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단계 (마 6:5-8)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이 시간에는 "기도의 단계"라는 제목입니다.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기도의 수준을 말씀하는 부분들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서에만 해도 이방인의 기도, 바리새인의 기도, 세리의 기도, 과부의 기도, 제자들의 기도, 그리고 예수님의 마가의 다락방과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등 여러 수준의 기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단계에는 편리상 약 네 수준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1. 육신적인 소원의 단계가 있습니다.
마6:32에 "이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하신 것처럼 이 단계는 삶에 문제가 있거나 무슨 육신적인 소원이 있을 때만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이방인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도 기도하는데 신자가 왜 기도를 안 합니까?
그런데 이 기도는 한 마디로 육신의 본능에 머문 기도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처럼 인간 공로에 기초를 둔 이방종교의 습관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마6:7). 학자들 중에 아직 교인들이 샤마니즘 즉 미신적인 기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바로 육신적 소원의 단계를 지적함입니다.
그래도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어른이 아이를 만나주시듯 이 단계에서도 만나주시고 응답을 주십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믿음을 심어주시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훈련시키시며, 이것을 통해 하나님 당신의 살아 계심과, 사랑하심을 보여주시며, 나아가 기도의 사람으로 훈련시키십니다.
그래서 기도가 바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자라기까지는 일단 용납하십니다. 시32:6에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한 것처럼 이 육신의 소원 단계에서 가장 주용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한나의 기도도 이 단계에서 시작했습니다. 삼상1:10-11에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얼마나 괴로우면 통곡하고 서원하며 기도했겠습니까? 이처럼 육신적인 문제라도 가지고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면 일차 기도훈련에 합격한 사람입니다.
2. 의무와 책임의 기도단계가 있습니다.
고전9:16-17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했습니다.
이 고백과 같이 의무와 책임을 느끼면서 기도한다면 비할 수 없는 발전입니다. ‘내가 기도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그 책임을 느낍니다. ‘나는 성도가 아닌가? 나는 직분자가 아닌가? 나는 파수꾼이 아닌가? 기도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내가 자면 가정에 시험이 오고 교회와 나라와 세계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본능에 사로잡힌 기도에서 이 의무의 단계까지 오는데 사람에 따라서 몇 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어도 기도하지 않거나 문제가 있을 때만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의무와 책임감을 가지고 훈련 받아 기도의 용사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 열심을 보시고 일단은 많은 은혜를 경험토록 하십니다.
이 단계에서 주의점이 그것입니다. 마치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했지만 곧 바로 인정으로 예수님의 앞을 막으려다 사탄이라는 책망을 받았듯이 아직도 내 중심의 사고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체험이 있다고 대단한 자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도 믿음도 교회도 질서도 모르면서 날뛰어서는 안 됩니다. 헌신적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일단 만나주신 것이지 완전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용사가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발전입니다.
3. 기도의 말씀단계입니다.
골4:12에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했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말씀단계란 헌신적으로 기도하되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 진리 중심 복음 중심으로 기도함을 가리킵니다.
전에는 내가 하나님을 시키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쓰임을 받기 위한 겸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간구 중심이었는데 진리를 깨닫고 보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믿고 감사합니다.
빌4:6-7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했는데 이것은 말씀에 선 자의 대표적인 기도의 예입니다.
말씀을 알기에 염려하지 않고, 말씀을 알기에 기도와 간구를 하되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있고, 그 응답의 확신을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의 기도와 같이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더 갈망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도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이지 내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붙들림의 기도의 단계가 있습니다.
빌1:8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던 것처럼 말씀과 성령에 붙들려 예수님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니엘처럼 기도에 생명을 걸고, 그리고 말씀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깊이 만나주시는 기도입니다.
마치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신 것처럼(출33:11) 하나님을 느끼는 친밀한 기도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항구적인 임재 경험 가운데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해도 수고롭지가 않고 기도 자체가 행복이요, 전에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즉각 즉각 반응하십니다. 즉 예수님과 한 몸 한 마음 한 뜻 한 힘이 되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기도의 수준도 중요하지만 먼저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기도의 단계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의 광장으로 부르시기 위하여 고난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몸과 마음을 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장 복된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