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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사람들이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 2 /이사야 59:1-3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서울 서대문 영천시장에 가난한 콩나물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새벽마다 시장에 가기 전에 무거운 콩나물 통을 이고 교회로 가서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는 지극히 소박한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 저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일꾼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여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 자녀는 제약회사를 설립해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그 자녀는 어머니의 새벽기도와 교회 종소리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업 성공이 어머니의 새벽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결과라고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기도응답을 잊지 않으려고 회사의 심벌을 ‘종’으로 정했습니다. 이 회사가 바로 믿음과 신뢰의 기업 종근당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당장에는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길게 보면 결국은 응답이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이 본문으로 사람들이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 네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이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응답의 자판기가 아닙니다. “하나님! 제게 10억을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10억을 주시고, “하나님! 제게 자가용 비행기를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러면 자가용 비행기를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 기도응답의 자판기가 아닙니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는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이며 그분의 뜻을 찾는 수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며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짜 잘하는 기도는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이고,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면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가 가장 이상적인 기도입니다.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한 기도의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막 14:36입니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만 인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십자가를 받아드리시기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요일 5:14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치 리모컨을 가지고 TV 채널을 조정하듯이 기도로 하나님을 조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기도응답을 못 받는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님이 쓰신 [깊은 기도를 경험하라]는 책에 나오는 삽화 중에 하나입니다. 한 성도가 바닥에 엎드려 계신 예수님 위에 올라타서 예수님의 팔을 뒤로 꺾으면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고 조정하려는 교인들의 모습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이런 기도는 절대 응답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나침반의 바늘은 항상 정북쪽과 정남쪽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침반을 가지고 방향을 찾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나침반과 같다는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기도해야 올바른 기도이며 그렇게 기도해야 응답 되는 것입니다.
사 55:8-9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 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며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길이 다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서 기도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서 기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김광락 선교사님의 간증입니다. 그가 청년 때 “하나님! 군대 면제시켜 주십시오.”라고 몇 년 동안 그 누구보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김광락 청년은 자기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기도임을 확신케 하는 여러 가지 명분과 성경구절들을 찾았습니다. 첫째는 군대생활은 정말 시간 낭비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도 시간낭비라고 믿어졌습니다. 둘째는 성경에서는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그는 성경구절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셋째 자신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려는 진실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가 볼 때에 군대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넷째 그의 집은 정말 가난했고 아버님은 노동력을 상실한 장애인이셨습니다. 그래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섯째 그는 군대 생활을 할 시간에 교회와 학교를 섬기는 등 학창시절을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한다는 확신이 들었고 응답해주실 줄로 믿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최전방의 부대에 현역으로 배치되었고, 온갖 힘든 훈련은 다 받았습니다. 훈련보다 더 힘든 것은 내무반 생활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그는 자기의 소박한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으신 하나님께 단단히 토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미워하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군종도 자리가 없어서 하지 못했습니다.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시간이 흘러 전역할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낮아질 대로 낮아진 그를 친히 찾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신기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찾은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그를 먼저 찾아주셨습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고 주님과의 깊은 기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늘 병치레를 잘하고 편식도 심하고 음식을 잘 가리고 소화도 잘 못시키는 그의 몸이 달라졌습니다. 50kg 중반에 머물렀던 체중이 70kg까지 나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광락 선교사님은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응답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하나님은 그것마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셨습니다.
2. 응답의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치의 유태인 최대 학살 현장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젊고 유능한 유태인 의사가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가스실과 실험실로 향하는 동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흙 속에 파묻힌 깨진 유리병 조각을 발견하여 날마다 그것으로 면도를 했습니다. 독일 군인들이 처형자를 고르기 위해 올 때마다 그는 면도한 덕분에 군인들의 눈에 쓸만한 인간으로 보였기 때문에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는 독일이 패망할 때까지 살아남아 스페인에서 유능한 외과 의사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용소의 생활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입니다.” 맞습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의 때가 아닌데 우리가 너무 성급하기 때문에 실수하거나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 3:1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범사에 기한이 있습니다. 만사가 때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과 사모님이 너무 사이가 좋으니 10살 된 딸이 그 모습에 샘이 나서 자기도 시집보내달라고 떼를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사모님이 그 딸을 시집보냈습니다. 보내기는 보냈는데 15년 기다렸다가 시집보냈습니다. 어차피 시집가는 것이라고 해서 10살 된 딸을 시집보낼 수는 없습니다. 나이가 차야 됩니다. 만사가 때가 있습니다. 기도응답도 때가 있습니다.
