것으로 봤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우크라전쟁 개입 목적은 독일-러시아 ‘분단’
토드는 미국의 우크라 전쟁 개입의 진짜 목적은 독일과 러시아를 ‘분단’시키는 것이라며, 그러나 그 분단은 전쟁이라는 일시적 흥분상태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긴 흐름 속에서 본다면 독일과 러시아의 접근이야말로 자연스런 것이고 지역의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결국 독일과 러시아는 다시 접근할 것이라고 본다.
이는 폴란드가 초조해하면서 한국의 방산기업들과 천문학적인 무기구입 계약에 나서고 빠른 배송을 요구한 것이 이런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낀 폴란드의 기구한 역사와 지정학임을 상상하게 만든다.
토드는 우크라 전쟁을 유발한 책임도 미국에게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우크라 우파 내셔널리즘 분출에 기대어 러시아를 약화시키기 위해 우크라 전쟁에 개입한 미국이 한편으로는 그 우크라 내셔널리즘의 함정에 말려든 것이라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 역시 이스라엘 극우 내셔널리즘이 설치한 함정에 빠진 것일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북부에서 강한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다. 15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내 최대 의료시설인 알시파 병원을 급습했다. 2023.11.15. AFP 연합뉴스
지금 세계의 위기는 ‘앵글로색슨 세계의 위기’
이-팔 전쟁을 미국이 우크라 전쟁에서 잃은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자신들이 쉽게 이길 수 있는 소국을 골라 막강한 군사적 힘을 과시함으로써 세계를 그들 뜻대로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연출’한 것으로 보는 점도 흥미롭다.
토드는 미국이 금융패권을 통해 유지하려 하는 달러 기축통화체제야말로 무역적자 대국 미국이 그것을 사실상 공짜로 메우면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게 만들었다면서, 미국이 세계의 물자를 빨아들이는 이런 ‘기생적’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세계의 위기는 ‘서방세계의 위기’이며, 특히 미국 영국 등 파이브 아이즈의 ‘앵글로색슨 세계의 위기’라고 얘기한다. 여기에서는 앵글로색슨과 프랑스 간의 복잡미묘한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다.
좀 길지만, 그의 주장을 가능한 한 그대로 살려서 옮긴다.
(우크라 전쟁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은 국내총생산(GDP)이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지표에 우리 눈이 흐려져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GDP 합계는 ‘서방진영’(미국, 영국권의 국가들, 유럽대륙 국가들, 일본, 한국) GDP 총액의 겨우 3.3%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이런 미미한 GDP로 러시아는 미사일을 계속 생산할 수 있는가. 문제는 경제의 금융화, 서비스산업화가 진행되면서 GDP가 이미 ‘생산력=실제 경제력’을 재는 척도로서의 효력을 잃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경제에서의 ‘버추얼’(virtual, 가상)과 ‘리얼’(real, 진짜)의 대립이다. ‘군사력’을 최종적으로 떠받치는 것은 ‘리얼한 생산력’이다.
이른바 (우크라의) ‘반전 공세’는 서방진영이 대량의 무기를 제공함으로써 우크라군을 증강시켜 겨울철에 구축된 러시아의 방어선을 돌파해 점령당한 영토 전체를 탈환하려는 것이었다.
이 ‘반전 공세’는 미국이 우크라에게 용기를 북돋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이 우크라에 강요한 것으로 내게는 보인다. 미국은 승패는 이미 거의 정해져 있는데도 우크라에 대해 무기 제공을 약속함으로써-실제로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전쟁을 무리하게 길게 끌어가려 해 왔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많은 우크라인들이 희생당하고, 우크라의 건물과 다리들이 파괴되고 있다. 실제로 ‘반전 공세’가 시작된 지난 6월 4일 이후 우크라 쪽에서 대량의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미국은 ‘지원’을 통해 실은 우크라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군 서열 2위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오른쪽)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회담에 앞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장 부주석은 중러 정상의 합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대표단을 이끌고 러시아를 방문했다. [러시아 국방부 공보실 제공] 2023.11.09. AP 연합뉴스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러시아가 결정
토드는 우크라 쪽 희생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무기를 충분히 제공할 수 없다는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이 전쟁은 지금 하나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면서, 그러나 전쟁이 실제로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그 이유는 그 타이밍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인데, 러시아가 자국 병력 동원을 꺼리며 인적 자원을 절약, 온존시키면서, 대량의 병력을 즉시 동원해서 서둘러 승리하려 하기보다 ‘국내의 평온’을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타이밍이 올해일지 2, 3년 뒤일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5년 뒤에 러시아 인구 피라미드에 ‘큰 구멍’이 생겨 징병 대상 세대의 인구가 급감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이 전쟁을 늦어도 4, 5년 안에 끝내고 싶어할 가능성이 있다고 토드는 인구통계학 전문가답게 그 근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러시아가 지금은 ‘휴전’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가 제시하는 그 이유가 흥미롭다.
