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강원 강릉역을 출발해 서울로 가던 KTX가 출발 5분 만에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1년 2월 광명역 KTX 탈선사고 이후 두 번째 탈선 사고다. 문제는 11월 19일 이후 3주 동안 11건의 사건, 사고가 KTX 열차에서 연이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언론과 야당, 많은 전문가들은 오영식 사장 취임 이후 코레일의 ‘기강 해이(解弛)’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결국 오영식 사장은 11일 자진 사퇴했다.
8일 오전 7시30분께 강릉역을 출발해 진부역으로 향하던 KTX 806 열차가 강릉역에서 약 5㎞ 떨어진 곳에서 궤도를 이탈했다. 이 사고로 승객과 코레일 직원 등 16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았고, 400m 가량의 레일이 구부러지는 등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KTX의 속도가 시속 100㎞ 수준이었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적었을 뿐 시속 200㎞ 이상으로 달리다 탈선했다면 대규모 인명피해가 날 가능성이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오영식 사장 책임론’이 거세진 것은 그의 실언(失言) 때문이다. 그는 8일 사고 현장에서 "이번 사고는 기온 급강하에 따라 선로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지 않을까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전문가들 사이에서 "철도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말이 나왔다. 선로는 영하 40도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고 당시 강릉 최저기온은 영하 10도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 전문가는 "한파(寒波)가 선로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정도 추위로 사고가 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철도 책임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위기"라고 했다.
야당은 이번 사고를 ‘낙하산 인사가 낸 인재(人災)’로 규정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 송희경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현 정부 들어 임명된 코레일과 그 자회사 임원 37명 가운데 13명이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낙하산인 것에 근본적인 사고 원인이 있다”며 “특히 코레일 사장은 전대협 제2기 의장으로 운동권 출신의 전형적인 캠코더 낙하산”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오 사장이 취임 직후 불법파업으로 해고된 노조원을 복직시킨 것을 예로 들며 “노사 간 긴장이 풀어지면서 안전 점검 등에 총체적 구멍이 생겼다”고도 했다.
지난 2월 철도 분야 경력이 전무한 오 사장이 코레일 사장에 임명될 때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었다. 그는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88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2기 의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이다. 그를 이어 전대협 3기 의장이 된 인물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1990년대 말에는 전대협 동우회 회장을 지냈고,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기인 2003년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비례대표로 16대 국회에 입성(入城)했다. 17·19대 총선에서는 서울 강북갑에서 당선된 3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20대 총선에서는 공천을 앞두고 컷오프 대상이 돼 출마하지 못했다. 2017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대선캠프 조직수석본부 본부장을 맡았다.
오영식 사장은 취임 이후 남북 철도 연결과 비정규직 승무원 복직, 철도 경쟁 체제를 허무는 SRT 재통합 등 철도 안전보다는 親정부, 親노조 정치에 몰두해왔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오 사장뿐 아니라 현 정부가 임명한 코레일 비상임이사 넷 중 두 명은 민노총 출신이고, 한 명은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부동산정책을 맡았던 인물이다. 코레일 역사(驛舍) 內 편의점·카페를 운영하는 코레일유통과 역사 시설 관리·발권 업무를 하는 코레일네트웍스 등 코레일 계열사에도 문 대통령 인터넷 팬 카페 운영자, 영어학원장 출신 등 철도 비전문가들이 수두룩하게 앉아 있다.
코레일 직원들, 특히 철도노조 소속 직원들에게 오영식 사장은 영웅이나 다름없다. 지난 2월 취임사에서 오 사장은 주요 경영 방향으로 안전체계 확립과 서비스 개선 같은 본연의 업무 외에 △SR과의 통합 등 철도 공공성 강화 △남북철도와 대륙철도 진출 △동반자적 노사관계 구축을 강조했다.
취임 첫날 그가 찾은 곳은 해고자들의 농성장이었다. 농성장 방문 이틀 만에 철도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98명의 전원 복직을 약속했고, 4월 해고 노조원 65명이 1차 복직했다. 이들 65명 중 53명은 지난 6월 특별승진까지 했다. 특별승진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그 밖에 사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라는 예외 규정을 동원해 승진시킨 것이다.
또한 복직이 확정된 코레일 노조원 98명 중 상당수가 다시 파업을 주도하거나 노조 전임자로 활동하며 쟁의에 앞장서고 있다. 5명은 철도파업을 주도하는 확대쟁의대책위원회 위원에 포함됐으며 내년 하반기 복직 예정인 33명 가운데 16명도 민주노총 산하 철도노조 임원으로 이 중 2명은 노사 협상 테이블에서 임금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
7월엔 KTX 해고 승무원 180여 명을 특별채용 하는 데 최종 합의했다. 2006년 5월 280명이 해고된 뒤 12년 만에 전격적으로 고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법원이 1·2심을 뒤집고 ‘코레일의 직접고용 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사안을 제자리로 돌려놨다. 당시 소송에 참여했던 33명은 코레일 사무영업직으로 입사하게 된다. 8월에는 비정규직 6769명의 정규직 전환 등을 결정했다.
반면 경영기획본부장 등 주요 경영진은 보직 해임했다. 노조가 “철도 민영화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퇴임을 요구해왔던 인물들이다.
오 사장의 친노조 행보에 노조의 목소리는 더 강해졌다. 작년 855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지난달 15일 기본급 2.6%(호봉승급분 포함) 인상, 정원 3064명 증원에 노사가 합의했다. 이는 사실상 노조의 요구를 전부 받아들인 것이다. 코레일의 덩치는 11월 현재 2만9600여 명에서 내년 3만1800여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증원은 그렇지 않아도 인건비 비중이 높아 만성 적자 상태인 코레일 경영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방만 경영 등을 이유로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추진했다. 코레일의 경우 2009년 5115명의 정원 감축안을 확정했다. 당시 정원 3만2092명의 15.9%에 해당한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인건비 절감 없이는 영업수지 개선이 요원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코레일은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 자연 퇴직 등을 통해 초과 현원을 해결하기로 했었다.
문제는 코레일의 인력 구조가 2015년까지 이어져온 자동근속승진제도로 3~4급의 고위직급이 약 70% 이상을 차지하는 역피라미드 형태를 띠고 있어 시간이 갈수록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2014년 공공기관 경영관리·감독실태 감사에서 "코레일이 초과 현원 상태에서도 자동근속승진을 유지하고 있어 추가 인건비가 발생하고, 조직과 인사운영이 역량과 성과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코레일이 밝힌 매출 규모는 5조572억 원쯤이다. 급여와 복리후생비 등을 포함한 인건비는 2조6160억 원쯤이다. 매출액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1%를 넘는다. 한국도로공사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은 8조598억 원, 인건비는 퇴직급여와 성과급, 복리후생비 등을 포함해 4259억 원쯤이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5.3%에 불과하다.
이번 사고에 대해 철도노조는 인력감축에 따른 안전점검 인력 부족, 평창올림픽에 맞춘 준비 안된 강릉선 개통 등 외부적 요인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1월 중순부터 계속된 사고로 비상경영체제 하에 있으면서도 이런 사고가 또 발생한 원인은, ‘비상상황’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을 정도로 조직 기강이 무너진 ‘노조 천국’ 코레일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댓글
검색 옵션 선택상자
댓글내용선택됨
옵션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