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역사] 바느질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부업… 바느질 수익으로 토지도 샀대요
바느질
이한 작가·'한잔 술에 담긴 조선’ 저자 입력 2025.03.25. 00:50 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최근 화제가 됐던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 선출을 둘러싸고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냅니다. 동시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견고한 가부장제의 세계를 다루지요. 남성 추기경들이 건물 위층에 모여 교황을 결정하는 동안, 수녀들은 아래층에서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모든 밑준비를 합니다. 비록 이런 여성들의 일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일을 안 했다면 인류는 먹지도 입지도 못했을 겁니다.
여성들이 보이지 않게 기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느질, 곧 옷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성들이 바느질해서 만들어낸 옷들은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천민들까지 입었고, 바느질 해서 얻은 수익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바느질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찢어지고 뜯어진 것을 꿰매는 것은 물론, 더러워진 옷을 세탁할 때도 그냥 빨지 않고 실밥을 다 뜯어낸 뒤 빤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옷은 말린 뒤에 다시 바느질을 해야 했죠. 바느질거리는 언제나 정말로 많았습니다. 조선 시대 시집간 한 여성의 무덤에서 편지가 발견됐는데, “바느질거리가 너무 많다”며 친정 식구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었대요.
바느질은 실과 바늘만 있으면 할 수 있었기에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부업이기도 했습니다. 솜씨 좋은 여성들끼리 함께 합숙을 하며 바느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옷을 만들어 판매도 했어요. 이들은 협업으로 일상복은 물론 관복이나 활옷 같은 고급 의복도 만들었고, 옷에 자수를 놓는 ‘고부가가치’ 사업도 했지요.
언제나 바느질을 하며 살아야 했던 옛 여성들의 삶이 가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삯바느질(돈을 받고 해주는 바느질)을 열심히 하고 검소하게 산 여성들은 경제적 여유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과부 여성들이 삯바느질로 번 돈으로 땅을 사들였지요. 1870년 충청도 공주 정안면 도현리의 정씨 부인은 시동생과 벌어진 재산 소송에서 “내가 바느질해서 사들인 내 땅들”이라며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바느질은 그저 돈 버는 수단만은 아니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의복 생활과 문화가 여성들의 바느질에서 시작됐으니까요. 사실 조선 시대 관리들이 입은 관복은 왕이 특별히 내려주거나 장인에게 의뢰해 만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각자 집안 여성들이 직접 만들고 수선하기도 했습니다. 영조는 좌의정 김약로의 관복이 처음엔 형편없다가 점점 나아지는 것을 보고 며느리(은진송씨)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조정의 중신들도 옷을 입는 데는 여성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다는 말입니다. 비록 역사에 기록되지 않더라도 숨겨진 노동과 노력이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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