지금 러시아는 공업생산력과 무기 공급능력에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쪽보다 우위에 서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들이더라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려는 러시아에게 지금 휴전하는 것은 미국과 NATO에게 무기생산력 회복을 위한 시간적 유예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휴전을 받아들이고 싶진 않을 것이다.
우크라 전쟁 최대 불안정 요인은 미국
그리고 토드는 이 전쟁의 최대 불안정 요인은 미국 쪽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내년에 출간할 책을 쓰면서 미국의 기득권층의 현실인식과 세계전략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지정학자와 안보 전문가들 책을 많이 읽어 봤다면서, 그 결과 “세계 최강대국을 이끄는 미국의 엘리트 집단이 실은 진지하지도 유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들의 언동은 합리적인 전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억제할 수 없는 일종의 흥분상태에 있다. 특히 ‘어른’일 것이 요구되는 안전보장문제에서 ‘아이’처럼 행동하고 있다. ‘바이든이라는 늙은이가 이끄는 아이들과 같은 집단’이라는 것이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그 나라 지도층의 실태다. ‘현실’을 직시할 수 없는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를 모른다. 그들의 공격성이야말로 세계의 최대 불안정 요인이 돼 있다.
미국의 엘리트들이 합리적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면, “우크라에서(우크라 전쟁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폴란드까지의 영역을 미국의 관리 아래에 두겠다는 그들의 목표가 이미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고, 그럴 경우 새로운 국면이 그들의 시계 안에 들어 올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 새로운 국면이란 지정학적인 역학이 작동해 “러시아와 독일이 다시 접근”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뒤 제럴드 포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2척의 항공모함을 이스라엘 인근 지중해 동부연한에 파견했다. 사진은 10월 28일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고 있는 항모 아이젠하워. 2023.10.28. AFP 연합뉴스
미국의 우크라 전쟁 개입 진짜 목적
독일과 러시아의 접근은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사태다. 강력한 군사지원으로 우크라를 ‘NATO의 사실상의 가맹국’으로 만들어서 이 전쟁을 부추긴 미국의 숨겨진 진짜 목적은 러시아와 독일을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원래 러시아와 독일은 에너지, 경제 면에서 긴밀한 상호보완관계에 있고, 양국의 협력관계는 지정학적으로도 지역의 안정에 기여한다. 즉 장기적인 관점에 서면 이 두 나라의 접근은 아주 합리적인 것이다. 자국의 안정과 세계의 안정을 두 나라가 바란다면 저절로 서로 접근하게 돼 있다. 우크라 전쟁에 따른 단기간의 흥분상태 속에서 일시적으로 서로 이반하더라도 이 두 지역대국의 관계는 또 다른 긴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 낀 폴란드가 초조해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전쟁 개시 직후부터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지정학적인 리스크가 될지도 모른다고 보고 “폴란드의 움직임에 주의하라”고 지적해 왔는데, 최근 벨라루스와의 국경지대 병력을 증강하고, 우크라 정부와 대립하는 등 폴란드가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0월에 실시된 폴란드 총선거에서 초점이 모인 것은 여당인 ‘법과 정의’(Pis)당의 동향이었다. 제1당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과반수를 확보하진 못해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인 ‘법과 정의’당은 ‘반독일 반EU’로, 특히 독일에 심한 적의를 품고 있다. 또 폴란드 국민에게는 ‘반러시아 감정’도 뿌리 깊다.