전 3:11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제가 사진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사진은 통영시농업기술센터 자연학습장에 심은 튤립 꽃밭의 사진입니다. 4월의 튤립 밭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5월이 지나고 6월이 되면 이 꽃밭의 아름다움은 사라집니다. 그대로 방치하면 흉물스럽게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기도응답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고 응답의 때를 기다릴 줄 모르면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기도했으면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메아리도 돌아오는 시간이 있습니다. 사람과의 대화도 질문을 했으면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 응답도 기다려야 합니다. 오래 참아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 진리는 깊은 진리가 아니라 상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인 기다림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극장에 손님 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영화를 봤는데 집에 돌아와서 보니 없다는 것입니다. 직원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찾아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손님이 앉았다는 자리에 가서 목걸이를 찾았습니다. 직원은 급히 뛰어 가서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직원은 전화 수화기를 들고 손님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습니다. “뚜뚜뚜...” 손님은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를 끊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 손님에게서 다시는 전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손님이 좀 더 기다렸다면 잃어버린 목걸이를 찾았을 텐데 기다리지 못해서 목걸이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주님의 유언을 들은 사람들은 형제만 500여명이었습니다. 자매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2천명 이상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사람은 고작 120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성령님은 강림하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실망하고 기도의 자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10일 째, 하나님이 약속하신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며 기도하던 120명만 성령충만을 받고 초대교회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간혹 우상숭배자들이 신자들보다 더 지혜로운 경우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마을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드리는데 신통하게도 이 마을에서 기우제를 드리면 반드시 비가 온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비결은 간단합니다.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린답니다. 열흘이고 한 달이고 1년이고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리면 반드시 비가 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한두 번하고 응답 없다고 포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기도는 응답이 올 때까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어야 응답해주십니다.
합 2:3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은 반드시 정한 때가 있습니다. 더딘 것 같아도 그때까지 기다리면 반드시 정한 때에 이루어집니다.
어느 의학박사님은 사람이 성급하면 빨리 죽는답니다. 그분의 환자 중에 한 사람이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성격이 급해서 주변 모든 일에 간섭을 하면서 발버둥 치더랍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이 환자를 호주의 코알라 농장에 입원을 시켰답니다. 환자가 코알라를 보니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더랍니다. 코알라가 한발자국 뛰고 한참 쉬고 두발자국 뛰고 하더랍니다. 그 환자가 코알라를 보고 자기도 따라서 하다가 마음에 평안을 얻고 암을 정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응답을 원한다면 조급함, 성급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기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언제까지요?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 합니다.
3. 처리 되지 못한 죄 때문입니다.
혹시 오래된 수도 파이프 속이 녹슬어서 막힌 사진을 보신 적 있나요? 끔찍합니다. 그런 파이프에서 물이 나오면 시뻘건 녹물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 파이프로 여러분에게 물을 보낸다면 여러분은 그 물을 마시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우리의 기도 파이프가 온갖 악취가 나는 죄들로 막혀있다면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겠습니까? 응답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사 59:1,2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사야 59장은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먼저는 이사야 59장을 불신자들에게 주어진 메시지로 보는 관점입니다. 또 다른 관점은 이사야 59장이 신자들에게 주어진 메시지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저는 후자에 동의합니다. 이 메시지는 1차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예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메시지는 2차적으로 신자들에게 주어진 메시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손이 짧기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의 귀가 둔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의 죄악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어서 듣지 않으시게 하는 것입니다.
죄는 갈라놓는 위력이 있습니다. 이 위력이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갈라놓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크게 네 가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첫째, 대신관계,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둘째, 대아관계, 자기와의 관계입니다. 셋째, 대인관계, 타인과의 관계입니다. 넷째, 대물관계, 자연이나 물질과의 관계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대신관계이고, 그 다음이 대아관계입니다. 구약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의 관계이야기입니다. 신약 성경은 주님의 몸인 교회와 하나님과의 관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에 치명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죄입니다. 시 66:18입니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습니다. 하나님은 죄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철저히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죄는 어떻게 처리하나요? 옛날에 비누가 없던 시절에 어느 시골 양반이 세탁비누를 쓰면 때가 잘 빠진다는 말을 듣고 “내 평생에 찌든 악의 때를 벗겨내야겠다.”면서 비눗물을 만들어 꿀꺽꿀꺽 마셨다고 합니다. 과연 비눗물이 평생 지은 죄악의 때를 씻을 수 있을까요? 절대로 안 됩니다. 렘 2:22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의 죄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렘 13:23입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구스인은 흑인입니다. 흑인이 자신의 피부색이 맘에 들지 않아서 수세미로 피부를 박박 닦아낸다면 피부가 하얗게 될까요? 안 됩니다. 불가능합니다. 죄인인 우리가 스스로 죄를 처리하는 것도, 스스로 선하게 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①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엡 1:7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죄를 구름이라고 가정을 합시다.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듯이 죄의 구름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래서 마 5:8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죄 사함 받고 마음이 깨끗해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죄를 처리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는 죄의 먹구름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것입니다. 먹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비행기로 비유를 하겠습니다. 먹구름 때문에 태양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행기의 고도를 높입니다. 비행기가 먹구름을 뚫고 그 위로 올라가면 맑은 태양이 빛나는 창공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곳에서는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누가 비행기에 탄 사람들을 먹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서 맑은 하늘과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게 합니까? 비행기 조정사입니다. 죄악의 먹구름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던 우리들의 죄를 해결해주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를 해결 받습니다.
