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진주
나에게는 황금산보다도 소중한 마음속의 진주가 있다. 그 진주는 바로 외독자인 나의 아들이다.
청산속에 묻힌 옥도 갈아야 빛이난다고 아무리 소중한 진주일지라도 깊이 묻어두
고 제때에 닦아주지 않는다면 진주의 가치를 잃고 말것이다.
29세에 늦 장가를 간 나는 안해가 임신하자 국내외의 선진적인 <<유아조기교육>>,
<<유아심리학>>등 서적들을 미루 보면서 아빠가 될 준비를 하였다.
안해가 아들을 낳게 되니 나는 배울학자에 이룰성자를 합하여 학성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총명하고 진취심이 강한 학성이는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않게 조개속에 들어간 모
래알처럼 조개의 보호를 받으며 오색령롱한 진주가 되여 빛을 뿌릴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유아에게 있어서 부모의 교양과 가정환경은 자못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된다. 어린이
교양도 애목을 가꾸는것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정성들여 제때에 거름과 물을 주고 비바람에 찌부러지면 바로 세워주며 자래워야 건실한 재목으로 성장할수 있다고 본다. 만약 독신자녀라고 쥐면 부서질가 불면 날아날가 애지중지 어루만지며 어린애가 하자는대로 다해주면 결국 온실안에서 자라는 화초마냥 나약한 인간으로 되거나 지어는 범죄의 길에 들어설수도 있게되다. <<아이를 보고 이름을 이름을 지으라>>고 한 속담을 명기해야한다. 백양나무묘목이면 칠칠한 백양나무로 자라게 하는것이 원칙인데 사철푸른 소나무가 되라고 강요한다면 결과는 백양나무로도 제대로 자라지 못할것이다.
학성이는 어섯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여서 많이 본것은 내가 집에서 늘 책을읽고 글을 쓰는것이였다. 첫돐이되자 제법 말을 번지게 된 그는 이야기 듣기와 그림책 보기에 흥취를 가지고 저녁마다 한시간정도 나의 시간을 잘라 먹군 하였다. 그는 그림책이야기를 몇번만 반복하여 읽어주면 내용을 기본상 다 외우군 하였다.
우리부부는 아들애한테 의식적으로 독립사고하는 능력과 자립능력을 배양하기에 힘을 기울려 왔다.
학성이가 5살되던해에 있은 일이다.
<<8.15>>로인절날 할머니를 따라 체육장으로 간 학성이는 제멋대로 구경하러 다니다가 그만 할머니와 갈라지게 되자 울면서 인산인해를 이룬 인파속을 헤치고 다니면서 할머니를 부르며 찾기 시작하였다. 그럴때 주석대에 있는 확성기에서 모모를 주석대에 속히 올라오라고 련속 세번이나 방송하는것을 듣게된 그는 귀가 번쩍 띄워 주석대 쪽으로 종주먹을 쥐고 달려갔다. 방송원옆에 다가간 그는 녀방송원의 팔소매를 잡아 흔들며 <<내가 우리 할머니를 잃어 버렸으니 방송해서 찾아주세요>> 하고 또랑또랑 말했다. 방송원은 그와 할머니의 성명을 물어본후 곧 방송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머니가 헐레벌떡하면서 주석대로 올라왔다…
학성이는 어른들이 가르쳐준대로 자기절로 할수있는 일은 자기절로 하군하였다. 자고난 이불을 개이는것, 자기양말씻기, 부모를 도와 자질구레한 일들을 불평없이 해왔다.
조기교육을 받은 학성이는 만세살때부터 자기절로 조선글을 읽을수 있게되여 독서량이 점점 늘어나게 되였다. 소학교를 다니는 6년간만해도 학교에서 주문하는 여러가지 신문잡지외에도 3백여권의 책을 열독하여 학교에서 <<책벌레>>라는 영예증
서를 2차나 타게 되였으며 주급이상 간행물에 20여편의 글을 발표하였고 글짓기응모
에서도 여러번 상을 받아안게 되였다.
유아한테서 흥취의 불콫이 튕기는것을 발견하게되면 제때에 불을 지펴 주어야 한다고 본다. 만약 그 불콫을 보고도 스쳐 지나버린다면 그 불콫은 영원히 불길로 타오를수 없을것이다.