지난 13일 총선거 뒤 새로 개원한 국회에서 연설하는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10월의 총선 결과 기존 집권당인 '법과 정의'가 제1당 유지에는 성공했으나 정부구성을 위한 과반의석 확보에는 실패해 야당연합 정권이 집권할 가능성이 커졌으나, 아직 새 정부 구성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2023.11.13. AFP 연합뉴스
폴란드가 K방산 대량 구매한 까닭
폴란드가 벨라루스와의 국경지대에 병력을 증강할 때 서둘러 배치한 것이 한국 기업들이 수출한 K2 전차와 K9 자주포였고, FA 50 경전투기 등도 추가됐다. 한국과 폴란드의 대규모 방산수출 계약과 전례없이 신속했던 이들 물품의 배송 뒤에 그런 사정이 있었다.
폴란드와 우크라가 대립한 것은, 러시아의 흑해쪽 공격으로 우크라의 농산품의 해상 수출로가 막히고 폴란드 루마니아 등을 통한 육로 수송 쪽으로 바뀌면서부터다.
우크라의 농산물들이 폴란드 등으로 쏟아져 들어가면서 폴란드 농산품 가격이 폭락하고 농민들이 아우성쳤다. 원래 이런 우려 때문에 폴란드 루마니아 등이 육로를 틔워주는 대신 우크라의 농산물들이 그들 나라를 통과만 할 뿐 거기에서 배포되고 소비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했고, EU도 그 협약을 보증했다. 그러나 그 보증기간이 끝나자 EU가 일방적으로 협약을 해제하면서 우크라의 농산물들이 폴란드 등에도 풀렸고 문제가 생겼다. 폴란드 정부는 곧 다가올 총선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우크라가 폴란드에 대한 농산물 배포를 멈추지 않으면 군사지원을 끊어버리겠다는 위협까지 했다.
10월의 폴란드 총선에서는 결국 Pis가 제1당 지위는 유지했으나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해 좀 더 친서방적인 야당 연합 쪽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새 내각 구성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한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을 피해 키이우 시민들이 지하철 역에 모여 있는 모습. 2023.05.29. AP 연합뉴스
한반도와 닮은 폴란드 분단의 역사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정학적인 이유 외에 오랜 역사적인 배경도 빼 놓을 수 없는데, 역사학자 토드의 안목은 그 깊이를 더해 준다.
그는 ‘반독일’임과 동시에 ‘반러시아’, 이 양립하기 어려운 구조가 폴란드 역사를 얘기해 주고 있다면서, “그것은 한마디로 ‘분단의 역사’로,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라는 대국들이 깊이 관여해 온 역사”라고 했다. 이 부분은 분단과 전쟁으로 얼룩진 한반도의 비극적인 근대사와도 닮은 점이 많아 관심을 끈다.
토드는 예컨대 지금 미국이 이 지역에서 떨어져 나가면 폴란드는 자국의 생존 문제에 다시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러시아와 독일이라는 2개의 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현실과 맞닥뜨린 폴란드의 처지와 지배그룹의 속셈을 역사적 사실들과 결합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크라가 완전한 붕괴를 맞게 될 때 폴란드가 우크라 서부의 병합을 꾀한다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전쟁 개시 당초부터 나는 그렇게 말해 왔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정상회담(7월 23일)에서도 이 전쟁에 깊이 관여한 폴란드 문제가 거론돼 “폴란드는 어떤 대가를 바라고 있는가”라는 루카셴코(벨라루스 대통령)의 질문에 푸틴은 “서부 우크라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푸틴의 발언에는 당연히 우크라를 동요시켜 폴란드와 이반시키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들어 있지만 폴란드가 이 전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크라에 가세하고 있는 외국인부대 대부분은 폴란드인으로, 그들은 일찍부터 전투에 참가해 그 규모가 수만 명에 달한다.
폴란드에게 우크라에서 영토를 넓히는 것은 ‘옛 역사로의 회귀’이기도 하다. 유나이트 교회(동방전래의 통합적인 가톨릭 교회)라는 교파가 있는 우크라 서부(갈리치아 지방)는 폴란드와 역사적으로 특히 깊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 중앙부도 과거에는 폴란드에 점령당한 역사가 있고, 그 기간은 러시아가 점령한 기간보다 더 길다.