②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요일 1:9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불신자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피로 속량 곧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고, 천국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런데 구원의 은혜를 받은 이후에 늘 거룩하고 깨끗하면 좋을 텐데 그게 안 됩니다. 사람은 연약해서 자주 넘어집니다.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자주 범죄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잘못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옛날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난한 여류 피아니스트가 있었습니다. 고아 출신으로 고학으로 피아노를 익혔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독주회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연주회를 열려고 하니까 자기 같은 무명의 피아니스트를 보러 누가 올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청중을 많이 모을 욕심으로 당시 유명한 음악가였던 리스트의 제자라고 거짓 선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독주회 전날 리스트가 그 마을에 방문한 것입니다. 큰일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그 피아니스트는 리스트 앞에 달려가 무릎 꿇고 사죄했습니다. 리스트가 정색을 하며 야단을 칩니다. “정말 당신이 큰 잘못을 했군.” 고개를 들지 못하는 여자에게 리스트는 미소를 띠더니 말했습니다. “자, 내 앞에서 연주해보세요.” 여자는 벌벌 떨면서 연주를 했습니다. 리스트가 몇 군데 고쳐주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내 제자요. 마지막 곡은 선생인 리스트가 직접 연주한다고 소개하시오!” 자기는 잘한 게 없는데, 다만 리스트 앞에 자기의 잘못을 자백한 것 밖에 없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수지맞은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일이 있는데,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는 자에게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죄가 기도를 막습니다. 죄가 기도응답을 막습니다. 예수 믿고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은 후에 범한 죄는 하나님께 자백하면 다 용서해주시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4. 불순종 때문입니다.
제 친구 목사님 교회에 장로님 한 분이 매달 십일조를 7만원씩 하셨답니다. 장로님이지만 돈이 없으니 교회 큰 일이 있을 때는 앞장서서 헌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흥회 중에 부흥사 목사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작정헌금을 하도록 권면하셨습니다. 부흥회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부흥사목사님의 설교말씀에 순종해서 작정을 하는데, 그 장로님만 작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로님에게 부흥사 목사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아지면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적금 탄 천만 원을 헌금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장로님의 순종을 보시고 역사하셨습니다. 장로님이 전에 출판 사업을 하던 분인데, 사업이 망해서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로님과 아는 사람 가운데 교육 사업을 크게 하시는 사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이 장로님에게 말했습니다. “제 사업장의 모든 인쇄물을 맡아주십시오.”, “저는 돈이 없습니다. 사장님 사업장의 인쇄물을 맡아서 하려면 인쇄기도 필요하고, 사무실도 있어야 하는데 저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사무실 얻을 돈과 기계 값을 제공할 테니 시작해보세요” 이렇게 해서 장로님이 인쇄 사업을 다시 시작했는데, 제가 친구 목사님에게 그 간증을 들을 때에는 십일조를 100만 원 이상 드린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이 목사님에게 “곧 십일조를 300만 원 씩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이제는 남전도회 모임이 있을 때면 남전도회 회원들에게 “심어야 복 받습니다. 열심히 심으세요”라고 권면을 한답니다. 부흥사 목사님을 통해서 주신 설교 말씀에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그분을 복되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삼상 15:22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세워주셨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를 받은 것입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불순종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이 나옵니다. 그 전쟁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 왕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초창기에 아말렉의 공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시고 아말렉을 심판하시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멸하라 명하셨습니다.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아말렉과 전쟁을 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말렉을 물리쳤습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진멸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의 아각 왕은 사로잡고 양과 소 중에서 가장 좋은 것과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진멸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삼상 15:23을 보겠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울은 그 불순종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삼상 28:6입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니 사울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대헤서 응답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불순종 때문에 기도응답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기도응답이 막힌 분은 없습니까?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불순종한 것을 발견하면 지체치 말고 순종하셔서 기도응답이 풍성하게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사람들이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 2”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이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 네 가지를 나눴습니다. 1.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2. 응답의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처리 되지 못한 죄 때문입니다. 4. 불순종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응답을 누려야 합니다. 이엠 바운즈는 “기도가 우리를 위대함으로 이끈다.”고 했습니다. 기도로 위대한 삶을 산 사람이 있습니다.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 100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설문 내용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인가?”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이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뽑았던 처칠은 의외로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는 엉망이었습니다. “품행이 나쁘고 믿을 수 없는 아이. 희망이 전혀 없으며 ,다른 아이들과 싸움질만 일삼는 문제아” 그는 성적도 초라했고. 지리 점수는 겨우 낙제를 면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3수 끝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런 그가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런 파워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답은 기도였습니다. 그는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처칠은 전쟁터에서나 국회에서 늘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무한대의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가 우리를 위대함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기도하여 기도응답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