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알 수 없는 잠 못 이루는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잠을 자긴 자는데, 깊게 못 자고 잘때마다 끙끙 앓는 느낌이다.
꿈도 막 어지러이 꾸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생각나거나 하는건 또 아니다.
그냥 어지럽고, 어지럽고, 이게 꿈인건지 아니면 내가 생각중인건지 구분조차 안 간다.
이렇게 끙끙 앓다가 깨는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무서운 꿈을 좀처럼 꾸진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불을 끄는것도 좀 무섭고, 무서운 꿈도 꿨다.
꿈 내용 자체가 무서운 건 아니었는데, 그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있다.
아무래도 새로운 것에 대한,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커진 때문일까..
나는 또 다시 백수가 되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 6월 초에는 거의 4년을 만난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지난 8월 말 부로 3년 넘게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었다.
이 남자친구와 이 직장은 공교롭게도 스타트가 거의 같았고, 끝맺음도 거의 같았다.
남자친구와도 너무 힘들게 만났고, 직장도 너무 힘들게 다녔다.
외부적인 환경도 힘들었지만, 나의 내부적으로도 참으로 여유없고 힘들던 나날이었다.
그나마 내가 무슨 짓을 하던 옆에 있어주던 남자친구가 있어 주말에라도 바람을 쐴 수 있었고, 주말에라도 웃을 수 있었다.
가끔은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 관계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었다. 끝이 정해져 있는 느낌. 우리는 될 수 없는 느낌.
이 서글픈 느낌은 대체 뭐였을까..첫 시작부터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준 남자친구와도 결국은 정리를 했다.
내 나이가 올해로 마흔..정말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앞으로 결혼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린 결정이었다.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 오빠의 생활력이..
오빠랑 결혼하면 모든걸 내가 지고 가야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냥 나 하나 건사하는 삶으로도 너무 버겁고 힘든데, 오빠까지 지고 가는건 너무 힘들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는거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나중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는 하지만..
오빠를 만나는 약 4년 내내 나는 우리가 합쳐졌을 때 더 나은 미래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근근히는 살아가려나..너무 버둥거리면서 힘겹게 살 것만 같았다.
그것에 오빠는 만족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싫었다.
난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 균열이 일어날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얻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들도 같이 살게 되었을 땐 이 균열로 인해 달라질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마음이 평화롭지 않을것이기 때문에..
불길은 스파크 하나만 있어도 일어나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지금의 마음과, 가졌을때의 마음이 같을까.
앞으로 수많은 세월을 같이 흘러가고도 지금처럼이 가능할까.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이 부분은 사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겠지만, 사람의 상황과 마음은 변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안 할수가 없었다.
그렇지만...결정은 내가 했다고 해도, 마음까지 안 아픈건 아니었다.
지난 3~4년 내내 나는 너무나도 외로웠고, 세상에 혼자 떨어진 것 같았고, 지독한 고립감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나에게 세상은 오빠 하나였다.
나를 가장 잘 알고, 내 가장 어두운 모습까지 봐 준 사람.
나의 가장 어둡고 힘든 시기를 함께 해 준 사람.
그랬기때문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게 맞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도 나는 외롭고, 보고싶고, 힘이 든다.
하지만 번복할 생각은 없다. 맞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잘 한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다시 시간을 돌려 돌아간다고 해도..똑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 같다.
직장도 마찬가지이다.
이 회사는..내게 중책을 주었지만 그만큼 너무나도 어렵고 힘들었고 부담스러웠다.
중간에서 모든것을 시작하고 컨트롤 해야 하는 위치였는데, 지금껏 이런 일을 해본적 없던 나는 매일같이 긴장하고 힘겨웠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 누구도 도울 수도 없었다.
오히려 도와주려면 내가 도와줘야 하는 위치였다.
밑의 사람들은 오히려 나에게 요청을 했다.
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요구를 했다.
매일같이 수많은 요청, 문의, 요구에 시달렸다.
매일같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내야 했다.
거기에 플러스, 거래처인 본사 사람들까지도 모든 일을 나를 통해 소통했다.
그들은 제대로 짚어주지 않으면 스스로 뭘 알아서 해오는 법이 없었다.
나는 아랫사람, 윗사람, 본사 사람들...3중으로 온갖 요구, 요청, 문의, 정리에 시달렸다.
남자친구와 헤어진게 크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부터는 이제 몸으로 오기 시작했다.
귀에 이명이 들리고,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머리는 과부하가 와서 더 이상의 지식이 머리에 들어가질 않았다.
집중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며 이겨내보려고 했지만...회사와 윗 상사의 태도는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고있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뒤치다꺼리란 뒤치다꺼리는 다~~해놓고, 욕은 욕대로 먹는 느낌이었다.
때마침 미국에 살고있던 고모가 나에게 기회를 줬다.
히유야..그냥 다 정리하고 미국으로 와...
그래서 나는 겸사겸사 모든걸 정리하고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이다.
좀 더 어릴 시절이었다면 미국에 가게 된 게 너무나도 설레고 들뜨고 기대될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에 난 "이제와서 무슨 미국이야" 하며 고모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상황이 계속 나를 '정리'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의 모든것을 한번 싹 다 정리해버리고 싶었다.