지금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동부 4개 주뿐만 아니라 하르키우(하리코프) 주와 오데사 주 등도 우크라 중앙부에서 분리돼 ‘우크라 분할’이 본격화되면 ‘폴란드로의 병합’이 될지 ‘독립’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크라 서부도 우크라 중앙부에서 분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은 아마도 러시아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왜냐면 러시아가 가장 위험시하고 있는 것은 우크라 서부가 주도하는 ‘우크라 내셔널리즘’이기 때문이다. 푸틴이 ‘네오 나치’라고 부르는 이 내셔널리즘이 우크라의 서부만이 아니라 중앙부도 장악하고 있다.
2014년의 이른바 ‘유로 마이단 혁명’, 푸틴이 얘기하는 ‘야누코비치 정권을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무너뜨린 쿠데타’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한 것은 우크라의 극우세력이었다. 당시 ‘EU(유럽연합) 가맹’을 가장 열망하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우크라의 미미한 부분만 대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극우세력이 가장 활발했던 곳이 일찍이 나치 독일 쪽에 섰던 우크라 서부지역이다.
서부지역이 중앙부에서 분리되면 ‘우크라 내셔널리즘’은 그 근거지를 잃는다. 그 결과 러시아에게는 우크라 중앙부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만 이 문제는 지극히 복잡하다. 우크라 서부에는 폴란드의 전통에 속하는 지역만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독일(독일어권)의 전통에 속하는 지역도 있다. 따라서 우크라 서부의 분리가 현실화하면 폴란드와 독일어권, 그리고 우크라 서부지역이라는 3개의 공간 사이에서 30년 정도의 장기간에 걸쳐 지정학적 긴장이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우크라 중앙부에 대한 영향력 회복을 호시탐탐 노리는 러시아는 이런 추이를 조용히 지켜볼 것이다.
외무장관으로 7년 만에 정계에 복귀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오른쪽)가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캐머런 장관은 임명 후 첫 해외 일정으로 키이우를 방문해 영국의 지지 의사를 재확인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보실 제공] 2023.11.17. AP 연합뉴스
실패로 끝난 우크라의 반격
토드는 우크라의 ‘반전 공세’가 실패로 끝남으로써 서방 국가들이 큰 충격을 받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서방 국가들 사이에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슬로바키아가 지난 9월 총선거에서 우크라에 대한 군사지원 중단을 주장한 중도좌파 정당이 승리한 것을 예로 들었다. 폴란드와 우크라의 관계뿐만 아니라 폴란드와 독일 관계도 뒤틀리고 있다고 본다.
우크라 외에 이 전쟁으로 가장 큰 경제적 타격을 받은 것은 독일이라며, 토드는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것이야말로 본래 국익에 가장 잘 부합하는 독일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지 상상력을 발휘한다.
독일이 노르드스트림 폭파에 침묵하는 까닭
독일이 레오파르트 2 전차를 우크라에 제공하기로 했을 때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도, 러시아에게 ‘우리가 무기를 주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우리 본심에 반하지만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는 걸 애써 보여 주려는 의도에서 그런 모양새를 취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 폭파를 그는 미국과 노르웨이의 소행으로 보면서, 독일이 그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독일 나름의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그 ‘기묘한 침묵’이 미국에 대한 암묵적인 비판이요 속내라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의 패권’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사우디와 이란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의 중재로 국교를 정상화하고 인도와 브라질이 미국이 주도한 러시아 제재를 거의 무시한 것도 그 증좌로 제시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2023년 EU 확장 패키지'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집행위는 이날 이사회에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위한 협상 개시를 권고했다. 2023.11.09. EPA 연합뉴스
미국의 위성국이 돼가는 유럽, 인터넷 종속이 원인
그런데, 이처럼 미국의 세계지배 체제, 곧 ‘미국제국 시스템’이 세계 전체에서 쪼그라들고 있음에도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에 대한 지배는 거꾸로 강화되고 있다고 토드는 지적한다. “독일도 프랑스도 이미 ‘독립국가’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동맹국들을 사실상 ‘위성국’이나 ‘보호국’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에서 미국과 감정적으로 가깝고 미국의 시스템에 직접적으로 통합돼 있는 듯한 나라로 영국과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를 꼽으면서 “유럽에서 자발적으로 미국에 추수하고 있는 듯한 나라는 이들뿐”이라며 EU도 미국에 대한 자율성을 잃고 있다고 본다.