학성이는 두돐이 되였을때 유치원 교원질하는 엄마가 타는 손풍금에 흥취를 가지게되였다. 유아때부터 악기를 다루면 량쪽뇌를 다 발전시킬수 있다는것을 알고있은 나는 먼저 전자풍금을 사다가 엄마한테 배우게 하였다. 1년간 기초를 닦은후 손풍금을 배우게 되였는데 2년을 배우주고나서 안해의 수준으로는 더 배워줄것이 없었다. 하여 선생을 모시고 4년이나 더 배워서 수준급에 이르게 되였다.
학성이는 유치원 대반에 다녀도 배울것이 크게 없었다. 하여 만6살에 소학교에 입학시켰다. 학교에서 공부는 앞자리를 차지하나 유감스럽게도 병아리 하루볕이 새로운것과 같이 다른 애들보다 어리기에 신체소질이 따라가지 못하는 관계로 체육성적이 우수에 도달할수 없었다. 그로하여 3호학생이 될수없어 한달에 백원씩주는 장학금을 탈수없게 되였다. 이 경험으로 보면 부모의 주관의사대로 자식의 유년시절을 빼앗지말고 나라에서 규정한 입학년령에 도달한후 학교에 보내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학성이는 소학교 때부터 그날 배운 지식은 그날로 소화시키는 량호한 습관을 가지게되였다.
집에와서 숙제를 하다가 잘 깨치지 못할 문제가 있으면 문과부분은 나한테 물어보고 자연과 부분은 엄마한테 묻군 하였다.
90년대 중반까지 한족학교에는 영어과가 있었지만 조선족학교에서는 일어를 배우게 되였다. 영어를 모르면 대학에 진학해도 공부에서 압력을 받을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나는 장원한 타산을 하고 학성이를 소학교 4학년 때부터 5년간 과외로 영어를 보도
받게 하였다.
학성이는 중학교 2학년에 진급한후 학급의 상류생 대부분이 방학간에 주과들을 과
외보도를 받는것을 보고 자기도 한번 보도를 받아보겠다고 하였다.이틀간 수학보도를 받고 그는 다음 학기에 배울 내용들을 아까운 돈까지 내면서 먼저 배울 필요가 없다면서 그 시간이면 독서나 더 하겠다고 하였다.그는 소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줄곳 공부는 학년에서 앞자리를 차지하였고 학급간부로 활약하였으며 고급중학교때부터는 계속하여 1등 장학금을 받게되였다.
그는 연길시 과학기술대학교에 다닐때 방학마다 각종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 2학년에 진급하여 봉사대 대장직을 맡은후 겨울방학에 대원들을 이끌고 편벽한 내몽고 산재지구에 있는 조선족학생들을 찾아가서 한달 남짓이 간고한 생활을 하면서 우리말 글짓기 지도를 해주었다.
지난해 3월초에 그는 학생15명을 인솔하는 팀장이되여 한국 포항시 한동대학교 학
생들과 교환학습하러 가게 되였다. 방학에 그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생활체험도할겸해서 서울에 있는 학원에 가서 영어, 수학등을 교수하였다.
올해 7월말에 졸업한 그는 대련시에 있는 미국컴퓨터회사(IBM)에 취직하여 한국을 대상으로하는 부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의 사랑을 듬쁙 받아온 그는 할머니가 7년전에 중풍으로 누운 자리에서 대소변을 받아내게 되였지만 조금도 꺼리지 않고 이따금 대소변을 받아내는 시중도 달갑게 하군하였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집에 오지 못하게되면 매주 한두번씩 전화로 할머니의 문안을 해왔다 그는 회사에서 첫달 로임을 타게되자 5백원을 부쳐보내니 할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사다 대접하라고 하였다
내마음속의 진주인 학성이는 성공의 대문으로 들어서게 되였다.
나는 진주를 키워낸 조개마냥 자긍심이 벅차오른다.
첫댓글 따뜻한 가슴님은 자식을 참 잘 두었네요. 부모로서 이신작칙을 하면서 자식의 학습을 지도하였네요 . 잘 보고 내립니다.
글 보면서 내내 부러운 마음입니다.
참 훌륭하게 아들을 잘 키우셨네요. 아들이 없는 저로서는 부럽기만 합니다. 훌륭한 아들을 키우느라 수고많으셨어요. 거운 시간 되세요.
부모가 된 우리에겐 바로 그 자식이 진주처럼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겠죠.아름다운 진주를 키워낸 님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탄을 보냅니다.또한 저희들이 따라배울 본보기를 보여주셔서 아주 고맙군요.
자식교양에서 참 옯바른 선택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존 글 읽고 갑니다. 님한테 쪽지를 따로 보냅니다. 읽어주시고 답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 .... 자랑 할만한 ..아들 ..두엇음니다.... 자랑 스럽음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