내가 미국으로 가서 앞으로 살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그 곳에서 주욱 있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비자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겠지.
하지만 그렇든 저렇든, 나에게는 지금이 매우 큰 시점이다.
변화의 시점.
나한테는 어떤 느낌까지 드냐면, 신변을 정리하는 느낌이다.
사람이 죽기 전에, 자기 주변을 정리하지 않나.
나는 내가 마치 내 신변을 정리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이 땅의 모든것을 정리하고...멀리 멀리 떠나는 느낌.
이 땅에서의 지긋지긋한 스토리를 정리하고...떠나는 느낌.
이 땅에서는 실패했고, 새 삶을 위해 떠나는 느낌..
이것은 무슨 느낌인 것일까?
그냥 퇴사하고 미국 잠깐 다녀오는 것일텐데, 나에겐 왜 이리 크게 느껴지는지..
다녀와서 또 똑같이 이직하고 회사다니고 그러겠지..근데 왜 이렇게 영영 다시는 못 돌아올 강을 건너는 느낌일까.
이 느낌이 나를 너무 불안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 같다.
패배감으로 모든 신변을 정리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가는 느낌.
...
나는 타로카드를 원데이 클래스로 배운 적이 있다.
이후로도 한번씩 자점을 보거나 재미로 이런저런 상황에서 뽑아본 적이 많다.
정말 집중해서 정말 간절히 그 생각에 골몰할 때 뽑으면, 신기할 때가 많았다.
내가 그 상황에 껴맞추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적어도 설득력 있는 카드가 나와야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뽑아본 타로카드는, 킹 컵, 파이브 소드, 식스 소드, 그리고 결론이 나이트 소드였다.
나의 상황과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마음은 가득한데 거의 외부에 뺏기듯이 내가 가졌던 모든걸 내려놓고 돌아선다. 울며 겨자먹기로 물을 건너 떠나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감정보단 이성을 활용해 빠르게 액션을 취하고 행동한다.
신기했다.
결론은 어쩌면 나에게 주는 조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감정에만 빠져있지 말고, 활발하고 신속하게 행동하라는 조언.
그리고 나이트 소드에 대해 구체적인 뜻을 물으며 세 장을 더 뽑으니, 퀸 완드, 교황, 포 완드 였다.
내가 아마 나이트 소드처럼 행동한다면, 일적으로도 그렇고 그쪽 커뮤니티나 어떠한 단체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결국은 포 완드, 축하할 일이 생기거나 안정을 이룰거라는 해석으로 나는 보였다.
카드는 참 신기하다.
아니, 카드에 상황을 맞춰보려는 내가 신기한걸수도 있고..
아무튼 내가 여기 접속해서 쓰려던 말은,
며칠째 알 수 없는 불안과 불면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즐겁고 설레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은 참으로 슬프다.
슬프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막 나기도 한다.
끝..
여기까지가 끝이다..라는 키워드.
여기까지다. 라는 키워드.
여기서는 난 할만큼 했다, 라는 마음.
그냥 당당한 이동이라기 보다는, 내가 졌다..내가 모든걸 내려놓겠다..모든걸 두고 떠나겠다..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슬픈건지도 모르겠다.
뭐에 졌다는 것일까?
그냥...세상에게 졌다는 것일까..
아무튼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내 마음대로 되는게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모든 걸 내려두고 제로베이스로 다시 시작하겠다..
그냥 남은 건 너 가져라..
난 아무것도 갖지 않은 채 홀홀단신 떠나겠다..
그런 느낌이다.
내게 남은것은 하나도 없다..
알겠으니 이제 그만 해라..
내가 다 내려놓고 가겠다. 네가 이겼다..
대체 무엇으로부터..패배한 것일까 나는.
대체 무엇과 싸웠던 것일까 나는.
이 불안과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걸까..
이 불안과 두려움보다 더 깊은 곳에 맺혀있는 슬픔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걸까..
내 가슴에 이 깊은 슬픔이 뿌리뽑힐 날이 오긴 올까..
이제부터 내 뜻대로 다 잘 풀린다고 해도 지금까지 받은 상처와 슬픔이 너무나도 커서,
거의 내 인생의 절반을 슬픔 속에서 보냈기 때문에,
이제부터 잘 풀린다 해도 나는 앞으로 기쁘겠지만,
이 마음 속 이미 받은 깊은 슬픔과 상처는..잊혀지진 않을 것 같다.
기쁨이 자리를 더 채우면 그 슬픔과 상처가 더 멀어지고 옅어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지긋지긋하고 싫은 감정이면서도...이 슬픔과 상처가 아예 사라진다면..나는 너무 날뛰는 망아지가 될지도 모른다.
어떤..닻과도 같은 것이다.
나를 방방 뜨지 않도록 잡아주는 무거운 추.
하지만 지금은 그 슬픔의 무게가 너무 커서, 자꾸만 가라앉는다. 가라앉으려 한다.
더 이상 피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다 두고..떠나련다.
미련도 슬픔도 다 두고서..
내가 졌으니 나는 떠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