토드는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인터넷이라고 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자율적인 정보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유럽은 GAFAM(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거대 IT기업들의 지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면서, 그는 2013년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스노든이 대규모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미국 국가안보국(NSA) 감청 사실을 폭로했을 때 그 주요대상들이 메르켈 당시 독일총리 등 유럽의 엘리트들이었던 사실에 주목했다. 미국은 당시 러시아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국군을 통합 조정하기 위해서라고 불법감청 이유를 둘러댔지만 진짜 목적은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미일동맹이나 한미동맹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동맹국에게 ‘보호자’가 아니라 ‘지배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러시아의 최신 전략 잠수함 '임페라토르 알렉산드르 Ⅲ'가 5일(현지시간) 백해(白海)에서 대륙 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불라바를 발사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임페라토르 알렉산드르 Ⅲ가 불라바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 영상 캡처] 2023.11.05.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제재를 견뎌낸 러시아
토드는 ‘미국제국 시스템’의 근간을 떠받쳐 온 것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라면서, 러시아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결제 시스템에서 배제할 경우 러시아 경제를 궤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서방진영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도 “달러야말로 세계의 ‘진실’이고, ‘달러 바깥으로 밀려나는 나라는 세계로부터 고립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러시아 경제는 “놀라울 정도로 잘 견뎌내고 있다”면서, 러시아를 지지하는 나라들까지 출현하면서 러시아 제재를 계기로 달러 외의 통화 등으로 결제하는 국제거래가 늘고 있고, 이는 달러 기축체제가 반석의 지위를 잃고 존재감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앞으로 인터넷이 더 발전할 경우 기축통화 체제 자체가 필요없는 세계가 도래할 수 있다면서, 토드는 “달러 발행으로 생명을 연장해 온 미국”, “금융시스템 패권을 장악해 달러를 발행하고 전 세계로부터 풍부한 물자를 수입해 풍요를 향유해 온 미국”에게 달러 기축체제의 종말은 미국에겐 사활의 문제로, 그것은 방대한 무역적자를 금융패권을 통해 사실상 공짜로 메워 온 미국이 중요한 수단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과정이지만, 급작스런 달러패권체제의 붕괴는 전 세계에 악몽이 될 것이므로 서서히 진행되는 통제할 수 있는, 질서있는 패권 해체가 바람직하다고 그는 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6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지방법원에서 열린 자산가치 조작 의혹 민사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과거 재무제표 작성 과정에서 가치 평가에 일부 개입했음을 인정했다. 2023.11.07.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선거는 코미디
내년의 미국 대통령선거와 관련해서 토드는 그것이 세계가 주목할 일이긴 하나 “희극(코미디)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국내정치에 일희일비하는 건 그만두는 게 좋다”면서, “성서를 글자 그대로 믿어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공화당 지지자들이나 트랜스젠더를 믿는 이들이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 모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광신자들”이라고 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보이는 건 그의 우파적 성향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를 선택하는 것은 마치 ‘지구는 평평하다’와 ‘지구는 사각형이다’라는 둘 다 틀린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거나 다를 바 없다고 야유했다.
달러패권 속에 세계에 기생하는 미국
달러를 찍어내 전 세계에서 대량의 물자를 수입해서 풍요롭게 살아 온 미국은 말하자면 세계에 ‘기생’하면서 자국의 생존을 위해 ‘세계의 패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 면에서도 경제 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자립’하고 있다. 세계에 ‘기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처럼 ‘세계의 패권’을 추구할 이유도 없다.
이런 미국의 기생적인 존재 방식은 누가 정권을 잡든 당분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유럽이나 일본은 미국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까. ‘세계의 패권’을 무리하게 유지하려고 동맹국을 불필요한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미국의 움직임이야말로 경계해야 한다.
한국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토드는 미국의 위험한 행동으로 일본이 불필요한 전쟁에 휘말려드는 것이 정말로 걱정된다면서 “문제는 우크라도 러시아도 아닌 워싱턴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세계의 진짜 위기는 ‘서양세계의 위기’이며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앵글로색슨 세계의 위기”로, “미국은 지금 블랙홀처럼 세계를 빨아들이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9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뉴욕시 공공도서관 앞에서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가자지구 전쟁 종식을 촉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작전이 가열되면서 사상자가 급증하자 미국 내에서도 팔레스타인을 동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23.11.10. AP 연합뉴스
우크라 전쟁 원인과 그 책임은 미국에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도 자제력이 결여된 미국의 움직임이 리스크(위험)를 높이고 있다면서 토드는 “미국이 세계 각지의 문제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으나 일관된 전략에 토대를 둔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매우 즉흥적”이라며 국제정치의 어젠다를 미국이 주도해서 결정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최근까지 미국의 전략적인 우선사항은 중국과 동아시아, 특히 대만문제였다. 그 와중에 우크라 전쟁이 터졌고, 게다가 중동에서도 분쟁이 일어나 미국은 그 모두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본래 쉽게 피할 수 있었던 우크라 전쟁의 원인과 책임은 러시아보다 미국에 있다. “우크라의 NATO 가맹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고 러시아가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우크라군을 증강시켜 “사실상의 NATO 가맹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도 푸틴이 이렇게까지 결단을 내려 대규모로 우크라를 침공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정면으로 맞설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만찬에서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이번 회의는 '모두를 위한 회복력 있고 지속 가능한 미래 창조'를 의제로 오는 17일까지 나흘간 진행된다. 2023.11.17. 로이터 연합뉴스
함정에 빠진 미국
그런데 미국은 전쟁이 시작되면서 고양된 우크라의 내셔널리즘을 보고 “이건 불구대천의 적인 러시아를 약체화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크라의 내셔널리즘이 미국을 이 전쟁에 끌어들였다고 볼 수도 있다. 즉 미국 나름의 일관된 전략에 바탕을 두고 개입했다기보다는 ‘함정’에 빠진 것과 같다는 얘기다.
아이와 같은 사고의 미국 지도층
토드는 이-팔 문제에서도 동맹국인 이스라엘에 이끌린 미국이 우크라 전쟁의 경우처럼 ‘함정’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아이들과 같은 미국의 지도층은 우크라에서 지고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중동문제에 깊이 개입했을지도 모른다. 그 상징이 항모전단의 지중해 파견이다. 그것은 미국의 통제력이 먹히기 좋은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연극적으로’ 과시하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나는 ‘연극적 소규모 군사행동’이라고 불렀다. 우크라에서 대치하는 러시아와는 달리 간단하게 궤멸시킬 수 있을 게 분명한 소국에 이김으로써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미군’을 세계를 향해 연출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도 미국 지도층의 현실 도피에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토드는 지금의 가자지구 상황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면서, 유대인 피 절반을 지닌 자신이 보기에도 “‘유랑민’이 만든 이스라엘이 이 세계의 사람들을 그 끝이 어디일지도 모르는 폭력의 연쇄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것이라는 기분나쁜 예감에 시달려 왔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이런 말로 글을 끝맺는다.
17일(현지시간) 공개된 이스라엘 군용 차량의 가자지구 내 지상 작전 수행 모습.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전날 이스라엘군(IDF)이 가자시티 서쪽을 완전히 장악했다며 지상전의 다음 단계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IDF 제공] 2023.11.17. 로이터 연합뉴스
이-팔 전쟁을 끝내는 법?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을 진정으로 지원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인류에게 보편적인 도덕적 문제가 거기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는 오히려 “이것은 우리 문제가 아니다”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매우 복잡한 일개 지역문제”이지 “세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어쨌든 서로 죽이고 있는 사람들의 나르시시즘적 감정을 선동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온 세계가 주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분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이 될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국들과 아랍세계의 개입이 오히려 문제를 만들어내고 키워 비극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는 역설적인 바람은 그러나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네타냐후 등 이스라엘 극우세력의 무자비한 팔레스타인 지우기를 방관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고, 역시 제국지배의 역사를 지닌 프랑스, 그리고 절반의 유대인인 토드 자신의 잠재된 우파 내셔널리즘 성향의 발로가 아니냐고 의심해 볼 만한 구석도 없지 않다.
우크라, 이-팔 전쟁, 폴란드, 한반도
하지만 그야 어찌됐든, 이-팔 분쟁과 우크라 전쟁, 그리고 폴란드의 딜레마는 한반도 분단과 대립의 비극과 거의 동일한 구조를 지닌 듯하다. 한민족의 이산과 피식민 역사, 분열과 국토분단의 비극을 만들고 키운 것은 바로 그 외부 거대세력들의 탐욕과 개입이었다.
토드의 생각에 동의하든 않든, 그의 얘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